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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인권을 바라보는 몇가지 쟁점들

몇 주 전 한국 사회를 시끄럽게 했던 연예인 X-file 사건은 예상했던 대로 주류 연예담론의 좋은 뉴스거리로 활용, 재활용되고는 곧바로 연예시장의 먹이사슬 안으로 봉합되고 말았다. 지금 다시 연예인 X-file 사건의 진상을 복기하여 문제의 중심에 다가가는 논의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할 만큼 X-file 사건은 벌써 연예정보시장이나 대중들이나 아니 당사자들 스스로에게 잊혀져가는 해프닝 혹은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처로 기억되려 한다. 연예인과 관련된 좋지 않은 사건들은 당사자들에게는 빨리 마무리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은 그래도 다른 사건에 비해서 연예계가 조직적으로 대응한 셈이라고 자위하기도 한다. 이번 X-file 사건은 법률적 의미에서 리서치 회사 소속 직원의 잘못이나 정보의 확산에 가담한 네티즌들의 잘못으로 돌리기에는 정보의 태생 자체가 연예인, 연예담론, 연예산업의 ‘장’의 발생 효과에 기인한 바가 크다. X-file에 담긴 정보의 축적과정 안에는 광고회사/광고주가 연예인을 바라보는 기본태도, 연예인과 관련된 우리시회의 담론 수준, 연예리포터, 방송예능국, 광고회사와 광고주 사이의 먹이사슬 구조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X-file 사건과 그 후

그런데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문화담론들은 연예인 스캔들 관련 담론을 한국적 특수한 상황에 기반한 대중문화산업 시장의 논리로 환원하는 방식들을 반복해왔다. 연예인 관련 스캔들은 당사자 스스로 일조했던 연예산업의 천박한 시스템에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 말이다. 즉 어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연예인들에 대한 대중들의 심리는 언제나 피해를 입은 연예인을 ‘사회적 약자’로 인식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이들의 ‘영화와 부귀’에 값하는 고통으로 감내하길 원한다. 말하자면 연예인은 왜곡된 연예담론과 연예산업에 있어 ‘구성적 요소’라는 점에서 그 ‘원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예산업의 왜곡된 구조와 왜곡된 연예담론 시장을 비판적으로 언급하기 이전에 먼저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바로 ‘인간’으로서 연예인들의 정신적, 신체적 상태에 관한 것이다. X-file의 정보가 진실인가 아닌가를 떠나서 개인의 정보가 사전의 동의없이 공식적인 보고서 안에 기록되었다는 점은 전적으로 개인에 대한 정보폭력이자 인권침해임을 부인할 수 없다.

연예인 인권의 문제는 X-file 사건처럼 정보보호 차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개인의 사생활에서 벌어지는 각종 인간적인 모욕과 성차별의 문제, 미디어의 치열한 취재경쟁으로부터 사생활이 유린당하는 문제, 연예기획사에 종속되어 신체적 구속을 감수할 수밖에 만드는 전속계약제의 문제, 무명연기자들이 당해야하는 노동차별의 문제이기도 하다. 겉으로는 화려한 조명을 받고 부와 명예를 누리는 연예인들이지만, 미디어, 연예자본, 대중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이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말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연예인 인권의 문제를 배부른 소리로 일거에 외면하기보다는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담론을 통해 연예인의 사회적 의미와 역할, 연예자본의 내적 공모관계, 미디어의 보도태도에 대해 새롭게 재고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연예인 인권-보편적인가 특수한가

그렇다면 연예인 인권을 어떻게 말할 수 있으며, 그것은 다른 인권의 영역과 어떻게 다르고 같은가? 연예인 인권은 세 가지 면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 첫째, 이 세상 누구에게나 부여된 천부의 인권이다. 인권은 노동자나 성적소수자 양심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형수나 청소년 성매매자들에게조차도 부여된 것으로, 인권은 범죄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인간의 존재성 그 자체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특정 연예인이 마약을 복용했건, 섹스스캔들을 일으켰던, 특정범죄가중처벌죄를 저질렀던 개인으로서 존중되어야 할 기본인권은 침해받아서는 안된다. 문제는 대부분의 스포츠연예지와 연예정보를 담은 미디어가 그 선을 넘어서고 있다는 데 있다.

둘째로 누구나 보장받아야하는 보편적 의미로서의 인권과 다른 차원으로 일종의 ‘다름’으로서의 연예인 인권에 대한 생각들이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연예인들의 인권은 다른 인권의 영역과 어떻게 다른 것인가 하는 점을 구체화하는 주문일 것이다. 이 다름이라는 것은 ‘특권화된’ 다름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말하자면, 연예인들을 특정 계층에 속한 특권자로 위계질서화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인권을 말할 수 없다고 본다. 소위 여기서 다름은 차별적, 위계질서적 지위라기보다는 차이, 혹은 횡단을 말하는 것이다. 예컨대 노동자의 인권과 성적 소수자의 인권이 다르지만, 차별화되어서는 안 되듯이, 연예인의 인권과 이주노동자들의 인권도 마찬가지의 관계이다. 또한 노동자의 인권 안에는 성적 소수자의 인권이 횡단하듯이, 연예인의 인권 안에도 여성의 인권이 횡단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물론 차이와 횡단만으로 연예인들의 인권을 모두 정의할 수는 없다. 여기에 앞서 말한 연예인의 인권과 이주노동자의 인권과의 차이 혹은 그것과의 횡단의 의미와는 다르게, 소위 가진 자로서의 위치에 속한 연예인들의 인권을 말하는 특수성이 논의되어야 한다. 예컨대 백지영, 황수정, 성현아과 같은 여성연예인에서부터 X-file에 거명된 수많은 유명 연예인들의 특수한 인권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이때의 인권은 첫째, 보장의 개념보다는 침해의 개념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는 점, 둘째 항상 침해과정에는 특정한 사건이 미디어 의해 과장되게 매개된다는 점, 셋째 미디어의 매개과정에서 언어에 의한 정서적 폭력이 심하게 드러난 다는 점 등이 지적될 수 있겠다. 그런 점에서 연예인 인권의 문제는 개인 사생활을 보장받는 것 자체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사생활이 미디어에 의해 어떻게 침해당하고, 왜곡되는가의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러한 세 가지 관점으로 보았을 때 연예인 인권의 문제는 보편적인 의미와 특수한 의미를 동시에 사고하는 것이 적절하다. 물론 특수한 위치에 놓여있는 연예인들 스스로 인기를 얻기 위해 인권침해를 공모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인권 침해의 모든 원인이 자기들에게 비롯되었다 해도, 보편적 인권으로서의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다. 더욱이 그러한 왜곡된 사례들의 기저에는 개인의 야욕으로만 일별할 수 없는 일종의 우월적 지위에서 비롯된 권력관계의 메커니즘이 놓여있다.

연예인 인권 메뉴페스토는 가능한가

한국의 연예계는 연예인들의 자기 주장이 대부분 막혀있거나 스스로 주장하는 방법으로부터 무감각하다. 여성 연예인들의 섹스스캔들이 있을 경우 미디어가 무자비하게 보도해도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한다. 명예훼손으로 고소 고발을 해도 먹고살기 위해 얼마 있지 않아 대부분 취하한다. 연예인들의 자기조직화의 열악함은 비단 이들의 특수한 지위 때문만은 아니다. 몇 년 전 프로야구 선수협의회도 연예인들과 유사한 특수한 지위에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싸움을 벌인 예나, 정치권과 미디어계, 그리고 연예산업계의 폭력으로부터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려는 외국 연예인들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연예인의 인권에 대한 자기 발언은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동안 한국의 연예인들이 지나치게 연예자본과 미디어로부터 지나치게 길들여져 있었다는 데 있다.

연예인들은 그동안 자신들의 이익에 대해서는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온라인 불법 음악 사이트 추방운동이라든지, 스크린쿼터 사수투쟁이라든지 하는 직접적 이해관계에 관련된 사안들에 대해서는 일사분란하게 조직되었다. 한편으로 연예인들의 공익활동에 대한 관심도 여전보다 훨씬 높아져 유명 연예인들이 각종 시민사회단체의 홍보대사로 일하거나, 남이 모르게 복지시설에 선행을 베푸는 연예인들도 많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의 신체와 정체성이 심각하게 유린당하는 사태에 대해서는 행동과 발언을 조직화하지 못한다. 연기자 노조 역시 이번 X-file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초기 대응과 언론 플레이는 능한지는 몰라도 이 문제를 연예인의 인권의 문제로 확대해서 대응하는 인식과 논리가 부재하다.

제2, 제3의 황수정 사건, X-file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신체와 정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들을 조금씩 찾아나가는 움직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심각한 인권유린을 당하고 있는 여성연예인들의 권리를 위해, 저임금과 과로로 노동 착취 받고 있는 동료 연기자들과 기층연예종사자들의 권리를 위해, 개인의 사생활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는 정보 폭력으로부터 자신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이제는 한번쯤은 연예인들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모여 ‘세계 최초’로 연예인 인권선언을 당당하게 발언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동연,문화평론가/문화사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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