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단일 사안으로 가장 많은 성명서가 나갔던 사건은 무엇일까? 바로 KBS <열린채널>의 방송보류 사태였다. 무려 5개월 사이에 8번의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이 정도면 미디어운동 5대뉴스 선정 사유도 충분하지 않을까. 열린채널이 생긴 지 5년이나 되었으니 이제 제자리를 찾을 만도 한데 열린채널의 ‘독립성' 아직 멀었다.
자, 그럼 치열했던 2005년 열린채널 논쟁의 한복판으로 다시 가보자! 첫 번째 라운드는 청주 하이닉스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제작한 <우리는 일하고 싶습니다>가 KBS 심의팀에 의해 방송보류 판정을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방송보류의 근거로 “재판에 계류 중이어서 방송할 수 없다!“는 논리가 등장한다. 이게 방송심의규정이라고 한다. 재판이 계속되고 있는 사안은 보도, 취재도 할 수 없단 말인가. 이런 논란 사이에 하이닉스 사측은 ”이 프로그램이 방송되면 법적대응을 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KBS로 보냈다. 청주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전국 미디어운동단체들은 KBS의 결정에 항의하며 성명서를 발표한다. 결국 열린채널 운영을 최종 책임지고 있는 KBS 시청자위원회는 청주 하이닉스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프로그램은 방송보류 20여일 만에 방송되었다.(2005. 8. 6)
끝난 줄 알았던 싸움은 한 달 만에 되풀이 되었다. 이번에는 교통사고로 숨을 거둔 구본주 조각가의 유족과 삼성화재의 소송과정을 카메라에 담은 <우리 모두가 구본주다>라는 작품이었다. 이 역시 9월 10일 경에 방송 예정이었으나, 방송을 이틀 앞둔 시점에서 KBS는 또다시 ‘방송보류' 판정을 내린다. 방송보류의 이유는 역시 ‘재판에 계류 중인 사건'이라는 것. 그러나 지난 10월 재판 종결 이후에는 KBS는 “재판이 끝났으니 이제 방송을 할 이유가 없어졌다”며 방송불가 결정까지 내리고 만다. KBS 방영을 두 달이 넘게 미루는 사이, 삼성화재는 사내 법무팀과 외부 법률 자문을 총동원해 이 프로그램 방영을 막기 위해 나섰다. 제작자를 회유하기도 하고, 명예훼손, 수십억대의 손해배상 협박을 통해 KBS와 KBS 시청자위원들을 압박했다. 4개월 동안 KBS는 재벌 눈치 살피고, 시청자들에게는 고압적 태도를 유지하는 이중적 태도로 일관해 왔다.
성명서, 항의방문, 1인시위, 기자회견... 시민제작자들은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해 재벌의 부당한 개입과 KBS의 눈치보기로 점점 닫혀가는 ‘열린채널'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빼앗고, 기본적 인권인 표현의 자유를 박탈하는 상황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싸움을 조직했다.
4개월 여 간의 투쟁 끝에 결국 <우리 모두가 구본주다>는 방송되었다. 제작자는 열린채널이 심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작품을 과하게(?) 수정했다. 무음처리, 모자이크 처리... 작품 곳곳에 보이는 상처들은 아직 열린채널이 넘어야 할 벽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아직 열린채널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참고>
노동자가 공중파에 액세스 한다는 것 : 하이닉스 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영상팀 구성에서 KBS 열린채널 방송보류판정까지 (ACT! 제24호)
<열린채널>을 위협하는 요소들 - <우리 모두가 구본주다> 검열 사태에 대하여 - (ACT! 제2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