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미디어운동연구저널 Act!

땅에 발을 딛고 그 땅에서 소통하기 - 인천지역에서의 미디어교육

지경ㅣ퍼포먼스 반지하

삶과 미디어



퍼포먼스 반지하에서 영상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시작한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처음의 출발은 거리 퍼포먼스를 통해 사회적 고민을 담아내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 속 이야기를 소통하고자 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2001년 서울이 아닌 인천 지역에서 퍼포먼스 워크샵과 공교육 내 미술교육을 통해 아동과 청소년을 만나면서 단체의 성격이 자연스럽게 지역성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당시 진행했던 ‘디지털 인천하우스’ 프로젝트는 이 같은 지역에서의 삶의 기반인 난개발 지역에서의 ‘집’을 담아내는 작업이었다.

기자재는 가장 싸게 구입한 JVC 가정용 캠코더 1대와 코닥 디지털 카메라 1대였다. 두 대의 기자재를 들고 재개발이 임박한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을 만나게 되고, 아이들에게 디지털 카메라를 쥐어주고 촬영하게 되었다. 그렇게 촬영된 아이들의 사진이 집안에서의 생활을 담아내고 사진을 흑백으로 프린트하여 그 위에 원하는 색깔로 벽을 칠하고, 변화하였으면 하는 것을 그려 넣는 작업이 되었으며, 이를 통해 아이들과의 미디어 작업이 시작되었다.

강제로 파괴되고 생성된 지역의 아이들과는 달리, 오래된 빈민 지역 아이들의 사진은 역사성과 삶의 원형을 담고 있다. 그것이 마치 오래전 사라진 사진처럼 보인다 해도 인천에는 실재하는 삶이고 아이들은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꾸려가고 있기에 미주알고주알 할 이야기도 꿈꾸는 것도 많다. 그곳이 ‘가난’이라는 커다란 장벽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 그렇기에 사회체계와 동화되어 흘러갈 수 없다는 조건은 제도적 논리에 융합될 수 없는 자체적 삶의 질서를 생겨나게 하고 땅의 정체성을 확고히 만들어냈다. 컴퓨터와 비디오가 없기에, 그리고 어느 곳에서도 그 삶을 담아내지 않기에 미디어가 그 땅에 자신의 삶을 다루는 내용으로 들어오게 될 때 그것은 자연스럽게 그 땅과 어우러지고 질서를 만들어낸다.

자신이 살고 있는 땅, 그 안에서의 삶을 드러내고 소통하는 것. 그것은 누구나 인지하고 있어야 할 문화의 출발 지점이다. 그것은 살고 있는 하나의 존재로서의 개인에서부터, 그 개인이 속한 가족공동체, 그리고 더 크게는 또래집단, 동네공동체, 지역까지를 포괄한다. 서울의 풍경에는 익숙하지만 ‘인천’이라는 한 지역 안에서 다른 구가 존재하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단절된 도시계획과 교통체계를 가진 인천동구 오래된 작은 마을의 풍경은 같은 인천에 살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의아스러울 뿐이다. 지역방송이 구별로 존재하는 인천에서는 ‘지역’보다도 가까운 것이 서울이고 중앙의 문화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더욱더 배재되어 ‘살아가고 있는 존재’의 땅에 교육이 절실하였고, 당장에 가정에서, 공교육 체계 내에서 끊임없이 존재를 확인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삶을 미디어를 통해 드러내고 관찰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아이들이 찍은 디지털 사진들을 동네 현수막으로 걸고, 직접 작업한 사진이야기와 자가 출판한 책으로 동네 작은 공터에서 축제를 열었던 ‘송림동 그림수필’ 2년여의 과정을 지나는 동안 지역 공부방과의 연계가 생겨나 빈민대안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작은 강좌도 생겨나게 되었다. 또한 지역에서 우후죽순 일어나고 있는 아파트 재개발의 현실 속에서, 자본적 가치가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삶을 기반으로 나누며 공동으로 모색하는 형태의 주민강좌도 열었다. 그러나 개인의 역사성, 존재의 가치가 자본적 가치로 치환되어가는 시대적 상황을 문화나 교육만으로 대처할 수 없음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를 벗어나 내가 담은 세상이야기-약칭 ‘담세’ 1차 교육



7개월째 한 청소년시설에서 진행해오던 영상미디어교육이 신규담당자로부터 보이코트를 당한 이후 잠시 쉬고 있었을 때, 지역 문화예술 활동가들을 문화예술교사로 채용해 실업, 노동자, 공부방, 자활 등의 기관과 연결하여 진행하는 ‘신나는 문화학교’ 다큐멘터리 과정의 한 꼭지로 동구지역 4개 공부방 중등부 대상의 교육을 진행하게 되었다. 11월부터 3월까지의 5개월의 과정 동안 아이들과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면서 요일이 맞는 공부방들을 묶어 두 개반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초급교육 : 2004년 11월~2005년 1월, 총 13차~16차>

○ 자신이 경험한 일상적 공간을 되돌아보고,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형성하도록 한다.

○ 자신의 생각 말하기와 타인의 생각 듣기, 드러내기와 바라보기의 반복훈련을 통한 자존감 키우기 및 표현력 강화

○ 다매체를 활용하여 다각도의 표현을 하면서 개략적 영상제작의 과정에 접근하도록 한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끌어내고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자신의 감성과 생각을 표현하고 소통하도록 하는 것이 초급교육의 최대 목표였다. 아이들이 일단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생활의 범주가 비슷하다는 점에서 아이들의 일상공간을 세 가지 층위(학교, 동네, 집)의 꼭지점을 두고 구성하였고, 이 공간 속에서 많은 부분 배재되어왔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끌어내 소통할 때, 집단교육의 효과와 다큐멘터리 교육에 필요한 ‘현실의 지점’이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 영상교육을 시작하게 될 때에 나타나는 우려점(영상이라는 매체 안에 사고가 국한되게 되는 단점)이 있었기에, 초급교육은 영상 그 자체보다도 지역 안에서 아이들이 갖고 있는 현실의 층위를 드러내고 이것들을 아이들이 다시 사고하게 하는 과정에 중심을 두었다.

<중급교육 : 2005년 2월~3월, 총 11차>

○ 다큐멘터리 제작에 대한 접근 - 자신의 주제 설정과 이에 대한 현실의 부딪힘과 소통

○ 자치 활동 경험 - 자율과 책임, 소통과 협력체계, 부딪힘과 해결, 공동의 모색

충분한 사전작업(초급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자신의 화두를 정하고, 조를 구성하여 여기에 직접 부딪히고 소통하고 현실을 만나가는 과정으로 구성했던 중급교육은 사실상 현실적으로 조금 이른 감이 있었다. 초급교육과는 달리 많은 부분 자율성과 책임을 요구하였기 때문에 이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 상태에서는 중급교육에 적응해나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은 5개월의 과정을 종료 시점으로 보았기에, 그것이 어려울지라도 아이들이 자치활동을 경험해보는 것이 앞으로 활동에 어떤 식으로든 필요하다 여겨 초급교육에서의 수업방식을 줄이고 조별 활동을 중심으로 기획하였다.

초급교육이 영상제작보다는 관계성을 형성하는 동안 다양한 측면에서 사고하고 소통하는 과정에 중심에 두었다면, 중급교육은 조별 작업을 진행하면서 선택한 소재에 대해 자신의 사고력을 기르고 주류 가치관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자신의 현실을 통해 재구성하는 과정으로 설정하였다. 그러나 교육 이후 자체 평가를 통해 배운 점이 있다면, 하나하나 짜여진 교육 과정이 아이들에게는 다양한 사고와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던 점도 있지만, 이 같은 문제제기가 아이들과의 프로그램이기 이전에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적 소통으로 이루어지는 점이 더 중요하다는 것, 그 같은 소통과 함께 자신의 속도에 맞추어 스스로 미디어를 통해 바라보기를 시도하고 관찰하며 경험하는 성장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교육의 속도가 훨씬 느려지더라도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이야기하며 웃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다큐멘터리 미디어교육을 하기 위한 다양한 가치관과의 만남과 사회에 대한 기본적 신뢰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기본적으로 만나고 있는 타인과의 대화와 공동의 작업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지역대안교육과정 <언덕을 오르는 바닷길>



지난 5월부터 담세 2차 교육이 시작되었다. 반지하에서 2년간 진행하였던 ‘송림동 그림수필’과 ‘담세’가 합쳐 담세 교육 대상이었던 4개 공부방 중 3개 공부방이 대안교육과정 ‘언덕을 오르는 바닷길’을 공동 운영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이었던 영상교육만으로는 버거웠던 아이들의 교육을 마치면서 기본적 말하기, 글쓰기의 과정과 자신의 일상을 바라보고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기본 교과가 3과목, 지역사회에서의 자신의 삶과 시선을 드러내고 함께 이야기하는 문화예술교과가 시각, 음악, 영상, 연극의 형태로 11월까지 헌책방 골목에 있는 ‘아벨전시장’에서 진행되게 되었다. 영상교육은 담세 1차 교육을 마치면서 느꼈던 지점을 반영하여 지난 5월부터 7개월간의 2차 교육에서는 자신의 시선을 재구성하는 과정 속에 자신에 대한 영상을 제작하는 것을 시작으로 영상제작에 대한 자신의 동기부여와 최소한의 관객에 대한 경험이 될 ‘누군가에게 줄 영상선물’ 만들기, 매스미디어와 자신의 현실과의 차이에 대해 인지하고 이를 자신의 현실로 재구성하는 과정, 동네에 살고 있는 다양한 삶을 두고 기본적으로 ‘사건’을 다루는 데 있어 사회적 관계망과 일상성을 담아내는 동네뉴스 제작 과정까지를 계획 중에 있다.
태그

미디어교육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액트 22호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