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 빠진 ‘차별금지법’
2003년 1월,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차별금지법제정 추진위원회를 구성한 후, 2006년 7월까지 약 4년 반 동안 여론조사, 공청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 권고법안을 만들어 국무총리에게 입법을 권고했다.
"「헌법」의 평등이념에 따라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범죄전력, 보호처분, 성적지향, 학력,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고 예방하며 불합리한 차별로 인한 피해자에 대한 구제조치를 규정한 기본법을 제정함으로써, 헌법 및 국제 인권규범의 이념을 실현하고 전반적인 인권 향상과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보호를 도모함과 아울러 궁극적으로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법적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차별을 금지한다고 만들어진 법은 차별을 조장하는 법이 되어버렸고, 7개 조항과 성별 정의규정이 삭제된 채로 2007년 12월 4일 국무회의를 통과하였다.
성난 ‘성소수자차별저지긴급행동’
이 법안은, 최초의 종합적인 차별금지 법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20가지의 차별 금지 항목을 정한 것은 우리사회에서 차별이 발생하는 맥락과 닿아있다. 다양한 소수자들의 경험 속에서 차별은 한 가지 요인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비정규직 여성, 장애 여성, 사별한 장애인 등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이러한 차별에 대한 규제는 무엇을 빼고 더할 것도 없이 총체적인 수준에서 규정되어야 한다.
이에 성소수자를 중심으로 ‘차별금지법 대응 및 성소수자 혐오, 차별 저지를 위한 긴급 공동행동‘(이하 성소수자차별저지긴급행동)이 조직되어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시작하였다. 2007년 11월 5일, ‘성소수자 차별저지를 위한 2차 긴급번개’에서 공식명칭이 정해지고, 각 팀으로 나뉘어 활동하기 시작했다.
현재 사무/총괄팀, 디자인팀, 문건팀, 언론대응팀, 미디어기록팀, 국제연대팀, 기독연대팀, 국내단체연대팀, 10대팀, 대학생팀, 온라인팀, 오프라인팀, 정부국회팀, 대선대응팀으로 구성되고, 온-오프라인으로 회의를 하며 활동을 하고 있다. 이 가운데 디자인팀, 온라인팀, 미디어기록팀을 중심으로 성소수자차별저지긴급행동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미디어 활동들을 통해 무엇을 이루어내고 있는지 이야기하려고 한다.
창조적인 아티스트 ‘디자인팀’
2차 번개가 있고 난 이틀 만에 성소수자차별저지긴급행동 홈페이지(www.lgbtact.org)가 만들어졌다. 차별금지법 설명, 경과보고, 성명서 취합 게시판, 공지사항/뉴스클리핑/자유게시판/자료실, 연대단체링크, 관리자메뉴(전체+팀별 게시판) 등의 구성으로 온라인에서도 성명서를 받을 수 있고 [성소수자차별저지긴급행동]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들을 빠르게 알 수 있도록 하였다.
디자인팀은 각 팀과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디자인 하청작업을 진행하고, 오프라인 디자이너와 온라인 디자이너, 홈페이지 관리자로 나뉘어 활동하고 있다. 각계각층의 정서와 감수성을 고려한 다양한 디자인을 구사하며 출판물, 공식 문서, 현수막, 리플렛, 스티커 디자인, 버튼 디자인 등은 오프라인 디자인팀에서, 홈페이지 디자인, 웹자보, 배너 디자인 등은 온라인 디자인 팀에서, 홈페이지에 관련된 기술적인 문제들은 홈페이지 관리자가 하고 있다.
또, 홈페이지에 멀티미디어를 통한 대응 활동을 함께 할 수 있는 '미디어Action!' 게시판을 개설하여, 미디어기록팀과 언론대응팀의 다양한 미디어 활동을 알릴 수 있게 하였고, 국제연대팀과 연계하여 영문홈페이지 만들어 더 많은 사람들과의 연대를 꾀했다.
밤낮없이 종횡무진 ‘온라인팀’
온라인팀은 팀명에서도 보이듯이 온라인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행동들을 하고 있다. 각 팀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을 시민단체, 인권단체 등에 홍보하고, 차별금지법에 대한 진행상황과 [성소수자차별저지긴급행동]이 하고 있는 다양한 활동들을 알리는데 노력했다.
7개 조항이 빠진 채 법안으로 넘어간 차별금지법 사태를 알리고, 올바른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디자인팀과 연계하여 네이버 검색어 1위 만들기 작전, 리본달기 작전(각 단체 또는 개인 홈페이지, 블로그의 좌우 상단 구석에 띠 두르기) 등을 홍보했다. 또, 웹자보(10대 정책 요구안, 문화재/번개 등 홍보안) 등의 모든 문서를 메일링으로 돌리고, 온라인 서명운동, 지지운동을 기획/추진했다. 그리고 미디어기록팀과 연계하여 미디어기록팀에서 만든 영상물과 사진들을 html소스, 주소링크 등을 하여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동성애 커뮤니티 사이트, 연대 단체 사이트 운영자들이 소속되어 있어, 사이트 메인화면을 차별금지법 관련 화면으로 바꾸고, 사이트 자체의 구성을 바꾸는 등 온라인 커뮤니티 네트워크 구축하는데 힘썼다. [성소수자차별저지긴급행동] 공식 홈페이지 내에서는 온라인 주요 관련 소식/ 기사/ 정보 등을 수집하고 제공하고, 다른 시민 단체와 연계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다.
신출귀몰 ‘미디어기록팀’
미디어기록팀은 오프라인 행동을 하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언제든 카메라를 들고 늘 함께 동행했다. [성소수자차별저지긴급행동]의 역사적인 활동을 충실히 기록하는 데 초점을 두고, 계획된 일정마다의 성격과 핵심을 파악, 우리활동에 대한 이미지를 최대한 고려, 노출을 염두한 정확한 촬영 컨셉을 마련하여 기록하였다.
이 외에 국제연대팀과 연계하여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등의 언어를 자막으로 넣어 다른 나라에 홍보할 수 있도록 하고, 지지 메시지를 영상에 담아 힘을 실어주고, 언론대응팀과 연계하여 기자회견 등의 공식 활동을 하고 있다.
미디어 기록팀과는 별도로 개인이나 단체가 모인 레즈비언미디어행동단 ‘엘마’에서는 자유롭게 UCC 혹은 플래시물, 영상 창작물을 제작하여 활동하고 있고, 최초의 레즈비언 라디오 방송 ‘L 양장점’에서는 차별금지법과 관련하여 라디오토론회를 열었고, 성소수자차별저지긴급행동 관련 행사나 활동보고를 방송을 통해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우리가 곧 역사다
이 외에도 성소수자차별저지긴급행동에서는 각 팀마다 온라인에서는 카페를 만들어 논의하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오프라인에서는 각 팀마다 할 수 있는 일들을 분업화하고 연계하여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또,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여러 나라들과도 연대하고 있고, 시도하지 않았던 획기적인 방법들로 온-오프라인에서 활동하고 있다.
또, 미디어의 역할이 컸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상황을 알릴 수 있었고, 참여할 수 있게 하였다. ‘검색어 1위 만들기’, ‘리본달기’ 등 [성소수자차별저지긴급행동]안에 행동단이 아니어도 참여할 수 있었고, 한다는 것 자체로도 사람들에게 많이 알릴 수 있었다. 그리고 영상과 사진 등으로 모든 것을 기록한다는 자체만으로 우리의 행동에 힘을 주었다. 카메라와 사진기가 없이 오프라인 활동을 했다면 더 많은 방해를 받았을 것이고, 벌어진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해도 상대방은 귀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성소수자차별저지긴급행동]은 여러 팀으로 나누어, 각자의 능력을 크게 끌어내고 다양한 온-오프라인 활동들로 사람들에게 지금의 상황을 알렸고 활동하고는 싶지만 오프라인으로 활동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 활동들을 많이 했다. 하지만, 현재 대형포털사이트들이 장악하고 있는 온라인에선 좋은 활동임엔 분명한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많았다. ‘검색어 1위 만들기’ 등은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음에도 실행되지 않았다. 또, 직접 UCC를 만들어 꽤 많은 사람들이 봤음에도 불구하고 UCC 1위나 메인화면에 인기 UCC라고 소개된 적이 없다. 검색어 1위였던 첫눈보다 UCC 1위였던 원더걸스 ‘텔미’ 패러디 영상보다 의미 있지만 순위권 안팎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인기와 재미만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활동을 하면서, 활동하는 우리를 보면서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차별금지법에서 제외된 항목이 성소수자만이 관련된 것이 아니며 성소수자금지법이 아니다. 차별금지법은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차별을 포함해야 하고, 그를 위해 모두가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역사는 다수의 역사이자, 이긴 자의 역사였다. 소수의 삶은 다수에 의해 묻히고, 주체가 아니라 다수에 의해 비춰진 대상일 뿐이었다. 성소수자차별저지긴급행동은 숨거나 지금에 순응하지 않고 그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들의 행동은 역사적 행동이며, 행동을 하고 있는 그들 하나하나가 역사가 아닐까? □
성소수자긴급행동 홈페이지 : www.lgbtact.org (현재는 게시판 형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