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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가치'를 창출할 것인가

경인지역 새방송의 이념과 허가정책방향

지난해 말 방송위원회의 경인방송 재허가 추천 거부로 시작된 경인지역의 새로운 방송사업자 선정 문제가 물 위로 떠올랐다. 그동안 경인방송 희망조합을 비롯한 언론운동단체, 경인지역 시민사회단체에서는 경인지역 시청자의 시청권 보장을 위해 서둘러 새로운 사업자를 선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 속에서 지난 5월 6일 경인지역 새 방송 주비위는 기자회견을 통해 경인지역 새 지상파 방송사의 이념과 성격에 대해서 발표하였고, 지난 13일에는 방송위원회가 경인지역 새 지상파방송 사업자 선정관련 정책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방송위원회의 토론회가 열린 만치, 이후 경인지역 새 지상파 방송사 허가는 탄력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사업자 허가 정책은 방송위원회, 희망조합 주비위, 주식회사 경인방송 관련 조직, 일부 기업이나 공익재단뿐만 아니라 문화관광부, 정치권 등과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화려한 ‘동상이몽’이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재허가 추천거부의 의미

주식회사 경인방송(ITV)이 방송위원회의 재허가 추천을 받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게 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과거 정부(공보처) 방송정책의 실패라는 측면이다. 1996년 허가 당시 정부는 지역의 요구와 100% 자체제작을 하는 지역방송의 생존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경인지역의 민영방송을 정치적으로 허가함으로써 파행과 파산을 예고했던 셈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인천지역 시민의 목소리나 학계 등의 우려의 목소리는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둘째는 경인방송 지배주주 동양제철화학을 비롯한 경영진의 방송철학의 부재와 무능, 무원칙, 경영능력 부재라는 측면이다. 경인방송의 지난 7년 역사를 보면 지배주주 등이 방송 경영자로서의 능력과 소신, 철학과 비전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지난 7년간 경인방송 사장은 여섯 차례, 회장은 세 차례 각각 교체되었다. 또한 자료에 따르면 동양제철화학은 그동안 399억원을 증자했으나 사옥임대료로 250억원을 챙겼고, 장비 임대료 268억원도 경인방송에서 갚았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경인방송 구성원와 경영진, 동양제철화학과의 불신의 골은 깊을 대로 깊어졌다.(최영묵, 2004)

따라서 방송위원회는 경인지역에 새로운 ‘지상파 방송 사업자’를 선정하는 데 있어 과거 정책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검토하여, 과거 정책실패의 반복을 피하고 새로운 미디어 환경 속에서 지상파 방송의 공적 성격과 시청자 복지 실현의 가능성을 중심으로, 향후 사업자를 선정해야 할 것이다. 물론 새로운 사업자가 그러한 성격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점차 가속되고 있는 무한 시장경쟁 속에서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지역방송 모델의 가능성

과거 지역 민영방송 허가 정책이 결국 모든 지역에서 ‘실패’로 귀결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지역방송을 서울권 방송 ‘중계기지’로 접근했다는 점에 있다. 그러다보니 주요 지역에 방송국이 생겼지만 지역밀착 프로그램이 별로 늘어나지 않았고, 프로그램 제작소스의 다양성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이의 원인이자 결과로 방송재원의 분산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편성계획과 이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것보다는 지역연고자를 중심으로 ‘이권분배’로 접근한 정책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새로운 지역방송 모델, 성공하는 지역방송 모델을 충분히 고민하여 이를 실현할 가능성이 있는 사업자에게 사업권을 주는 것이 타당하다.

경인지역의 새 지상파방송사에 대한 허가는 지상파방송, 지역방송의 시대적 임무와 그 구현계획의 구체성과 현실성, 지역밀착성과 시민사회의 참여 가능성 등을 적극 검토하는 과정이 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 적절한 사업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허가정책 자체를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지역안배 차원에서 형식적 조건만을 갖춘 사업자에게 허가권을 주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정책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면서, 무책임한 기업이나 자본의 횡포를 막으면서 새로운 지상파 방송사업자 모델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새 방송사업자의 자본성격은 민간이던, 공적자본이던 제한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방송사업을 통해 지역성, 투명성, 건전성, 대안성, 실험성과 같은 지역방송의 대안적 가치를 누가 더 잘 창출해 갈 수 있을 것인지를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방송에 대한 ‘철학’

1990년대 SBS 허가 이후 한국 방송시장은 오로지 민영화를 외치며 오늘까지 달려오고 있다. 케이블TV, 지역민방, 위성DMB, 이후의 IPTV 할 것 없이 철저하게 자본 중심의 상업적 미디어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게다가 주지하듯, SBS 이후 지상파 방송의 전반적인 상업화가 강화되었고, 장르편식 현상 등으로 전체적 수용자 후생수준은 크게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최근들어 산업논리 중심으로 변해가고 있는 국내 미디어 환경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적어도 지상파 방송영역은 공적가치가 관철될 수 있는 구조를 계속 유지하며 강화해 갈 필요가 있다.

또다른 측면의 쟁점으로 방송권역 문제가 있다. 과거 경인방송이 재허가 추천을 거부당한 근본적 이유 중의 하나로 협소한 방송권역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이 많았다. 당시 경인방송 서비스 권역을 가지고 100% 자체 제작을 지향하는 한 경영난에 봉착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문제 해결이 선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는 새로운 경인지역 지상파방송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서도 이어질 수 있는 주장이다. 요컨대, 새로운 경인지역 지상파 방송의 경우도 기존의 권역에 한정하여 허가하는 한, 적자에 시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참에 방송서비스 권역을 ‘크게’ 확대하여 허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기존의 경인방송의 실패가 권역문제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주장을 입증해야 한다. 노동조합 등에서 밝힌 여러 이유를 보면 근본적인 시장의 실패라는 측면보다는 경영진의 이념/철학/능력 부족이 더 큰 문제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수도권 제 2민방이 될 광역화는 복잡한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광고시장 문제다. 신문사에 이어 방송사들의 경영난도 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지상파방송을 허가하는 것은 언론 전체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경인지역의 새로운 지상파 방송은 2004년 재허가 추천거부 직전까지 결정되었던 기존의 권역을 대상으로 사업자 허가가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역적 가치 창출해야

결론적으로 중요한 것은 새로운 경인지역 지상파 방송을 통해 한국 방송에 시급하게 필요한 어떠한 가치를 창출해 갈 것이냐 하는 데 있다. 동양제철화학의 ‘경인방송’이 재허가 추천을 거부당한 뒤, 많은 경인지역 시청자들이 자발적으로 새 방송사 설립운동에 나서고 있다. 이는 지역 주민들이 방송을 통해 얻어야 하는 복지와 정보, 지역적 정체성에 목말라 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새로운 경인지역 지상파 방송사업자는 지역적 가치를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국내 지역 방송들은 지금 고사위기에 처해 있다. 그 여파는 서울의 키스테이션에도 이어지고 있다. 합리적 지역방송 모델을 만들고 개혁해가지 못하면 방송영역 전체가 몰락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경인지역 지상파 방송은 성공한 지역 방송, 성공한 지역의 공적 가치를 추구하는 방송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새 방송사업자 선정은 현행 방송관련 법의 테두리 내에서 합리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한동안 공영방송의 ‘서비스 실패’를 문제 삼아 탈규제와 민영화논리가 전세계적으로 방송시장을 지배한 바 있다. 이를 현재 시점에서 평가하자면 방송영역의 저품질화, 산업화, 시장화를 낳아 결과적으로 ‘방송의 실패’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국내에서 방송의 탈규제, 민영화를 추동한 1994년과 1996년 지역민방 허가 모델은 앞서 설명한 바 있다. 핵심은 방송에 사기업참여의 자유를 확장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개별 방송이 소유와 경영, 편성에서 공익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는 구조를 근간으로 하되, 그들이 경쟁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본의 성격이 아니라 방송사업 수행의 철학과 이념, 그리고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방송사업자 선정정책은 또한 사회적 후생과 효용을 최대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기존 상업방송의 재탕, 기존 지역민방의 복사판, 기존 공영방송의 아류로서 새로운 방송을 허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변화한 새로운 환경 속에서 수용자 복지를 극대화할 수 있고, 새로운 지역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고, 새로운 방송사업 경영모델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과 그 구현의 의지를 중심으로 새로운 사업자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최영묵,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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