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미디어운동연구저널 Act!

[ACT! 77호] ‘지구인의 정류장’은 실험 중

‘니가 왜 나에 대해 함부로 말해?’

  ‘지구인의 정류장’ 입구
이주민들은 주류 미디어를 통해 왜곡되고 제한된 이미지로 표현되기가 쉽습니다.
다른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그것이 '당사자의 발언권'이 제약되어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말해서 ‘나에 관한 일을 권력기제로서의 미디어를 쥔 다수자들이 말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의 예가 있는데요.
독일에서 '새로운 독일 언론인 (Neue Deutsche Medienmacher)'라는 이주민 기자 네트워크 활동을 하고 있는 ‘레베카 수미 로토’ 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 독일에서 ‘이주 배경 (자신 혹은 부모 중 한사람이라도 이민자인 경우)’ 을 가진 인구는 20% 정도 되는데, 기자들은 2%만이 이주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독일 언론에 등장한 ‘이주민’은 1966년엔 42%가, 2006년에도 30%가 ‘범죄자’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특히 유력한 주간지라도 이슬람관련보도의 70%가 부정적인 보도였다고 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한국의 주류미디어의 이주민 관련된 보도의 태도도 그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미디어 연구자들은 왜 이런 분석을 안 할까?)

그런데, 만일, ‘이주민 자신’이 ‘자신의 삶에 대해서 표현할 수 있다면’ 그와 같은 터무니없는 불공평한 상황이 다소 완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주민’뿐 아니라, 다른 사회적 소수자 그룹 역시 비슷한 부당함을 경험하고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이가, 특히 사회적 소수자가, 직접 자기의 생각과 삶을 기록하고, 이것을 사회에 알리는 활동은 매우 중요합니다.
'지구인의 정류장'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지난 2009년부터, 많은 이주 노동자가 밀집해 있는 안산 지역에서 이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 교육을 실행해 왔습니다.

공간의 확장이 가져다 준 가능성

  이주노동자들과의 생활프로그램 - 소풍
올해 1월에는 공간을 따로 구해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새 공간은 안산 주택가의 오래된 다세대주택 3층인데, 세 개의 방과 넓은 거실이 있습니다. 비록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교육장이 숙식이 가능한 공간이 되면서,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맺는 관계의 형태가 확장됩니다.

하나의 예는, 이주노동자들이 ‘교육’이나 ‘상담’같은 특별한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좀 더 자유롭고 빈번하게 교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전에도 여러 노동문제에 대한 상담, 문화생활에 대한 상담과 지원활동을 해왔지만,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되면서, 예전엔 교실로만 생각했던 공간이 거주지가 없는 노동자들의 쉼터 기능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실업 상태가 지속되면서 지치고 조급해질 수 있는 노동자들과 함께 할 생활프로그램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동네 시장을 구경 간다든지, 소풍을 간다든지 하는 것들이 그런 것입니다.
이는 제한적 관계가 가지는 불평등성과 일방성, 즉 ‘교육자 - 피교육자, 상담자 - 피상담자, 도와주는 사람 - 도움 받는 사람’ 의 관계를 넘어서는 물리적 환경이 조성되어 감을 의미합니다.

이런 와중에 교육 프로그램을 다양화하는 실험을 하였습니다.
2011년 상반기엔, 종래의 [생활영상 제작] 커리큘럼을 확장하여 [다큐멘터리 제작과정]/ [드라마 제작반] / [피아노 교실] 등으로 확장하여 운영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교육인력과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지만 실험적으로 ‘다른 가능성을 확장하려는 노력을 했습니다. 이외에도 외부의 연극단체와 [참여하는 연극]활동을 하거나 예술가 단체와의 교류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실험의 결과를 면밀히 평가해봐야겠지만, 당장의 가시적 성과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른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첫째,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유대가 강화되며, 이에 따른 신규 참여자의 확장 가능성이 높아진 점.
둘째, 피교육자들이 보다 적극적이 되었고, 단순히 ‘기능 교육 전수’ 과정을 넘는 목적의식을 갖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교육의 목적에 대한 공감’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

한국의 ‘고용허가제’는 ‘사람’으로서의 노동자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인력’으로만 보고 있습니다. 인권의 기본은 ‘존재할 권리 (체류할 권리)’일 텐데, 많은 노동자들에게 그런 가능성은 없습니다. 이런 제한된 조건의 영향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미디어’를 경제활동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 에 대한 고민보다는 ‘촬영 및 편집 기술’을 익혀서, 자국 사람들이 모인 다소 관제화 된 행사의 영상기록을 하는 활동을 한다거나, 고향에 돌아가 웨딩 스튜디오를 차릴 것에만 목표를 두는 경우입니다. 이는 ‘자기 삶의 이슈 발견’, ‘표현기회의 확장’, ‘사회적 약자들 간의 소통의 강화’ 등과 같은 미디어 교육의 지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극영화 촬영 중인 이주노동자들
[지구인의 정류장]의 교육활동 또한 그러한 불일치가 있습니다만, 그것을 억지로 꿰어 맞추기 보다는 ‘관심사 확장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활동합니다. 즉, 영상의 내용구성에 있어서 생경한 ‘어떤 관념’, ‘사회적 지향’을 가지고 급하게 주제의식을 잡기보다는, 제작자 당사자가 ‘오늘, 여기서, 스스로 느끼는 것’으로부터 출발점을 삼는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공장 근처에서 트랙터로 농사를 짓는 것을 본 한 노동자가, '우리 고향에서도 이렇게 농사를 지었으면 좋겠다.'며 그것을 카메라에 열심히 담을 때, 교육자들은 그 주제의식에 대해 이러저러한 자기식의 논평을 하기보다는 제작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공유하고자 하고 토론을 불러일으키고, 더 표현을 잘하기 위한 제안을 하는 식입니다. 많은 경우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감성과 착상을 담는 영상제작 경험을 하면 사회적 관심이 확장되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미디어물을 만든다는 것은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고, 다른 이들의 반응을 불러일으킬 (혹은 보여줄)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선, 제작자가 그 주제에 대해서 생각하고, 다른 이의 조언을 듣기도 하는 과정이 불가피하니까요.

여전히 많은 것이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소수자가 주류 미디어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자기 목소리를 전달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과 ‘미디어 활동을 통해 자신의 삶과 환경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풀뿌리 미디어 활동의 주요 목표라고 할 때, 이 두 목표가 잘 결합될 수 있는 방안을 구체적인 활동 속에서 찾아야할 것입니다.
만약, 소수자 일반(?)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순환시키는 구조의 확장과 발전에 대한 고민이 없이, 후자의 활동에만 집중한다면, 미디어교육 활동이 특정 개인의 표현 욕망에만 부응하는 것에 그쳐 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반면에 전자, 즉 거시적 목표에 집착한 나머지, 현실 속의 다양한 욕망과 삶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현실적인 해법을 모색하고, 공동의 실천을 하고, 그 경험을 공유하는 쌓는 일련의 ‘현실화 과정’에 대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면, 동의는 하지만 ‘생경하고 빈약한 슬로건’만 남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습니다. 다른 많은 사회운동과 마찬가지로 ‘미디어 운동’은 ‘오늘, 여기의 삶’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어야하겠지요.

지구인의 정류장 또한 이와 같은 과제들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2011년 들어서 공간의 변화가 낳은 참여자들 간의 관계 변화, 교육자-피교육자의 접속면의 확장을 통해서, 그 답을 찾아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관련 사이트] 지구인의 정류장 http://ichan.tistory.com/

[필자소개] 꿈이 지구인의 정류장에서 미디어교육을 주로 하고 있는 김이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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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 이주민 , 지구인의 정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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