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에 처음 올라갈 때, 여기서 해결되지 않으면 내려가지 않겠다는 각오로 올라갔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왜 내려왔나 후회가 된다고 했다. 그때 야무지게 해결했으면 또 다른 철탑에 올라갔겠나 싶어서다. 헬기소리와 쏟아지는 최루액을 견디며 86일을 버틴 경험이 있는 그는 지금 철탑에 올라가 있는 조합원들의 심정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했다.
방학숙제보다 더 보람찬 일을 한 셈이니까요.
간혹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나’는, 또 ‘나와 다른 나’인 그들은 투쟁하길 잘한 것일까? 아니면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잘 버텨내고 있는 것일까? 다른 길을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노동자의 삶이란 결국 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것인데, 이 더러운 사회에서 이 공장이 아닌 다른 공장에서 노동을 하면 권리를 보장을 받을 수 있을까?
오는 26일, 다시 희망버스가 시동을 건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철탑고공 농성이 100일을 맞도록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는 23일 오전 대한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차 철탑농성 100일을 맞아 2차 희망버스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차에서 받은 \\\'함께 살자\\\'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힘껏 흔들어보았다.
싸움의 주체가 무너진 절망의 현장은 단지 몇 차례의 희망버스로 ‘희망’을 되찾기 어렵다. 하지만 고민 끝에 ‘다시, 희망만들기’ 버스를 내놓은 노동, 민중진영의 근심은 깊어지고 있다. 2011년, ‘희망버스’는 ‘흥행’했지만, 희망버스의 목적지였던 ‘한진중공업’은 ‘절망’ 속에서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한 까닭이다.
이날 출발은 서울 대한문 앞에서 참가자 700여명이 버스 14대에 나눠 탔고, 경북, 충남, 강원 등 전국에서 18대의 버스가 출발하는 등 34대의 버스를 준비했다. 그러나 울산에 도착하면서 버스는 다시 3대 더 늘어나 모두 37대의 버스가 이동했다.
세계사적 과정을 보면, 역사는 끝없이 진전되어 왔고, 매 시기 역사적 투쟁의 매듭이 지어지면 그 이하로는 다시 공이 굴러 내려가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의 매듭이 지어지면 그곳에서 다시 굴리기 시작하고, 매듭은 점점 올라가 결국에는 다시 굴러 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물론 매듭이 부실한 경우 다시 밑으로 내려가는 경우는 있다고 하더라도.
어느 순간 한진 노동자들이 조선소 앞에서 천막을 치고 싸우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1년 만에 부산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는 뒤늦은 깨달음이 있었다고나 할까?
지난해 희망버스에 참가했다 기소된 이들에 대한 무죄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희망버스 사법탄압에 맞서는 돌려차기’는 “서울동부지법은 지난해 8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를 저지하기 위해 서울에서 열린 4차 희망버스 행사에 참석했다가 일반교통방해 혐의로 기소된 유모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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