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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호 성폭력사건 그 후 3년, 내 이야기(2)

2차 가해자 박장근, 대표되다

<box 연재 순서>
1. 김원호 사법처리
2. 2차 가해자 박장근, 대표되다
3. 2차 가해를 인정하느니 차라리 운동을 접은, 2차 가해자 김상복
4. 2차 가해 & 조직적 해결
5. 이야기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
<box 끝>

성폭력 피해를 당했을 당시 피해자들은 분노를 경험하지도, 표현하지도, 그리고 행동에 옮기지도 못했다. 어쩌면 분노할 권리가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가해자에게 분노하기보다는 자신의 분노를 부정하고 왜곡시켰다. 그러나 치유과정이 진행되면서 분노의 대상을 정확히 할 수 있었다. 피해자들은 자신이 당했던 피해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난 다음 명확하게 가해자에게 책임과 분노를 돌렸다. 그리고 정서적인 지지가 함께 곁들여질 때 자신의 존재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폭력피해 치유의 관점과 방법론" 변혜정(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성폭력문제연구소)

노힘 여성활동가들과 함께 여성세미나를 한다.
세미나 장소를 정하며 그녀들은 나를 배려해 늘 노힘 사무실을 제외했다. 나는 노힘 사무실 근처에도 가기 싫어했다. 그리고 특정인물 몇몇에 대해 강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노힘 사무실에 들락거리는 게 괜찮아졌다. 왜 그럴까. 무슨 변화일까.
대표가 바뀌었다. 2차 가해자 박장근에서 내 사건을 지지했던 장혜경 집행부로. 단지 그 이유였다. 나도 몰랐다. 나는 노힘을 탈퇴하며 노힘에 대한 내 상처가 김원호 성폭력사건만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만약 내가 탈퇴하지 않았다면 2차 가해자 박장근이 대표로 있는 상황에서 무슨 활동을 할 수 있겠냐는 문제제기는 했지만, 그 자가 대표로 있다는 사실이 내게 그렇게 큰 고통을 주는 줄 나도 몰랐다.

박장근은 대책위 1차보고서가 제출된 중앙위 뒤풀이에서 "나는 다른 얘기를 들었는데 처음에 동의하에 했다는 것으로 들었다. 지금 대책위 결과는 그런 얘기가 빠져있다. 우리 모두 김원호에게 돌 던지는 것 아니냐", "김원호의 얘기를 더 들어보면 달라질 수 있다", "김원호가 처음에는 인정하지 않았다더라", "가해자 공개를 통해 사실상 징계를 한 거 아니냐" 등의 발언을 했다.(이 발언들은 그 발언을 들은 주변인들에 의해 진술되었다. 박장근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직접적 원인이 된 누군가로부터 들은 이야기와 그 발언자에 대해 확인해 주는 것을 거부했다.
더 기막힌 사실은 이자는 최지영이 피해여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발언했다는 점이다. 최지영과 김원호를 저울질하며 최지영을 공격한 것이다. 나는 박장근을 용서할 수 없다.

김원호에 대한 애정이 충만해서? 악질적인 2차가해다. 또한 그런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준 자에 대한 의리를 지키느라 피해생존자의 상처는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발언자와의 신의를 지켰고,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2차가해자 박장근은 대책위 질의서에 대한 답변서를 통해 가해발언의 배경은 "김원호 동지를 운동에 복귀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때문이었다고 당당히 밝혔다.
그럼 나는? 이자의 파렴치함은 너무나 노골적이다. 내가 운동을 정리한 이유는 운동에 대한 상처도 너무 크지만, 2차가해자들을 어떤 식으로도 다시 대면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당시 박장근의 2차가해 발언을 두고 "사석에서의 발언을 2차가해로 규정할 수 있는가", "그 자리에서 교정되어 정리되었다면 확대시키는 것은 지나치지 않은가" 등등의 문제의식이 제출되기도 했다.
대부분의 성폭력이 아는 관계, 사적인 자리에서 발생하는데 사석에서의 발언을 2차가해로 규정할 수 있냐고? 어이없다. 교정했다는 것으로 이미 내뱉은 발언을 주워 담을 수 있다는 건가? 그럼 김원호도 반성했으니 성폭력 아니겠네? 깬다. 정말. 자유로운(?) '정치토론'과정의 억압이라고? 지나친 경직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너네들이 자유롭게 '정치토론(?)'하는 과정에서 나는 강간보다 더 끔찍한 고통을 맛본다. '정치토론'이라고? 미친것들.
화려하게 갖다 붙이는 남성중심의 운동논리는 역겹다. 다양한 운동논리로 포장해 가해사실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가해자중심, 남성중심의 발언들은 가증스럽기 그지없다.

2차가해자 박장근에 대한 처리는 '사과문' 제출로 끝났다. '징계'가 아니었다. 나는 처리과정도 그 결과도 납득하기 어렵다.
2차가해 여부에 대한 쟁점은 끝없이 이어졌고 논란은 계속됐다. 첫 번째 중앙위는 이를 결정하지 못했고 다음 중앙위로 이월했다. 다음 중앙위에서도 논쟁은 계속됐다. 대책위의 사과문('징계'가 아닌) 요구에 중앙위는 표결처리방식을 택했다. 사과문안, 유기한 활동정지(징계)안, 2차가해이나 처리방안을 제시하지 않는 안 등이 제출됐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넘은 안은 없었고 3차 투표까지 갔다고 한다. 결국 근소한 표차이로 '사과문'이 요구됐다. 노힘은 힘겨운(?) 과정을 거친 그 결정에 만족할지 몰라도 난 만족할 수 없다. 그들은 피해생존자를 선택하지 않았다. 끝까지 자신을 무죄변론했던 '2차가해자 박장근'을 선택했다.

김원호 성폭력사건이 외부 공개되고 그자를 제명 처리한 것에 비하면 2차가해자에 대한 처리결과는 이해하기 어렵다. 강간사건을 부정하고 왜곡하는 가해발언이었다. 그리고 피해당사자를 향한 노골적인 공격이었는데 '사과문'이라니? 나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대책위는 그자가 나를 '알고' 발언했다는 사실을 조직에 공개하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다. 왜? 노힘은 그 당시 그자의 너무나 '명백한' 2차가해를 가해라고 '인지'도 못하는 '한심한' 수준이었다. 근데 왜 나를 '알고' 직접 공격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노힘은 중앙위원이란 막강한 '권력'을 가진 박장근을 끝까지 보호했고 그자에게 줄섰다. 나를 난도질해댄 그자의 사악함과 그러고도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변론해댄 그자의 뻔뻔함을 형식적인 '사과문' 제출로 타협했다. 그게 노힘 당신들의 실체다. 그리고 당신들은 2차가해자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당연하겠지. 당신들에겐 이미 사건해결은 끝났고 피해생존자의 '고통' 따윈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자가 게시판에 썼다는 사과문(?)을 보지도 못했다. 당시 노힘 내부게시판에 자주 들어가는 것도 아니었고 대책위가 따로 보내주지도 않았다. 나는 지금도 그 내용을 알지 못한다. 나중에 무척 미흡했다는 것을 들었을 뿐이다. 아마 형식적인 면피수준의 사과문(?)이었을 것이다.
여하튼 그게 중요한 걸까? 근데, 누구를 향해 쓴 사과문이었나?
그자가 나에게 사과할,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조직이, 대책위가, 중앙위가 조직게시판에 반성문인지 사과문인지 쓰라고 해도 내게 보냈어야 하는 거 아닌가?(내가 누군지도 알면서!) 사과의 대상이 누구였는지? 노힘이었나?
그것도 우습다. 아마도 노힘이었나보지? 나는 안중에도 없었나보지?

나는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료를 검토하면서 나에게도 사과문을 보내는 것이 중앙위 결정사항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박장근 동지는 대책위가 요구한 본인 명의의 사과문을 조직에 제출하고, 생존자에게도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한다."
상응하는 조취? 박장근은 내게 사과문(?) 보낸 적 없다. 난 그런 거 받은 적 없다. 이 자는 형식적 처리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자신의 '운동'을 위해 노힘을 향한 사과는 할 수 있어도, 신뢰하는 김원호를 날려버린 최지영에 대한 사과는 할 수 없었나보지? 나에게 사과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나보지? 쓰레기 같은 놈.
이자는 중앙위 논쟁과정에서 "의도와 무관하게 생존자가 모멸감을 받았다면 어떤 형식이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 밝혔다. 언제 할 건데? 뚫린 입이라고 나오는 대로 지껄이면 되나? 그 순간만 모면하면 되나? 웃기지도 않는다.

그따위 반성의 과정이란 걸 거치고 2차가해자 박장근은 '뻔뻔스럽게' 노힘 대표로 출마했다. 그리고 노힘 대표가 되었다. 04년 2월 노힘은 총회에서 박장근을 대표로 선출했고, 우습게도 같은 총회에서 반성폭력규약을 통과시켰다.
04년 7월 나는 대책위원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2차가해자 박장근이 자기반성 없이(조직 게시판에 형식적인 사과문 쓴 것, 나는 반성이라고 보지 않는다) 대표가 된 것도 문제고, 그 사실을 조직(원)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고, 모두가 당연하게 그냥 넘어가고 있는 지금 상황도 문제라고.
나는 대책위원들에게 보낸 메일에서 2차가해자 박장근의 처리방식에 대해 문제제기하며, 박장근의 2차가해 발언은 나에 대한 공격이고 테러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피해여성 일반에 대한 공격이 아닌 '나'에 대한 공격으로 느껴졌다. 김원호를 더 신뢰하고 최지영은 신뢰할 수 없다는 발언이니까. 최지영이 거짓말한다고 말하는 것이니까. 나는 박장근에 대한 분노를 참을 수 없다.

노힘은 알아야 한다. 2차가해자 박장근이 대표가 되었다는 사실이 내게 얼마나 큰 고통이었는지, 당신들 역시 나에겐 '가해집단'이란 것을.

나는 메일을 통해 그 자가 노힘 게시판에 '공개적으로' 자신의 2차가해 발언에 대해 무엇이 문제였는지, 자신이 무슨 고민을 했고, 어떤 반성을 했는지, 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자신의 견해는 무엇인지 밝힐 수 있도록 대책위원들이 그 자와 토론해줄 것을 대책위원들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그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해보겠다는 답 메일을 보낸 대책위원은 한 명뿐이었고, 물론 자주 만나는 몇몇은 이런 저런 어려움에 대한 의사표현을 했고, 몇몇은 씹었다. 2차가해자 박장근과의 토론은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물론 내가 원했던 글도 올라오지 않았다. 그런 요구를 한 내가 순진한 게지. 나에게 순진하다는 표현을 한 대책위원도 있었던 거 같다.

사건 당시 나는 무기력했고 김원호의 반성문에 대해서도("생존자가 술에 많이 취해 있었으면 집으로 바래다주는 것이 당연하고 올바릅니다", "…생존자는 이미 술에 취해 어떠한 사고나 행동을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술에 취한 여성 후배를 데리고 여관에 가는 행위는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습니다…"), 동의 없이 여관에 갔기에 성폭력이라고 읽히는, '화간'일 수도 있다고 읽히는 그자의 반성문도 어이없었지만 제기하지 않았다. 그럴 의지도 없었기에. 2차가해자 처리에 대해서도 제기하지 않았다. 아니, 제기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당시 박장근이 대표가 되었다고 전해주던 대책위원이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난 그 말의 의미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왜 나에게 미안한지, 그것이 나랑 무슨 상관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그냥 웃었던 기억이 있다. 내 상태는 그랬다.

그런 면에서 대책위 활동은 재평가되어야 한다. 피해생존자의 감정상태가 가해자 처리문제를 하나하나 살피고 판단할 수 있는 상태인지, 그녀가 무기력한 상태라면 가해자 처리가 적절한지 대책위가 함께 판단해야 한다. 무기력한 피해생존자에게 모든 것을 떠맡겨선 안 된다. 그때 넌 제기하지 않지 않았냐고, 지금 와서 제기하는 건 부당하다고 말해선 안 된다.
대책위는 박장근의 가해발언이 피해생존자에 대한 반성 없이 노힘을 향해 "반성합니다" 수준으로 정리될 문제라고 봤나? 또는 그것이 '사과문'의 수준으로 정리될 수 있다고 판단했나? 나는 박장근을 용서할 수 없다. 대책위는 박장근과 타협했고, 노힘은 이를 묵인했다.
나는 대책위에 대해 고마움을 갖고 신뢰하지만, 2차가해자 처리에 대해선 분명히 자기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타기한 대책위활동은 재평가돼야 한다.

사건 이후 나는 그 자와 마주칠 기회가 한두 번 있었다. 물론 난 쌩 깠다. 나야 그자에 대한 삭일 수 없는 분노와 공포까지 있기에 너무나 당연하지만 그자는 왜? 자신이 진정으로 반성했다면 오히려 나와 인사하고 안부 정도는 묻는 게 예의 아닌가? 난 그렇게 생각한다. 같이 쌩 까는 건 이상하지 않는가? 구리다. 구린 내가 펄펄 난다.

성폭력사건의 가해자라고 해서 모두가 운동을 정리하고, 가해자란 멍에를 져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어물쩡 넘어가는 꼴은 봐줄 수가 없다. 대단한 운동가인 양 운동의 선배인 양 구라 풀고 폼 잡는 꼴은 역겹기 그지없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자만 운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켜주길 바랄 뿐이다.

흔히 피해생존자는 가해자의 '진정한' 반성을 원한다. 물론 그 '진정성'을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지만, 그 '진정성'은 다양한 과정을 통해 확인되기도 읽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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