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인권오름] [가원의 인권이야기] 국제 인권 활동(만)하는 사람? 그런 건 없다

최근 국제법 전공자인 한 교수와 통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국제인권법 제도 활용에 관한 건으로 자문을 구하던 중 그가 짜증 섞인 반응을 보였다. 내가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을 자유권 규약이라 바꿔 부른 게 화근이었다. 교수는 “국제인권”하는 사람이 “국적도 없는 말”을 사용한다며 가히 격렬하게 항의했다. 사회권이니 자유권이니 하는 식의 이분법적 구분에 대한 의식적 저항인가보다 했지만, 순식간에 무지한 “국제인권을 하는 사람”이 된 나는 그의 "꾸지람"에 무안하여 수 초간 말을 잇지 못했다. 전화를 끊고 오후 내내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난데없이 호통을 들어서이기도 했지만, 교수가 말한 그 “국제 인권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턱 걸려 있었던 탓이었다.

사진설명33차 유엔인권이사회 ngo 구두발언

오늘날 인권의 보편성을 강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국제인권은 인권 혹은 국제인권법과 동의어로 사용되곤 한다. 국제인권활동은 자연스레 국가로 하여금 국제인권 원칙을 인식하게 하고 다양한 메커니즘을 활용하여 구체적인 행동변화를 촉발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교수의 말대로 나는 “국제인권” 분야에 입문한지 수년 된 “국제 인권하는 사람”이지만, 고백하건대 국제인권활동에 거는 기대는 그리 크지 않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듯한 패배주의가 불쑥불쑥 드는 건 예사다. 예컨대 작년 유엔 자유권 위원회는 한국에 성소수자 개개인을 보호할 수 있는 법률 체계 강화를 언급하며 군형법 제 92조 6항의 폐지를 권고했지만 무시됐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와 민간 성격의 대체 복무에 관한 권고는 어떠한가? 차별금지법 제정, 평화적 집회 시위의 보장을 위한 엄격하고 제한적인 공권력 사용, 공무원 노조 인정 등 국가가 듣고도 들은 척도 안하는 권고들은 셀 수가 없어 민망할 지경이다.

끊임없이 쓴 맛을 보는 중에도 국제인권법과 유엔으로 상징되는 국제기구의 인권 제도들은 인권운동이 국가에 보편적 가치를 요구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를 제공해 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국제인권의 실효성을 담보할 것인가의 문제인데, 원론적인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이를 위해서는 인권운동을 통한 국내적 압력이 아주 중요하다. 다시 말해 국제인권규범의 이행을 감시하고 국가를 압박하는 일은 풀뿌리 현장에서 인권침해를 고발하고 침해에 대응하기 위해 연대를 조직하는 무수히 많은 “국제인권하지 않는” 인권 옹호자들이 하고 있다.

사진설명제네바 유엔 앞, 삼성 반도체 공장의 유해한 노동 환경에 대해 퍼포먼스 중인 활동가들


지난 유월, 한국보다 여덟 시간 느리게 가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32차 유엔인권이사회가 열렸다. 유엔인권이사회로 말할 것 같으면 국가들이 인권을 앞세워 국익을 경합하고 타협하는 국제관계의 장이다. 그 곳에서 작년 방한한 집회시위 자유에 관한 특별보고관의 보고서가 발표되었고, 그 자리에 집회 중 경찰이 쏜 물대포에 쓰러진 국가폭력 피해자 백남기 농민의 딸인 백민주화 씨가 있었다. 현재 개회 중인 33차 유엔인권이사회에서는 유해화학물질과 폐기물에 관한 유엔 특별보고관의 공식 방한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그곳에도 역시 국내 공익단체 활동가들이 있었다. 국내 언론은 유해물질 특보의 보고서가 나오기가 무섭게 “삼성전자가 백혈병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했다는 점을 유엔 인권이사회가 높게 평가 한다”는 취지로 특정 기업을 옹호하기에 나섰다. 이에 대해 특별보고관은 “지난주 한국 언론들이 잘못 전달한 내용이 있어 이 기회에 특별히 한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며 “삼성전자나 대한민국 정부 어느 쪽도 노동환경이 안전함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추석 명절도 뒤로한 채 이들 활동가들이 인권이사회를 찾은 건 “국제 인권하는 사람”이어서라기보다, 국제인권활동이 본질적으로 인권 실현 요구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인권은 한 국가 내부에서 벌어지는 권리 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전해왔다. 그 진행형 역사에서 국내인권에 기반을 두지 않는 국제인권활동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 인권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분하는 일은 어딘지 소모적으로 느껴진다. 바라건대 국내 인권운동과 국제인권이 지금보다 더 많이 만나고 더 자주 연대하여 권리 실현을 요구하는 압력의 세기를 높이면 좋겠다. 만약 그렇게 하고도 국가의 행동에 유의미한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면? 그땐 그 “국제 인권”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말

가원 님은 (사)유엔인권정책센터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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