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자면 필자는 영화를 보고 매우 실망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영화치고는 작품이 다루는 천안함 침몰에 대한 논의나 해석의 수준이 그다지 좋다고 말하기 힘든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 자체의 질에 상관없이, 상영을 결정한 영화에 대해 극장이 일방적으로 상영을 중단한 것은 분명 중대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대부분은 영화에 왜 상영 중단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만 주목했지만, 정작 중요한 부분은 따로 있었다. 이 사건 자체가 한국 영화가 놓인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이기 때문이다.
2001년, 그리고 2013년 현재 한국 영화의 성장 뒷면에는...
소위 ‘와라나고’ 운동을 기억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2001년 개봉한 <와이키키 브라더스>, <라이방>, <나비>, <고양이를 부탁해>, 이렇게 한국 영화 네 편의 앞 글자를 따서 이름을 붙인 운동은 한국 영화계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로 자리 잡고 있다. 네 영화 모두 개봉을 한지 얼마 안 되어 극장에서 빠르게 사라졌고, 이를 보다 못한 팬들이 영화의 재개봉 및 조기 종영 반대를 외치며 움직인 운동이기 때문이다. 이 운동은 2001년 당시 한국 영화가 <쉬리> 등 블록버스터 영화의 성공으로 성장했다며 가진 자부심 뒷면에 작은 영화나 매니악한 영화가 설 자리를 잃고 있음을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와라나고’ 운동으로부터 1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분명 2001년에 비하면 ‘아트플러스 네트워크’나 ‘인디플러스’와 같이 정부 차원에서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예술-독립영화전용관이 생겨났고 또한 CJ그룹에서 운영하는 멀티플렉스 체인 CGV는 자사의 독립영화전용관 ‘무비꼴라쥬’를 전국 20개관으로 확대하는 등 분명 예술-독립영화를 볼 수 있는 장소는 대폭 증가했다. 또한 <워낭소리>를 비롯해 <똥파리>, <낮술>, <지슬>과 같은 독립영화 흥행작도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영화들은 제대로 된 상영 기회를 잡지 못하는 현실에 놓여 있다.
지난 10월 24일 진보정의당 정진후 의원이 발표한 멀티플렉스의 영화상영 실태 현황에는 그 상황이 더욱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CGV, 롯데시네마, 그리고 매가박스는 2012년 ‘한국영화 동반성장 이행협약’에서 최소 영화를 일주일 이상 상영하기로 약속했지만 정작 일주일도 채우지 못하고 내려가는 영화는 여전히 존재했으며 그 수도 엄청났다. 롯데시네마는 685개관, CGV는 658개관, 매가박스는 286개관에서 영화를 조기 종영했다. 심지어 CGV 131개관, 롯데시네마 112개관, 매가박스 32개관에서는 상영 하루 만에 영화를 내렸다. 결국 11월 7일, 민주당 도종환 의원은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제출했다. 극장이 영화를 임의로 상영 중단하고자 할 때, 영화 제작자-수입자-배급자 등과 사전협의를 하도록 한 내용이 담겨있다. 만약 이 법이 통과된다면 지금보다는 영화가 조기 종영되는 일이 많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냥 법안이 제출된 것에 만족하기에는 이르다. 영화가 단순히 조기 종영되는 것 외에도 다른 문제들이 한국 영화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독립영화전용관조차도 문제에 자유롭지 않아
여기서 살펴봐야 할 부분이 2001년 이후 몇몇 독립-예술영화가 상업적으로 흥행한 부분이다. 분명 이러한 흥행 결과는 독립영화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다는 뜻이며, 앞으로 더욱 많은 독립영화가 관객들에게 알려질 가능성이 있음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에는 함정이 있다. 바로 특정 계열의 영화 상영관을 끼고 있는 독립영화일수록 흥행이 될 가능성이 더욱 많다는 점이다. 영화계 일각에서는 CGV, 롯데시네마, 매가박스가 영화 제작-배급사가 극장을 겸영하고 있음을 지적하지만 독립영화 역시 마찬가지인 상태이다. CGV에서 운영하는 ‘무비꼴라쥬’를 비롯해 흥국생명 계열의 티캐스트가 씨네큐브 광화문을, 영화사 백두대간이 아트하우스 모모를, 영화사 진진이 씨네코드 선재를, 스폰지-영화사 조제가 스폰지하우스 광화문을, KT&G가 시네마 상상마당을, 이모션픽쳐스가 필름포럼을 소유-운영하는 등 독립영화계에서 입지가 큰 제작-배급사 대부분이 극장을 소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마냥 기뻐할 수 없는 독립영화의 흥행이 빈번해지고 있다. 씨네큐브 광화문을 소유한 티캐스트의 경우 모든 영화가 흥행에서 성공하고 있다. 아무리 못해도 누적관객수 1만 명을 넘기기 일쑤다. 독립-예술 영화에서 ‘관객수 1만’은 흥행의 상징적인 수치이다. 독립-예술영화인이 선망하는 수치인 ‘1만’을 티캐스트는 자사 영화를 씨네큐브 광화문에 장기 상영을 하여 얻어내고 있다. 다른 영화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관객수 1만을 넘긴 대부분의 영화의 제작-배급사가 티캐스트나 영화사 진진 같이 영화사가 극장을 소유한 곳이다. 설령 1만을 넘기지 못 하더라도 상영되는 극장의 수나 전체 상영횟수에서 그렇지 않은 영화보다 유리하다.
또한 극장을 소유한 제작-배급사의 영화가 아니더라도 흥행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영화가 하나 더 있다. 바로 CGV 무비꼴라쥬에서 상영하기로 계약을 맺은 영화이다. 무비꼴라쥬는 모든 독립-예술영화를 상영하고 있지 않으며 자체적으로 선별하여 각 영화의 배급사와 상영 계약을 맺는다. 그렇게 무비꼴라쥬에서 상영할 기회를 얻은 영화는 무비꼴라쥬의 최대 20개관, 못해도 3 ~ 5개관에서 자신들의 영화를 상영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영화 배급사는 포스터에 ‘무비꼴라쥬’ 마크를 붙이면서 자신들의 영화를 이곳에서 볼 수 있음을 열렬히 선전한다.
이제 극장을 소유하고 있지도 않으며, CGV 무비꼴라쥬에서도 선택하지 않은 독립-예술영화들은 가뜩이나 영화관에서 작은 영화들이 제대로 상영 기회를 잡지 못하는 가운데에서, 다시 한 번 더 차별을 받게 된다. 물론 일부 그렇지 않은 영화들이 있긴 하지만 이들 영화의 대부분은 홍상수나 김기덕과 같이 상당히 네임 밸류가 있는 감독-주연이 참여한 영화거나 아니면 <천안함 프로젝트>와 같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있는 독립-예술영화이다. ‘작은 영화’가 차별받는 현실에 대해서 말이 많지만, 다시 그 안에서 차별이 벌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이 이슈가 되고 있지 않다.
영화 개봉의 공공성을 고민해야할 때
‘와라나고’ 운동 이후 지금까지 작은 영화, 그리고 독립-예술영화가 더 많은 관객들을 만날 수 있도록 여러 과정들이 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하여 CGV가 무비꼴라쥬를 세우고, 정부 차원에서 독립영화전용관을 지정-지원하고 흥행하는 독립-예술영화가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방식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극장을 지니거나 무비꼴라쥬와 같은 특정 체인을 낀 독립-예술영화만이 혜택을 볼 수 있는 형태이다. 독립-예술영화에도 일반 상업영화와 다를 바 없는 논리가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고민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일까.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이제 영화 개봉의 공공성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 도래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정부를 비롯해 독립영화계에서 추진되던 지원 방식은 독립영화관의 운영을 지원하거나,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몇몇에 돈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지원책은 필연적으로 극장을 가지고 있는 제작-배급사의 영화에 유리한 것이었으며, 또한 배급사에 개봉비를 지원하는 것 역시 독립영화계 내부에서 무비꼴라쥬나 씨네큐브 광화문과 같은 인기 극장을 잡는 형태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형식이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처음부터 지원책 자체가 시장 논리에 독립-예술영화를 맡겨 성장을 꾀하고자 했던 것이다. 자연스레 독립-예술영화지만 자기네들이 극장을 가진 영화나, 또는 흥행이 잘 될 것 같은 영화에 쏠릴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논리에서 좀 더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영화 개봉의 공공성은 상당히 심도 깊게 논의해야만 할 것이다.
물론 현재도 인디스페이스나 아리랑시네센터, 시네마테크 KOFA, 인디플러스와 같이 민간 또는 정부나 지자체에서 만든 영화관이 공공성을 가지고서 다양한 영화를 상영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극장 상영 바로 전 단계의 배급-홍보 영역에는 공동체 상영 외에는 아직 별 다른 노력을 하지 못하는 중에 있는 상황이다. 공동체 상영 역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몇몇 영화에 한정되어 있는 한계가 존재해 이것만으로는 해결책이 되기 어렵기도 하다. 더 다양한 영화들이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공공적인 차원에서 운영하는 극장을 늘리고, 배급사를 잡지 못해 자체 홍보-배급을 고민하는 영화들에 대해서도 공공성의 측면에서 접근을 해야 한다. 각지에 널려있는 문화예술회관이나 구청, 도서관의 강당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고민하거나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더 이상 시장의 논리에 맡겨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방송 차원에서 공공성을 고민하는 만큼, 이제 영화의 차원에서 공공성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같이 고민했으면 좋겠다.
[필자소개] 성상민(만화평론가)
- 2005년 만화언론 <만>의 객원필진으로 데뷔한 이후 2006년 부천국제만화축제(BICOF) 강풀 특별전 전시 기획 참여와 <인터넷뉴스 바이러스>에서 2009년 문화부 기자 생활을 하며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현재는 <미디어스>에서 정기적으로 만화 및 문화 평론을 하고 있다. 또한 학점 관리에 큰 문제가 생겨 경희대 사회학과를 1년 더 다니는 게 최근 확정됐다. 트위터 주소는 @skyjets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