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0일부터 22일까지 2박3일간 남양주 종합촬영소에서는 1차 지역 미디어교육 교사워크숍이 열렸다. 특히 이번 워크숍은 첫 번째 자리인 만큼 지역 상황을 공유하고, 지역의 특성과 교육 참여자에 맞는 교육 내용과 방법을 고민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이를 통해 몇몇 자생적인 교사모임에 그치고 있는 다양한 시민사회영역 교사들 간의 연계와 네트워크를 공고히 하고 지역 미디어교육 실천 및 정책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교사 인력을 형성하자는 것이다. 워크숍에는 부산, 대구, 광주, 원주, 진주, 평택, 시흥 등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미디어교육 교사, 그리고 장애운동, 환경, 노동운동 등 다양한 부문운동 영역의 활동가들 40여명이 참여하였다.
2005년 들어 미디액트 미디어교육에서 중점을 두고 있는 영역의 하나가 바로 교사 양성과 전국미디어교육네트워크의 구축이다. 이미 지난 5월 전주에서 전국미디어교육 네트워크 구성을 위한 1차 회의가 있었고, 6월 광주에서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의 주제영역별 네트워크 하나로 미디어교육네트워크 분임토론이 이루어진 바 있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이런 자리들은 시간의 제약과 지역 간 물리적 거리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다. 지역의 상황을 공유하고 각자의 활동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시간이 흘러가고 그래서 정작 서먹함을 떨치고 논의의 분위기가 조성될 즈음, 혹은 논쟁이 촉발될 즈음 서둘러 자리를 접어야 하는 아쉬움 말이다. 물론 미디어교육 교사나 활동가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더 긴 시간이 주어진다고 한들 미디어교육을 하면서 느끼는 고민과 딜레마에 대한 갈증이 깨끗이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간과 공간을 갖는 기회와 계기가 부족했던 탓도 있을 것이다.
다양한 공간과 지역에서 또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미디어교육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교사와 활동가들이 2박 3일간 한 자리에 모여 찐(!)하게 고민을 나누고 소통하고자 했던 이번 자리 역시 그런 아쉬움에서 예외는 아니었던 듯 하다. 다양한 미디어교육 사례들을 접하고 오랜만에 공부를 열심히 하고 돌아간다는 참여자들의 평가만큼이나 여유 없이 비인간적으로 벅차게 진행된 프로그램이었다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참여자들이 충분히 친해지고 여유롭게 미디어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과 프로그램의 배치가 부족했던 탓이다.
이번 워크숍은 미디어환경 변화와 미디어교육운동, 미디어교육 기획을 위한 가이드 등 간략한 개론식 강의와 함께 중점적으로는 두 가지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하나는 각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미디어교육의 경험, 즉 참여자와 매체에 따른 교육 내용 및 방법론, 쟁점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모둠별로 커리큘럼을 기획, 발표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사례를 통한 주제토론 영역에서는 퍼블릭 액세스 미디어교육(대구), 라디오미디어교육(관악), 노인을 위한 핸드폰교육(전주), 청소년 미디어교육(인천), 장애인 미디어교육(서울)이 논의되었는데 이 시간을 통해 미디어교육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면서 또 여러 가지 쟁점들이 도출되기도 하였다. 교사워크숍의 사례 발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지역간, 영역 간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교육 사례들이 아직은 시작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경험은 소중한 것이며, 이것들이 뒷받침될 때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미디어교육이 가능함은 분명하다. 따라서 이러한 지역의 소중한 경험들을 정리하고 공유하려는 노력이 중요할 것이다.
미디어교육 기획 실습 및 평가에서는 4-5명이 한 모둠이 되어 교육 참여자, 주제, 매체 등을 상정해 교육목표에서부터 커리큘럼, 교육 이후 계획까지를 기획해보았다. 평택에 살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 디지털 카메라로 나와 가족, 지역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네모 속에 그린 나, 가족 그리고 우리 동네”, 미디어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지체장애인들에게 취업의 기회를 제공하는 “달팽이(아장아장 걸어가는), 취업전선 이상무!”, 시민단체 상근자들을 위한 디지털카메라 교육 “디카 날개를 달다”, 시흥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이 부안영화제에 참여해 환경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샘물! 부안에 흐르다”, 응암동 공부방 아이들과 사진이라는 매체를 이용해 동네를 돌아보는 “응암아, 디카로 놀자”, 미군기지 문제로 주민간의 소통이 더욱 절실한 평택지역에서 스피커 방송을 통해 마음을 터놓을 수 있도록 한 “이장님댁 스피커 활용한 방송교육”의 커리큘럼이 발표되고 이에 대한 평가와 토론이 이루어졌다.
2박3일간의 워크숍 일정은 마지막 날의 종합평가와 토론으로 마무리되었다. 2박3일간의 일정이 너무 벅찼다는 평가나 뒷풀이 시간이 배치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 등 워크숍 자체에 대한 평가도 있었지만, 이후 미디어교육 교사들의 지속적인 네트워크나 미디어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교육적 실천을 넘어서는 이론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후에 지속될 교사워크숍을 포함해 미디어교육이 지속적으로 끌어안고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어지는 논의들은 후속 교사워크숍에서 극복해야 할 문제들인 동시에 미디어교육네트워크나 정책, 연구, 교사 양성 등 미디어교육 전반에서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기도 하다.
“비포장도로를 전부 다 각자 가고 있는 것 같다. 포장되지 않은 길을 가는데, 생각은 다 있는데 행동하는 것이 다른 것 같다. 여러 가지 사례들을 들었는데 실천가라도 이론에 부족하고,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실천과 이론에 대한 가이드가 있었으면 한다.”
어떻게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미디어와 인간, 미디어와 사회의 관계를 재편성해갈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갖출 것인가의 문제에서 미디어교육은 그 근본 철학과 개념의 문제로 돌아온다. 위의 참여자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워크숍을 마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쉬워했던 부분 중의 하나가 미디어교육의 개념과 철학, 이론적 측면이었다. 이는 구체적 교육 실천과 사례를 접하면서 계속 부딪치게 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노인에게 핸드폰 문자 메시지가 적합한 매체인가, 일상화된 미디어라고 해서 꼭 노인들이 그 기술을 배워야만 하는가의 문제가 결국 뉴미디어 기술을 미디어교육에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로 모아지고, 단순히 라디오 프로그램 제작기술을 가르치는 것에 국한되지 않으려면 소리라는 매체를 미디어교육에서 어떻게 위치짓고 소리를 통해 상상력을 키우고 소리를 이해하는 체험의 과정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워크숍에서 이러한 물음이 명쾌하게 해소되지는 않았다. 각각의 교육적 실천이 개별적인 사례에 그치지 않고, 이 실천을 이론화하고 정리하는 작업이 아직까지 본격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육적 실천에 대한 이론화는 이러한 실천을 좀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미디어교육의 철학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비포장도로’를 각자 가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경험이 모아지고 정리되는 이론적 실천 또한 필요한 시점이다.
“미디어운동도 중요하지만 자라는 아이들도 중요하다. 지역 현안 안에서 미디어운동의 색깔이 너무 진하다. 소수자 미디어교육도 중요하지만, 미디어운동의 색깔이 너무 짙은 것 아닌가 생각한다. 나의 경우 대안학교에 있으면서 미디어운동을 한다는 생각보다는 아이들과 같이 논다고 생각한다. 활동영역의 다양성을 공유하고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미디어교육이 운동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사회참여운동, 적극적 변화를 위해 미디어를 차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시각이 조금 치우친 것 아닌가. 다양한 계층의 커리큘럼이 나올 수 있지만 한 계층의 다양한 커리큘럼도 나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미디어교육에 대한 구심점을 가질 수 있는 관점 정립이 필요할 것 같다.”
워크숍을 마치면서 제기되었던 위와 같은 일부 참여자들의 평가는 이번 워크숍에서 다루어진 주제들이 학교를 포함해 좀더 다양한 영역이나 공간에서의 미디어교육을 포괄하지 못하고, 장애인 미디어교육이나 노인 미디어교육 등 논의의 주제가 소수자 미디어교육에 치우쳐 있었던 한계를 드러내준다. 이는 공동체라디오운동이나 퍼블릭액세스 등 미디어운동과 직접적으로 관계 맺고 있는 교육을 논의하면서 그 출발점이나 일상적인 문제의식을 토론하고 공유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와 동시에 여기에는 공공적인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는 운동의 영역, 다시 말해 개인의 자유로운 표현을 보장하는 제도적 공간인 공공권을 확장하고자 하는 노력이 일상화, 대중화되지 못하고 운동 주체가 전문적인 소수에 머물러 있다는 한계도 존재한다.
미디어교육이 ‘놀이 도구로서의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미디어와 인간, 미디어와 사회의 관계를 즐겁게 재편성해갈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갖춘 존재’를 키우는 것이라면 미디어교육은 놀이이다. 또 미디어환경과 뉴미디어 기술 발전의 속도가 이미 거대 미디어 자본의 사정에 따라 크게 규정받고 있고, 그에 의해 변화될 수밖에 없는 국면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그에 대한 자각과 능동적 표현이 필요함을 인정한다면 미디어 리터러시는 이미 정치성을 띠는 것이며, 이런 차원에서 미디어교육은 운동이기도 하다. 개인권적 자유가 보장되는 커뮤니케이션 공간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단지 개인의 욕망이나 시장의 원리에 맡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사회권적 자유 역시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디어교육은 놀이이자 운동이고, 이론이자 실천이며, 교육적 실천과 제도, 정책적 실천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작용할 때 균형을 이룰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퍼블릭액세스나 공동체라디오는 ‘운동’의 영역이지, ‘교육’의 영역으로 느껴지기 어렵고, 또 막연히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나의 일상과는 다소 거리가 먼 어떤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 현실이다. 미디어교육을 운동이라고 생각하든 놀이라고 생각하든 이 두 가지 접근은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닐 것이다. 다만 이러한 막연한 거리감을 없애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 섬세한 접근이 필요할 것 같다. 마치 미디어교육을 하면서 비판적 읽기와 자유로운 표현을 통합하는 커리큘럼의 개발이 필요하듯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각 지역의 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미디어교육 실천은 중요하며, 다양한 관점과 생각의 차이를 드러내고 토론할 수 있는 자리는 더욱 중요하다. 이런 정기적인 교사워크숍을 계기로 커리큘럼 및 교재를 개발, 공유하며, 미디어교육의 공적 지원 구조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교사와 활동가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물론 보다 적극적인 미디어교육 교사양성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 학교 교사와 시민사회영역의 교사들이 만나는 일도 필요하다. 이번 워크숍에는 미디어교육을 하고 있는 교사와 활동가 뿐 아니라 기존의 부문운동에 결합하고 있는 단체 활동가들도 참여하였는데, 미디어교육 경험이 없고 생소했던 이 참여자들에게 이러한 자리는 기존 운동과 활동 속에서 미디어의 역할을 재검토해보고 미디어교육을 통해 기존의 활동을 확장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번 교사워크숍은 미디어교육 교사들을 교육하고 양성하는 측면보다는, 각자의 활동과 고민을 공유하는 측면이 더 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각 지역과 영역에서의 구체적인 미디어교육 실천은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었지만, 공교육에서의 미디어교육 현황이나 미디어교육의 공적 지원 및 정책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오는 10월에 열릴 2차 지역 미디어교육 교사워크숍은 이런 고민에 한 발 더 다가서는 자리, 풍부한 논의와 토론을 통해 미디어교육에 대한 관점이 명쾌하게 정립되는 자리, 그리고 무엇보다 여유롭게 수다도 떨고 몸도 풀 수 있는 유쾌한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참조
- 미즈코시 신, 디지털 미디어 100년 후를 상상한다, 한국학술정보 2000
- 조동원,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 저널 offACT」 서문,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