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처음엔 소개 타임
ACT! : 이 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보자. 세 명의 감독은 어떻게 모이게 되었는가?
▲ <자, 이제 댄스타임> 포스터 |
손경화 감독 (이하 ‘깅’): 세영이 지민에게 먼저 프로듀서를 제안했고, 지민은 나에게도 이야기해서 대학로에서 함께 만났다. 나 역시 제작 방식에 대해 관심이 있었고, 비슷한 나이 또래의 여성 감독들이 함께 제작을 한다는 방식에 끌렸다. 지민의 경우 낙태라는 주제와 제작 방식에 끌렸던 것 같다. 만나보면서 같이 만들어보면 재미있겠다, 라는 느낌이 들었다.
가람: CJ아지트에서 기획개발비 지원을 받게 되면서 탄력을 받았다. 처음에는 세영의 아이디어로 다큐가 제작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판이 커지고 다른 여성제작자들을 알게 되어 더 좋았던 것 같다.
2. 진지한 이야기 타임 – 공동제작 방식이 무엇인가
ACT! : 공동제작 방식은 어떻게 고민하게 되었나.
깅: 지민과 나는 사실 여성영상집단 ‘반이다’ 할 때부터도 공동연출을 하면서 공동제작에 대한 생각이 있었다. 공동연출은 제작 후 성과가 공동으로 나눠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힘들고 비효율적인 점이 있었기 때문에 공동연출이 아닌 다른 제작 방식을 가져가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로 모임에서 공동제작 방식을 세영의 팀과 가람에게 제안했다. 세영과 가람도 그 제안에 흔쾌히 동의했다.
ACT! : 공동연출과 공동제작은 어떻게 다른 것인가.
깅: 공동연출은 창작물 하나를 만들어내는 데 서로 다른 세계관이 만나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그래서 선배들이 우리에게 그 동안 공동연출은 어렵다고 이야기했던 것 같다. ‘반이다’를 해보면서 서로 다른 세계관을 일치시키는 과정에 너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을 우리 역시 알게 되었다. 일반적인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 방식의 경우 연출자 중심으로 굴러가면서 서열이 정해지고, 많지 않은 돈을 받으면서 일을 배우는 도제 시스템이다. 다들 연출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일을 배우려는 목적만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고,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좋았다.
공동제작 방식은 각각의 참여자에게 동등한 결정권이 있다는 점에서 연출자 중심의 기존 제작방식과 다르다. 작품의 내용적인 부분은 연출자가 결정하지만 제작 기간이나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에는 참여자 모두가 의견을 낼 수 있는 것이다. 급여나 예산 배분 문제도 함께 논의해서 결정하기 때문에 기존의 공동연출이나 단독 연출방식과는 다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람: 대신에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 개인 제작자들의 경우, 혼자 너무 많은 짐을 지다가 나가떨어지기도 하는데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공동투자의 개념도 함께 있었다. 세 명이 동등하게 예산에 대한 책무를 같이 지는 형태였다. 그래서 알바를 셋이 같이 하고 빚을 갚는 과정도 함께 했던 거다.
ACT! : ‘반이다’에서 공동연출 할 때도 이 방식과 비슷하지 않았나.
깅: ‘반이다’는 평등하긴 했지만, 모든 것을 합의해야 했기 때문에 작품이 두루뭉술하게 나오기 쉬운 소통 구조였다. 영화를 위해서 연출은 한 명인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가람: 깅은 이런 역사가 있어서 제안을 했던 것이지만, 나는 처음에 공동제작의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했다. 나는 공동연출의 경험 없이 집단에서 활동한 경험만 있었기 때문에, 작업을 함께 하면서 비로소 공동제작의 상을 잡게 되었다. 지금 소속되어 있는 '영희야 놀자'에서는 각각의 역할이 분화되어 있었다. 연출자 한 명, 나는 조연출, 기획자 1인, 피디 1인이 있었고 주로 피디가 예산관리를 하고 스탭들은 활동비를 받는 식이었다. 그리고 '영희야 놀자'는 기존의 다큐멘터리 제작 집단과 큰 접점 없이 여성주의 네트워크 안에서 만들어진 모임이었기 때문에 외부 네트워킹과 접속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1년 안에 끝내는 단발성의 의미 있는 시도가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ACT! : 길어진 이유는 무엇인지.
가람: 이유가 너무 많아서.. (모두 웃음) 그 때는 정말 빨리 끝날 줄 알았다. 혼자 하면 제작비도 벌어야 하고 챙길 일도 많은데 팀으로 작업하면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고 적정한 인건비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예상했다.
깅: 늦어진 이유는 공동 제작과 스탭을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기존의 제작 방식에서는 연출이 많은 것을 다 결정하면서 스탭의 역할도 다 결정하게 되는데, 우리의 경우 연출은 세영으로 가되 스탭의 역할은 자율적으로 나누기로 했다. 나의 경우 내용에 대한 고민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아서 애초부터 촬영을 맡겠다고 했다. 지민이 피디 역할을, 가람이 구성 역할을 하고 조연출은 없애기로 했다. 구성과 촬영, 피디의 역할이 분명히 있는 상태에서 조연출의 역할이 불분명해서 소모적이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조연출이 해야 하는 일을 나눠가지는 방식으로 일을 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지민이 다른 작업 때문에 여름 정도에 빠지면서, 세 명이 남았다. 피디 역할을 할 사람이 없어지자, 내가 피디와 촬영을 맡기로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가람이 개인적인 일로 3개월 정도 빠지게 되었는데 스탭이 없어지면서 진행이 늦어졌다.
가람: 공동제작에 대한 상이 서로 달라서 그걸 맞춰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공동 제작이 무엇인지 서로 이야기하고 정리해가는 과정이 길었다. 작품이 연출 중심으로 남는 방식이 아니라 다 같이 한다는 느낌으로 시작했는데 모두 스탭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 작품 자체와 공동제작 방식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방식으로는 논의를 하지 못했던 거다. 노동을 나누는 정도로만 혹은 연출을 했던 사람이 다른 사람의 스탭으로 들어가서 품앗이 하는 정도로만 진행되다 보니 공동제작에 대해 정확하게 정리를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깅: 돈 문제 때문에도 제작이 늦어졌다. 세영과 구성 이야기를 계속하다가 12월쯤 극영화를 찍게 되었다. 가람이 그 즈음 복귀했고, 극영화가 삽입되는 기획이 시작된 것이다. 다큐가 낙태의 현장성을 포착하기 힘든 점을 보완하기 위해 기획한 것이었는데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3-4 개월 정도 소요되었다. 영화 제작비는 약 2,000만 원 정도의 규모였는데, 제작비가 없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극영화를 추진하는 바람에 빚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극영화를 마친 후에는 빚을 청산하기 위해 몇 개월 동안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제작이 늦춰질 수밖에 없었다. 제작지원을 적절한 시기에 받았다면 이렇게까지 늦춰지지 않았을 텐데 예상했던 것 보다 제작 지원을 계속 받지 못해서 어려움이 시작되었다.
이런 식으로 봄까지 제작비 난항을 겪었는데, 그에 더해서 스탭들의 난항도 쌓여가고 있었다. 역할이 서로 불분명한 상태에서 역할과 공동제작 방식에서의 정리되지 않은 불만들이 쌓이면서 갈등이 깊어지다 보니 그것을 해결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들었다. 제작은 제대로 되지 않고, 우리는 영화를 만들려고 모였는데, 왜 함께 빚을 갚기 위해서 알바를 하고 있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이런 저런 생각이 들면서 붕괴 직전으로 갔다가 어쨌든 마무리 해보자는 생각에 냈던 DMZ 지원이 마침 되면서, 탄력을 받게 되었다. 최근 역할이 다시 정리되었는데 가람이 구성에서 빠지고 피디로 역할을 굳히게 되었다. 구성과 내용을 같이 고민해 줄 사람이 필요해서 조연출을 구하기로 합의가 됐고 다큐멘터리 제작 경험이 풍부했던 소현(<우리 학교>, <바람이 불어오는 곳> 조연출)에게 제안하여 같이 일을 하게 되었다. (*주1)
가람: 공동제작 방식에 대한 구상이 이상적인 면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실제 작업을 하면서 부딪치는 문제는 결국 연출자가 연출권을 갖고 있는 형태에서 공동제작자로서 어떻게 서로 제작방향을 이끌어야 할지에 대한 것이었다. 연출권을 해치지 않으면서 제작 방식에 대한 제안을 할 수 있는 그 접점이 어디인지 감을 잡기가 힘들었다. 제작이 방대해지는데 제어를 할 수가 없어서 점점 덩어리가 커지는 것이 있었다.
▲ <자, 이제 댄스타임> 제작현장 |
깅: 역으로 모두 연출을 해봤기 때문에 제어할 수 없었던 점도 있었다. 작품을 잘 만들기 위한 연출자의 고민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공동제작자들에게 작품에 대한 연출자만큼의 고민이 없는 상태에서 연출자를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들이 잘 되지 않으면서 다시 갈등이 생기고 조절하는 과정을 겪게 되었다.
공동제작의 의미를 서로 알 거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애매한 지점에 대한 갈등을 계속 겪게 되면서 공동제작의 의미와 스탭의 역할을 문서로 정리하게 되었다. 각자 역할에 대한 고민을 글로 써오고 공유한 후에 그 결과를 블로그(*주2)에 올렸다.
ACT! : 영화가 만들어지고 나면 그 성과물은 어떻게 나눠질 것 같은가?
가람: 솔직히 연출자의 성과로 가장 많이 남을 거라고 생각한다. 공동제작을 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주변에서는 “세영이 작품 언제 끝나?”라고 묻는다. (웃음)
깅: 네 작품 언제 하냐는 질문을 듣기도 이제 지겹다. (웃음) “이건 내 거라고.” 라고 말한다. 나는 다른 작업에 스탭으로 참여하면서도 내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우리 작품이자 내 작업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번 작품 역시 모두 내가 세영의 작품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람: 그래서 공동제작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 완성 전에 사람들과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블로그를 만들어서 공동제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그 이후의 평가나 연출자의 성과로만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이런 의미를 가지고 시도했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ACT! : 완성 이후 누구의 영화로 불리면 좋겠는지에 대한 제시를 먼저 하면 좋을 것 같다.
깅: 이제 그 고민에 들어가고 있다. 외부에 이 영화가 어떻게 보여질 것인가, 에 있어서 이런 고민들을 외화시키는 작업을 해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ACT! : 손경화 감독의 경우 여성영상집단 “반이다”에서 이미 수평적 제작방식이나 공동연출과 공동제작에 대한 고민을 키워왔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고민의 연장선상에 이 프로젝트가 있는 것인지.
깅: 힘들다.(웃음) 다큐를 처음 만들 때로 돌아가는 건데, 지민과 내가 공동제작 방식을 제안했던 것은 우리가 ‘반이다’를 만들게 됐을 때의 고민과도 무관하지 않다. 당시 미디어 활동을 계속 하고 싶었지만 미디어 회사는 당연히 없었고, 막연히 생각했을 때 푸른 영상 같은 단체 혹은 개인 단위로 활동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혼자 할 역량은 되지 않았고, 단체에 얽매이고 싶지는 않아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하던 중에 <미디어로 여는 세상> 제작의 일환으로 여성영상집단 '움'을 찾아갔다. ‘움’은 공동연출 방식으로 작업하는 집단이었는데, 우리가 이후의 활동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니 공동연출을 시작해보라고 했다. ‘움’의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룰을 정하고 수정하는 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돈은 없지만 우리끼리의 복지는 좋다는 ‘움’ 언니들의 모습도 좋아보였다. 언니들의 이야기에 힘을 얻어서 우리끼리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때는 88 담론이 나오기 전이었지만 세대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 운동판 안에서의 다른 세대로서 동의하지 못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문화들이 분명히 있었다.
그래서 나비에게도 제안을 하고 셋이서 2007년 겨울에 ‘반이다’를 만들게 되었다. 세대에 대한 고민, 제작방식이나 제작 스탭들의 처우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움처럼 공동연출 방식으로 가기로 했다. 그 때는 처음부터 모든 걸 맞춰가야 했고 팀의 상까지 함께 그려야 했기 지금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다. 2009년도에 <개청춘>을 완성한 후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알게 되었다. 그 작품이 끝나면 바로 ‘반이다’를 정리할 계획이었는데, 각자 하고 싶었던 작품을 한 번 더 개별적으로 연출한 후 2011년 4월에 ‘반이다’가 완전히 정리되었다.
그 때도 공동제작 방식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있었고 스탭의 처우에 대한 문제의식도 쌓여있었다. 그 동안 미디액트 독립다큐멘터리제작과정 조교를 두 번 정도 했는데 다큐멘터리를 이제 막 시작하는 내 또래의 사람들이 계속 그만두는 것을 보았다. 스탭을 경험한 후 다큐 작업을 그만두는 사람들을 보면서 동료들이 없어진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들의 사례를 들으며 다큐멘터리 판이 연출자 중심 혹은 개인 중심으로 가면서 사람이 좀처럼 키워지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던 거다. 그러면서 ‘반이다’ 멤버들이 함께 고민했던 신진다큐멘터리 제작자 네트워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제작시스템에 대한 문제를 말로는 아무리 설명을 잘해도 변화를 가져오기는 어렵다면서, 성공하든 실패하든 다른 결을 가진 제작 사례가 있어야 한다고 지민이 이야기를 하였다.
이런 고민을 하던 중에 세영과 가람이 좋은 제안을 해주었다. 상황이 매우 좋았는데, 4명 모두 연출의 경험이 있었고 영화의 내용과 제작 방식이 모두 여성주의적으로 고민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동제작 방식을 함께 모색하게 되었다.
3. <자, 이제 댄스 타임> – 어떤 작품인가
ACT! : 이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겠다. 왜 제목이 <자, 이제 댄스타임>인가?
가람: 낙태라는 주제와 잘 안 어울리는 제목처럼 보일 테지만, 낙태를 통해 억압적인 상황에 놓였던 여성들이 이 영화 안에서나마 자유를 찾고 즐거움을 되찾길 바라는 마음에서 연출자가 정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모두 웃음) 춤을 직관적으로 영화와 연결시키기 위해 춤을 추는 신을 찍기도 했다. 낙태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이미지적으로 끌어온 것이다.
깅: 낙태는 몸의 억압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자유로워져서, 영화 안에서라기 보다는 영화가 끝나고 나면 “자, 이제 댄스타임”이라고 외치면서 춤을 출 수 있게 되는 몸이 되는 의미라고 생각했다. 영화가 만들어지고 춤출 수 있게 자유로워지는 여성의 몸이 된다고 생각했다.
ACT! : 낙태 문제를 어떻게 표현하려는 영화인가. 사람들이 어떤 인상을 받기를 원하는지
깅: 낙태에 대한 고정된 프레임, 다시 말해서 생명 논쟁과 종교 논쟁, 신의 유무로까지 이어지는 진부한 논쟁은 많이 이뤄져 왔지만 이 사회에서는 한 번도 낙태 경험이 있는 여성이 자기 이야기를 해 본 적은 없다. 그 프레임을 벗어나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 구체적인 현실, 낙태가 만연하고 있는데도 그것들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이유를 드러내고 싶었다. 제대로 세워지지 않는 정부의 정책이나 피임의 책임을 회피하는 남성들에게 익숙한 프레임을 버리고, 새로운 프레임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또한 여성이 주체가 되는 방식으로 짜는 데 도움이 되는 영화를 만들자는 게 우리의 목표이다.
ACT! : 참조하고 있는 영화는 있는가.
가람: 자료 조사를 하면서 외국의 영화들을 여러 편 보았는데, 현실이 우리와 많이 달랐다. 첨예한 의견 대립이 있는 미국 등에 비해 우리는 그 동안 너무 덮여 있는 주제였고, 의사와 약사에게는 유리하고 결과적으로 여성들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그 기제를 드러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ACT! : 제작이 길어지고 극영화 형식도 차용하면서 적지 않은 에피소드가 있었을 것 같다.
깅: 밥값 후원 받은 이야기를 해주겠다.(웃음) 제작비가 없는 상황에서 극영화를 빚내서 하고 있는데, 극영화 스탭들이 스무 명 정도 되었다. 배우들도 꽤 많았는데 제작비가 없어서 밥값이 너무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 때 어쩔 수 없이 밥 같지 않은 밥을 스탭들에게 줘야 하나 생각하다가, 우리가 다큐멘터리를 해오면서 고민했던 제작 방식이 극영화를 제작하는 동안에는 잘 되지 않고 있단 걸 알게 되었다. 그 동안 수평적인 구조를 만들어오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극영화에서는 기존의 수직적인 구조로 갑자기 변하게 되더라. 다큐멘터리에서는 인터뷰이의 눈치를 많이 보게 되는데 극영화를 하려고 오디션을 하면서부터 순식간에 관계가 역전되었다. 배우들이 제작진들에게 잘 보이려고 어필하는 것들이 너무 느껴졌다. 오디션 인터뷰를 최소 30분 정도 했는데 배우들이 이렇게까지 길게 이야기해본 적이 처음이라고, 나중에는 고마웠다는 답장 메일을 보내주기까지 했다.(웃음) 제작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짧은 시간 안에 장면을 찍어야 하는 극영화에서는 수평적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했다. 우리의 공동 제작 방식은 극영화 안에서 실현되기 힘든 것인가, 잠깐 고민하기도 했지만 정작 나 역시 일정을 따라가느라 힘들었기 때문에 불편해하면서도 극영화 제작 방식에 나를 맞춰야 했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현장의 스탭과 배우들의 밥을 제대로 못 챙겨주는 상황이 되니 너무 참담한 마음이 들었다. 공동제작을 고민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극영화 제작에서는 스탭들을 이렇게 착취하는 게 너무 슬퍼서 페이스북에 사정을 설명하고 밥값 후원을 받았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돈을 보내주기 시작했다. 원래 목표가 200만원이었는데 3일 만에 270만원이 모였다. 그 후에도 돈이 끊이지 않았지만, 보내주는 사람들이 다들 가난한 지인들이었던 데다가(웃음) 너무 부담스러워서 3일 정도만 받고 후원 요청을 접었다.
가람: 밥을 굶는다고 하는 것에 사람들이 더 많이 호응해주었던 것 같다. 제작비가 부족하다는 것도 아니고, 밥을 굶는다고 하니…(웃음) 25명 정도의 스탭들이 1주일 정도 함께 찍었으니, 현장 규모가 꽤 큰 편이었다. 밥은 잘 챙겨주는데 인건비를 많이 주지는 못하니까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거다.(웃음)
깅: 극영화를 하는 사람들의 경우 학교 선후배 관계도 있었고 함께 작업하면서 서로의 작업에 품앗이처럼 뛰어주는 방식으로 한다고 하더라. 극영화판의 사람들은 그런 방식에 이미 익숙해져 있는데 우리는 처음이라서 너무 미안해하니 그 쪽에서 부담스러워하기도 했다. 우리가 극영화 제작환경을 몰랐던 부분이 많아서 오버한 부분도 있고, 모른 척하며 거기에 묻어간 부분도 있다.
가람: 나중에 돈을 챙겨주려고 했더니 기분 나빠하는 경우도 있었다.
깅: ‘우리가 돈 보고 하는 것도 아닌데,’라는 반응이어서 나중에 그 돈을 회식비로 썼다 (웃음)
가람: 극영화를 찍을 때 수평적 의사구조가 불가능하고, 연출자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으니 현장에서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깅: 그 때 다큐멘터리 스탭들의 스트레스가 심했고 이후에도 한동안 멘붕이었다.
가람: 중간에 DMZ에서 돈을 받기 전에도, 이렇게까지 서로를 고갈시키면서까지 하는 게 맞는가, 이것이 우리가 생각한 공동제작 시스템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잠깐 쉴까, 하는 이야기도 진지하게 했다. 그런데 운 좋게 DMZ가 되어서 쉬지 못했다.
ACT! : 제작은 어느 정도 진행되었나.
깅: 후반 작업을 제외하고 50% 정도 진행되었다.
가람: 1차 촬영은 거의 마무리 되었고 편집에 들어가기 직전이다. 내년 8월 DMZ 제출을 마감 시점으로 보고 있다.
4. 여성주의로 말해요 타임 – 제작 방식이 작품에 주는 영향은 무엇인가
ACT!: 여성주의적 제작방식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수평적인 제작 방식에 대한 고민이 다큐멘터리 화면에서는 어떻게 다르게 보이는 것인가. 그 동안 화면에서 보이는 대상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과 비평들은 많았는데.
깅: 제작 방식이 화면에서 드러날 수는 없는 것 같다. 연출자가 드러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영향을 많이 주지 않을 것 같다. 여성주의적 제작 방식이 인터뷰이와의 관계에서 큰 차이를 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굉장히 폭력적인 다큐멘터리도 있지만, 대개 다큐멘터리의 방식이 여성주의적인 태도를 이미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뭐가 다르냐, 고 할 때 할 대답이 없다. 화면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우리 역시 대상과의 신뢰를 기본 전제로 하고 있다. 다만 세영이 기존에 성폭력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겪었던 경험들을 바탕으로 대상의 공개에 있어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대상이 공개 의사를 밝혀도 공개 여부를 재차 확인하고 여러 가지 상황과 대상의 캐릭터, 경험치를 고려해서 계속 고민하면서 제작한다는 점은 다를 수도 있겠다.
가람: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 편이긴 하다. 인터뷰를 할 때도 경우의 수를 많이 이야기 해준다. 지금 남자친구가 와서 영화를 보게 될 수도 있고, 예전 남자친구가 와서 보게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들을 해주거나 현재의 가족관계, 부모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 영화가 어떻게 읽힐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대부분 세영의 영화가 성폭력에 관련된 다큐이기도 하고 제작진이 모두 여자이다 보니 인터뷰가 원만하게 진행되는 것 같다. 아주 친밀한 관계가 아니더라도 인터뷰 할 때 신뢰 관계가 빨리 형성되는 것 같기도 하다.
깅: 인터뷰이들 대부분이 세영의 전작을 본 사람들이 많고 인터넷에서 세영의 작품을 검색해 본 후 어느 정도 신뢰 관계가 구축된 사람들이 이 인터뷰를 신청하는 것 같다.
ACT!: 신청을 받아서 하는 인터뷰였나.
가람: 처음에는 지인 위주로 하다가 한계에 부딪히면서 웹자보를 올리고 공개 모집을 했다.
깅: 신청을 하더라도 완전히 모르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우리가 알고 있었지만 접촉하지 않고 있던 사람들이 용기를 내서 신청한 경우가 많았다. 건너건너서 다 아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이런 이야기를 오픈 해서 할 수 있는 사람이 역시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성주의자들 중에서도 가족 관계를 비롯해 이미 많은 것들을 정리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었던 거다.
▲ <자, 이제 댄스타임> 인터뷰 공개모집 웹자보 [출처: 한국독립영화협회 페이스북] |
ACT!: 제작 방식의 차이가 영화 미학으로 어떻게 드러나는지, 이야기를 더 하고 싶다. ‘움’의 다큐가 그 예인데, 대상이 직접 자기 연출을 하도록 화면을 나누었던 표현 방식은 소수자를 어떻게 잘 드러내느냐의 문제의식에 따른 것이었다. 제작 방식에 대한 태도가 사실 영화의 화면에 드러나게 되는 것인데, 수평적 제작 방식에 대한 고민이 있는 사람들은 그런 고민이 없는 사람들에 비해 어떻게 다른 화면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대답을 해주면 좋겠다.
가람: 형식적으로 고민을 많이 한 케이스이긴 하다. 주제가 낙태인데, 여성주의적 관점이나 신뢰관계의 측면에서 목소리를 제공한 사람들의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계속 고민이 되기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 잘 표현할 것인지 고민한 시간이 사실 매우 길다. 그래서 극영화 방식도 차용해보았던 것이고, 지나치게 재연처럼 비춰지지 않기 위해 극영화 부분에 출연한 배우의 일상을 따라가기도 했다. 일반적인 이미지가 아닌 이 영화에서만 구현해낼 수 있는 인터뷰 이미지를 찾아내려고 애쓰기도 한다.
깅: 제작 방식을 고민하는 것과 내용을 어떻게 표현할 지 고민하는 것은 사실 결이 다른 것 같다. 이 영화를 잘 만들기 위해 화면을 고민하는 것이지 상대에 대한 고려가 우선되지는 않았다. ‘움’의 영화에서는 대상과의 관계가 그 영화의 주제였기 때문에 화면이 그렇게 표현되었지만, 우리는 주제가 다르다. 인터뷰이를 최대한 존중하지만 그 관계까지 영화에서 드러낼 필요는 없는 거다.
ACT!: 수평적 제작 방식에 대한 사례를 참조할 것들이 있는가.
깅: 사실 모든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민하고 있는 바라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는 스탭들과의 관계가 좋아야 잘 완성될 수 있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다만 전면적으로 내세우지 않을 뿐인 것이다. 다큐멘터리의 제작 방식에 대한 이야기는 그 동안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고 제대로 된 연구가 이루어진 적도 없다. 어떻게 보면 올드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 수평적 제작 방식을 그래서 우리가 전면적으로 내세우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이야기해보면 선배들도 이미 많은 고민을 해왔다. 경순 감독님의 경우에도 스탭들 간에 수익을 공동으로 나눈다고 하더라. 다만 이런 이야기들이 단편적으로 들려올 뿐이고, 단체의 사례들은 단체에 해당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참조할 사례들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런 것들을 고민해왔던 개인들과는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5. 이제는 마무리 타임 – 실험의 확장
ACT!: 마지막 질문이다. 공동제작에 대한 문제의식이 앞으로 어떻게 확장되었으면 좋겠는지.
깅: 제작하는 과정에서의 고민을 나누고, 제작 이후에 한 번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처음에 ‘움’의 제작 방식을 보고 지금까지 고민을 이어왔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우리의 사례를 보고 응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 우리가 꼭 성공한 사례인 것은 아닌 것 같다. 모두 너무 힘들었으니까.(웃음) 우리가 만약 실패한 거라면 실패한 이유가 뭐고, 이렇게 힘들어하면서도 그 고민을 계속했던 이유, 다큐멘터리의 제작 현실을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
*주
1. 인터뷰를 정리하던 중에, <자, 이제 댄스타임> 공동제작팀 내 지각변동에 대한 따끈따끈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조연출로 참여했던 소현님이 공동제작자로 합류하기로 해서 이제는 4명의 공동제작자가 함께 하는 묵직한 팀이 되었다고 한다.
2. <자, 이제 댄스타임> 블로그 http://letsdance2012.tistory.com/
공동제작에 대한 고민, 역할 분담에 얽힌 이야기, 제작 과정에서의 소회들이 담담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대안적인 제작 방식을 고민하는 혹은 처음 다큐멘터리를 함께 제작하면서 역할 분담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좋은 참고 자료가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