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대한민국은 합법적 인신매매 집단인가?

고용허가제 1년, 여전히 노예로 살아가는 이주노동자

지난달 31일 이주노동자인 E씨(44세)가 자신의 셋방에서 목을 매 자살하는 사건이 뒤늦게 천안외국인노동자센터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고용허가를 득하고 합법적으로 체류하던 E씨는 2월경 회사로부터 일방적으로 해고를 당했다. 해고 또는 재개약을 하지 못했을 경우 고용비자가 만료되는 현행 고용허가제에 의해, E씨는 7월 31일이 법적체류 만료일이었다. E씨는 만료일 이전에 출국하기 위해 회사에 밀린 임금과 퇴직금을 요청했지만, 사업주는 회사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뤄오고 있었다. 노동부의 감독관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감독관 역시 '회사가 돈이 없어 줄 수 없다고 한다'는 대답을 하는 등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결국 합법적 체류 만료일인 7월 31일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을 달기에 앞서 E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사건이 지난 2003년 11월 발생한 이주노동자들의 잇따른 자살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2003년 11월,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했다. 반인권적인 무리한 단속과 강제출국의 위기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다.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일을 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상습적인 임금체불과 비인간적인 대우를 당해도 하소연 할 곳이 없다. 더욱이 대한민국에 일하러 오기 위해 브로커에게 지불한 엄청난 액수의 돈도 문제였다.

오는 16일은 고용허가제가 실시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해 8월 정부는 고용허가제가 실시되면 중소기업체의 안정적인 인력공급과 사업주에 위한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침해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2003년에 일어난 죽음과 유사한 죽음이 2년이 지난 지금에도 발생했다는 것, 게다가 정부가 자신 있게 말한 고용허가제에 의해 합법적으로 일하던 이주노동자에게 일어났다는 사실은 현행 고용허가제가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지 반증한다.

이주노동자인권연대는 10일 고용허가제 1주년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사업장 이동 제한'이 이주노동자를 노예로 만드는 주범으로 드러났다. 이주노동자들은 낮은 임금, 장시간 노동 등으로 사업장을 옮기고 싶어 하지만, 현행 고용허가제는 모든 결정권한을 사업주에게만 한정하고, 특히 재계약 결정 또한 사업주에게만 있어 이주노동자들은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또 사용자의 눈 밖에 나게 되어 해고라도 당하면 당장 본국으로 쫓겨나야 할 처지가 되는 것이다.

또 일정기간이 지나면 법적체류기한이 만료되는 점을 악용한 임금체불, 퇴직금 미지급등과 같은 사례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번 E씨의 자살사건에서 보여지듯 모든 권한이 사업주에게 있고, 노동부 역시 이를 묵과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주노동자의 현실은 노예와 다를 것이 없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이주노동자에게 대하는 태도는 스스로를 노예 중개상이며, 합법적 인신매매집단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케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바로 고용허가제인 것이다.

이 더러운 범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고용허가제의 폐기, 이주노동자에게 일정기간 동안 자유롭게 노동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허가제의 도입이 조속히 필요하다. 또 임금체불이나 퇴직금 미지급 등으로 인해 불이익을 당한 이주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체류기한을 연장하여, 해당 임금과 퇴직금 일체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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