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운동을 여성의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움직임은 적어도 수십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낯설게 느껴지는 듯 하다. 이것은 그동안 미디어와 여성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주로 학문적 담론에서 일어났고, 본격적으로 정책적 조명을 받게 된 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성차별 개선을 위한 텔레비전 모니터 결과 보고서』(여성부, 윤석민, 이철주, 2003)에 따르면 이 의제가 정책적으로 본격적인 조명을 받게 된 것은 국제적으로는 1995년 베이징 유엔여성회의에서 미디어가 공식 안건으로 채택되면서부터이고, 국내에서도 실질적으로는 1995년 세계화추진위원회(1995)의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를 위한 10대 과제’와 ‘여성발전기본법’ 등에 대중매체를 통한 성차별 개선 조항이 포함되면서부터라고 한다. 특히 주류 미디어의 여성 재현에 대한 모니터링이나 비판적 분석이 아니라 직접 미디어를 들어 제작하고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만들어내는 실천적인 활동들은 국내에서는 1989년에 세워진 여성주의 영화제작단체 바리터를 비롯하여 몇몇 간헐적으로 이루어진 역사적 사례를 제외하고는 1990년대 말 2000년도에 들어서야 비로소 그 본격적인 싹을 틔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비판적 문제의식은 충천하되 직접적인 실천은 아직까지 걸음마 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세계공동체라디오연합(AMARC)의 여성국제네트워크 WIN (Women's International Network)을 소개하는 것은 여성과 미디어운동의 결합에 새로운 영역을 제공하는 일이 될 것이다. 사실 이번 호에 WIN을 소개하게 된 데에는 좀더 직접적인 이유가 있다. 올해 3.8 세계 여성의 날에 맞추어 WIN에서 진행하는 세계 공동체라디오 프로젝트에 국내에서도 함께 참여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작년부터 공식적으로 방송을 시작한 공동체라디오 방송을 통해 전 세계 각 지역 여성들의 커뮤니케이션 할 권리를 실현하고 그들의 사회적 권익을 신장시키기 위해 국제적 연대를 모색한다는 WIN이 어떤 곳인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일단 WIN이 소속되어 있는 세계공동체라디오연합 AMARC에 대해 살펴보자. AMARC은 공동체라디오운동을 위한 국제 네트워크로서 약 110여개의 국가에 3000명 정도의 회원들을 두고 있다. 국제적인 연대와 협력 속에서 공동체 및 참여적 라디오의 발전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AMARC이 1983년부터 처음 가닥을 잡아가기 시작한 점을 고려해볼 때 이미 1990년 더블린에서 열린 제4차 아막 세계회의에서 여성참가자들이 공동체라디오 영역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의 국제 네트워크를 창설하자고 제안하였고 1992년 멕시코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WIN이 출범하게 되었다는 점은 여성주의에 대한 AMARC 내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실제로 작년 11월 제1회 아시아태평양 아막 지역총회에 다녀온 한국 참가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WIN은 AMARC 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젠더에 관한 의제를 아막의 주요의제로 채택하도록 하는데 있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 WIN의 주요 원칙
WIN의 주요 원칙은 다음과 같다.
- WIN은 공동체 라디오를 통해 인간의 기본권인 여성들의 커뮤니케이션 할 권리가 표현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 WIN은 여성들의 임파워먼트(empowerment)와 성 평등, 그리고 전 세계 여성들의 일반적인 생활조건 및 사회적 위치의 향상을 지원한다.
- WIN은 의사 결정 과정을 포함하여 공동체 라디오 구조의 모든 차원에서의 여성들의 접근권을 높인다.
- WIN은 국제 및 국내에서의 제작교환과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여성들이 그들의 공동체 내부와 외부에서 자신을 표현하려는 노력을 지원한다.
- WIN은 전 세계 미디어에서의 여성과 남성 모두의 부정적 이미지를 변화시키고 스테레오타입이 미디어에 의해 재생산에 되는 것에 도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WIN은 베이징 행동 강령의 기본 원칙들에 동의한다.
WIN은 AMARC의 국제운영위원회에 참여할 여성위원회 부의장을 선출하고 WIN의 멤버들은 아막의 다양한 결정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WIN의 주요 활동
WIN에서 진행하는 활동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여성들의 임파워먼트와 능력 배양: 공동체라디오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을 위한 능력배양 프로그램을 조직하여 라디오가 여성들의 임파워먼트를 위한 미디어가 되도록 한다.
- 여성 공동체방송자들을 위한 트레이닝 및 능력 배양 프로그램을 개발 및 실시한다.
- 매뉴얼을 포함하여 트레이닝 자원들의 데이터뱅크를 구축한다.
- 서로에게서 배우고 아이디어 및 정보를 공유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 정책 및 기타 의사 결정 과정에서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훈련시킨다.
- 공동체라디오에서 라디오 프로그래밍을 위한 WIN의 매뉴얼을 개발한다.
- 남성들과 동료들에게 젠더적 시각에 대해 민감해지도록 한다.
2. WIN 강화: AMARC에서의 WIN의 지역 네트워크와 국제 협력을 강화하고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수립한다.
- WIN-아시아의 설립과 WIN-유럽의 재설립을 지원한다.
- WIN-라틴 아메리카 및 WIN-아프리카와 함께 그 지역의 행동계획과 공동 국제 활동에 맞게 협력한다.
- WIN-북미 및 오세아니아의 활동을 지원한다.
- 아랍 세계에서의 여성 미디어 단체 및 여성주의 단체와 접촉한다.
- 국제운영위원회에 WIN-코디네이터를 고용한다.
- WIN의 멤버들이 벌이는 주요 활동들에 대해 탈중심화된 협력을 촉진한다.
- WIN의 통합성과 자율성을 강화한다.
- 이메일 리스트와 서버, 팩스 및 기타 적절한 방법을 통하여 전화나 팩스, 전자 형태의 커뮤니케이션 매체에 접근할 수 없는 여성들 에게 정보가 확실히 도달할 수 있도록 하며 정보와 프로그램 자료를 공유한다.
- 세계 여성 운동 단체 및 인권 단체와의 동맹을 강화한다.
3. 라디오 캠페인: 국제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이벤트를 위해 공동의 노력을 시도하고 지식을 공유한다.
- 국제적 차원의 WIN 워크숍을 조직하고 이벤트에 대한 소식 및 지식을 공유한다.
- (OneWorld나 APC 등처럼) 웹캐스팅, 케이블, 위성 등 기술 분야와 관련된 다른 여성 단체들과 연계한다.
-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11월 25일 세계여성폭력 추방의 날 등에 대해 국제적인 차원에서 공동 캠페인을 진행한다.
4. 로비: 국제 여성 운동에서 여성들의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촉진하고 공동체 라디오에 대한 의식을 고양시킨다.
- 정보사회세계정상회의(WSIS)에 제출할 여성 및 정보사회에 대한 접근(권), 커뮤니케이션 할 권리에 대한 로비 서류를 개발한다.
- PrepComs(WSIS를 위한 준비회의)과 WSIS에 WIN 멤버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활성화한다. 그곳에서 여성들의 보편적 커뮤니케이션 할 권리를 주요하게 포함시킬 수 있도록 로비 활동을 진행한다.
- 지방(local), 국가(naitonal), 지역(regional), 국제적(international) 차원에서의 사회 포럼에 WIN 멤버들이 강력하고 체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공동 노력을 진행한다.
- 여성들의 커뮤니케이션 할 권리를 국제연합경제사회이사회(ECOSOC)나 유네스코에 제출되는 AMARC의 자문 보고서에 주요하게 포함시킨다.
- 유엔 여성지위위원회(CSW), 국제전기통신연합(ITU-GTF) 등 기타 관련된 단체들에서 로비 활동을 진행한다.
5. 펀드레이징과 자원 동원: AMARC WIN의 프로젝트 및 활동들을 위한 기금과 기타 자원들을 마련한다.
- 프로젝트 기획서를 준비한다
- 잠재적 펀드 제공자를 조사하고 펀드 제공자들과 협상을 벌인다.
- 트레이닝 자료나 트레이너, 라디오 장비 등 기타 자원들의 제공처를 조사한다.
- 유엔여성개발기금(UNIFEM)이나 세계여성기금(Global Fund for Women)처럼 페미니스트 펀드 제공자 내에서 라디오를 위한 펀딩을 증가시킨다.
- 여러 지역의 기부자들과 그들이 기부하는 물건(가령 장비)의 종류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다.
# 3.8 세계 여성의 날 공동 캠페인
올해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이해 WIN에서도 각국의 언어로 제작된 여성관련 공동체라디오 방송프로그램을 모집해 서로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공동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인도, 미국, 케냐, 멕시코, 캐나다, 요르단 등 다양한 국가의 프로그램들이 올라온 가운데 한국에서는 레즈비언 라디오 프로그램 제작단체인 '레주파 (L 양장점)'에서 제작한 (무려!) 4개의 프로그램이, 그리고 부산 지역 MBC로 액세스 하고 있는 프로그램 중 부산여성회 산림이 만든 한 개의 프로그램이 올려졌다. 모든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이 사이트에 올라온 프로그램을 재활용할 수 있다.
(프로그램을 다운 받으려면 다음을 클릭할 것. AMARC WIN 3/8 여성프로그램,)
한국 프로그램들의 프로필은 다음과 같다.
1. 2004년 성매매 개정법 시행 이후 그들의 삶: 이 프로그램은 성매매 여성들의 삶이 2004년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그리고 처벌에 대한 법률 개정 이후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관한 토크쇼이다.
프로그램명: 2004년 성매매 개정법 시행 이후 그들의 삶
프로그램 길이: 21분
프로듀서: 부산여성회 산림
한편 지난해에 방송된 프로그램을 손보아 레주파에서 올린 라디오 클립들의 프로필은 다음과 같다. 시간이 되면 (아니 시간을 내서라도) 한 번 들어보길 권한다. (참고로 무쟈게 재.미.있.다!)
1.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http:/www.kscrc.org) 한채윤과의 대화: 부치 문화나 펨 문화 등 한국의 레즈비언 문화에 대한 논의
프로그램명: Dr. Right
프로그램 길이: 20분
프로듀서: 바다, 레주파
방송: 100.7 MHz, 마포 FM
2. 레즈비언 뮤지션 이반지화와의 대화
프로그램명: 사랑방 언니와 청명
프로그램 길이: 20분
프로듀서: 물통, 니백, 레주파
방송: 100.7 MHz, 마포 FM
3. 월별 제작 프로그램, “L을 찾아서” : 이 프로그램은 역사, 예술, 음악에서의 레즈비언을 찾아본다. 다음의 클립은 그 중 조선왕조 세종대왕의 세자비에 대해 이야기한다.
프로그램명: “L을 찾아서” (L 양장점의 월별 제작 프로그램)
프로그램 길이: 20분
프로듀서: 물통, 니백, 레주파
방송: 100.7 MHz, 마포 FM
4. 격주 제작 프로그램 “보스톤의 데이원”: 이 프로그램은 해외 유학을 떠난 레주파 회원 데이원의 일기라 할 수 있다. 레즈비언 유학생으로 살아가는 그녀의 보스턴 생활을 다룬 이 프로그램은 그녀의 커밍 아웃 스토리와 미국에 있는 친구들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프로그램명: “보스톤의 데이원” (L 양장점의 격주간 프로그램)
프로그램 길이: 20분
프로듀서: 쌩, 데이원, 레주파
방송: 100.7 MHz, 마포 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