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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문화/공간

'문화는 공간을 필요로 하는가?', '공간은 문화를 필요로 하는가?', '아니면 결국 사람이 문제인가?' 분명 ‘공간’과 ‘문화’는 공모관계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공모관계에서 건설 혹은 시설 위주의 전시행정이나 상업공간의 자본논리만 위세를 떨칠 뿐 ‘공간’과 ‘문화’가 틀어지는 지점은 간과되고 있다. 기무사 터에 대한 활용방안, 노들섬의 오페라하우스 건설문제, 민자역사의 공공성 문제, 점거(예술)운동 등이 이 뒤틀림을 잘 보여준다. 바로 이 지점에 문화의 주체인 사람의 문제가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만들어 내거나 만들어 낼 공동의 문화가 있어야 한다. 그 다음이 문화의 공간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은 그 반대 방향이다.

물론 사람-문화-공간의 선형적 발전론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공간환경이 사람들의 모든 삶의 방식을 규정한다는 식의 공간결정론은 피하고 싶다. 청계천을 보라. 잘못 조성된 근대의 왜곡된 공간에서도 새로운 삶의 방식들과 공간활용 방식들은 창출된다. 사실 청계천의 새로운 공동공간 창출과 생산-유통-판매의 네트워크는 천변 사람들이 만들어 낸 공간실천인 것이다. 그럼에도 서울시의 청계천 복원사업은 공간결정론에 기반한 개발공간 창출이 목표임에 틀림없다.

한편 문화공간을 먼저 건축하는 경우에도 기존의 문화적 자원을 먼저 살펴야 한다. 거점공간의 창출이 문화 제너레이터가 되기 위해서는 문화 발전소, 변전소, 전신주, 전기줄이 필요하다. 또한 문화공간의 네트워크는 가장 근본적으로 문화적 전기(電氣)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만드는 공동문화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문화는 시민 혹은 주민들의 주체적인 참여를 통해 삶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민주적인 공동성을 창출하여 문화사회를 이룩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오페라하우스 조성계획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이전부지 문제로 도시에서 문화를 전략으로 내세워 문화공간을 건설하려는 시도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그 배경으로는 문화와 환경을 발전전략으로 삼는 세계적 신자유주의 흐름과 문화적 욕구의 증대, 장소마케팅의 활성화, 그리고 정치적 전시행정의 효과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탈산업화 현상이 일부 진행되면서 근대 도시 권력의 그늘이었던 건물들이 비워지거나 국토의 새로운 기능배치로 인해 새로운 가능성이 생겨나고, 새로운 건축물들이 세워지면서 기능이 정지되는 건물들이 생겨남으로써 용도변경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복원사업과 더불어 문화적 리모델링이 지역자치의 좋은 정책적 방법으로 대두되었다.

세종로와 청계천의 경우는 매우 상반된 공간문화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하다. 도식적으로 말하면 세종로는 지배공간이었고 청계천, 특히 천변은 공간소비의 과정에서 생겨난 일종의 전복공간이다. 세종로의 문화적 리모델링이 필요하다면 우선 지배공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고, 청계천의 문화거리와 박물관은 천변의 인문지리와 공간적 문화자원의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을 강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문화공간은 외부에서 새로운 문화동력을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공간적 문제를 해결하고 공간문화적 자원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조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화공간은 역사와 문화, 문화 프로그램과 일상적 공간이 만나는 장소이어야 한다. 세종로 권역의 공공기관과 학교들은 주변의 문화적 흐름들을 끊어놓는 고립된 섬들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옛 기무사 터에 자리 잡는다면 죽은 생태 흐름과 문화적 흐름을 살리고 세종로의 광장기능, 권력공간의 민주성, 상업공간의 활력, 주거공간의 역사성과의 연동을 끌어내어 문화의 제너레이터 역할을 해야 한다.

경기침체의 깊은 늪 속에서도 관은 막대한 예산을 투여하여 과시형 랜드 마크 조성을 주요한 문화공간 전략으로 삼는다. 전주의 소리문화전당, 광주의 아시아문화전당, 서울의 오페라하우스 건립계획은 대형 전시행정의 건설주의를 잘 보여준다. 먼저 삽을 뜨는 자가 승리를 확보한다. 특히 오페라하우스의 경우는 ‘천년의 문’의 어두운 환영을 다시 보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소형, 중형, 대형 공연장 모두는 서구에 비해 그 규모가 작고 수도 적은 것이 사실이다. 공연장의 수가 적기 때문에 소-중-대형 공연장 모두를 많이 늘리어야 하지만, 관람하는 소비자의 관점에서 보면 중형과 소형 공연장이 더욱 필요한 실정이다. 다시 말해서 대중문화와 관련된 공연이나 라이브 공연에 대한 수용 소비자는 이미 형성되어 있지만 문화공간이 부족한 실정이고, 고급문화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공간이 소비자에 비해 많은 편이다. 따라서 문화공간을 새로 만든다면 중형과 소형의 대중문화 공간을 늘려야 하는 것이 수용 소비자의 관점에서 옳다. 또한 고급문화공간이 필요하다면 똑같이 대안문화공간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 수용 소비자의 문제는 다른 지역의 경우 더욱 고려해야할 지점이다.

왜냐하면 서울의 경우는 그나마 다양한 소비층이 편재되어 있고 산업적 기반도 강하지만, 다른 지역의 경우는 고급문화와 대안문화에 대한 소비기반은 매우 열악하다. 축제 기간 동안에만 대형 공연장은 반짝하고 나머지 기간 동안에는 소-중-대형 문화공간이 다 유명무실하다. 따라서 서울과 몇몇 지역 이외의 지역들은 문화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화를 향유할 여건, 즉 공연이나 문화 구성체 자체를 형성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이미 형성된 문화구성체가 미미하더라도, 존재한다면 우선적으로 지원하고 공간을 확보해 주어야 한다.

이상적인 문화공간은 문화소비자의 형성이 기반이 되어야 하고 건물조성보다 문화행위가 생산되는 문화공지(문화적 행위가 발생하는 빈 공간)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사람과 문화가 먼저이고, 그 사람들이 자신의 문화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빈 공간이 다음이고, 이 공지의 문화가 결정화되는 건축물은 그 다음이다. 녹지와 실외 광장, 시장과 상업공간의 홀 등의 문화공지는 좋은 문화공간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문화공간은 생활문화와 연행문화와 영상문화가 결합된 총체적인 문화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을 전제한다. 이런 측면에서 종합예술을 지향하는 복합문화공간은 기능 자체가 복합적으로 배치되는 기능배치가 아니라 유연한 공간 자체에서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화행위가 발생할 수 있는 창발성의 배치를 주요한 목표로 삼는다.

바람직한 문화공간을 형성하는 데는 먼저 우리가 가진 문화적 역사를 재생하고, 소비자의 관점에서 기존의 문화행위에 필요한 공간을 확보하고, 사람들이 모이고 문화가 생성되는 유연한 공간을 도모하고, 무엇보다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수용자 층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덧붙이는 말

류제홍은 문화연대 공간환경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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