폴리스 뉴스

[폴리스 뉴스] [홈리스뉴스 21호-당당하게] 대포차! 자진신고부터 합시다.

[폴리스 뉴스] [홈리스뉴스 21호-당당하게] 대포차! 자진신고부터 합시다.

안전행정부는 3.31.지방세정보시스템-자동차관리정보시스템 연계해 대포차 신고 자료 실시간 공유키로 함. 이로 인해 지자체에서 대포차 단속이 용이해짐. 이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을 확인하여 정보제공 차원의 기사.

[폴리스 뉴스] [홈리스뉴스 21호-요세바통신] 일본 생활보호법 개정

[폴리스 뉴스] [홈리스뉴스 21호-요세바통신] 일본 생활보호법 개정

[특집Ⅰ] 개정된 생활보호법의 주요 내용 지난 호부터는 일본에서 생활보호법이 개정된 배경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개정된 내용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개정된 내용은 크게 다섯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①취업에 의한 자립을 촉진하기 위해 취업자립 급부를 창설한다. ②피보호자 취업자립지원사업을 창설한다. ③피보호자의 건강관리나 가계 지원에 대한 대응을 강화한다. ④부정, 부적 수급자 대책 강화의 일환으로 신청 시 이외에도, 복지사무소의 조사권한을 강화한다(벌칙과 반환금, 부양의무자에 대한 통지 등). ⑤의료부조의 적정화(지정의료기관의 검토, 지도강화, 후발의약품 사용의 촉진) 전체적으로 생활보호에서 벗어나는 것을 촉진하고, 부정 수급자에 대한 대책을 강화하는 등, 여러 면에서 엄격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중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바로 4번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 내용에 대해서 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신청의 엄격화, 신청을 만류하는 공무원 먼저 신청의 엄격화와 관련된 것입니다. 일본은 생활보호법 신청을 누구라도 할 수 있으며, 특히 서류를 제출하지 않고, 구두로도 신청할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신청을 일단 하기만 하면, 공무원 입장에서는 그것을 어떠한 형태로든 서류로 처리해야

[폴리스 뉴스] [홈리스뉴스 21호-세계의 홈리스] 유럽 전역에 빈집이 넘쳐나고 있다

[폴리스 뉴스] [홈리스뉴스 21호-세계의 홈리스] 유럽 전역에 빈집이 넘쳐나고 있다

유럽 전역에 1,100만 가구의 빈집이 존재

[폴리스 뉴스] [홈리스뉴스 21호-특집Ⅰ] 아는 것이 힘! 우리의 힘으로 기초법을 바꾸자!

[폴리스 뉴스] [홈리스뉴스 21호-특집Ⅰ] 아는 것이 힘! 우리의 힘으로 기초법을 바꾸자!

아는 것이 힘! 기초보장제도 긴급교육/긴급 토론회 참여 후기

[폴리스 뉴스] [홈리스뉴스 21호-특집Ⅱ] 홈리스의 눈으로 본 ‘황제노역’

[폴리스 뉴스] [홈리스뉴스 21호-특집Ⅱ] 홈리스의 눈으로 본 ‘황제노역’

황제노역에 대해 벌금 미납 노역 유치 경험자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결과를 정리.

[폴리스 뉴스] [홈리스뉴스 21호-홈리스인권 아우성]응급대피소가 문을 닫다

[폴리스 뉴스] [홈리스뉴스 21호-홈리스인권 아우성]응급대피소가 문을 닫다

4.15. 응급대피소 폐쇄 전후하여 응급대피소를 이용했던 분들의 요구, 아쉬움, 이후 취침 계획 등을 수합하여 글로 묶음.

[폴리스 뉴스] [홈리스뉴스 20호-특집] 쪽방, 시련의 계절을 맞다

[폴리스 뉴스] [홈리스뉴스 20호-특집] 쪽방, 시련의 계절을 맞다

[특집] 3월 들어서만 세 분의 쪽방 주민이 세상을 떠났다. 서울역 뒤 편 동자동 쪽방에서만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죽은 채’ 발견되었다. 언제 사망했는지는 알 수 없다. 제사 지내 줄 이 있겠느냐만 세상을 뜬 날 조차 특정할 수 없다는 게 고단했던 그네들의 삶만큼이나 처절하다. 한파도 가고 목련도 애기 주먹만 한 꽃송이를 내밀고 있건만 쪽방의 기운은 여전히 엄동설한 칼바람이다. 겨울을 이기려 온 힘을 쏟고 스러져간 이들의 한은 물론 쪽방을 둘러싼 몇몇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청계천 쪽방 화재, 그 후 2월 17일, 청계천변에 있는 쪽방 건물 한 동에서 화재가 나 두 분의 주민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두 동 중 한 동이 전소되는 통에 그곳에 거주하던 28명(주민등록등재자로 실 거주자는 더 많다)은 황급히 불을 피해 나와야 했다.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벌써 네 번째 화재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화재가 나기 전까지 이 쪽방과 그곳에 살고 있는 이들의 존재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해당 쪽방은 상가들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에 전혀 노출되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다.

[폴리스 뉴스] [홈리스뉴스 20호-당당하게] 건설근로자 퇴직공제금 신청 동행기

[폴리스 뉴스] [홈리스뉴스 20호-당당하게] 건설근로자 퇴직공제금 신청 동행기

[당당하게]는 홈리스 상태에 처한 이들과 다양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지난 달 25일, 한 당사자분과 ‘건설근로자 퇴직공제금’ 신청활동을 동행하였다. 많은 분들이 일당직 건설노동에 참여하시기에, 하지만 ‘퇴직공제금’이란 것에 대해서는 많이들 낯설어 하시기에 동행기를 나누고자 한다. 건설근로자 퇴직공제금? 먼저, 퇴직공제금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90년대 중반, 성수대교 붕괴(\’94. 10), 삼풍백화점 붕괴(\’95. 6) 등 건설업계에 커다란 악재가 발생하였다. 따라서 정부는 「건설산업 경쟁력강화와 부실방지 대책」을 내놓는 한편, 1996년 12월, ‘건설근로자의 고용 개선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였다. 이 법률은 “건설근로자퇴직공제사업을 실시함으로써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과 복지증진을 촉진하고 건설산업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데, 그에 따라 설치된 기금이 바로 ‘건설근로자 퇴직공제부금’이다. 법률에 따라 건설업 사업주는 보수의 고하를 불문하고 노동자 개인의 1일 근무일에 대하여 공제부금액을 월별로 ‘건설근로자공제회’에 납부해야 한다. 현재 1일 공제부금액은 4,200원으로, 건설노동자의 하루 근무시간이 4시간 이상이면 사용주는 4,200원을 납부해야 한다. 근로능력 없음을 증명하라? 한 당사자분의 퇴직공제금 적립일수가 청구 기준인 252일을 넘어 을지로에 있는 건설근로자공제회에 동행하였다. 하지만 그 전에 병원부터 동행해야 했다. 부상이나 질병으로 건설업에

[폴리스 뉴스] [홈리스뉴스 20호-기고]드디어 이사를 간다

[폴리스 뉴스] [홈리스뉴스 20호-기고]드디어 이사를 간다

[기고]는 홈리스 상태에서 겪게 되는 일상사나 느낌, 의견들을 보내 온 글입니다. 따뜻한 새봄이 돌아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일명 석화, ‘오락가락’이라고 합니다. ‘홈리스행동’이라는 단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지하철 회현역에서 노숙할 때입니다. 당시 노실사(노숙인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 실천단(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이라 불리는 분들과 만나 여름에는 시원한 냉커피, 겨울에는 따뜻한 커피를 대접받으며 저에 대한 고민 등을 상담하며 “기초생활보장법”에 관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이분들의 도움으로 주거지원 및 차상위로 선정되어 자활기관에 참여하게 되면서 노숙으로 인하여 망가졌던 몸과 마음을 조금씩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0여년의 노숙으로 알코올중독자가 된 저에게 알코올은 정말로 견디기 힘든 숙제이기도 하였습니다. 조금 생활이 안정되었다 싶으면 술에 쩔어 망가지기를 여러 번 반복했고, 그때마다 이분들의 도움으로 다시 새롭게 용기를 가지고 현재까지 노숙생활을 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용산구 원효로에 “기존주택전세임대”에 입주하게 되어 편안한 생활을 하며 마음 걱정 덜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며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들고 있습니다. 노숙인 동료 여러분! 목요일과 금요일 저녁에 커피를 가지고 다니며 여러분의 고민 상담을 하시는 분들께 도움을 청하세요. 여러분의 고민인 의료, 주거문제, 채무상담, 주민등록 말소

[폴리스 뉴스] [홈리스뉴스 20호-지금, 아랫마을은]깡깡이는 어떻게 한글반에 들어왔을까?

[폴리스 뉴스] [홈리스뉴스 20호-지금, 아랫마을은]깡깡이는 어떻게 한글반에 들어왔을까?

[지금, 아랫마을은] 여섯 개의 반빈곤 단체가 모여 있는 아랫마을의 활동을 알리는 꼭지입니다. 심심하게 말하자면 SNS를 통해 이곳에 오게 됐고, 좀 더 이야기를 풀어보자면 김은희이자 깡깡이에게서 빈곤은 늘 숙적인데, 그 까닭은 고등학교 때 가난을 마주하고 꿈을 미루게 된 3년이란 긴 시간들 때문이다. 어렸을 때 나는 그림 그리는 걸 취미로 삼았고 커서는 그림을 그려 먹고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고1 때까지는 내가 그림쟁이로 살아갈 것이라 믿었었다. 미대에 진학하기 위해 입시미술을 해야 한다 생각했고 2학년 때부터 부모님께 미술학원을 보내 달라 졸랐다. 하지만 월 50만원은 기본, 방학마다 특강으로 몇 백이 깨지는 게 일수인 학원비를 우리 집은 감당할 수 없었다. 나는 꿈을 접고 사회복지학으로 전공을 결정했다. 나처럼 ‘돈이 없어 꿈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신대에 들어갔다. 대학교에 들어와서는 학생ㆍ노동ㆍ성소수자인권 운동을 하는 선배들을 만나게 됐고 그들과 함께 다니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닦게 되었다. 이곳저곳을 오가며 反빈곤 운동ㆍ교육 운동이 나의 마음을 깊게 울린다는 것을 작년쯤 깨달았을까. 앞날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뜸했던 연대이자 운동을 어떤 실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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