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인권오름] [웰컴투, 여덟살 구역] 그림책으로 읽는 책언니

요즘도 수업 하는 도서관에 가면 예전에 책언니 했던 애들이랑 가끔씩 마주칠 일이 있다. 항상 해야 하는 수업이 있다 보니 그 애들이랑 요즘 어찌 사냐, 뭐 하고 지내냐, 편하게 얘기 나눌 시간이 없다. 그게 못내 미안할 때가 많다. 확, 나도 강화도에 살아버릴까 충동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수업 두 시간으로는 책언니가 생각했던 ‘삶을 나누고 같이 성장하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한계가 많으니 아예 이 동네 살면서 매일 같이 애들이랑 소소하게 얼굴 보고 지내면 좋겠다 싶었던 거다. 그러나 쩡열이랑 내 몸이 열 몇 개씩 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지역에서 이런 식의 욕심을 가질 순 없다. 그래서 책언니 활동을 처음 시작하면서 바랬던 것 중 하나가 나랑 쩡열만 이 일을 할 게 아니라, 지역마다 작은 동네마다 책언니가 있으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 리! 고! 얼마 전 지리산 부근에 사는 어느 20대 언니들이 책언니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원래 나다와 오랫동안 연을 맺고 있던 지역이었는데, 예전에 나다 인문학 수업을 들은 적도 있는 한 자매가 책언니를 해볼 맘을 먹고는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셨다. 책언니 쩡열이 그리로 가서 같이 얘기도 나누고, 그 분들이 서울로 올라오셔서 우리가 방학 중에 마침 가게 됐던 단기 책언니 수업을 연습 삼아 함께 참여하시기도 했다. 막상 다른 지역에서 책언니를 하시는 분들이 생기고 보니, ‘책언니 활동 안내서’ 삼아서 뭔가 하나쯤 적어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쓰게 됐다. 책언니 활동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태도에 관한 것들을 두 권의 그림책을 뽑아 소개해보려고 한다.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어느 날, 강가에 사는 검피 아저씨가 배를 끌고 나온다. 동네 꼬마들도 토끼도 고양이도 개도 돼지도 양도 닭들도 송아지도 염소도 태워 달라 조르고, 검피 아저씨는 ‘배에서 싸우지만 않는다면, 깡총거리지 않는다면, 날개를 푸드덕 대지 않는다면’ 하고 주의를 준 뒤 어느 하나 막지 않고 모두를 태워준다. 신나게 배를 타고 가던 이들은 얼마 안 가 일제히 하지 말라던 짓들을 다 하며 난동을 부리고 배는 꼴까닥 뒤집어진다. 물에 빠진 동물과 아저씨는 강둑으로 가서 따듯한 햇볕에 몸을 말린 후 함께 티타임을 갖는다. 돌아가는 아이들과 동물들을 배웅하는 아저씨의 마지막 한 마디. “잘 가렴. 다음에 또 배 타러 오렴.”

존 버닝햄이 쓴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의 줄거리다. 유아용 그림책으로 분류되는 이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가 어찌나 좋던 지…. 책언니는 검피 아저씨 같은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동물들이 처음 배에 탈 무렵 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던 일들을 전부 했는데도 탓 하는 말 한 마디 없다. 사실 배에 태우기 전에 아무리 주의를 줬다한들 동물들에게는 잘못이 없다. 토끼가 깡총거리고, 닭들이 날개를 푸드덕 대고, 염소가 시끄럽게 우는 일은 ‘하지 말라’고 잔소리한다고 이 동물들이 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검피 아저씨의 태도는 ‘관대함’이나 ‘너그러움’과는 다르다.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이해에 가깝다. 그는 아이들이 몸에 지닌 동물적인 본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이해한다. 화를 안 내는 것이 아니라, 전혀 화가 나지 않는 것이다. 배가 뒤집어지는 일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고방식도 이 평화로운 뱃놀이의 필수 요소다.

책언니 수업이 저 뱃놀이라고 치면 우리랑 지낸 애들도 시끄럽게 소리 지르고, 수시로 앞발뒷발로 배에서 쿵쾅 거리고 뛰어다녔다. 제대로 목적지까지 가는 날보다 도중에 배가 통째로 뒤집어지는 날이 훨씬 더 많았다. 그 때마다 엄청 좌절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보 같다. 수업 잘 하는 게 뭐 그리고 중요하다고. 애들은 수업이 도중에 망해서 ‘에라, 모르겠다! 그냥 나가서 놀자!’ 하고 우르르 바깥으로 나가서 같이 술래잡기 했던 날을 더 좋아했다. ‘좋은 수업’, ‘유익한 시간’의 기준은 이렇게 다르다. 물론 오늘 준비해 것이 왜 안 통했나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겠지만, 대부분은 애들이 뭘 좋아하는 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가져간 것들이 실패할 때가 많았다. 결국은 어른 중심으로 사고하는 나의 자기중심성에서 끈임 없이 탈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게 어렵다면 존 버닝햄의 말을 참고하자. 그는 인터뷰에서 “어린이들이 내 그림책을 좋아한다면 아마도 내가 자신들 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이라고 밝힌 적 있다. 계속 어린 사람들의 편을 들며 살다 보면 언젠가 너의 배에 타도 되냐고 다가오는 존재들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꽃이 피는 아이

두 번째로 소개할 그림책은 옌 보이토비치의 꽃이 피는 아이다. 검피 아저씨가 책언니를 할 사람들이 가졌으면 하는 태도에 관한 그림책이었다면, 꽃이 피는 아이는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이기도 하고, 애들한테 딱 한 가지만 전할 수 있다고 할 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깃거리가 담겨있는 책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링크는 보름밤이면 몸에서 꽃이 피어나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 그러나 학교 친구들은 별난 가족으로 소문난 링크를 싫어한다. 어느 날 안젤리나라는 소녀가 전학을 온다. 항상 귀 옆에 꽃을 꽂고 다니는 안젤리나는 링크에게 관심이 많다. 링크 역시 그녀와 친해지고 싶다. 링크는 춤추는 것을 좋아하는 안젤리나를 위해 댄스대회에서 쓸 맞춤 구두를 만든다. (안젤리나는 오른쪽 다리와 왼쪽 다리의 길이가 다르다) 이 구두를 신은 안젤리카는 링크와 파트너가 되어 댄스대회에서 춤을 추고, 두 사람은 그날 밤 서로의 몸에서 피는 꽃을 보게 된다. (링크처럼 안젤리나 역시 귀 뒤에서 꽃이 피는 아이였다.)

안젤리나는 반 아이들 사이에서 항상 혼자인 링크를 신경 쓰고, 편을 들어주는 유일한 아이였다. 링크 역시 댄스대회에 나가고 싶어 하는 안젤리나의 속마음을 가장 먼저 알아채고, 안젤리나가 춤을 출 수 있도록 자신의 방법으로 돕는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 받는 링크와 절름발이 안젤리나는 서로의 약자성을 알아보고, 이를 따듯하게 안아줌으로써 ‘달밤에 핀 꽃’과도 같은 애정을 피워낸다.

누구에게나 약한 면이 있다. 누군가의 잘난 점을 보고 좋아하긴 쉬운데, 찌질하고 못난 점을 보고도 싫어하지 않기란 너무너무 어렵다. 특히나 요즘처럼 혐오가 쉬운 세상엔 더 그렇다. 어린 애들도 경쟁적이고, 배타적인 사회의 습속을 받아들이면서부터 더더욱 타인의 약자성에 대해 가혹해진다. 책언니에서 만난 애들이 세상의 수많은 약자들에게 당연한 것처럼 팍팍하게 굴지 않았으면, 어떤 못난 면을 가진 애든 ‘우리’ 바깥으로 쫓아내지 않고, 가끔씩 짜증낼 땐 내더라도 결국엔 같이 놀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 책언니에서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나한텐 이게 다다. 물론 '이것 하나만' 이라고 하기엔 약자를 혐오하는 감각이란 사회적인 것이므로 실은 복잡한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너무 어렵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게 그냥 소박한 바람인 척 하련다.

다음 주면 오랜만에 새로운 그룹과의 책언니를 시작하게 된다. 지금까지 여덟살 구역에서 고민했던 것들을 맘속에 꼭꼭 새기고, 더 즐겁게 뱃놀이를 해야지.


덧붙이는 말

엠건 님은 교육공동체 나다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