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강곤 |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멀어 보이는 국가보안법, 남북 정상회담이니 뭐니 해서 북한과 교류가 늘어갈수록 더욱 낡아 보이는 국가보안법이 생활 가까이에 등장했다. 인터넷으로 진출한 것이다.
지난 7월 27일 개정 발효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에 따르면 국가보안법 위반 게시물은 인터넷에서 특별관리 대상이다. 홈페이지와 게시판에 국가보안법 위반 게시물이 있으면 정보통신윤리위원회로부터 삭제하라는 ‘시정요구’를 받는다. 대개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시정요구는 강제적이지 않지만 국가보안법 위반 게시물은 경우가 다르다. 홈페이지나 게시판 운영자가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요구대로 삭제하지 않으면 정보통신부 장관이 반드시 삭제 명령을 내릴 것이다. 장관 명령을 불복할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다.
여기서 문제는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누구냐는 것이다. 법률 위반, 특히나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위법 행위라면 그에 대한 법률적 판단도 신중해야 한다. 그런데 인터넷 불법 행위에 대한 판단을 소위 ‘민간 자율기구’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한다. 이 기구의 판단에 따르지 않을 경우 결론적으로 형사처벌을 받는다. 참으로 기가 막힌 노릇이다.
정부와 윤리위 마음대로-이거 검열 아니야?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1995년 발족한 후로부터 자살 사이트니 음란 사이트니 ‘악플’과 같은 소위 ‘불건전 정보’를 인터넷에서 규제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그 와중에 학교를 그만둔 청소년 커뮤니티를 불건전하다고 폐쇄하거나 군대 반대 사이트를 불온하다고 폐쇄해서 인권단체들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이 기구에 대한 문제제기가 그간 쉽지 않았던 것은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민간 자율기구’의 외양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보인권 단체들은 이 기구가 민간단체가 아니라 사실은 정부의 인터넷 규제를 대행해 왔다는 혐의를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번 국가보안법 게시물 삭제 논란을 통해 확신을 갖게 되었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사실상 정부 입맛에 맞는 인터넷 길들이기를 하고 있다!
징조는 이미 보였다. 새 정보통신망법이 발효하기 직전, 그러니까 7월 18일에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민주노총, <민중의 소리> 등 20개 민중사회운동단체에 정보통신부 장관 명의의 공문이 배달되었다. 공문에서 정보통신부는 이들 단체 홈페이지 게시물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하고 있다며 새 정보통신망법에 의거 형사처벌할 수 있다고 위협하였다. 형사처벌을 받지 않으려면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지정하는 게시물을 삭제하라는 것이었다. 정부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여기서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가 정확히 드러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게시물 삭제는 그 자체가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게시물 삭제 요구가 정보통신부 장관에 의해 강제력을 획득한다면 이는 분명 정부에 의한 검열이다. 우리 헌법재판소에서는 이미 지난 2002년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리면서 정보통신부 장관이라는 행정 권력에 의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직접적인 내용규제가 이루어지는 것이 위헌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국가보안법 게시물을 삭제할 것을 강제하는 정보통신부 장관 명령과 그 전 수순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시정요구가 이에 해당하지 않을까?
각종 인터넷 통제 제도, 본격 등장하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인터넷으로 진출한 국가보안법의 변신도 놀랍지만, 그와 ‘세트’로 도입되는 여러 인터넷 규제의 면면을 확인해 보면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가 없다.
새 정보통신망법에서는 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인터넷 실명제와 게시물 격리조치, 정보통신윤리위원회 권한 강화를 명시한 44조 내지 44조의10항을 신설함으로써 총체적인 인터넷 검열, 통제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새 법에 따라 앞으로 공공기관과 주요 포털 사이트는 실명 확인이 된 사람만 쓸 수 있다. 정보통신부는 ‘제한적 본인 확인제’라는 기만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인터넷 사용자 대다수가 주요 포털 사이트를 이용하는 현실에서 볼 때 우리 사회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축될 것이 분명하다. 이메일을 쓸 때, 채팅을 할 때, 카페에 글을 올릴 때, 지식iN에 답변할 때, ‘민증부터 까도록’ 하는 것. 즉, 실명제는 인터넷 이용자가 인터넷에서 표현 행위를 하기 전에 정부의 시선부터 느끼게 한다.
이용자가 작성한 게시물을 30일간 격리시키는 소위 ‘임시조치’에도 큰 문제가 있다. 삼성 코레노 노동조합 카페 폐쇄 사례처럼 일부 기업들이 자사의 상품이나 노동 정책을 비판하는 게시물에 대해 명예훼손을 주장하며 인터넷 공간 자체를 폐쇄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최근에는 이랜드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블로그 포스팅이나 토론방 게시물이 삭제되고 있다. 그러나 명예훼손에 대한 논란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삭제하거나 임시조치를 하도록 한 것은 인터넷에서 비판적인 글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자본에 의한 검열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지금 국회에 걸려 있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법사위 대안)도 기상천외한 내용들이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2008년부터 모든 전기통신사업자가 감청 설비를 의무적으로 갖추고 경찰과 국가정보원 등 수사기관이 요청하면 제공해야 한다. 수사기관의 유선전화, 휴대폰 뿐 아니라 인터넷 감청을 위해 통신사업자가 동원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수사기관이 원할 때 제공할 수 있도록, 모든 통신 사업자가 최대 1년간 의무적으로 통신 기록을 보관해야 한다. 특히 인터넷에서는 IP 주소가 포함된 로그기록이 모두 보관된다.
사진 | 참세상 |
인터넷 실명제와 로그기록이 결합하면 특정 개인에 대한 실시간 감시가 가능하다. 인터넷 로그기록은 어떤 사람이 언제 어디에서 인터넷에 접속했는지는 물론, 어떤 게시물을 읽었고 어떤 게시물을 썼고 어떤 파일을 내려 받았는지도 추적할 수 있다.
평소 아무런 범죄 혐의가 없는 일반 국민의 통신기록을 의무적으로 보관하게 하는 것은 국가의 감시이다. 이는 국민의 통신비밀을 지킨다는 통신비밀보호법의 제정 취지에 어긋나고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무죄추정의 원칙도 거스르는 것이다.
싸워야 할 때이다, 일상에서부터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과 새 정보통신망법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뚜렷한 경향이 보인다. 바로 정부가 인터넷 이용자에 대한 추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전방위적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고, 이를 통해 인터넷 이용자의 표현 행위가 위축되는 것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실명제가 당신의 신원을 확인하고,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당신이 쓰는 글에 대한 감시의 시선을 번뜩이고, 당신이 어떤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시시콜콜히 보관되는 것을 알면서, 어떤 강심장이 제멋대로 키보드를 누빌 수 있겠는가.
이 제도들은 몇 년 전부터 차례차례 도입되어서 매우 촘촘한 인터넷 규제망을 형성하고 있다. 감시의 그물망은 총체적으로 일반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할 뿐 아니라 인터넷에서의 진보적 활동을 옥죄어 올 것이다.
인터넷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는가? 착각이다. 우리가 인터넷에서 자유로웠던 적이 있다면 그건 잠깐 사이의 일이었을 것이다. 인터넷은 처음부터 국가와 자본의 영토였다. 세밀한 기록과 조작 능력을 갖고 있는 정보통신기술은 인류의 역사 이래로 가장 강력한 감시통제기술이기도 하며 1970년대 이후 공장은 이미 그 기술 하에 지배되고 있다. 이제 국가와 자본의 호출에 의해 그 강력한 감시통제가 인터넷에도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그들도 다급하다. 신자유주의적 억압구조 하에서 분출되는 민중의 불만과 비판적 여론을 잠재울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움직임에 적극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왜 주춤거리는가? 정부가 이 제도들의 도입을 논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모르고 있었다고? 아니다. 사실은 당신도 그 논쟁에 참여하고 있었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악플’을 만났을 때 어떻게 중얼거렸는지 돌이켜 보자. 혹시 짜증이 나지는 않았는가? 누군가 그런 글들을 눈앞에서 치워 주기를 바란 적은 없는가? 그 ‘청소’를 자임하고 나선 것이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이다. 악플을 규제하라는 사회적 요구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였고, 강화된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국가보안법 저촉 게시물’도 강력하게 규제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악플러’들을 추적하기 위해 실명제가 도입되었고 증거를 잡기 위해 인터넷 로그기록이 보관된다.
각종 인터넷 규제 제도를 볼 때마다 나는 악플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물론 부당한 비방과 명예훼손은 인권 침해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표현의 자유를 생각할 수 있어야 했다. 악플로 짜증이 나도 그들의 권리에 대해 성찰할 수 있어야 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본래의 문제의식과 주의 환기가 필요했다. 첫 단추부터 잘 끼웠어야 했다. 단지 악플이 규제의 도입 명분이 되었다는 의미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강력한 옹호가 없이 어떻게 국가보안법에 대응할 수 있을까?
누군가 순진한 표정으로 “인터넷에서 정직하고 예의바르기만 하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아니야?”라고 물을 때 우리는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은 어떤 대답을 준비하겠는가? 어렵더라도, 여기서부터 싸움이 시작되어야 할 것 같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