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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민심’을 위해 입 닥치시라

'독재시대의 정서'를 지닌 자는 과연 누구..

아무래도 현 대통령 노무현의 가장 큰 공은 대학교수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정상적으로 낮춰놓는 데 있나보다. 조기숙 이대 교수는 정치판에 들어서기까지는 선거이론과 지역주의 투표형태에 대한 ‘개량적’ 연구 방법을 행하는 괜찮은 정치학자 중 하나로 꼽혔다. 그런 그녀가 청와대에 들어가서 한 일이라고는 노무현이 던진 말에 살붙이고 뼈대 세우고 해서 ‘말을 말답게’ 만들어준 일밖에 없다. 그런 그녀의 능력은 지난 25일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에서 내뱉은 말을 완성시켜주는 데 여실히 드러났다. 그녀는 권력을 통째로 내놓겠다는 발언 등등을 언급하면서 ‘대통령은 21세기에 계시는데 국민들은 독재시대에 있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정치학자 조기숙이 바라보기에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구도의 타파를 위해 스스로의 권력을 연성화하면서까지 희생하고자 하는데, 국민들은 독재 시대의 강한 리더쉽에 물들어있어 ‘권력 분할’이라는 대통령의 고뇌에 찬 결단을 몰라주고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나로서, 25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노무현이 하고자 했던 말은 결국 ‘지지율 29% 가지고는 못해먹겠다’는 것이 전부였다고 기억한다. 자신은 스스로를 희생해서 갖가지 정치적 시도를 하고 있는데 국민들이 자신의 뜻을 몰라주니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없다는 푸념이랄까. 사실 그런 푸념이야 대통령의 직분으로 대놓고 하기보다는 이불속에서나 해야 될 말이지만, 누구나 다 아는 노출증 환자 노무현의 입장에서 보면 늘 그랬듯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입으로 나온다고 다 말은 아니다. 의미가 없는 말은 그저 짖는 것에 불과하며 오히려 소란스럽고 피해를 주며 짜증을 안긴다. 조기숙의 말대로 우리나라 국민이 독재 시대의 국민이라면 그 원인은 독재 시대와 다를 바 없는 참여정부에 있다. 독재 시대의 노동부 장관에나 어울리는 김대환 교수나 개도 웃을 프로젝트에 편법을 동원한 문정인 교수나, 다 우습고 같잖다. 어쩌면 전노 시대의 정부가 보여주었던 정부의 ‘이념형’이 참여정부가 보여주는 ‘현실태’와 그리도 닮았는가. 그러니 당연하게 국민들의 정서에서 독재 시대의 그것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노무현 본인이야 쌍꺼풀 수술을 하다 뇌신경을 잘못 건드렸을 수도 있고 등등 이런 저런 이유로 그냥 무시하면 되지만, 나름대로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 펜대를 굴려왔던 전직 교수들의 입에서 그렇게 막말을 쏟아내면 안 되는 것이다. ‘바보’ 노무현을 대통령의 후보자리에서 결국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것은 바로 ‘독재 시대의 정서를 지닌’ 국민들이었고, 그 ‘바보’가 모리배들에게 쫓겨날 뻔한 것을 촛불들어 지켜준 것도 ‘독재 시대의 정서를 지닌’ 국민들이었다. 그리고 현재 29%라는 예상 외의 지지를 보이면, 주위 친지나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자처하며 지지해주고 있는 이들도 ‘독재 시대의 정서를 지닌’ 국민들이다.

선거 정치의 전공자인 조기숙 교수야말로 국민들의 ‘합리적 선택’을 의심하면 결국 빠져나올 수 있는 구멍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겠는가. 아마 그래서 일까? 노무현은 ‘역사 속에서 구현되고 있는 민심을 위해 현재의 민심을 과감하게 거역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로써 노무현은 자신에게 붙어있던 ‘바보’라는 라벨의 수많은 레토릭을 뒤로 하고 사전적 의미 그 자체를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그 자신을 대통령을 뽑아준 국민은 역사 속에서 추상된 국민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가장 구체적인 개인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직의 대통령은 현재의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눈을 맞춰 정치를 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 권력의 원천을 까먹는 ‘바보’들은 엉뚱한데서 자신의 소명을 찾곤 했다.

박정희나 전두환, 노태우 등과 같은 군바리 바보들은 몹쓸 짓을 할 때마다 ‘역사’를 들먹였다. 당대를 살아가는 국민들의 고혈을 뽑아, 바로 그 국민들의 후손들이 만들어갈 미래를 설계한다는 것이 과연 타당한 발상인가. 다시 말해 현재의 국민은 미래의 국민들을 있게 하는 원인이다. 그것도 관념적으로 이어진 관계가 아니라, 구체적인 삶 속에서 진행되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과정을 겪는 물질적 관계인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조건보다 오지 않은 미래의 조건을 우선시하는 것은 관념적 정치의식의 극치이며, 동시에 정치의 영역 자체를 무시하는 오만하고 무지한 발언이다.

만약 조기숙 등 학자 출신 정치인들이 파리똥만큼의 직업적 양심이 존재한다면, 내뱉는 한마디 말이 국민들의 정치의식을 1년씩 후퇴시키는 대통령의 입을 막는데 진력해야 된다고 믿는다. 스스로가 영매가 아니라면 들릴 리 만무한 미래의 민심일랑 집어치우고 현재의 민심을 듣는데 주력해야 될 것이다. 그리고 29%라는 숫자는 ‘겨우’ 정도가 아니라 너무나 과분하다는 것도 깨달아야 한다. 대통령이 바보라서 쫓아오지 못할 때에는 억지로라도 가르쳐 깨닫게 해주는 것이 참모의 역할 아니겠는가. 그만한 일도 할 자신이 없다면, ‘현재의 민심’을 위해서라도 제발 입을 닥치시라. 현재를 읽지 못하는 자가 어찌 방정맞게 미래를 운운한단 말인가. 그러기엔 ‘미국산’ 학위가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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