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 ㅣ‘야성의 꽃다방’ 제작팀
여성주의 라디오를 만들자고 모인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있던 고민이란 게 처음에 이랬다.
“즐거우면 좋겠어”
“가끔은 미친 척 우리의 솔직한 욕망도 드러내보자”
“하나로 묶이지 않더라도 각자 생각하는 것들을 쏟아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다가 라디오프로그램 제목이 “야성의 꽃다방”이 되었다. “야성”도 그렇고 “꽃다방”도 그렇고, 정치적으로 깔끔하지 않은 제목이었기에 모두들 이 작명에 더욱 만족해했다. 이 두 가지 단어는 모두 여성들이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것들이었으니까, 더욱더 가지고 와서 새로운 이미지를 담아보자는 고집을 피우면서 말이다.
‘야성’이란 말은 ‘야성의 엘자’같은 에로 비디오 제목에 나오는 것이라 되려 좋았다. 이성을 대표하는 남자, 그리고 그에 대한 상대항으로써 ‘들’의 존재인 여자라는 설정이 너무 웃기다 싶으면서, 그렇다면 정말 들을 신나게 뛰노는 광녀가 어떤지 보여주자는 앙심이 하나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꽃다방은 뭐냐? 네이버 지역검색을 찾아보면 전국에 무려 86개나 있다는 다방 대명사 ‘꽃다방’, 남성들의 추저분한 여가 공간을 ‘말’로라도 점거하자는 의미에서 꽃다방도 좋았던 거다. 그래서 공동체 라디오에서 처음으로 시작하는 여성주의 방송의 제목이 결국은 미친년 소리, 들소리, 다른 소리가 그득한 입을 달고 사는, 꽃 단 언니들 아지트가 되어 버린 것이다. 고상함은 딴 데 두고 딴소리만 계속하는 이 사람들 대체 어떻게 만났냐고?
미디어 연대에서는 작년 겨울에 사회적 소수자를 대상으로 라디어 교육을 진행했다. 그 중에 ‘여성’이라는 카테고리가 있었고, 언니네(www.unninet.co.kr)라는 여성주의 사이트에 교육참여자를 공고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약 두 달여간 진행한 라디오 이론과 실습에 관한 교육을 수료한 후 만들게 진 것이 꽃다방이다.
각자가 생각하는 여성주의 라디오의 상이 달랐기 때문에 처음에 방송 성격과 수위를 조절하느라고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는데, 그래도 한가지 공통적인 건 “딱딱하지 않고 물렁한, 심각하지 않고 신랄한” 성격을 가진 방송을 만들자는 거였다. 다양한 감성을 가진 미디어로, 그래서 공식적이기 보다는 사적으로 다가가는 방송 내용을 채워 나가려 용을 썼다. 심각하지 말고, 젠 체 말고. 그러면서 현재를 살아내는 여성들, 페미니스트들에게 감정적인 해방이 훌쩍 전파를 넘어 다가가게 말이다.
그래서, 방송 내용이 이렇다.
일주일에 한 번 1시간짜리 방송에는 2개의 코너가 들어가 있다. 그런데 항상 똑같은 코너는 아니다. 여성관련 뉴스를 비평형식으로 읊어 대는 ‘정통한 소식통’, 여성주의 음악가들을 소개하는 ‘플레이걸’, 골 난 여성들이 보는 삐딱한 세상을 다양한 형식으로 토해내는 ‘콩트’, 꽃다방 사람들이 총동원되서 주제를 두고 수다를 떠는 ‘야밤법석’과 비혼여성들을 위한 생존 매뉴얼 ‘비혼여성살아남기’, 그리고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여성들과의 인터뷰 코너인 ‘야스락’이 있다. 마지막으로 여성주의 미술과 문화를 소개하는 ‘페마주’와 연예가소식을 꼬집어서 다시 보는 ‘연예가 개소식’까지, 무려 8개나 되는 코너들을 모두 같이 제작하고 또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언니네 사이트 안에 커뮤니티를 만들어 꽃다방 방송과 관련한 내용을 올려서 청취자들과 의견을 나누기도 하고, 청취자들이 올린 사연으로 ‘야밤법석’에서 수다를 떨기도 하고, 혼자 떠들기보다는 방송을 듣는 사람들이 같이 만들어가는 통로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
사명감을 들먹이고 싶지는 않지만, 이렇게 많은 코너가 생긴 데에는 첫 여성주의 라디오 방송이기 때문에 할 말이 많은 탓도 있다. 그래서 지금 생각엔 얼른 다른 여성주의 라디오 방송들이 많이 생기면 좋겠다. 여성주의가 한 결이 아니듯, 여성주의 라디오 방송이란 것도 어떻게 하나만 있을 수 있나? 라디오가 가지는 강점들, 예를 들면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고, 글을 알지 못해도, 공식적인 말하기 방식이 아니어도, 누구나 쉽게 접근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노래나 몸짓의 소리도 전할 수 있다. 이런 점들을 최대한 살려서 이제까지 혼자 중얼거림으로 끝내야 했던 수많은 광녀들의 채널이, 여성주의 방송이 생기면 좋겠다. 유일한 방송 꽃다방이 아니라, 들소리처럼 잡다한 소리 중 하나로 꽃다방이 소개 될 날을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