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의 주간지 사회와노동

노동자운동, 한국의 인종주의적 위계구조에 맞서 투쟁하자

재외동포 고충해소 프로그램 비판

[편집자주] ‘동포(同胞)’란 본래 ‘한 어머니의 소생’을 뜻하는 말로, 혈연의식과 민족공동체 의식을 강조한다. 아래에서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이 표현을 사용하겠지만, 그 인종주의적 함의에 대해서 항상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사회화와 노동』 356호 <이 나라 한아버님은 단군이시다?>를 참조하시오.



재외동포 고충해소 프로그램

2011년 1월 3일 법무부 산하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는 한국에 거주하는 미등록 재외동포들의 ‘고충해소’를 위해 전례 없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6월 말까지 계속되는데, 현재 한국에 살면서 F-4비자(재외동포비자) 자격이 없는 미등록 재외동포의 대부분이 신청할 수 있으며 D-4비자(일반연수비자)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들 대다수는 중국동포들이다. 9개월 간 재외동포기술교육지원단에 의한 직업교육을 받고 나면 이들은 H-2비자(방문취업비자)로 비자를 바꿀 수 있게 되고 현재 방문취업제 하에서 재외동포들에게 개방되어 있는 36개 업종에서 4년 10개월 동안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된다.
재외동포 합법화 프로그램의 일차적인 대상은 한국에 10년 이상 체류한 재외동포들과 그 배우자 및 직계비속이다. 또한 국적이나 영주권을 얻은 배우자가 있는 미등록 재외동포, 산재 후유증으로 치료가 필요한 사람, 한국인과 결혼한 사람, H-2비자로 한국에 와서 미등록이 된 사람 등이 신청 대상이다.
1949년 10월 1일 이전에 태어난 재외동포는 직업훈련에 참여할 필요가 없고 F-4비자를 받게 된다. 이는 현재 재외동포법 하에서 미국이나 일본의 재외동포들에게 보장되는 것으로서 거의 영주권에 가까운 비자이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으로 혜택을 받게 될 대다수는 첫 번째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법무부는 대략 6천명의 중국동포와 기타 재외동포들이 이 프로그램의 적용 대상이라고 추산했다. 반면 이주 관련 단체들은 2만 명에 달할 것으로 본다.


재외동포 고충해소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

이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은 복합적이다. 당연히 중국동포 사회와 이들을 돕는 일부 단체들은 이 조치를 환영했다. 그러나 대다수 이주노동자 운동 단체들은 매우 비판적이다. 이주공동행동과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외노협)를 비롯한 단체들은 이 프로그램이 비(非)동포 이주민들에게 적용되지 않으므로 인종차별적이라고 비판한다. 외노협은 비동포 이주노동자들로부터 약 300여장의 진정서를 모아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인 3월 21일에 국가인권위에 제출하였다.
같은 날 이주공동행동과 외노협은 국가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여 이 프로그램의 차별적 성격과 한국사회의 인종주의에 대한 주의를 촉구했으며 모든 이주노동자들의 합법화를 요구했다. 외노협에서 작성한 이날 기자회견문은, 2004년에 국회가 재외동포법을 개정하여 중국과 구소련동포들에게도 적용하도록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 합법화 프로그램이 실질적으로 은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자회견문은 또한 이 “기만적인” 합법화 프로그램을 ‘자유왕래 보장’, ‘재외동포법에 따른 고용과 체류 보장’으로 대체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이주민 권리 단체들이 3월 21일 계기로 이 합법화 프로그램의 차별적 성격을 부각시킨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인종주의 문제를 진지한 이슈로 다루고자 한다면, 우리는 합법화 프로그램의 함의와 그것이 한국의 재외동포와 이주노동자 정책 전반에 대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더 세심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3월 21일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을 경과하며 이러한 분석을 제기하고자 한다.

재외동포 고충해소 프로그램의 성격

재외동포 고충해소 프로그램의 숨은 의도와 이해관계를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법무부는 재외동포들(비 F-4비자)이 낮은 경제적 사회적 지위로 인해 직면하는 고충에 대한 인도적 고려에서 이 프로그램을 시행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한편으로 이 프로그램은 중국동포를 돕는 단체들의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동포들의 궁극적 요구(재외동포법 전면 적용)를 충족시키지 못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어느 정도 그들을 달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는 내국인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특정 산업의 노동력 부족 문제를 일시적으로 일하는 고용허가제(EPS) 노동자보다 더 숙련되어 있고 사회적으로 동화된 값싼 노동력으로 해결하려는 수단이다. 재외동포 고충해소 프로그램에 따라 정부는 직업훈련과 노동허가 부여를 통해 어느 영역에서든 일하고 있는 미등록 이주민들을 노동력 수요가 높은 특정 산업으로 돌릴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건설현장과 같이 내국인들이 고실업에 직면하고 있는 산업에 이주민들이 들어가지 않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현재의 합법화 프로그램이, 미등록 체류자의 급격한 증가를 막는 방편으로서 2012년에 체류기간이 끝나는 재외동포들의 H-2비자를 연장하는 것의 유효성을 테스트하는 수단일 가능성도 배제해서는 안 된다.
이 고충해소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추방된 막대한 미등록 이주노동자 숫자와 경제상황 개선을 고려하여 고용노동부가 신규 고용허가제(E-9비자) 유입 쿼터 증가를 발표한 데 이어 제출된 것이다. 이 쿼터는 작년에 비해 14,000명이 늘어서 2011년 총 48,000명에 달하는데 올해 안에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동시에 고용노동부는 H-2 비자 노동자 숫자를 작년 수준(303,000명)으로 유지한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올해 방문취업제로 한국에 오는 신규 이주노동자들이 거의 없다는 의미이다. 합법화 프로그램의 시행을 고려하면 대부분의 신규 H-2 비자는 새로 오는 사람들이 아니라 장기 체류자에게 가는 것이다.
정부가 동포와 비동포 이주민들에게 각기 다른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즉 더 숙련된 고용허가제 노동자를 내보내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노동자들을 들어오게 함으로써 비동포 이주민들을 단기 소모품 노동력으로 활용하려고 한다. 반면 동포 이주민들은 숙련되고 한국 사회에 더 동화되고 (체류기간이 더 길게 보장돼서) 안정적으로 사용 가능하지만, 여전히 값싼 노동력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재외동포 고충해소 프로그램은 ‘동포’에 대한 명백한 편파적 혜택을 의미한다. 이는 작년에 도입된 재외국민 투표권, 귀화 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서약서를 받는 것과 더불어 한국정부 정책의 강화된 민족주의 경향을 드러낸다. 그러나 재외동포에 대한 민족주의적 ‘편애’는 강력한 실리적 동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또한 재외동포의 재산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된다. 현재의 합법화 프로그램은 대다수 중국동포에게 F-4 비자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그에 따라 궁극적으로 사회적 위계구조에서 중국동포를 비동포 이주노동자와 한국 시민(및 선진국 재외동포) 사이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이등 시민으로 고착화하는 것이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러한 ‘지위 부여’는 ‘모호한 인종화’를 수반한다. 즉 중국동포들이 정책 담론과 미디어에서 동포로서 언급되지만, 중국과 구소비에트 출신의 재외동포들은 여전히 특정산업에 연관된 임시 노동력으로서 유지되고 이에 따라 정부의 관리와 통제 대상이 된다. 일본과 미국 출신 동포들은 ‘외국국적동포 국내신고증’을 발급받지만 이 재외동포들은 여전히 ‘타자’로서 외국인등록증을 발급받는다. 작업장과 일상생활 양자에서 중국동포들은 ‘타자’로 취급되고 다른 ‘아시아’ 이주민들과 함께 한 묶음으로 취급된다.

한국의 인종주의적 위계구조

정부의 실리적 민족주의와 차별정책은 한국사회에서 인종주의적 위계구조의 제도화에 기여하고 있다. 한국 시민이 상층이고 중국동포가 중간이며 ‘아시아’ 출신의 비동포 이주민이 바닥인 것이다. 이 위계구조는 유화책과 탄압의 혼합으로 작동하는 사회 통제 시스템의 일부다. 이는 또한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을 막으면서 노동자계급 사이의 분열을 보다 깊게 만든다. 중국동포들은 동포 또는 인도주의적 구제를 받을 만한 (적어도 선한) ‘이주민’으로 회유되고 편입되지만, 언제나 이등 시민이자 관리의 대상이 된다. 다른 한편, 비동포 이주민들은 아웃사이더이자 소모품으로 남아 고용허가제 하에서 통제되거나 ‘불법’과 ‘범죄자’로서 악마화된다.
그러한 가운데 내국인 노동자들은 사회적 소속, 정치적 권리와 고용을 자기 고유의 생득권으로 바라보도록 길러지면서 이주민, 그중에서도 특히 중국동포들을 자기의 일자리를 빼앗거나 노동조건을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바라보도록 조장된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노동자들이 이러한 인종적 위계에서 각기 다른 위치에 놓이게 됨으로써, 그러한 위계가 촉진하는 착취와 인종주의에 맞서 싸우는 데 있어 자신의 집단적 이해를 깨닫는 것은 대단히 어려워진다.
일부 중국동포들은 재외동포 고충해소 프로그램으로 당장은 수혜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인종주의적 위계구조가 제도화되도록 함으로써 중국동포 노동자나 비동포 이주노동자, 내국인 노동자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위계구조를 깨뜨리는 것은 국적 및 위계 안의 지위와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들이 공유하는 목표이자 투쟁이 되어야 한다.
노동자운동은 인종주의를 반대하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정립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도 노동자운동에서도 체계적으로 주체화되지 못한 ‘인종화된 집단’들을 주체화하는 길을 찾는 운동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동시에 노동자운동은 이주노동자와 내국인 노동자 사이의 단결을 실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이주민 권리를 옹호하는 사회운동은 인종주의를 내포한 자본주의를 분석해야 한다. 또 자본주의에서 상이한 이주민 집단이 처하게 되는 위치에 대해서도 분석해야 한다.
나아가 반인종주의 노동자운동을 위해서는, 인종주의적 위계구조를 분쇄하는 것을 분명한 요구로 정립해야 한다. 일부 단체의 경우 재외동포 고충해소 프로그램을 비판하면서, 대신 재외동포법의 확대 적용을 주장하기도 한다. 중국과 구소련 동포들이 일본과 미국동포에 비해 차별받는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지만, 재외동포법 확대 적용과 같은 방안은 인종주의적 위계구조를 지속시키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따라서 재외동포법의 완전한 적용을 요구하기보다는 모든 이주민들에게 동등하게 적용되는 장기체류와 정치적 참여를 주장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주민 권리 운동과 노동자운동은 완전한 합법화, 동등한 노동권, 궁극적으로 만인의 동등한 시민권을 실현하기 위해 중국동포와 비동포 이주민, 내국인 노동자들을 함께 조직하는 구체적인 전략을 발전시키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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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 인종주의 , 합법화 , 이주 , 출입국 , 재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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