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바람은 반기지 싸움이 한창인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로 근거지를 바꾸며 우선 이곳의 상황을 빠짐없이 기록하는 일을 시작했다. 이곳 팽성에는 영상을 기록하고 편집할 수 있는 인력이 없다. 팽성 주민대책위의 송태경홍보부장이 촬영과 편집을 할 수 있는 기술은 있지만 지역상황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고 또 그분 역시 땅을 가꾸는 농부이기에 시간여유가 너무 부족하다. 현재 평화바람에는 상시 촬영을 하는 인원이 2명이 있고 그 촬영본을 문정현 신부님이 간단한 편집을 해서 평화바람/대책위 홈페이지에 올려두는 정도이다. 팽성이 아닌 타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행사나 집회들을 기록하고 간단한 가공 후 촛불행사장에서 그 행사에 참여 하지 못한 주민들을 위해 틀어주는 일도 종종 하고 있다.
그 외 여러 인터넷 방송국들과 공중파 방송국들, 그리고 독립다큐멘터리 작업을 위해 개인적으로 이곳을 찾는 작가들 등등 이곳이 담긴 영상 자료들은 사실 넘치고 넘쳐 난다. 하지만 주민 스스로 자신의 입으로 자신이 주체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한 경우는 슬프게도. 없. 다. 평화바람은 이 마을에서 반년을 살았으니 면죄부를 준다하면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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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수원의 인권단체에서 전화가 왔다. 그것은 미디어교육에 관한 것이었고 그 얼마 후 나와 여름은 남양주의 지역 미디어교육 교사 워크숍에 자그마치 2박 3일간 참여하였다. ‘미디어 교육? 뭐 간단히 기술정도면 되겠지’ 하였지만 기술습득이 아닌 미디어 교육에 관한 것이었다. 교육 말이다 교육. 그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고 게다가 시골마을+50~60대 어르신들+바쁜 농사일+치열한 투쟁의 현장=그것은 최악의 조건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을 말하게 하는 것, 그 말들을 알리는 작업은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팽성의 반기지 싸움에 미디어운동과 관련하여 관심을 두고 있다던 2인을 만났으니 한독협의 김화범과 미디애트의 조동원이었다. 그 일주일 후 미디액트에서, 이미 팽성 문제에 관하여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던 푸른영상의 정일건, 평화바람의 나와 여름, 팽성주민대책위의 송태경, 한독협의 김화범, 그리고 조동원이 만나 (가칭)평택미디어행동연대 회의를 시작하였다.
우선 나온 의견은 주민/활동가 미디어교육, 독립/고전영화 상영회, 공동영상제작프로젝트, 촛불집회1주년 영상제작, 마을스피커를 이용한 라디오방송 이었다. 그중 시간과 활용 문제등을 고려해 촛불집회1주년 영상제작과 마을스피커를 이용한 라디오방송을 첫 번째 사업으로 삼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주년 영상제작은 좀 더 안정적이고 깊이 있는 작업을 위해 나중으로 미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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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스피커를 통한 라디오방송’은 남양주의 미디어교사 워크샵에서 내가 속했던 조에서 기획한 것을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당시 작성한 기획서는 교육에 촛점을 맞춘 것이었다. 그러나 첫 시범방송을 위해 기획과 내용구성, 편집 등은 나와 여름이 담당을 하고 DJ는 마을의 부녀분인 기옥언니가 담당하였다. 처음부터 당신들 이런 교육을 받고 이러이러한 것을 진행합시다 하는 것은 농촌마을의 부녀분들께는 당황스럽고 외려 벽을 만드는 일이다. 부녀분들이 할 수 있는 부분부터 차근히 접근 할 수 있도록 우선 만들어진 라디오 대본을 드리고 몇 번의 읽기 연습을 한 후 녹음을 진행하였다. 처음엔 쑥스러워만 하시던 기옥언니는 몇 번 읽는 연습을 거치는 동안 이건 이렇게 하는 것이 낫겠다, 여기엔 이런 음악을 넣자, 이 부분은 이렇게 바꾸자 등등의 의견을 내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처음 나와 여름이 작성한 대본 초안과 나중 녹음본의 내용은 이런 과정속에서 많은 부분 바뀌어 졌다. 방송 이름도 같이 정했는데 대추리에 서식하고 있는 부엉이의 이름을 따 ‘솔부엉이라디오’라 정했다. 딱히 다른 장소가 있는 것이 아니라서 녹음은 기옥언니의 집에서 이루어졌다. 옆방에서는 언니네 시어머니가 주무시고 계셨고 지붕 위로는 아파치 헬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30도가 훌쩍 넘는 날씨에 창문과 방문을 꼭 닫고 선풍기도 켜지 못한 채 녹음을 진행했다.
이 녹음본에 촛불행사장에서 녹음한 마을할아버지의 노래, 미군기지에 반대하는 내용으로 가사를 바꾼 트롯트 한곡을 넣어 편집을 한 11분짜리 시범방송이 만들어졌다. 시범방송은 대추분교에 ‘솔부엉이 마을도서관’이 문을 열고, 촛불행사장이 이사를 오는 8월 17일 오후 6시에 마을스피커를 탔다. (오전 7시와 오후 2시에도 내보낼 예정이었지만 7시에는 주민분들이 이미 들에 일하러 나간 후였고, 2시경은 낮잠을 주무시는 시간이었다.)
시범방송은 마을 스피커의 권역과 주민분들의 반응 등을 살피기 위한 것이었다. 마을 스피커는 우리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기계였다. 쉽게 그리고 함부로 위치를 빠꾸거나 조정할 수도 없고 동네 여기저기마다 사람을 심어서 음질을 체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처음으로 시도하는 기계였다. 시범방송을 내보냈지만 잡음과 울림이 너무 심해 DJ가 무슨 말을 하는지 조차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음악과 멘트가 같이 나가는 부분은 멘트 소리가 뭉개지는 현상이 심했고 배경음악은 헤드폰으로 들을 때 보다 훨씬 크게 들렸다. 대추리에서는 이장님이 방송을 하기 전 라디오를 잠깐 틀고서 말을 하시는데 이장님의 말소리와 라디오 모두 깔끔하게 들린다. 그러나 ‘솔부엉이 라디오’ 시범방송은 아니었다.
몇몇 동네분들께 모니터를 부탁했었는데 역시 제일 마지막 노래 외에는 방송을 제대로 듣지 못하셨다. 다행히 (가칭)평택미디어행동연대에서 기술자문이 가능한 분을 수소문해 주기로 했지만 안일하게 생각하던 우리에겐 난감한 일이었고 어떻게 해결이 가능한지 아직 잘 모르겠다.
스피커라는 매체의 기술적인 문제 외에도 50대 이상의 주민분들의 취향에 맞으면서도 미군기지 확장반대 싸움을 하고 있는 이곳의 상황을 적절히 담아내는 내용 구성의 문제가 남아 있다. 주민들과 지속적인 의견교환과 리서치를 하면서 보충해 나가야 하며 동시에 이런 의견교환의 과정에서 주민들의 능동적 참여를 유발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범방송은 대추리에서만 진행하였지만 9월 1일 본방송은 대추리 뿐 아니라 옆마을 도두리에서도 같이 내보낼 예정이다. 이 두 곳은 마을과 농사짓는 땅 모두가 미군기지로 수용될 위기에 처해있는 곳으로 팽성 반기지 싸움의 중심동네이다. 도두리의 경우는 DJ섭외는 완료하였지만 마을 스피커를 이용하는 문제를 아직 허락받지 못했다. 그러나 부녀회장님과 마을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셨고 어느 부녀분은 시 한편을 작성해서 보내주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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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스피커는 우리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훌륭한(!!) 매체이다. 시골동네마다 설치되어 있는 스피커는 마을의 중요 대소사를 알리는 매체로 지금껏 이용되어 왔다. 그만큼 주민들에게 직접적이며 친근한 매체이다. 영상에 비해 다루기 편해서 마을분들이 쉽게 방송제작에 참여할 수도 있다. 상시 변하는 이곳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시의성 있는 편성도 가능하다. 인터넷이나 신문에 대한 접근이 낮은 노인분들, 그리고 시골마을, 이보다 효과적인 매체가 또 있을까?
더해서 방송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주체로 마을의 여성분들이 적극 참여한다면 현재 팽성의 기지 싸움, 농촌의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소외되고(무시되고) 있는 여성분들의 힘을 모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방송을 준비하면서 여성분들 스스로 더 적극적으로 이 싸움에 임하게 되고 남성 중심의 대책위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정책과 대안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방송자체는 물론이며 방송을 준비하는 과정만으로도 팽성의 반기지 싸움과 마을공동체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이제는 9월1일에 있을 첫 방송을 준비해야 한다. 시범방송만 내보냈지 ‘솔부엉이 라디오’는 아직 시작에도 미치지 않았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고 생각할 문제도 많다. 아직은 나와 여름이 기획과 기술을 거의 다 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마을분들이 기획뿐 아니라 기술적인 부분까지도 참여할 수 있도록, 애정을 가지고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1년 2년 길게 이어지는 마을소통의 장으로 만들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