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 시장과 전자상가 주변에서 생겨난 퀵서비스업은 이제 대기업과 관청 등까지 널리 퍼졌다. 그러나 서울시정연구원 등에서 추정하는 퀵라이더의 수가 적게는 1만 5천명에서 많게는 3만명까지 이를 정도로 퀵서비스업의 규모는 정확히 파악조차 되어 있지 않다. 지난해 10월 '함께하는시민행동'에서 60여명의 퀵라이더를 대상으로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한 것이 근로 환경과 처우 실태에 대한 추측을 도울 뿐이다.
일반적으로 퀵서비스 회사는 퀵라이더로부터 일정액의 수수료를 받고 배송업무를 알선만 하며, 퀵라이더는 지입차주로서 배송업무를 수행한 후, 고객으로부터 요금을 받아 본인의 소득으로 가져간다. 그런데 퀵라이더는 회사에 지불하는 수수료 외에도 유니폼 구입비, 무선 장비 구입 유지비, 심지어 사은권과 영수증 구입비까지 부담하고 있다. 게다가 배송 일처리와 물품 파손, 분실, 운송지체 등에 관한 책임까지 져야 하는 등 퀵라이더와 회사의 관계는 매우 불평등하다. 주별 혹은 월별로 지불하는 수수료는 정액이지만 회사는 그에 따른 배송물량 확보의 책임은 지지 않는다. 또한 지속되는 경기 침체 속에서 오토바이 한대와 면허증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퀵라이더 일을 시작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사측이 퀵라이더를 통제하기가 휠씬 쉬워졌다.
한편 퀵 라이더들은 교통사고의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지만 이들에 대한 안전 장치는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 퀵라이더는 산재보험 적용에서도 배제되어 있고 보험회사도 이들의 가입을 꺼리고 있다. 게다가 최근 퀵서비스 업체가 난립하고 과당경쟁으로 인해 요금단가가 하락하면서, 퀵라이더들은 정해진 시간 안에 운송 건수를 늘리기 위해 불법운행과 난폭운전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처럼 불평등한 고용관계를 맺고 노동자성도 인정 받지 못하는 현실은 퀵서비스 사업을 규제하지 못하는 법제도와 관련이 깊다. 1997년에 개정된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르면 운송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자체 기사와 운송수단을 보유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퀵서비스 사업자들은 지입계약을 맺고 알선업무만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수사업자로 등록하여 영업을 하고 있다. 또한 이륜자동차는 화물운송수단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아서 퀵서비스업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특수고용노동자로서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 받지 못하고 있지만, 퀵라이더가 노동자임은 확실하다. 퀵라이더는 근무 시간이 대체적으로 일정하며 정해진 장소로 출근을 한다. 뿐만 아니라, 퀵라이더는 회사에 배송결과를 보고하고 회사는 위성위치추적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회사의 지휘·감독이 엄연히 존재한다. 또한 무단결근이나 업무 지시 위반시 근로서약서에 정한대로 회사의 규정을 적용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4일 '퀵서비스 인권운동본부(대표 유정인)'의 주최로 퀵서비스 노동자 생존권 보장 촉구대회가 서울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 참여한 퀵라이더와 퀵서비스 관련 종사자들은 △퀵라이더를 위한 법적·제도적 보호 마련 △정부, 시민사회단체 및 퀵라이더 협회의 공동 실태 조사 시행 △4대 사회보험 가입 조치 △퀵라이더의 노동3권 보장과 노동자성 인정 △노들길과 남부순환도로의 이륜차 통행 즉각 허용 등을 요구했다.
'퀵서비스 인권운동본부' 회원인 백태현씨는 "전에는 하루 10건을 운송해서 10만원 벌었다면 이제는 13건을 운반해야 같은 금액을 벌 수 있다. 갈수록 요금은 싸지는데 우리는 기름값부터 영수증값까지 부감해야 한다"라면서 퀵라이더들이 저임금에 시달릴 수밖에 없음을 토로했다. 함께하는시민행동의 조사에 따르면 한달에 35∼60만원의 수수료를 내고 기타 경비를 부담하고 나면 하루 10만원의 매출을 올리더라도 손에 넣는 돈은 고작 5만원에 불과하다. 백 씨는 "단기간에는 힘들겠지만 화물연대가 이루어냈듯이 우리도 차근차근 준비해서 노조를 결성하겠다"라고 밝혔다.
출처: 인권하루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