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눈>서울 외 지역에 거주하는 레즈비언들은 지금...

한국에서의 레즈비언 권리 운동의 시작은 1994년부터 시작되었다. 1994년에 <한국여성동성애자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로 시작된 국내 레즈비언 권리 운동은 대 사회적으로 레즈비언의 존재를 가시화시키고, 전국 각지에서 살고 있는 일부 레즈비언들에게 '또 다른 레즈비언'의 존재를 확인시켜주었다.

실제로 1990년대 초와 중반에 이르는 시기에 <끼리끼리>에는 다양한 지역에서 거주하는 레즈비언들이 모여들었고, 당시에 그들은 자신과 같은 고민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왔던 수많은 사람들과 상봉했다. 그러나 서울 외 지역에서 살고 있는 레즈비언들이 또 다른 레즈비언들과의 만남을 지속적으로 가지기에 서울은 너무 멀었다.

결국 부산, 대구, 광주 등의 대도시에서는 해당 지역의 특성에 맞는 레즈비언 모임들이 결성되었고, 친목과 인권 운동을 접목시킨 모임을 만들어 모임을 가지고, 활동을 하기도 했다. 1996년 5월에는 대구·경북 지역의 동성애자들이 통신을 통해 만나 <대경회>라는 단체를 조직했고, 1996년 2월에는 광주와 전남에 거주하는 동성애자들이 모여 <빛동인>이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이들 모임의 결성은 4대 통신사에 개설되어 있던 동성애자 커뮤니티를 통해 만난 동성애자들이 자신들의 지역에 독자적인 모임을 조직했던 것이다. 이후, <대경회>에서 활동하던 몇몇의 레즈비언들이 대구 지역에 <와이낫>이라고 하는 대구 레즈비언 모임을 결성하기도 했고, 부산에서는 <안전지대>라는 여성이반 인권 모임을 결성하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대중적으로 확장된 인터넷의 출현은 레즈비언들에게 더 많은 소통의 기회를 제공하였고, 레즈비언들은 인권운동단체 형태 이외의 다양한 모임들을 자발적으로 개설하고, 모임을 조직하고, 레즈비언 커뮤니티를 양적·질적으로 성장시켜왔다.
이에 따라 많은 레즈비언들은 각자의 관심사에 따른 다양한 모임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더 이상 레즈비언들은 '또 다른 레즈비언들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인권단체를 찾지 않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인권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던 서울 외 지역 모임들은 차츰 와해되기 시작했으며, 친목 모임의 성격 등으로 전환하여 모임을 운영해 나가게 되었다. 얼마 전, <한국레즈비언권리운동연대> 사업을 위해 대구에 내려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 곳에서 대구 <대경회> 활동을 하고 <와이낫>을 결성하기도 한 레즈비언들을 만났다.

그녀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서울 외 지역에서 지역 모임을, 그것도 인권운동의 성격을 가지는 모임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들었다. 대구를 포함한 부산, 광주 등의 광역시 단위의 도시는 서울과 달리 공간적으로 이동거리가 너무 뻔하고, 지역 주민들간의 연결 고리의 길이가 길지 않아 아우팅 위협에 일상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있다고 한다. 그러니 단체 결성 요원하고, 사정이 그러하다 보니 서울에서처럼 레즈비언을 대상으로 하는 강좌, 토론회, 영화 상영회 등의 참가 기회가 전혀 없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도 대구, 부산의 사정은 나은 편에 속한다. 대구, 부산에는 서너 개의 레즈비언 바(Bar)들이 있어서 최소한 20대 이상의 레즈비언들이 찾아가 마음껏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그 외의 지역에서는 인권 모임은 물론 레즈비언들이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 하나 가지고 있지 않은 형편이다. 서울에는 세 개의 레즈비언 단체가 조직되어 있고, 부산에는 한 개의 단체가 조직되어 있다.

그리고 서울의 경우에는 또 다른 새로운 레즈비언 단체가 결성 준비중에 있다. 다행히 레즈비언 권리 운동 11년째를 맞이하는 지금, 레즈비언 활동가들은 이제야 서울 외 지역사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고, 사업들을 기획·추진하고 있다.

종국에는 해당 지역 레즈비언들의 자발적인 운동 조직이 구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서울 중심의 조직 구성과 강좌, 토론회, 영화상영 등의 사업전개는 서울 외 지역의 레즈비언들을 소외하고 배제하는 운동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서울 외 지역에 거주하는, 레즈비언 커뮤니티의 문화로부터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는 레즈비언들에게 눈을 돌릴 때이다.

박김수진(박통) 레즈비언인권연구소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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