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대 뉴스레터 문화빵

일어나서는 안될 일

예술가는 무직자?

결코 일어나서는 안될 상황이겠지만, 당신이 길을 걷다 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해 심각한 신체적 장애를 갖게 됐다고 치자. 그런데, 보험회사는 되려 당신의 책임을 들먹이며 배상할 수 없다고 배째고 나온다. 아니, 한술 더떠 당신이 평생을 바쳐 해오던 일을 경력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무직자 취급을 한다. 자, 당신이라면 어떻겠는가.‘미치고 환장할 노릇’ 아니겠는가. 당신이라면, 아니 당신 주변 사람이 이런 일을 당했다면 어떻게 하시겠는가.

설마, 보험회사도 ‘소셜 포지션’이 있는데 그렇게까지 하겠냐고? 세상에, 당신같은 선량하고 천진난만한 시민을 위해 친절하게도 보험회사의 ‘소셜 포지션’을 알려주는 회사가 있다. 업계수위를 자랑하며 몇 년째 고객신뢰도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그곳의 이름은 삼성화재. 그리고 그런 일을 당한 당신의 이웃은 조각가 故 구본주다.

예술활동경력 불인정

구본주는 2003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등졌다. 배상금 문제로 소송이 시작됐다. 배상책임이 있는 삼성화재와 의견조율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세 가지. 첫째는 사고의 책임비율, 둘째는 가동연한(정년), 세 번째가 수입산정(일실수입) 등이다. 1심에서는 책임비율 25%, 정년 65세, 일실수입 예술전문가 5-9년 경력 인정 등을 판결받았다.

그러나 삼성화재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들은 사고 책임비율 70%, 정년 60세, 일실수입 도시일용노임 한정을 주장하며 항소를 제기했다. 가해 운전자가 법정에서 자신의 과실을 인정했음에도 피해자가 술을 마셨다는 이유만으로 ‘도로에 뛰어들었다’며 책임비율 70%를 들이대고, 고인의 작업들이 ‘대단한 육체노동’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년은 60세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또, 구본주의 예술전문가로서의 경력을 인정할 수 없으니 무직자에 해당하는 도시일용노임에 한정해서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기껏해야 60세까지밖에 일할 수 없는 무직자 한 사람이 도로에 뛰어들어 자살했단 이야기다. 오호라! 삼성화재 직원 전체가 한꺼번에 말술을 마신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의, 실로 ‘대단한 두뇌노동’이 아닐 수 없다.(우리는 이 황망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기로 했다. “애니카에 치이면 당신도 자살한 무직자로 오인받을 수 있습니다”)

구본주를 잃은 것만도 억울한데 구본주라는 예술가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와 거대자본의 힘으로 사회적 약자를 깔아뭉개려는 기업논리는 유족은 물론 지인들의 공분을 샀다. 삼성화재의 항소소식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유족과 가까이 지내던 이들은 술렁였다. 그냥 두고만 볼 순 없었다. 결국 그들은 (가)조각가 故 구본주 소송(삼성화재)해결을 위한 예술인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활동에 들어갔다. 6월 말의 일이었다.

예술의 사회적 가치 제기

대책위는 7월 4일 성명발표와 동시에 을지로입구 삼성화재 본사 건물 앞에서 일인시위를 시작했다. 온라인 상의 커뮤니티(cafe.naver.com/gubonjuartright)도 개설해 회원을 모으고 서명작업을 병행했다.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언론에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신문, TV, 라디오, 인터넷 매체 등에서 30여차례에 걸쳐 대책위의 활동을 다루거나 내용을 준비중에 있다. 대책위의 활동을 밀착 취재하는 다큐멘터리 작가도 있다. 네이버와 다음, 싸이월드에 각각 마련된 온라인 대책위에는 600여명의 회원들이 함께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욱 더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3주째 진행되고 있는 일인시위에는 미술인들을 중심으로 사진가와 시인, 문화정책가를 비롯한 일반인들의 참가도 이어지고 있다. 시위자들은 때로는 발랄함으로, 때로는 열정적인 모습으로, 때로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발언과 함께 거대기업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횡포를 고발해 왔다.

대책위는 앞으로 일인시위를 지역으로 확대하고 참가자들도 더욱 다양한 멤버로 구성할 예정이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타 단체들과의 연계작업은 배가된 활동력을 대책위에 공급해 주는 큰 자산이 될 것이다. 또, 온라인 활동을 더욱 확장하는 것은 물론, 오프라인 서명작업을 병행해 참가자를 늘려나갈 계획이다. 이밖에도 각종 이벤트를 통한 여론화 작업으로 이슈를 확장해 나가 예술의 가치와 예술가의 사회적 위상을 확립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안태호, 조각가 故 구본주 소송(삼성화재)해결을 위한 예술인 대책위원회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안태호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