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눈>10대 레즈비언은 존재하지 않는가?

‘나는 레즈비언인가?’ 내 자신에게 ‘나는 레즈비언인가?’라고 묻기 시작한 나이는 열다섯 살이었다. 당시에 나는 동성애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죄의식과 두려움에 휩싸였다.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지만, 나는 그 누구에게도 나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없었고, 그 누구에게도 작은 도움을 구할 수조차 없었다. 그 누구도 동성애에 관한 어떤 정보도 내게 전해주지 않았고, 나는 동성애에 관한 그 어떤 정보도 찾을 수 없었다. 열다섯 살에 나 자신에게 묻기 시작했던 ‘나는 동성애자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스물여섯 살이 되어서야 찾게 되었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구 끼리끼리)에 가입을 하고,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을 만나면서부터 나는 내 자신의 레즈비언 정체성을 조금씩 긍정할 수 있게 되었다.

활동을 시작한 후, 나는 서울 모 공원에 모여 있다던 10대 레즈비언들의 상황과 생각들이 궁금해 그 공원을 찾았고, 10대 레즈비언 친구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레즈비언 권리 운동을 하고 있는 나는 그 친구들에게 “우리 단체에서 10대 레즈비언을 위한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면 어떤 공간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을 했다. 친구들의 대답은 매우 간단명료했다. “하늘에 우리가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뛰어 놀 수 있는 공원을 만들어 달라”

많은 사람들은 청소년기의 동성애자 정체성에 관한 고민은 “성장과정에 한번쯤 있을 수 있는 일” 혹은 “이성애자가 되는 과정에서 한번쯤 겪을 수 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레즈비언인권연구소>에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20-30대 레즈비언의 62.9%가 10대에 레즈비언 정체성으로 인한 고민을 시작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15세에 레즈비언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나와 우리가 레즈비언 정체성으로 고민하고, 공포에 시달리고, 자기를 부정하고, 자학하는 그 긴 시간동안 우리 주변에는 아무도 함께 하지 않았다.

제9회 인권영화제 상영작인 “이반검열” 제작에 참여한 <여성주의영상집단 움>과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활동가들에 따르면, 학교에서의 동성애자 인권 탄압의 수위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학생들은 레즈비언으로 의심되는 급우를 집단 따돌림의 희생자로 만들고, 레즈비언인 급우의 사진을 다량 복사하여 각 학급 게시판에 게시를 함으로써 아우팅 시킨다. 교사는 “레즈비언을 색출 법” 등을 가정통신문으로 작성해 학부모에게 일괄 발송하고, 학생들에게 레즈비언으로 의심되는 급우의 이름을 적어 제출하도록 요구한다고 한다.

10대에 시작하는 레즈비언 정체성에 관한 고민은 삶과 죽음을 넘나들게 하는 고통을 수반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10대 레즈비언은 존재할 수 없다”고 믿고 싶어하고, 레즈비언 정체성에 관해 고민하고, “나는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이들에게 그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다. 친구들은 왕따를 시키고, 교사는 레즈비언 색출하기에 여념이 없는 교육 현실에서 10대 레즈비언은“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뛰어 놀 수 있는 하늘 공원”을 꿈꿀 수밖에 없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학교 안 10대 동성애자들의 현실에 관심을 기울이고, 대처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10대 동성애자들이 “하늘”이 아닌 이 곳, “오늘”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박김수진(박통) 레즈비언인권연구소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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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 청소년 , 10대 , 아동 , 레즈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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