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의 주간지 사회와노동

죽음을 강요하는 자본독재, 살아서 연대하자



신자유주의 자본독재의 살해

인천 건설노조 전기원 노동자 정해진 조합원이 분신 사망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화물연대 서울우유 지회 조합원이 분신을 시도했다. 이미 지난 10월 12일에는 고양 노점상연합 이근재 회원이 노점상 강제철거와 폭력을 견디다 못해 목숨을 끊었다. 불과 몇 주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다. 왜 이러한 일들이 연이어 발생하는가?
원인은 야만적인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노동자 민중에게 강요하고 있는 바닥 생존과 이에 대한 어떠한 저항도 용납하지 않는 자본과 정권의 폭력 탄압에 있다. 이근재 열사는 가난한 노동자로 살다가 IMF 사태를 전후하여 일터에서 쫓겨나 13년 째 지하철 역 앞에서 붕어빵 노점을 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하지만 고양시는 이들의 어려운 삶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올 해 31억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용역깡패를 동원하여 폭력적인 단속을 자행하였다. 결국 그는 이러한 폭력적 단속에 시달리다 못해 안타깝게도 죽음을 택했다. 정해진 열사는 원래 한국전력에 입사했다가 구조조정과 외주화를 거쳐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로 전락했다. 그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주말에도 쉬지 못하는 등 ‘비정규직 중의 비정규직’으로서 어려운 생활을 해왔다. 동료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주 44시간 노동, 토요일 격주 휴무 등을 요구했지만 하청업체는 노조를 인정조차 하지 않았고 탄압과 협박만을 일삼았고 원청인 한국전력은 책임을 외면하기만 했다. 130여일의 힘겨운 싸움 끝에 정해진 열사는 결국 분신이라는 마지막 선택을 하였다. 화물연대 서울우유지회의 노동자들 역시 기본적인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노동자로서 자신의 정당한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파업을 벌여 왔다. 사측은 그 동안 운송료를 10년 동안 동결하고 운행시간과 운행거리를 살인적으로 늘이는 등 구조조정을 단행하였을 뿐 아니라 이에 대항하여 노동자들이 조합을 만들고 화물연대에 가입하자 화물연대 탈퇴를 협박하는 등 노조활동을 탄압했다. 그러자 이에 격분한 나머지 고철환 조합원이 자신의 차 안에서 분신을 시도한 것이다.
이처럼 이들은 신자유주의로 인한 대량 실업과 노동유연화 속에 더욱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최소한의 생계유지에도 어려운 임금이나 보상을 받으며 삶을 살아야 했다. 자본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구조조정, 외주화, 비정규직화를 통해 노동자들을 극심한 고용불안과 저임금으로 내몰았다. 정부는 이들의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기는커녕 오히려 노동유연화를 확산시켜왔고 이들의 정당한 권리 주장마저 탄압으로 일삼아 왔다. 노점상, 하청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 모두 각기 처한 상황은 조금씩 다르지만 신자유주의의 야만 속에 바닥 생존에 내몰리고 저항의 권리마저 철저하게 탄압당하고 있는 노동자 민중의 서로 다른 얼굴들이다.

절망의 고리를 끊어야한다

이 ‘절망공화국’에서 노점상과 노동자들은 저항의 과정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목숨을 내던졌다. 저항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은 자살을 택한다. 하루에도 36명이 스스로 목숨을 져버리고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은 실업자라는 현실은 민중의 고통을 그대로 나타낸다. 이렇게 하루하루의 노동 속에서 민중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살아가는 것이다. 죽음으로 항거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노무현은 뻔뻔하게 얘기했지만 신자유주의 지배세력과 자본이 사람들을 살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2003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노동탄압과 천문학적인 손해배상․가압류, 비정규직 차별이 배달호, 김주익, 이해남, 이용석 등 수많은 열사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윤에 미친 자본과 노동자 탄압에 혈안이 된 노무현 정권은 2006년 포항건설노조 하중근 조합원을 경찰폭력에 의해 살해했다. 그것도 모자라 포스코 사측은 천문학적인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지난 10월 법원은 노조와 조합원들에게 10억 8700만원의 배상판결을 내렸다. 노동자를 때려서 살해해 놓고도 아무런 사과조차 하지 않고 또 다시 몽둥이를 드는 것이 자본과 권력인 것이다. 그들은 2007년에는 한미 FTA 강행으로 허세욱 열사를 분신하게 만들었다.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던 노무현 정부에서 오히려 구속노동자 숫자는 1천 명이 넘어 노태우 정권 이래 최대가 되었고 죽어간 열사들도 부지기수다. 이 모든 죽음은 그들의 책임이다. 그들은 노동자의 생명과 존엄은 안중에도 없다. 조금의 숨통도 열어주지 않고 민중을 질식하게 만드는 이 체제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은 없다.
투쟁이 짓밟히고 깨져서 막다른 골목에 몰려진 노동자들에게조차 자본은 피를 말리는 방식으로 옥죈다. 노조 불인정, 회유와 협박, 손해배상과 가압류 등을 이용하여 저항의 씨앗마저 없애려는 것이다. ‘다 들어줄 테니 민주노총만, 건설노조만, 화물연대만 탈퇴하고 오라’는 식으로 자본이 밀어붙이는 것은 노동자의 요구안을 못 받아들여서가 아니라 집단으로 단결하는 것을 원천봉쇄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이랜드-뉴코아, 코스콤 등의 비정규 투쟁에서도 마찬가지다. 또한 우리 운동이 열사의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투쟁의 전망과 승리의 희망을 속 시원하게 밝혀주지 못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절망으로 저들에게 맞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절망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것이 더 이상의 죽음을 막는 길이다. 동지를 떠나보낸 노동자들이 더 이상 좌절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민중의 한숨과 절망은 자본과 권력이 바라는 바이지 않은가.

살아서 연대하고 투쟁하자

열사투쟁이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몇 년간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열사에 의해 투쟁의 기운이 생겨나고 사람들이 더 잘 조직되지는 않았다. 열사의 희생이 사람들의 용기를 불러일으키고 더 큰 대중운동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이고 소박한 요구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아 극단적인 투쟁을 선택하는 현실을 바꿔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연대와 투쟁을 놓을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죽지 말고 반드시 살아서 연대하고 투쟁해야 한다. 자본과 권력이 책임을 져야지, 왜 우리가 죽어야 한단 말인가.
비정규직 법으로 인해 해고되어 거리로 내몰리는 비정규 노동자들, 이랜드-뉴코아, 코스콤, 공공부문 비정규직, GM대우 비정규직, 건설 비정규직, 특수고용노동자, 해를 거듭해 싸우고 있는 장기투쟁 사업장에 이르기까지 연대로 단결하고 단결로 투쟁해야 하지 않겠는가. 정해진 조합원의 추모집회에서 어느 노동자는 “이 싸움 같이 하자고 우리에게, 민주노총 동지들에게 손 내민 것”이라고 말했다. 연대로 서로를 북돋아서 따뜻한 힘이 되게 하자. 싸우다 힘 다해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절망으로 쓰러지는 동지는 없게 하자.
정해진 조합원 분신 사망 직후 민주노총 위원장은 노동부장관을 만나 인천전기원 노사관계 해결을 주문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한 방식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거니와 장기적으로 볼 때 바람직하지 못하다. 현장의 노동자들도 연대의 힘으로 악덕기업주를 처벌하고 요구안을 관철하기를 바라고 실천하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들이 절망으로 떠밀려지는 상태를 바로잡고 운동 주체를 지속적으로 형성해 나가기 위해서 그래야 한다. 노동자들이 자기를 파괴해서 투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투쟁의 주체로서 스스로 개척해 나가고 연대할 수 있도록 운동의 기운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철폐, 한미 FTA 저지, 반전평화를 위한 11월 11일 범국민 행동의 날”이 사람들을 많이 불러 모으는 행사를 넘어서, 야만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실질적으로 심판하는 민중의 단결과 투쟁의 장이 되기 위해서는 연대와 투쟁의 파고를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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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압 , 열사 , 비정규 , 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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