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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문화운동의 연대와 조건들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문화적 사건은 바로 ‘한류 열풍’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내의 ‘한류 열풍’이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한류 열풍’이야 말로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비롯하여 최근 한국 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는 ‘아시아 담론’(아시아적 가치, 아시아 공동체, 아시아 문화도시...)의 허구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는 사실이다. 아시아적 가치를 말하되 정작 아시아의 정체성을 알려하지 않고, 아시아의 문제에 주목하되 아시아내 민주주의를 배제하고, 아시아 공동체를 주장하되 배타적인 경쟁과 자국의 이권 외에는 무관심하며, 아시아 문화교류를 말하되 자국 내에서는 철저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 아시아에 대한 모든 접근이 서구 근대화와 자본주의의 원칙에 기원한 기형적이고 왜곡된 ‘아시아 유령’만이 한국 사회, 아니 아시아를 비롯한 전세계를 떠돌고 있는 셈이다.

상징으로서의 ‘아시아’는 과잉, 유행, 복제되고 있지만, 정작 우리의 삶의 정체성이자 흔적이며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는 부재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도전의 출발점이 바로 ‘아시아 문화운동’의 재구성이다. 다시 말해 ‘아시아 문화운동’에 대한 새로운 접근은 삶의 정체성, 흔적,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를 새롭게 발견하고 함께 실천해나가는 과정이자 목표이다.

아시아 민중 삶의 조건을 바꿔 나가야

‘문화운동의 재구성’과 ‘지속가능한 아시아 연대’를 위하여 가장 시급한 것은 바로, ‘아시아 민중의 일상적 삶’과 ‘아시아 문화의 다양성’에 기반한 문화운동을 모색하려는 태도이다.‘아시아’라는 문제설정과 관련하여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아시아는 어떠한 통합적인 실재가 아니며 이러한 접근은 매우 추상적이고 허구적인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지적해왔다. 단순한 정서적 기호로서, 막연한 정체성의 정치로서 아시아를 과잉 규정하고, 아시아적 가치를 추상화하고, 아시아의 통합과 단결을 호소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아시아 문화운동의 연대를 가로막는 또 다른 원인이 될 것이다.

따라서 아시아 문화운동의 연대는 ‘아시아 민중의 일상적인 삶’과 ‘아시아 문화의 다양성’에 기반하여 서로의 다원성과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에서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시아 내부에 현존하는 ‘아시아의 부재와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서구 중심주의로부터의 이탈만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게 내면화되어 있는 국민국가간 체제 그리고 중심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비판이 실천돼야 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문화운동을 통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세계화가 규정하고 있는 개인과 공동체의 왜곡된 정체성을 거부하고, 자신의 자유와 권리에 기반한 호혜적이고 상호보완적인 자기 정체성과 인간적 실천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아시아 문화운동의 연대를 통해 새로운 아시아적 가치와 지평을 모색하고, 지구적 차원의 문화운동 연대와 대안적인 문화교류를 통해 아시아 민중의 삶의 조건을 바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기반 조성 필요

다음으로 아시아 및 전지구적 차원의 시민사회 형성 및 문화민주주의의 확대를 지향해야 한다. 자본, 시장, 시민사회의 탈국가화 경향을 고려한다면, 문화운동 역시 국민국가간의 대등한 외교 수립에 기반한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 아시아 내부의 탈국가적 시민사회의 형성과 실질적이고 보편적인 민주주의의 가치 확대를 모색해야 한다. 각각의 공동체, 국가, 지역이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공생하는 시민사회에 기초를 두는 것이야말로 지구적으로 다수의 다민족 국가가 공생하는 대안적인 세계질서의 기초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아시아 문화운동의 연대 활동은 민족, 국가의 경계를 횡단하고 소통함으로써 아시아 내부의 국가주의, 민족주의에 의한 수많은 갈등과 분쟁을 일상적으로 성찰하고 비판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며, 초국가적 민주화와 시민사회의 형성은 개별 국가 및 자본의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 줄 것이다.

다음으로 아시아 문화운동의 지속적인 연대를 위해서는 실질적인 소통과 지원을 위한 기반 조성이 필요하다. 개별화되고 분절된 아시아 문화운동 지형과 주체들을 가로지르고 연계할 수 있는 네트워크, 조직, 프로그램, 행사, 지원시스템 등의 마련을 위해 아시아 문화운동 주체들의 적극적인 고민과 참여가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문화운동 의제와 문화운동 주체들이 아시아 내부에서 상호 소통하며 대안적인 질서를 만들기 위해 많은 실천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다층적이고 구체적인 실천만큼이나 절합적이고 통합적인 움직임 역시 매우 중요하며, 더욱이 아시아 문화운동 전체의 맥락에서 본다면 좀 더 어려운 조건의 지역 활동가들이 아시아 문화연대 운동에 참여하고 연대할 수 있도록 실질적이고 지속가능한 기반 조성을 확보하기 위한 운동 역시 끊임없이 모색돼야 할 것이다.

'사회운동으로서의 문화운동'

마지막으로 아시아 문화운동의 연대를 위해서는 ‘사회운동으로서의 문화운동’, 다시 말해 문화권리의 확대를 위한 전략적 운동의제의 설정과 실천이 필요하다. 아시아 문화운동이 지속가능한 연대를 통해 상호보완적으로 지원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국가적, 장르적 한계를 넘어 서로를 매개하고 지원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보편적인 운동의제의 발굴이 필요하다.

아시아의 모든 국가가 경험할 수밖에 없는, 그리고 아시아 모든 민중의 문화적 권리와 본질적으로 연계되어 있는(문화 공공성, 다양성 등과 같은) 국제적 맥락의 운동의제를 이슈화하고, 이를 매개로 아시아의 보편적인 문화권리와 문화민주주의 확대를 위해 아시아 내외부가 연대할 수 있는 운동의 흐름을 창출해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문화운동 자체가 현재의 주변화, 제도화, 분절화 등을 극복하고, 공공성(공공영역)에 대한 개입을 매개로 하는 사회운동으로서의 문화운동의 정체성과 자기 실천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사회, 경제, 문화적 권리는 배제하고 시민권과 정치적 권리에만 중점을 두었던 탈냉전시대의 제한적인 국가 민주화(일반민주주의의 보편화)를 뛰어넘는 사회운동으로서의 문화운동 전략이 아시아 국가 내외부에서 적극적으로 전개돼야 한다.


이원재, 문화연대 공동사무처장
덧붙이는 말

이원재님은 문화연대 공동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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