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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성여대 간접고용노동자 파업투쟁 승리의 의미

노동자 단결로 승리를 쟁취하다

지난 8월 29일, 덕성여대 간접고용노동자들이 덕성여대(원청)와의 직접교섭을 통해 요구안을 쟁취하며 파업투쟁에서 승리했다. 지난 5년 간 덕성여대분회와 공공노조 서경지부가 노동자 내 분할을 넘어 단결을 확대하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해온 결과다.

안주할 것인가 넘어설 것인가?

덕성여대는 사립 종합대학 중 학생수 7,000명 이하의 중소규모 사업장이며 학내 용역노동자들은 약 80명으로, 청소, 보안, 시설관리, 셔틀버스운전, 전화교환, 도서관 사서 등 상당히 많은 업무를 이미 외주화한 상태다. 이 중 청소노동자들이 2007년 10월 선도적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당시 핵심 요구는 “폭언․금품갈취 일삼는 현장소장 퇴진”이었고, 다른 청소용역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형편없었던 임금과 노동조건의 개선도 중요한 요구였다. 덕성여대분회는 설립 후 1개월 만에 현장소장을 몰아내고 5개월 간의 투쟁 끝에 2008년 3월 신규 임단협을 쟁취했다. 그 후 매년 용역회사가 바뀔 때마다 임단협을 새로 체결하며 고단한 간접고용 용역노동자들의 투쟁을 이어갔다.
2011년 10월, 덕성여대 식당노동자들이 조직되기 시작했다. 이후 4개월 동안 덕성여대분회는 식당 고용승계 및 노동조건 개선 투쟁을 진행했다. 덕성여대분회와 공공노조 서경지부는 식당노동자들 역시 덕성여대분회가 포괄해 하나의 조직으로 함께 싸워야한다는 입장을 갖고 투쟁을 조직했다. 그러나 분회의 일부 간부들이 이에 반대하고, 급기야 식당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가입에 반대하는 조합원 서명을 조직하기까지 하는 등 조직 내부에서 분란이 일어났다. 청소노동자만 조직되어 있는 현 상태를 유지하며 안주하자는 노선과 사업장 내 같은 처지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모두 조직해 함께 원청과 싸우자는 노선이 충돌한 것이다.

어용노조의 설립과 사측의 탄압

이 과정에서 식당노동자 투쟁을 반대하는 일부 간부들과의 갈등이 극대화되고, 마침 12월 말 분회장 선거까지 겹치면서 현장 관리소장이 분회장 선거에 개입하는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했다. 노동조합 노선을 둘러싼 갈등에 현장 관리소장이 개입해 분열을 조장하고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음모가 진행되었다. 노동조합의 약한 고리를 사측이 치고 들어온 것이다.
이에 분회는 현장 관리소장 퇴진과 부당노동행위 재발방지 등을 요구하며 원하청 사측을 압박했다. 그러던 중 2012년 3월 8일, 3.8투쟁대회에 참가하느라 대부분의 현장 간부와 조합원이 현장을 비운 사이 일부 전직 간부들을 중심으로 어용노조가 설립되었다.
기존 조합원 53명(청소 48, 보안 4, 버스1)에서 13명이 이탈(청소 12, 보안1)했고, 이후 비조합원이었던 시설관리직 및 보안직 일부를 어용노조가 조직해 덕성여대분회 40명, 어용노조 27명 규모를 유지해왔다. 덕성여대는 어용노조 설립 후 급격히 민주노조 탄압 기조로 태도를 바꿨고, 학교가 어용노조를 비호하고 있다는 증거가 곳곳에서 속출했다.

직종을 넘어선 모든 노동자의 단결로! 가자 전면파업으로!

2012년 상반기 덕성여대분회는 부당노동행위 당사자이자 어용노조를 지원해왔던 현장소장 퇴출과 어용노조 해체, 그리고 생활임금 쟁취 투쟁을 전개해왔다.
그 결과 2012년 7월 중순 덕성여대가 노동조합에 먼저 면담을 제안해오면서 현장소장 퇴출과 요구안 일부 수용 의사를 밝혔다. 아울러 덕성여대는 노동조합과 2013년 청소노동자 시급 5,600원, 보안노동자 시급 5,100원, 그리고 보안직 휴가제도 개선 등을 담은 ‘가합의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덕성여대는 그 외 직종(시설관리, 버스기사 등)의 임금은 동결로, 보안노동자들의 시급은 임의로 감시단속직 시급 감액을 적용하여 10%를 삭감해 발표했다.
사측 안을 놓고 분회에서 토론이 벌어졌다. 한 조합원은 청소노동자의 임금은 합의됐으니 이제 투쟁을 그만하자고 했다. 다른 조합원은 학교 측이 배신한 것이기 때문에 싸우자고 했다. 어떤 조합원은 비정규직도 서러운데 비정규직 내부의 차별은 더 서러운 것이라며, 천막농성도 하고 파업투쟁도 하자고 했다. 토론 결과 점차 전면파업 투쟁으로 의견을 모으고, 적극적으로 현장 순회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에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비조합원들과 어용노조 조합원들이 민주노총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함께 투쟁하고 함께 살자는 덕성여대분회의 결의가 얼어붙어 있던 현장을 흔들면서, 노동자들이 민주노조로 단결하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 악덕 현장소장 퇴출을 저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한국노총 어용노조는 현장소장 퇴출이 확실시되자 힘을 급속히 잃어갔다. 그 동안 덕성여대분회 조합원들은 한 명이라도 어용노조 쪽으로 넘어갈까봐 노심초사하며, 어용노조의 작은 움직임에도 일희일비해왔다. 그만큼 민주노조를 지켜내는 것이 소중했는데, 파업투쟁으로 어용노조를 무력화하고 조직의 확대․강화를 이루어낸 것이다.

파업투쟁의 승리의 의미

덕성여대 파업투쟁은 태풍 볼라벤이 한반도를 강타한 8월 28일 시작되었다. 태풍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고, 즉각 덕성여대 행정관 무기한 점거농성에 돌입하며 집회투쟁을 이어갔다.
전면 파업 이틀째인 8월 29일 덕성여대와 직접교섭이 시작되었다. 장시간의 교섭 끝에 덕성여대는 기존 합의내용을 그대로 인정한 가운데 △보안노동자들의 임금을 노동조합 요구안대로 맞추고 △그 외 직종의 임금을 동일한 인상율로 인상하며 △시설관리직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노동조건 개선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데 합의했다. ‘노동조건 개선 특별위원회 구성 협정서’에는 노동조합과 용역회사는 물론, 덕성여대와 대학노조 덕성여대지부까지 공동서명하여 향후 2개월 안에 개선책을 논의해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덕성여대분회 파업투쟁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2013년 민주노총 최저임금 요구안인 시급 5,600원을 청소․보안 노동자들이 현장 투쟁으로 쟁취했다. 특히 이러한 합의를 통해 2013년 상반기 서경지부 집단교섭을 준비 중인 대학사업장(경희대, 고려대, 고려대병원, 연세대, 이화여대, 홍익대 등) 임금의 최저 기준을 마련했다. 이상의 사업장들은 이미 쟁취한 5,600원을 돌파하기 위해 힘찬 투쟁을 전개할 것이다.
둘째, 원청인 덕성여대 측과 직접교섭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냈다. 덕성여대는 시급인상 관련 내용에 8월 9일 ‘가합의서’ 형태로 직접 서명했다. 합의서에는 시급인상과 휴가제도 개선에 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적시되었다. 8월 29일 전면파업 2일차 교섭도 용역업체는 배제된 채 덕성여대 학교 측과의 직접교섭으로 진행되었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진짜 사용자인 원청사용자가 교섭부터 합의서 작성까지 직접 진행한 것이다. 덕성여대 원청 측이 직접 교섭에 나설 수밖에 없게 만든 투쟁의 성과다. 이러한 사례들을 더욱 확산시키고, 비정규직을 철폐하는 전국적 투쟁으로 모아나가야 한다.
셋째, 투쟁을 통해 조직 내외의 단결을 확대했다. 비정규직 노동조합이라고 해서 항상 투쟁적이고 연대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협소한 직종별 이기주의에 갇혀 있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덕성여대분회가 청소노동자들의 협소한 이해관계에 갇혔다면 파업투쟁을 시작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조직 확대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조직력이 약한 기타 직종 노동자들의 임금을 동결해 청소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하려고 한 덕성여대의 얄팍한 술수에 말려들었다면 노동자 내부의 분할이 확대되고 노동조합의 조직력은 더욱 약화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덕성여대분회는 이번 투쟁에서 덕성여대 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명실상부한 대표 조직으로 우뚝 서면서 조직을 확대 강화하고, 노동자들의 단결을 강화했다. 임금 인상뿐만 아니라 이러한 조직적 성과가 향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미래를 더욱 밝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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