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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아파트에서 더불어 살기

노숙인들의 생활 공동체, ‘더불어사는집’

청계천 복원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 종로구 창신동의 청계천 근처에 가면 낡은 아파트를 볼 수 있다. 곧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삼일 아파트는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다. 박정희가 ‘삼일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름 붙인 삼일아파트는 1984년부터 재개발계획이 있었으나 2005년이 된 지금에서야 철거 계획이 만들어 졌다. 이에 작년 여름 재개발에 따른 보상이 마무리되어 상당수의 주민이 이주한 상태이다. 하지만 이주비로 영구임대아파트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한 몇 가구는 아직 삼일아파트에 남아 있는 상태이다. 그리고 이곳에 새로운 식구가 들어 왔다. 노숙인 자체 모임인 ‘더불어사는집’(4월19일자 헤드라인 뉴스 기사참조) 식구들이 2동 311호에 자리 잡고 있다.

‘더불어사는집’ 식구들은 모두 노숙인이다. 임진택 씨와 그의 아내는 공장에서 해고당하고 노점을 하며 노숙생활을 해 왔다. 정씨 아저씨도 염전에서 강제노동을 하다 빠져나온 작년까지만 해도 쉼터와 노숙을 전전하며 생활했다. 젊은 축에 속하는 김씨는 반월공장에서 일하다가 해고당하고, 장애인이란 이유로 재취업이 되지 않아 노숙생활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들 모두 ‘더불어사는집’ 식구가 되어 생활공동체를 꾸려나가고 있다.

20여명이 모여 살아

‘더불어사는집’은 작년 8월에 양연수 씨의 건의로 시작됐다. 시청 역 근처의 노숙인들에게 생활공동체를 꾸리자는 제안으로 여러 노숙인들이 참여하여 철거 예정지역인 삼일아파트에 자리를 잡게 됐다. 그리고 노숙인들 사이의 입소문과 소개로 지금은 11명이 모여 생활하고 있다. 수시로 왔다갔다하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20 여명 정도가 아파트에 자리잡고 있다.

처음에 자리를 잡을 때는 노숙인이란 이유로 주위 주민들의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1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때에 비해 많이 좋아진 편이다. 삼일아파트 근처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아주머니는 “잘은 모르지만 문제는 없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점거 초창기 구청 측만 해도 몰래 아파트에 들어와 창문과 문을 부수어 생활을 불가능하게 하기 일쑤였다. 이 때문에 ‘더불어사는집’ 식구 중 일부는 다시 노숙인으로 돌아가기도 했다고. 박씨 아저씨는 “그때는 많이 무서웠다. 유리창을 다 부수고, 생활물품도 다 부수어 버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지만 이후에 구청과 구두로 타협하는 선에서 괴롭힘이 사라지고, 나갔던 노숙인들이 다시 돌아왔다.

노숙자들의 아늑하고 안전한 공동체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자리를 잡은 ‘더불어사는집’은 좁은 아파트에서 11명이 거주하지만 굉장히 만족하며 생활하고 있다. 노숙인들은 노숙생활 이후에 이곳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고 말한다. 박씨 아저씨는 이곳 생활에 대해 “(여기는) 노숙인에게 최고의 보금자리다. 쉼터 같이 불필요한 제약도 없고, 거리에서처럼 무질서하고 겁에 질려 생활할 필요도 없다”며 “여기서 사람대접 받으며 인간답게 사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곳에서 수익이 있는 사람은 11명 중 5명뿐이다. 일하지 못하는 나머지 6명은 구직활동을 계속하고 있지만, 장애가 심하거나 고령으로 인하여 취직이 쉽지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공동체 내부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직업이 있는 사람은 수익 중 일부를 공동체 운영에 사용한다. 대략적으로 수익의 반을 공동체에 내놓는다고 한다. 그리고 직업이 없는 사람은 공동체에서 필요한 노동을 한다. 청소나 빨래, 밥 짓기 등을 하며 자기 몫을 다 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런 집안일이 순번 등으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식구들은 알아서 솔선수범해서 공동체 일을 맡아 한다. 수익이 있는 사람이 밖에서 일하다 들어오면, 집에 있던 사람은 그를 위해 밥을 짓는다.

왠지 노숙인들이 모여 생활을 하면 다툼도 있을 것 같은데 ‘더불어사는집’ 식구들은 서로를 동일하게 대해 주고 존중하며 사소한 다툼조차 없다. 언젠가 한 번은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노숙인에게 회의를 통해 ‘근신’ 처분을 내렸다. 3일간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를 통해 공동체의 소중함과 자기절제를 일깨운다. 그리고 3일 후에 돌아온 식구를 '더불어사는집' 식구들은 다시 따뜻하게 받아준다. 양연수 씨는 이에 대해 “노숙인이라고 하여 다른 사람이 아니다. 원래 모두 착하고 선한 사람들이다. 우리 공동체는 그런 사람의 선한 마음을 믿고 있다”고 말한다.

쉼터보다 이곳이 좋다고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쉼터에서 생활하던 시절 쉼터의 노숙인들 사이에 폭력이 있었던 것이다. 먼저 들어온 쉼터의 노숙인은 ‘신고식’이란 이름으로 늦게 들어온 노숙자를 집단폭행한다. 임진택 씨도 그런 폭력에 시달리다 밖에서의 노숙생활을 했다며, “쉼터에서 선생들은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다. 싸움이 커지면 관련자 모두를 추방하는 방법만 사용한다. 다시는 가고 싶지 않는 곳이다”라고 흥분했다. ‘더불어사는집’은 들어가기 위한 조건은 없다. 노숙인들은 모두 환영한다. 심지어 들어올 때, 이름이나 나이조차 묻지 않는다. 술과 담배도 허용된다. 술이 마시고 싶으면 모두 모여 함께 술을 마신다. 다만 과음으로 인해 주위 사람에게 피해만 가지 않으면 된다. 일어나는 시간, 잠자는 시간 모두 정해져 있지 않다. 일이 늦으면 늦게 잘 수도 있고, 피곤하면 늦게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다. 언제나 모든 일상에 대해 서로 공유하고 이해한 덕분이다. 이를 위해 ‘더불어사는집’ 식구들은 매일 저녁 회의를 한다. 회의라고 해서 무언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폭을 넓혀 나가는 것이다.

더 많은 노숙인과 함께 하고 싶다

그들은 노숙인들이 모여 이렇게도 잘 살 수 있음에 스스로도 놀란다. 박씨 아저씨는 “‘더불어사는집’과 함께 하기 전에는 많이 의심스러웠지만 지금은 놀라울 뿐”이라며 지금에 만족하고 있다. 박씨 아저씨말고도 이들은 더 많은 이들과 함께 하길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 ‘더불어사는집’ 에서는 서울역과 영등포역 근처에서 노숙인을 상대로 공동체에 참여하기를 권유하며 다니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유인물도 나눠주고 있는데, 내용은 간단하다. 노숙인을 다른 시민과 분리하려는 정부 정책의 문제점과 노숙인들이 자활할 수 있는 방안의 필요성이 그 내용이다. ‘더불어사는집’에는 들어오는 조건도 나가는 조건도 없기 때문에 의심이 많았던 노숙인들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며칠 전부터 유인물을 보고 두 명의 노숙인이 찾아와 생활하고 있다. 임진택 씨는 “여기 삼일아파트의 빈집에 모두 노숙인들이 생활할 수 있으면 좋겠다. 노숙인들이 자체적인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우리 자신에게도 보여주고 있다”라며 더 많은 노숙인들이 ‘더불어사는집’과 함께 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아파트가 철거된 이후에는

하지만 지금 ‘더불어사는집’에는 큰 걱정이 하나 있다. 6월 즈음에는 아파트 철거가 시작돼 아파트에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파트 철거가 시작되면 폐교 등 아무도 살지 않는 공공건물에 들어가 공동체 생활을 이어갈 예정이다. 그리고 재활용품 판매점이나 중고품 수리센터를 개업, 생산공동체를 구성할 계획이다. 5월 31일에 공청회를 열어 자신들의 명확한 입장을 다시 밝히고 후원과 지지를 얻겠다는 생각이다. 양연수 씨는 “‘아름다운가게’는 자원봉사자의 힘을 빌어서 운영된다. 그리고 우리는 노숙인들이 자체적으로 활동하며 운영할 것이다. 거기서 얻는 소득으로 공동체가 유지될 것이다”라는 계획을 제시했다.

그러나 공공건물을 점거한다는 것은 지금처럼 철거예정 건물을 점거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여전히 외부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을뿐더러 해당 관공서에서 이를 쉽게 용납할 리가 없는 까닭. 이에 임진택 씨는 “여기도 싸워서 얻어냈다. 명분없이 싸우지는 않는다. 사회의 희생자로, 약자로 점거를 통해 생존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정부가 책임지지 않으니 우리가 삶을 개척할 수밖에 없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다른 꿈을 꾸고 싶다

생산 공동체가 성공적으로 운영되면 더 많은 사람들을 받을 예정이다. 양연수 대표는 “노숙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미혼모 등 사회적 약자는 모두 공동체에 들어올 자격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들에게 ‘더불어사는집’은 단순한 노숙인의 모임만은 아니다. ‘더불어사는집’은 사회적 소수자의 대안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생산공동체를 후원할 사람이 얼마나 될 지도 모르고 정부의 대처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그 실현은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양연수 씨는 “처음 ‘더불어사는집’도 이렇게 잘 운영될지 몰랐다. 계획이 명확하게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함께 고민하며 해 나가면 대안적 공동체가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IMF 이후 부의 양극화에 따라 노숙인은 급속도로 증가했다. 그리고 그 수는 지금도 줄어들고 있지 않다. 오히려 가족노숙 등이 증가하며 문제가 더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더불어사는집' 공동체 모임이 이에 대한 대안인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과 의지가 새로운 대안의 시발점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말

최영호 님은 문화연대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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