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의 주간지 사회와노동

근심위 근로시간면제한도 결정 이후 투쟁 방향

노동조합 탄압에 맞서 실리주의를 넘어선 단결투쟁이 필요하다

근심위 타임오프제는 사실상 민주노조 금지안

정권이 민주노조를 뿌리 뽑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가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김태기 근심위 위원장은 공공연히 타임오프한도안이 정권 차원의 계획임을 밝혔다. 개정 노조법은 근심위가 4월 30일까지 안을 처리하지 못할 경우 국회 의견을 듣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김태기 위원장은 법적 논란이 예상됨에도 타임오프한도를 5월 1일 새벽에 처리했다. 김태기 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무리를 했다고 밝혔다. 쉽게 말하자면 처음부터 근심위가 민주노조 탄압에 대한 정권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 이러한 일을 계획한 것이다 .

기습 처리된 타임오프안은 조합원 규모를 총 11단계로 나누어 각 단계에 전임자의 근로시간면제한도를 두고 있다. 50명 미만 사업장은 1,000시간, 100명 미만은 2,000시간, 200명 미만은 3,000시간, 15,000명 미만은 28,000시간, 그 이상은 36,000시간에 3,000명 당 2,000시간을 추가하는 식이다. 2,000시간을 전임자 1명으로 계산하면 50~99명 사업장은 전임자 1명, 10,000~14,999명 사업장은 14명이다.

당장 올해 새롭게 단협을 체결해야 하는 사업장들은 타임오프제에 따라 전임자 관련 협약을 맺어야 한다. 근심위 타임오프 안에 따르면 올해 단협을 체결하는 금속노조 기아차지부는 전임자가 98명에서 21명으로 79% 줄어든다. 운수노조 철도본부 역시 64명에서 17명으로 73% 줄어들고, 공공노조 가스공사지부도 10명에서 5명으로 50% 줄어든다. 2011년 단협 이 종료되는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전임자가 195명에서 24명으로 87% 줄어든다. 대공장 노조들 대부분이 적게는 50%, 많게는 90% 가깝게 전임자가 줄어드는 것이다. 기아차지부의 경우 임단협 위원만 20여 명 수준이니 현장 활동은 고사하고 교섭 준비에도 부족한 인원이다.

대공장 노조의 전임자 축소는 사업장 노조의 역할 축소에서 그치지 않는다. 현재 민주노총 산하 산별노조, 산별연맹 간부들의 상당수가 전임자 신분으로 파견되어 있는데, 전임자 숫자가 이런 규모로 줄어든다면 상급단체 파견 전임자 수 역시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금속노조 중앙과 지역본부에 파견되어 있는 완성차 지부 전임자 수만 20명이 넘는다. 민주노총 위원장, 금속노조 위원장 등 민주노총의 주요 임원들 역시 법적으로는 전임자 자격으로 파견되어 일하고 있다.

중소사업장 노동자들 역시 노조 전임자 축소로 큰 영향을 받는다. 금속노조와 같이 산별지부 집단교섭으로 지역지부 전임인원비용을 사용자들에게 부담하도록 해놓은 경우에 타격을 입을 것이다. 노조 힘이 강한 사업장에서 따낸 전임자로 영세 사업장 노조 업무까지 함께 처리하던 여러 소산별노조도 마찬가지다. 상급 단체(또는 초기업노조) 활동 내역을 아예 타임오프산정 계산에서 제외한 것이 바로 근심위의 타임오프제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노동부는 지난 3일 ‘근로시간면제한도 의결에 따른 향후 조치 계획’을 통해 오는 7월부터 노조 전임자가 상급단체 파견활동만 하는 것을 금지할 것이라고 밝였다. 정부의 의도가 사회적 문제에 대해 실천해온 민주노총 운동 자체를 죽이는 것임을 숨기지 않고 있다. 심지어 노동부는 복수노조 도입 시 현재 타임오프한도를 복수노조 간에 나누어 써야 한다고 밝혔다. 사측이 복수노조 설립을 통해 민주노조 진영의 활동력을 통제할 수 있는 여지까지 만들어 놓은 것이다. 또한 한 사업장에 이미 복수노조와 유사하게 존재하는 비정규직 노조의 전임자는 더욱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더욱 무서운 것은 노조 활동에 대한 자본의 기준이 제도화 되는 것

한국의 노동자 운동은 노동조합이라는 대중조직을 기반으로 한국의 민주주의 확대를 위해 투쟁해왔고, 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를 가로막는 제도적 한계 속에서도 노동권 확대를 위해 싸웠다. 민주노조 운동 진영은 여러 사회운동적 실천을 위해 1980년대 노동 악법이 만들어 놓은 기업별 노동조합 체계를 뛰어넘었어야 했다. 그 방법 중 하나로 기업별 노조의 상급단체인 산업별 연맹, 총연맹에 자원을 집중하고, 최근에는 산별노조를 건설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정권과 자본은 지금 기업별 노조 체계 속에서도 기업의 벽을 넘어 투쟁해 온 민주노조 운동의 핵심 체계를 끊어 놓겠다는 것이다. 특히 문제는 장기적으로 이러한 법적 제약이 노동조합 활동가의 역할에 대한 노동자운동 진영의 인식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 민주노조 운동이 쇠락하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민주노조 운동 진영에서 노동운동 간부는 여러 사회운동의 이슈(보편적인 노동권, 평화, 민주주의 등)에 참여해야 한다는 대의명분을 존중한다. 하지만 실리주의적 경향이 확장되어가는 가운데 노조 간부 활동에 대한 법적 규제까지 더해진다면 이러한 대의명분조차 사라질 수 있다. 타임오프제가 허락하는 전임자의 직무는 기업 단위 임단협과 조합원 고충 처리 정도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정권과 자본이 앞으로 유무급을 상관하지 않고 현장 노동자들의 노조 운동 자체를 봉쇄할 여지도 있다. 정부가 만든 유급 기준이 이러한 점에서 일종의 노조 활동 관례처럼 확장될 수 있다. 즉 정부가 만들어 놓은 유급 전임자의 기준을 가지고 향후 유무급을 넘어 노동자 운동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설 수 있다는 것이다. 사측은 무급 전임자(노조 업무 종사자, 노조에서 임금을 받는 노동자)라 하더라도 유급 기준과 어긋나는 여러 활동들에 대해 동의를 하지 않을 수 있다.

미국과 영국의 예는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표적 예이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의 노동운동은 전쟁 기간 억제된 임금과 고용조건에 대해 일제히 분노를 터뜨리며 1946~47년 수백만 명이 참여하는 파업을 벌였다. 정부와 자본은 이에 대해 노조법 개악으로 맞섰다. 상원의원 로버트 태프트가 주도한 노동관계법은 노조의 연대 파업, 정치적 파업, 다른 사업장에 대한 연대 투쟁을 금지했다. 하지만 당시 미국노총 및 금속산별노조의 대응은 매우 수세적이었고 실리적이었다. 전미자동차노조는 노조법 개악이 준비되는 과정에서 ‘기업 지불 능력에 따른 임금 인상’이라는 투쟁 전략을 수립했다. 노조가 기업과 정부에 협조할 테니 기업은 지불 능력이 되는 만큼은 성실하게 임금을 인상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이는 연대파업, 연대투쟁을 금지하려는 정부 정책과 조응하는 것이었다. 정부는 전미자동차노조의 이러한 정책을 환영했고, 정부 차원에서 기업들의 수익을 조사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비즈니스 노조라고도 불리는 미국 노조운동의 노선은 노조법에 대한 적응과 실리적 대응 속에서 강화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노선은 그 어떤 사회운동적 과제와도 관련이 없었다. 미국의 노조들은 오히려 대공장 이기주의로 매도되며 고립되기 일쑤였다. 2009년 전미자동차노조가 3만여 명의 조합원을 해고로 잃고 3조 원이 넘는 퇴직자건강보험기금마저 사측에 빼앗겨도 아무도 노조를 동정하지 않았다.

영국의 경우도 비슷하다. 대처 정부는 단계적으로 노조법을 개악하며 노동조합 운동의 기반을 흔들었다. 1980년 고용법 개정으로 노동조합의 연대투쟁과 연대파업을 불법화했다. 1982년에는 영국 노조의 근간을 이루었던 클로즈드숍을 엄격하게 제한했다. 1984년에는 노동조합법을 개정하여 파업에 대한 노조의 면책권을 제한했다. 1988년 고용법 개정으로 노조원이 노조의 파업에 참가하지 않아도 노조로부터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했으며, 특히 자기 사업장 외 모든 투쟁에 대해서는 연대할 수 없도록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영국노총의 대응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영국노총은 투쟁과 연대보다는 노동당 재집권을 위한 정치자금 모금과 선거 운동에 모든 힘을 쏟았다. 영국 노동조합의 조직률은 1979년 55%에서 2005년 26%로 반토막이 났다. 영국 노총은 결국 2000년대에는 노동당의 파트너도 아닌 로비조직 수준으로 퇴보했다.

위 예들이 한국 노동자운동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바는 명확하다. 자본의 의도는 노동자들의 연대를 막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고, 국면에 따라 약간의 실리를 주고받을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노동조합 운동의 힘을 제약하는 전략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국과 미국의 노동법 개악이 연대파업과 상급단체의 역할을 제한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면, 이명박 정부의 노동법 개악은 전임자를 줄이고 역할을 기업 내로 가두는 것에서 시작했다.


노조 탄압에 맞서 실리주의를 넘어선 단결투쟁이 필요하다

쌍용차 파업에 대한 공권력 투입, 철도노조를 비롯한 공공부문 노조에 대한 비타협적 반노조 정책, 개정 노조법 날치기 통과와 경영계 요구를 그대로 받은 타임오프제 실시에 이르기까지 이명박 정권은 노동운동에 대해 일관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자본에 협조적인 노동운동을 통해 국가적 타협체계(코포라티즘)를 만들려 했다면, 이명박 정권은 이마저도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에게 노조는 비생산적이고 불필요한 ‘낭비적 비용’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이명박 정권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보다 유연화된 노동시장을 만들기 위해 현재의 민주노조 운동은 반드시 기세를 확실하게 꺾어 놓아야 할 장애물이다. 이명박 정부는 비정규직 보호법 개악 시도를 비롯하여 최근에는 파견법을 다시 한 번 개악하겠다는 의도를 내보이고 있다. 그리고 정부와 자본가 단체들이 해고 조건 완화를 연초부터 주장해 왔던 것을 감안할 때 올해 하반기나 내년 초에는 정리해고제 역시 손을 볼 것이다. 이명박 정부 5년간의 계획에서 보자면 노조법 개악은 앞으로의 노동법 개악을 위해 노동조합에 미리 족쇄를 채워 놓는 것이라 보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노조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되어 있던 2009년 12월 말에도 간부 상경 투쟁을 조직하는 것에 머물렀고, 새해 벽두에 노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어도 총파업 한 번 제대로 조직하지 못한 민주노조 운동이 지금에 와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우선 현재 민주노총이 집중하고 있는 반MB 선거 투표를 통한 정권 심판은 민주노조 운동 의 힘을 분산시키는 악수(惡手)다. 진보정당의 힘이 바닥을 치는 상황에서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에 불과한 반MB선거 연합은 민주당에 득이 될지는 몰라도 민주노동운동 진영에는 도움이 되질 않는다. 신자유주의적 노동 시장 개혁을 10년간 진행했던 것이 바로 민주당이었다.

1995년 6.27 지방선거를 잠시 떠올려 보자. 당시 상황은 지금과 매우 비슷했다. 김영삼 정권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현대차 노조 파업에 공권력을 투입하는가 하면, 한국통신파업에 대해서는 국가전복세력이라 규정하며 대대적인 공안탄압을 자행했다. 공안탄압 속에서 민주당이 지방선거를 압승하였지만, 정권의 노조 탄압은 중단되지 않았다. 한국통신노조는 결국 큰 성과를 얻지 못한 채 파업을 접어야만 했고, 민주당 서울시장에게 기대를 걸었던 서울지하철노조 역시 노조 탄압에 다음해 다시 파업을 벌여야만 했다. 민주당이 선거에 이겼다고 노동운동에 득이 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민주노총 입장에서 궁여지책으로 지방선거에서 조금이라도 이명박에게 타격을 입히고 싶은 것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당장 민주노총 차원의 총파업을 조직할 수 없는 것이 현실적 한계인 것처럼, 표로 민주당을 포함한 반MB연합을 지지해도 그 혜택이 노동자운동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도 객관적 현실이다. 진보진영이 스스로의 힘으로 서지 않는 한 결국 정치적 성과는 지배계급 사이에서만 분배될 뿐이다.

우선 노조법 재개정 또는 타임오프제 무력화 투쟁에 앞서 당면한 민주노조 탄압 분쇄 투쟁부터 제대로 조직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작년 금속노조의 대표 지부 중 하나였던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를 짓밟아 버리며 금속노조 전체를 위축시켰듯이, 올해는 정부가 직간적접 사용자인 사업장들을 짓이겨 민주노총 노조의 기를 꺾어 놓으려 하고 있다. 1만 명이 넘는 징계에 5월에는 단협 효력까지 상실되는 운수노조 철도본부부터, 설립신고 반려에 이어 하반기에는 단체 해산까지 예상되는 전국공무원노조, 조합원 명단 공개에 이어 여당 보수언론에게 각종 악선전을 당하고 있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사측의 막무가내 식 단협 개악 요구로 이미 단협 효력이 상실되거나 곧 상실될 위기에 처해있는 도시철도노조, 공공노조 사회연대연금지부에 이르기까지 정권의 탄압은 독재정권 시절의 그것에 비해 뒤지지 않을 정도다.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한 민주노총 차원의 단결 투쟁은 모든 투쟁의 기본 중 기본이다.

다음으로 민주노조 사수 투쟁, 개정 노조법 분쇄 투쟁을 노동조합만의 투쟁이 아니라 전사회적 투쟁으로 만들기 위한 진보적 사회단체들의 연대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과 흥망성쇠를 함께한 시민단체들의 민주당 선거 캠페인에 휘둘려 그 흔한 대책위원회도 제대로 만들고 있지 못한 진보적 사회단체들의 반성이 필요하다. 민주노총만 비판할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이 한국 사회 민주주의에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노조법 개악 문제가 노동조합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민주주의에 관련된 문제임을 알려내야 한다.

이러한 운동을 통해 7월 1일 노조법 시행을 앞 둔 시점에서는 민주노조 운동의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 총파업일 수도 있고 위력적인 가두시위가 될 수도 있다. 투쟁 전술은 여러 가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누가 보기에도 진정성 있게 민주노총이 노조법 개악안의 시행을 막아내려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두 번의 투쟁으로 7월 1일 시행을 막아낼 수는 없겠지만, 더 발전된 투쟁을 할 수 있는 교두보는 만들어 놔야 한다.

단위 노동조합들(기업노조)은 힘을 초기업 노조와 산별연맹에 모아야 한다. 기업 내 전임자 수준 유지를 위해 타협하고, 우회로를 찾는 것은 민주노조 운동의 공멸로 가는 길이다. 정권과 자본이 정조준하고 있는 것은 민주노조 운동이다. 대기업 노조들 중 일부는 여러 방식으로 전임자 축소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자동차노조, 영국노총 산하 노조들이 결국 쇠락의 길을 걸었듯이 달콤한 실리는 오래가지 않는다. 결국 기업 단위 노조도 전국적 노사 역관계에 영향을 받는다. 단기간의 대책으로 민주노총 또는 산별노조(연맹)가 활동력을 잃지 않도록 전임자 기금을 조성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별 대책이 아니라 민주노조 운동 진영 전체의 일사불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정권의 태도도 세계 자본주의의 상황도 노동자에게 유리하지 않다. 하지만 현재 민주노총의 각종 회의 안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지방선거에 대한 열정이나, 반MB연합이라는 허상의 전선을 유지하기 위해 들이는 공을 노동조합 사수 투쟁, 현장 조직화 사업에 배치한다면 실질적인 투쟁을 조직화할 수 있다. 민주노조운동답게 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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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 전임자 , 복수노조 , 타임오프 , 근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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