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가 열리는 정동초등학교에 도착한 것은 하늘이 적당히 어두워질 무렵이었다. 차에서 내려 정문으로 들어서니 입구부터 길게 레드카펫이 깔려있었다. 붉은 카펫 위를 한 발 한 발 따라 걷다 보니 정동진영화제의 마스코트, 우산살소녀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깐느 시상식처럼 화려한 헐리웃 배우들 없이도, 그 길을 따라 걷던 모두는 정동진영화제의 주인공이었다.
운동장으로 가는 길목엔 영화제의 각종 기념품을 판매하는 정동진상회 부스와 함께, 여름 밤 갈증을 달래 줄 칵테일과 커피 등을 판매하는 상수동카페 부스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 중 상수동카페표 ‘정동진칵테일’은 마치 정동진의 푸른 바다를 닮아있어 보기에도 마시기에도 과연 으뜸이었다. 부스들을 지나 운동장으로 들어서니 대형 에어스크린과 의자들이 펼쳐져 있었다. 운동장 곳곳에 자리한 ‘쑥불’ 역시 우리의 눈길을 끌었는데, 높고 멀리 피어오르는 연기와 향이 야외상영의 맹점, 모기를 필두로 한 각종 벌레들로부터 관객들을 지켜주고 있었다.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하고 빗방울마저 조금씩 떨어졌지만, 꽤 많은 관객들이 개의치 않고 차곡차곡 자리를 채워주었다.
날이 서서히 저물고 개막식이 시작되었다. 올해 개막사회는 5년째 마이크를 잡는 배우 김꽃비와 얼마 전 개봉한 영화 <경복>의 배우이자 감독 최시형이 맡아 정동진의 밤을 열어주었다.
이어서 밴드 몽구스의 개막공연이 있었다. 정동진의 밤과 꼭 어울리는 노래들 덕에 운동장의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몽구스의 보컬 몬구는 "앞으로도 150회까지, 아니 그 때까지 살 수만 있다면 1500회까지 영화제가 번창할 수 있도록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는 멘트로 큰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이어 몽구스는 본인들의 노래 <서울의 밤 청춘의 밤>을 <강릉의 밤 청춘의 밤>으로 개사해서 불러주었는데, 여기저기 너도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신나게 춤을 추며 다함께 축제의 시작을 즐겼다. 강릉의 바아아암 밤!밤!밤!
이어서 강릉 시네마떼끄 권정선 대표의 짧고 굵은 개막선언과 트레일러 공개, 그리고 박광수 프로그래머의 섹션소개가 있었다. 올해 정동진에서는 총 7섹션, 22편의 영화가 상영되었는데, 각 섹션은 애니메이션과 장·단편 극영화, 그리고 다큐멘터리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있었다. 곧이어 불이 꺼지고 드디어 영화가 시작되었다.
각 섹션 상영이 끝난 후에는 영화제를 찾은 감독들과의 대화 시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당신이 버린 개에 관한 이야기>의 김혜정, 이종혁 부부 감독은 “영화가 초청되어 정동진으로 휴가를 왔다“며 "여기 오신 분들도 반은 놀러 오신 것 같고, 저희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어서 좋다"(김혜정)고 영화제에 참여하는 소감을 밝혔다. <그녀의 연기>의 김태용 감독 역시 올해 처음 영화제에 방문하게 되었다며 이어지는 영화제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를 표하기도 했다.
상영이 모두 끝난 후, 체육관에서 이어진 뒤풀이에서는 '땡그랑동전상'의 시상이 이루어졌다. '땡그랑동전상'은 영화 상영이 끝난 후 관객들이 가장 좋았던 영화에 동전으로 직접 투표를 하고, 가장 많은 동전을 획득한 영화에 모든 동전을 몰빵(!)해주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정동진영화제만의 특별한 관객상이다. 첫 날 '땡그랑동전상'의 영광을 거머쥔 영화는 예민희 감독의 <4교시 체육시간>이었다. 상을 수상한 예민희 감독은 "이제야 (정동진독립영화제를 후원할) 회비를 낼 수 있겠다"며 아주 뜻깊은(?) 수상소감을 전했다.
체육관 여기저기에서는 여러 게스트들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그 중 몇 명에게 정동진영화제를 찾은 소감들을 들어보았다. 개막 공연을 멋지게 이끌어주었던 몽구스의 드러머 링구는 "교회 수련회에 농활을 더한 느낌"이라며 "가족적인 분위기에 화려하진 않지만 어쩌면 투박하고 친구 같은 느낌"이라고 정동진독립영화제에 대한 감상을 밝혔다. 관객 조주효 씨도 "처음 온 영화제에 생각보다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우리 역시 서울 바깥에서 열리는 영화제들에는 참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데, 정동진독립영화제. 이보다 편안하고 사랑스러운 영화제가 있을까 싶을 만큼 흠뻑 빠져버렸다.
더욱 깊어가는 밤, 체육관 바깥에서도 기분 좋은 밤은 이어졌다. 운동장 곳곳에 앉은 사람들은 여기저기 모여앉아 어느새 맑게 갠 하늘의 쏟아지는 별들을 바라보며 정동진영화제의 첫날밤을 만끽하고 있었다. 우리도 잠시 운동장 한가운데 돗자리를 펴고 누워 별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는데, 어쩌다 떨어지는 별똥별을 볼 때면 우리는 두 눈을 감고 가만히 소원을 빌었다.
Day 2. 영화가 뜨는 바다
둘째 날 아침, 뜨거운 햇볕에 눈을 떴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체육관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가득 배어나왔다. 점심시간, 독립영화인들이 직접 준비한 ‘기분 좋은 밥상’의 메뉴는 닭개장 이었다. 다함께 점심식사를 즐긴 후 정동진 해변에서는 ‘인디파워 눈’이 이어졌는데, 감독, 스텝, 배우들 모두가 바다에 뛰어 들어 물놀이를 하고, 닭강정과 자장면 등 맛있는 간식들도 나눠 먹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편 해변 한쪽에서는 영화동아리 학생들이 ‘정동진영화제에 출품했다가 아쉽게 탈락한 영화’라며 소규모 이동식 영화관을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단돈 천 원에 상영하는 귀여운 자체 행사가 열리기도 했는데, 그 영화를 보지 못한 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해가 지고 선선한 저녁이 되자 정동초등학교 곳곳에서는 이틀 차 상영준비로 분주했다. 이 날은 무려 열두 편의 영화가 상영되었고, 더 많은 관객들이 영화제를 찾았다. 영화가 시작할 즈음, 우리도 운동장 한 편에 돗자리를 깔고 편안한 자세로 누웠다. 선선한 여름 날, 밤하늘을 천장 삼아 상수동카페 특제 칵테일을 한 손에 들고, 알싸한 쑥불향을 맡으며 영화를 보는 일이 어찌나 짜릿하던지. 전날보다 맑게 갠 하늘도, 그 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도, 스크린 뒤를 지나는 기차도, 행복한 표정의 사람들도, 그날, 그곳에서의 모든 순간은 영화와도 같았다.
둘째 날 땡그랑동전상의 영광은 바로 <잘 먹고 잘 사는 법>의 정한진 감독에게 돌아갔다. 이날은 많은 관객들이 영화제를 찾은 만큼 첫날보다 많은 동전이 모였다. 이날 역시 늦은 시간까지 술자리가 이어졌지만, 첫날 밤새도록 이어진 뒤풀이와 별 헤기로 밤을 지새우고 일출까지 보고나서야 잠이 들었던 우리는 일찍이 침대에 몸을 뉘였지만 또다시 늦은 시간까지 영화와 바다를 이야기하다 겨우 잠에 들 수 있었다.
영화제 마지막 날, 한 편의 다큐멘터리와 네 편의 극영화 상영이 있었다. 우리는 아쉬운 마음에 스크린 바로 앞에 자리를 잡았다. 첫 섹션이었던 <마이 플레이스> 상영 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한 관객은 "자기 가족사에 대해 이렇게나 솔직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며 박문칠 감독에게 “좋은 영화를 보게 해주어 감사하다”는 진심어린 감상을 전했다. 이어진 마지막 섹션의 상영이 끝난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한 관객이 "이 섹션의 영화들이 현실적인 결말을 보여주었는데, 나도 오늘이 지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참 여운이 남는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정말 이 밤이 지나면 각자의 현실로 돌아가게 될 우리 모두가 마지막 섹션의 영화들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끝으로 영화제의 마지막을 지킨 모든 이들이 함께 모여 단체사진을 찍는 것으로 15회 정동진독립영화제는 막을 내렸고, 우리는 청량리행 밤기차에 몸을 실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지난 사흘을 곱씹으며 우리가 정동진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정동진독립영화제를 ‘고향’과도 같은 곳이라고 표현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모두가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일상을 살다가도, 매년 이맘때면 함께 시간과 공간을 나눌 수 있는 자유로운 곳, 정동진독립영화제가 15년을 한결같이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이런 고향 같은 즐거운 복작거림이 아닐까? 짧은 일정이었지만 우리에게도 벌써 내년 이맘때가 기다려지는 마음이 슬그머니 자리를 잡았다. 꼭 다시 찾고 싶은 그 곳, 우리의 진심 또한 담아 영화제의 마지막 인사로 이 글을 마무리를 해보려고 한다.
정동진독립영화제! "내년에 다시 만나요!"
Q. 정동진 독립영화제를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A. 저희 영화제가 이제 15년이 되었는데요, 1996년에 강릉시네마떼끄라는 단체가 만들어지고, 3년 후인 '99년부터 정동진영화제를 개최하기 시작했죠. 시네마떼끄는 처음에는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일본영화나 유럽영화들 위주로 함께 영화를 보고 토론, 비평도 하는 모임이었어요. 그런데 이후에 그런 영화들이 개봉해서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기존에 볼 수 없던 영화들을 여기서는 볼 수 있다고 하는 메리트가 조금 희석되게 됐죠. 그러다보니 당시에는 시네마떼끄들이 전 지역에 있었는데, 지금은 몇 개 안 남아 있어요. 당시에는 부산영화제를 비롯해서 지역의 영화제가 많지 않았고,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정동진독립영화제였습니다. 당시 한독협과 함께 이 장소(정동초등학교)를 찾아내서 시작했죠. 처음에는 영화제를 치뤄 본 경험도 없고, 돈도 없었지만, 사람은 있었어요. 단체에 회원들이 있었죠. 그래서 경험이 있는 한독협(한국독립영화협회) 같은 곳에서 도움을 받으면서, 저희들은 회원들을 모아서, 영화제를 거의 인력으로 치뤄 냈죠. 초기에는 비용이 약 700만 원정도 들었어요. 지금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비용이죠. 그 금액을 만들기 위해서 회원들이 만 원, 이만 원씩 개인후원을 했습니다. 지금은 영상자료원에서 와서 대형 스크린도 설치해주지만, 처음에는 스크린도 직접 망치질을 하고, 아시바(비계)를 쌓고, 페인트 칠을 해서 직접 만들었어요. 영사기도 한국영사기협회 아저씨들을 불러 하루 80만원씩 내고 틀어야 했죠. 그런 과정들을 거쳐서 지금까지 오게 됐습니다.
Q. 다른 영화제들과는 다른 정동진 독립영화제만의 특별한 점은 무엇이 있나요?
A. 대형 영화제들과 규모 면에서는 비교가 안 될 겁니다. 하지만 저희는 모든 영화를 야외상영 한다는 것, 그리고 경쟁이 아니라 모두 초청해서 상영하는 방식입니다. 아이들부터 나이 드신 분들까지 전 세대가 관람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있고요. 가장 큰 특징은 형식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강릉시나 영진위에서도 지원을 받지만, 시장님이나 영진위원장님이 오셔도 꼭 형식적인 무대인사를 시키지 않습니다. 그리고 누구든 영화제에 오면 감독님들도 예외 없이 급하면 다 삽질도 하고 페인트칠도 하죠. 그런 면에서 좀 자유로운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독립영화인들의 MT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Q. 정동진이라고 하는 한 지역에서 15년이나 영화제를 지속해 온 이유, 혹은 비결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저희 영화제는 목표는 변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 규모를 크게 키워서 발전시키자는 것보다는 지금의 분위기, 공간과 같은 것들을 계속 지금처럼 유지해가자는 것이지요. 저는 변화라는 것이 반드시 발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처음의 좋았던 분위기가 사람이 많아지고 규모가 커질수록 희석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같이 밥 해먹고, 놀고, 이런 분위기를 계속 잘 지켜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즐거워서 지금까지 해 온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저도 일이 아니라 같이 논다고 생각하니까요. 1년에 한 번씩 노는 준비를 열심히 하는 거죠.
Q. 지금까지 영화제를 해오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한 가지 소개해주세요.
A.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은 4회 때 에어스크린이 터졌을 때죠. 그 때 비가 엄청나게 와서, 운동장에 물이 발목까지 찼었어요. 소방차가 물을 퍼내러 왔다가 그 소방차까지 빠졌을 정도였습니다. 겨우 물을 퍼내고 소방차도 구출해낸 다음이었죠. 영화제 전에 음향도 맞추고 미리 세팅을 해보느라 사람들이 다 정신이 없었어요. 그런 와중에 뒤에서 펑하고 대포소리 같은 게 들리는 거예요. 이게 무슨 소리일까 했죠. 저 뒤에 군부대가 있어서, 처음에는 군부대에서 대포를 쐈나 생각했는데, 보니까 에어스크린 표면이 평평해야 하는데 물렁하게 바람이 빠져 있는 거예요. 에어스크린은 바람을 계속 넣어서 틈새로 빠져나가는 공기를 채워주며 세워놓는 건데, 비가 오니까 표면에 수막이 생겨서 공기가 빠져나가지 않아 압력이 올라가서 터져버린 거죠. 두 번인가 펑펑 터지더라고요. 바로 다음날이 상영인데 에어스크린이 터졌으니, 올해 영화제 못하는 건가, 했죠. (그럼 다음날 상영은 어떻게 했어요?) 결국은 했죠. 급하게 대책회의를 해서, 예전처럼 아시바 쌓아서 스크린을 세우기로 했어요. 지금 시작해서 가능하겠냐고도 했지만, 선수들을 불러 모아서 순식간에 뚝딱, 스크린을 만들어서 영화를 틀었죠. 정말 큰 사건이었죠.
Q. 특별히 기억에 남는 감독님이나 관객분이 있으신가요?
A. 관객 중에서는 별빛중원이라는 자원활동가 팀장 친구가 올해로 10년 째 자원활동을 하고 있어요. 처음에 영화제를 준비하고 있는데 혼자 자전거 여행을 왔는지 운동장에 들어와서는, "뭐 하세요? 제가 도울 일 없을까요?" 하더라고요. 그 당시에는 자원활동가라는 제도도 없던 때였거든요. 그 다음날도 찾아와서 (일을)하고. 그래서 그 때부터 자원활동을 시작해서 10년이 됐죠. 그리고 자원활동하는 문택이도 있고요. 김미례감독님 아들이에요. 또 요즘은 바빠서 못 온다고 하지만, 경순 감독 딸 수림이도 있죠. 예전에 여기에 체육관도 없이 교실 바닥에 자리를 깔고 자고, 식사는 작은 식당에서 할 시절부터 왔어요. 그 때는 꼬맹이였던 아이가 이제는 다 커서 자원활동도 하고 있어요. 푸른이라는 친구도 마찬가지고요. 처음 부모님 따라왔던 네다섯 살짜리 친구들이 이제는 스무 살이 되고 대학생이 됐죠.
Q. 영화제를 하시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A. 제가 이전까지는 기술국장 이었는데 올해 처음으로 사무국장 일을 맡았습니다. 예전에는 주로 현장에서 발로 뛰는 일을 했는데, 사무국 일을 하니 책상 앞에 앉아서 고민하고 글을 써야 해요. 개인적으로는 그게 정말 힘들더라고요. 저한테 제일 힘든 건 하나 하나 영수증 처리하거나 하는 것들이에요. 돈 맞추는 것도 힘들고. 그리고 다른 지역 영화제에는 지자체에서 3억 원씩 지원해주기도 하는데, 저희는 지원이 많이 안 된다는 점도 힘들죠.
Q. 마지막으로, 본인에게 정동진독립영화제는 무엇인지 정의하신다면.
A. 저한테는 고향 같은 공간이죠. 십 년 동안 서울생활을 하면서도 매년 영화제 할 때는 강릉에 내려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우리 회원들도 대부분 그래요. 처음에는 강릉에서 시작한 모임이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타지로 일 하러도 가고, 뿔뿔이 흩어져서 각자 자기 삶을 살다가, 영화제 때가 되면 또 슬금슬금 모여드는 거예요. 도시에서 살다가 힘들 때면 늘 영화제가 있는 여름이 기다려지죠. 정동진에 가서 며칠 놀다오면 정화가 되고, 호연지기도 있거든요. 정동진독립영화제는 그렇게 매년 돌아가서 놀 수 있는, 그런 고향 같은 존재입니다.
Q.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A. 네. 수고하셨습니다.
[필자소개]
영은 - 미디액트에서 독립다큐멘터리 제작과정 16기를 수료한 후 별 일 없이 지내다 요새는 18기 조교로 지내고 있다. 다큐멘터리가 좋고, 계속해서 만들고 싶어 고민하고 공부하고 싶은 사람.
개미 - 영화는 좋아하지만 정작 영화관이나 영화제를 많이 못 가본 26세 여성. 현재 미디액트에서 독립다큐멘터리 제작과정 18기 수료 후 영상 활동가의 길을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