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눈>세계평화축전은 폭력이다

'염불에는 맘이 없고 잿밥에만 맘이 있다’는 속담이 있다. 맡은 일엔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서 잇속에만 마음을 둘 때 쓰는 말이다. 미국에 맞서 대다수 민중이 해방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라크에 한국의 지배세력이 군대를 주둔시키는 까닭이 바로 잿밥에 맘이 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기도가 ‘세계평화축전’에 매진하는 것도 바로 그 잿밥 때문이다. 아무리 축전을 생명, 상생이니 통일, 평화니 하는 겉치레 말들로 치장한다고 해도 그렇다.

그 잿밥이란 다름 아닌 돈벌이다. 지난 4월 20일자 경인일보는 축전의 의미를 이렇게 요약했다. “오는 8월 개최될 ‘세계평화축전’을 신호탄으로 문화관광 인프라가 대대적으로 구축되며 경기북부지역이 문화관광의 중심지로 거듭난다.” 이 문화관광 상품에는 평화, 생태, 역사, 문화 같은 레테르가 붙어있고 경기도와 함께 고양, 파주, 양주, 포천, 가평, 연천, 구리 도시들의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앞다퉈 ‘특급 문화관광 도시’라는 오색풍선을 불어날린다.

지금 농민들이 생존을 건 지난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평택이 미군기지 확장 후보지로 떠오른 당시, 경기도는 미군의 K-55 기지와 K-6 기지 사이 500만평의 평택 땅에 ‘국제평화신도시’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와 같은 평화 정책에 따르면 그나마 남은 농촌과 농토는 도시개발로 사라지게 되고 농민은 대형 식료품점에서 비닐 포장된 농산물을 사먹는 가난한 품팔이 신세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물론 이 신도시 계획은 평택 미군기지 확장 계획을 완수한다는 필연적인 전제를 수반한다. 그리고 이 종합적인 프로젝트를 다양한 형태로 예비하는 것이 세계평화축전이다.

이 우울한 축전에 통일부와 외교통상부, 행정자치부와 문화관광부 등 정부기관들을 후원자로 끌어들인 데는 다음 대통령을 꿈꾸는 경기도지사의 수고가 컸다. 하지만 정부로서도 마지못해 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라크 침략 전쟁 파병이 가져다준다고 줄기차게 믿는 ‘국익’을 비난받지 않고 계속 챙기는 동시에 인권, 자유, 평화 같은 신성한 개념들에 대한 사랑을 증명할 수 있는 하나의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개념의 잔치에 차려진 내용은 빈곤하다. 42일 동안이나 치르는 행사 기간 내내 미군범죄와 평택 미군기지 확장 문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전쟁과 빈곤, 교육 또는 고용에 관한 토론 자리 하나 찾아볼 수 없다. 이 점은 축전 주최측의 비현실적 인식과도 연관된다. 개막을 며칠 앞두고 <민중의 소리>와 인터뷰한 하영일 사무처장은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보다는 존중과 배려, 그리고 도움”에 관련된 의미의 평화를 강조했다. 그런데 이는 지난 4월 경기도의회에 출석해 축전 추진상황을 보고한 강준혁 총감독의 강한 의지였고, 강 감독의 보고는 축전을 주관하는 경기문화재단 송태호 대표이사를 대신한 것이었다.

나름대로 선량한 의도에서 축전을 기획하고 집행했음에 틀림없을 문화인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 축전은 이라크 침략 전쟁 파병국인 한국에서 시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정부와 지자체가 잿밥에 눈이 가 평화라는 가면을 잠시 빌어 쓴 행사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낮도둑놈들의 잔치다. 폭력이다.


두시간(평택 평화바람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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