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오랜 시간 동안 전문가와 대중매체가 만든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서 그쳤습니다. 주는 대로 수용했고 자기만의 생각을 갖고 있어도 타인과 나누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늘 만족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공간과 통로가 제한적이었으며 일정 수준 이상의 표현 기술이 수반되어야 공유가 가능하기도 했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이에 반해 인터넷이 각 가정마다 보급되고 스마트폰이 생활필수품이 된 근래에는 수동적인 소비자-수용자를 넘어 생산자-창작자가 되려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으며, 그 범위 또한 기존의 제약을 뛰어 넘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순간 ‘동시에 어디로든’ 퍼 나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것 같은 미디어 민주주의의 싹은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의 모든 사람이 자신의 제품을 쓰기를 원했던 한 사람(혹은 한 기업)의 활동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습니다. 바로 스티브 잡스(혹은 애플)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를 인문학과 기술을 혁신적으로 결합한 선구자라 하고 어떤 이들은 영악한 사업가이자 독재자로 기억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시각으로 보더라도 그가 세상에 내놓은 몇몇 제품과 기술들이 세상을 바꾸어 놓거나 그 시기를 앞당겼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미디어 민주주의를 언급하는데 특정 기업을 거론하는 것이 불편한 일이긴 하나 엄연히 있던 사실을 굳이 피해갈 필요도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는 애플이 선보인 몇몇 제품을 화두로 해서 첨단기술이 현대인의 삶과 세상을 얼마나 바꾸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아, 너무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저는 애플 천지창조설(*주1)을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고 스티브 잡스에 대한 신앙고백을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재미있게 이야기를 해보고자 사과를 매개체로 이용할 뿐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들어가며
2007년 1월 9일, 애플 컴퓨터 주식회사(Apple Computer Inc.)는 사명에서 컴퓨터를 지웠다. 이 말은 단순히 컴퓨터와 프로그램을 파는 회사를 벗어나 더 큰 목표를 향해 뛰겠다는 일종의 선언이었고 그것을 증명하듯 몇 분 뒤 아이폰을 발표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IT업계의 지각변동이 일어났고 PC에서 모바일 장치로 사회 전반의 관심사가 이동했다. 책상에서 벗어나 움직이면서도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모습은 영화에서나 보던 첨단 미래 사회의 모습에 가까웠고 그에 따라 현대인들의 생활방식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애플은 영상물을 비롯한 문화업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쳐 왔다. 홈비디오나 1인 제작 시스템을 위한 신제품을 끊임없이 선보였고, 3D 애니메이션 업계의 대표주자인 픽사를 발굴했으며, 공짜란 이름으로 음지에서 유통되던 해적판 음악과 영상물을 아이튠즈 스토어를 통해 양지로 이끌어낸 기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스마트폰 대중화에 기여하며 UCC의 폭발적 성장에서 볼 수 있듯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를 허무는 데 일조했으며, 극장이나 텔레비전, 컴퓨터 앞이 아닌 대중교통이나 공원 벤치에서도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장치를 보급했다. 물론 이 모든 일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활동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고, 그 모든 일이 애플 혼자만의 일이 아닌 IT 업계의 기술 발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일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만든 제품이 현대인들의 삶의 방식을 조금씩 바꿔 왔다는 점이다.
1. 기계에서 가전제품으로 - 개인용 컴퓨터(PC)의 시작
1947년, 최초의 컴퓨터로 알려진 에니악(ENIAC)이 등장했지만 대부분 군사, 과학, 산업 등 일부 분야의 전유물일 뿐 일반 대중의 삶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사용하던 극소수의 계층에게도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여서 사무실을 가득 채우는 규모에 엄청난 전기를 잡아먹고도 현재의 구식 휴대폰만도 못한 성능을 발휘하다 보니 빠른 계산 이외의 능력은 이끌어 낼 여지조차 없었다. 입력 방법은 또 어찌나 불편했는지 천공카드나 OMR카드에 컴퓨터만 알아듣는 코드를 그려 넣는 수준이어서 키보드가 나오기 전까지의 컴퓨터 사용은 일종의 고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컴퓨터를 이용해서 글을 쓴다거나 음악과 미술 같은 분야에서 활용하는 건 사치였다. 공룡 같은 IBM이 주도하고 있는 컴퓨터 시장은 아직까진 대중의 것이 아니었다.
1976년, 애플 컴퓨터가 등장했다. 차고에서 일일이 손으로 납땜질해서 조립한 애플1은 그다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지만 제법 다듬어진 생김새를 갖고 당시 ‘흔히’ 쓰이던 커다란 컴퓨터에 비해서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성능을 지닌 애플2는 다음해 미국의 컴퓨터 업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이전까지 컴퓨터는 일부 전문가들이나 훈련받은 이들만 쓰는 ‘기계’였으나 애플2의 등장으로부터 시작된 개인용 컴퓨터(Personal Computer)란 용어는 사무실을 거쳐 일반 가정과 학교까지 아우를 정도로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요즘 컴퓨터를 쓴다고 하면 기본으로 떠올리는 워드프로세서, 스프레드쉬트(엑셀) 같은 프로그램들의 조상들도 이 무렵에 등장했고, 지금 기준으로 보면 매우 단순한 수준이지만 게임과 음악과 그래픽 제작 프로그램도 개발되었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컴퓨터 이용자는 늘어났고, 이용자가 늘어날수록 그들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소프트웨어와 주변장치들이 생겨났다. 이때부터 기업 뿐만 아니라 어린 학생들에 이르기까지 컴퓨터만 갖게 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신화가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참고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vhNL-DX2mOY)
2.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 마우스와 GUI의 도입
키보드와 마우스가 없는 컴퓨터를 상상할 수 있을까. 요즘에야 손끝으로 조작하는 기기들이 흔하다 보니 아이부터 어르신들에 이르기까지 터치스크린을 만지며 원하는 것을 찾아내는 모습이 그리 낯설지는 않지만, 컴퓨터가 대중화되던 1980년 무렵에는 마우스는 존재하지도 않았고(*주2) 키보드도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컴퓨터를 쓰는 일은 고역이었다. 어떤 일을 하려면 일일이 키보드로 해당 명령어를 입력해야 했고, 컴퓨터 화면과 키보드는 티비 리모콘처럼 직관적이지 않아서 어떤 키를 누르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었다. 컴퓨터는 덩치가 작아져서 책상 위에 올라오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특별한 공부가 필요한 기계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84년부터 혁신적인 입력 체계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주3). 바로 GUI(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그림 기반 작업환경)다. 이전까지는 사전 훈련이 없이는 아무나 컴퓨터를 조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GUI가 도입되고 마우스가 도입된 이후부터는 프로그래밍 명령어를 암기하지 않아도, 타자 속도가 빠르지 않아도, 심지어는 문맹이라 하더라도 컴퓨터를 쓸 수 있게 됐다. 사용자가 현재 있는 곳은 화면 위에서 화살표의 모양으로 나타났고, 문서 파일은 서류 모양의 그림으로 나타났으니 굳이 은유법을 배우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파일을 지우고 싶으면? 서류 모양의 아이콘을 마우스로 선택한 뒤 휴지통 모양의 아이콘 위로 움직이면 된다. 이것은 혁명이었다. 활판 인쇄술 이후로 지식의 독점 현상이 붕괴된 것처럼 그림 기반 작업환경이 도입되면서부터 비로소 개인용 컴퓨터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컴퓨터가 쉬워졌으며 남녀노소 누구나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어린 아이들이 오빠와 누나가 쓰던 걸 어깨 너머로 훔쳐보다가 혼자 전원을 켜고 마우스를 움직여 주니어 네이버로 들어가 애니메이션을 보고 게임을 하는 모습은 전적으로 그림 기반 작업환경의 덕분이다.
3. 1인 비디오 제작 시스템의 확산
미국 중산층에선 홈비디오가 일찍부터 대중화되었다. 한국에서 여행이나 자녀 졸업식에서 스틸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처럼 8mm 필름카메라를 들고 가족들의 일상을 짤막하게 찍는 건 의외로 흔한 일이었다. 그런 문화는 80년대 들어 보급된 베타캠이나 VHS캠코더의 보급에 힘입어 더욱 활성화되었고 ‘홈비디오’란 장르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편집이 거의 불가능했던 것이다. 텔레비전에선 앞다투어 시청자 홈비디오를 틀어주는 방송 꼭지를 마련했지만 대부분 재미있는 순간을 포착한 짧은 클립들이 주를 이뤘고 그나마도 방송국의 입맛에 맞게 멋대로 재단되곤 했다. 촬영자가 자기 의도대로 편집하여 누군가에게 작품이라 부를 수 있는 비디오를 보여주는 건 아직까지는 영상전문가의 몫이었다.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디지털 비디오(DV)가 등장하면서부터 비디오에 대한 대중의 접근성은 높아지기 시작했다. 애플이 개발한 IEEE1394(혹은 Firewire) 규격의 단자를 통해 컴퓨터로 들어온 비디오 영상들은 아날로그 비디오 시절보다 훨씬 편집에 용이했기에 일반인들과 학생들은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고 싶어 하는 욕망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전히 발목을 잡는 문제가 있었다. 디지털 캠코더로 동영상을 찍었어도 컴퓨터로 옮기려면 PC에 1394 포트가 있어야 했고 편집 프로그램 사용법에 능숙해야 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컴퓨터에 1394 포트가 기본으로 달린 건 드문 일이었고, 영화 현장에선 아비드가 그 이외의 현장에선 어도비의 프리미어가 보급되고 있었지만 홈비디오에는 어울리지 않게 조작이 낯설고 어려웠다.
애플은 90년대 말부터 1394 포트를 자신들의 제품인 Mac 시리즈에 기본으로 장착했다. 그리고 1999년부터는 영상편집 프로그램인 아이무비를 기본으로 탑재했다. 아이무비의 장점은 쉬운 편집과 직관적인 인터페이스에 있었다. 프로그램을 실행시키고 캠코더와 컴퓨터를 케이블로 연결한 뒤 전원을 켜면 비디오를 가져 오겠냐는 선택창이 떴다. 예라고 대답만 하면 캠코더 테이프에 담긴 내용들이 하드디스크 안에 파일로 차곡차곡 저장되었다. 전문 편집프로그램의 편집 방식인 타임라인 기반의 방식으로 편집할 수도 있었지만 컷 단위로 생성되는 썸네일 클립들은 영상의 취사 선택과 재배치를 용이하게 도와주어 비전문가들도 두려움 없이 편집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후 2000년에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에서도 일반인을 위한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인 윈도우즈 무비메이커가 탑재되기 시작했지만 조작법과 안정성에 있어서는 아이무비를 따라갈 수 없었다.
동시에 애플은 지금도 널리 쓰이는 플래시로 유명한 매크로미디어에서 만든 파이널 컷 프로를 인수했다. 아이무비보다 훨씬 전문적인 편집 툴이었던 파이널 컷 프로는 아비드나 프리미어보다 후발주자였지만 윈도우즈보다 안정적인 맥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차곡차곡 점유율을 높였고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전문 편집자의 절반이, 헐리웃 편집기사 조합원의 1/5이, 학생을 포함한 독립영화 제작자들의 80%가 사용할 정도로 영상 편집 업계의 강자가 되었다(주4). DV가 대중화 되면서 VJ 같은 1인 제작 시스템이 보편화되었는데 소형 캠코더와 매킨토시 랩탑이 든 배낭을 짊어진 1인 저널리스트의 모습을 보는 건 적어도 미국에서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주5).
4. 책상에서 손바닥으로 들어온 컴퓨터 -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음악을 듣고 소유하는 방식은 LP판과 카세트 테이프, CD를 거쳐 mp3 파일로 변화되어 왔다. 그 과정에서 인류가 음악을 향유하는 방식에도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과거에는 듣고 싶은 음악이 담긴 저장매체를 재생기에 집어넣고 집안 좋은 자리에 앉아서 편안히 감상을 했다면, 소니의 워크맨이 등장한 이후부터는 말 그대로 ‘걸어 다니면서’도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었는데 갖고 있는 모든 음악을 갖고 다닐 수는 없었다는 점이다. 음악 매니아들이야 테이프나 씨디를 여러 장씩 가지고 다니기도 했지만 대개는 아침에 갖고 나간 한 두 장의 음반을 하루 종일 듣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 전체를 수십 수백 번씩 반복해서 듣는 게 일반적이었고 그만큼 가수와 그들의 음악이 담긴 곡과의 거리는 밀접할 수 있었다. 그러다 난데없이 mp3 플레이어가 등장했고 음악을 소비하는 방법도 달라졌다.
1997년, 대한민국의 새한정보시스템이 최초의 휴대용 mp3 플레이어를 개발했다. 원천기술까지 보유한 한국 IT 업계의 앞날은 언뜻 창창한 듯 보였다. 수많은 후발주자들이 앞다투어 아류작을 내놓았지만 뛰어난 품질의 거원(코원)이나 레인콤(아이리버) 같은 회사의 신제품들은 전 세계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애플이 아이팟을 출시했다.
이전까지의 손가락만한 케이스에 담긴 메모리 기반 mp3 플레이어들이 몇 메가바이트 단위로 용량을 늘리기 위해 고전하고 있을 때 애플은 2001년에 5기가 바이트의 하드디스크가 담긴 담배갑만한 크기의 아이팟 1세대를 시장에 내놨다. 어쩌면 작은 크기를 지향하는 IT 업계 흐름에 반하는 결과였지만, 이후의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다. 소니나 삼성 같은 대기업의 일부 제품들만 간신히 목숨을 유지하고 있을 뿐 수 천 수 만 개의 mp3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멸종되었다. 복사기는 제록스, 굴삭기는 포크레인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mp3 플레이어를 부를 땐 아이팟이 대명사로 통용됐다. 한 번 시장을 장악하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무엇을 해도 먹혀들었다. 기존에 잘 나가던 PDA와 PMP 시장도 아이팟이 컬러 스크린을 도입하고 동영상 재생 기능을 도입하고 터치 기능을 집어넣고 앱 개념의 응용프로그램을 도입한 후부터 잠식되기 시작했다. 배스, 블루길, 황소개구리처럼 애플의 아이팟은 예쁘장한 생김새와 막강한 기능들을 앞세워 전 세계 소형기기 시장을 장악해갔다(*주6). 애플은 아이팟의 활약에 힘입어 1980년대 초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금 IT 업계의 선두에 등장했고 스티브 잡스도 화려하게 복귀했다.
2007년에는 그 유명한 아이폰이 등장했다. 이전에도 스마트폰은 존재했지만 사용법이 그리 쉽진 않았다. PDA에서 쓰이던 윈도우즈 모바일이 깔린 PDA폰은 컴퓨터의 프로그램을 사용하듯 설치방법이나 사용법이 까다로웠고 덩치는 손바닥보다 컸다. 또 모바일용 인터넷 사이트가 구축되어 있던 시절도 아닌 터라 조그만 화면으로 인터넷을 돌아다닌다는 건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는 뽐내기 이외에는 쓸모가 없었다. 그런데 아이폰이 등장하고는 판세가 달라졌다. 키보드, 마우스, 터치펜이 없이 두 손가락만으로 확대와 축소를 통해 인터넷을 둘러보는 건 이전까지 없던 새로운 체험이었다. 또한 출시 후 얼마 지나 외부 업체들에게 앱 개발을 허용하자 수십만 개 이상의 아이폰 전용 앱들이 쏟아져 나와 굳이 컴퓨터를 켜지 않고도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전화기와 아이팟과 컴퓨터의 통합은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현대인들이 늘 원하던 단순함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신의 한 수였던 셈이다.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가 해외에 있는 가족과 통화를 하고 주변에 피어 있던 예쁜 꽃의 사진을 찍은 뒤 색감을 손질하고 예쁜 장식용 스티커를 붙인 후에 메신저로 보내는 일이 1분 안에 이루어 질 수 있는 세상, 적어도 컴퓨터 중심의 사회에서는 전문가들조차 불가능한 일이었다.
2010년에 아이패드가 나왔다. 처음에는 단순히 아이폰을 뻥튀기한 기계였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이미 컴퓨터 시장에는 노트북보다 가벼운 넷북이 새로운 자리를 잡고 있었고, 스마트폰 시장에는 아이폰과 후발주자들이 자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었는데, 키보드도 없고 컴퓨터처럼 성능이 좋거나 활용도가 높지도 않은 기계가 어디에 필요하냔 반응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애플은 매년 수천만 대 이상의 아이패드를 팔아 치웠고 경쟁사들은 앞다투어 유사한 태블릿 제품을 내놓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스마트폰이 훌륭하긴 하지만 장시간 많은 자료를 봐야 할 상황에서는 작은 화면이 불편할 수밖에 없고 갈수록 화려해지는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모두 소화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손가락만으로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간편한 조작 방식은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컴퓨터에 대한 공포감 없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주었고 동영상, 사진, 게임을 비롯한 수많은 콘텐츠를 편한 자세에서 아무 때나 소비하는 데에 최적의 환경을 조성해주었다. 물론 거의 없다시피 한 부팅시간과 10시간에 이르는 배터리 사용시간도 빼놓을 수 없겠다.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에 자극받은 전 세계의 기업들의 신제품이 우후죽순 쏟아졌고 애플의 혁신을 능가하는 훌륭한 제품들도 끊임없이 출시되어 (구매할 수 있는 경제 능력을 지닌) 현대인의 삶을 나날이 ‘업그레이드’시켰다. 사람들은 더 이상 컴퓨터에 의존하지 않고도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게 되었고, 좋아하는 음반을 무겁게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으며, 추억의 명화를 보기 위해 동네 비디오가게에 갈 필요도 없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은 소형 카메라와 캠코더가 내장된 스마트폰으로 일상을 기록하고 공유하면서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보통사람’의 시선으로 대중에게 전달하는 능동적인 생산자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5. 기계만 파는 회사가 아니라니까! - 아이튠즈 스토어
애플의 휴대용 기기들이 잘 나가는 데는 각 기기의 성능과 예쁜 디자인의 영향이 지대했지만 한 발 뒤로 물러서서 보면 그보다 더 큰 계획(혹은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애플의 전 세계 콘텐츠 유통 경로 장악 계획이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갈 무렵에 냅스터라는 P2P 서비스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었다. mp3 파일을 인터넷상에서 공유하는 프로그램인데 특정한 공간에 올려놓는 것이 아니라 소유자와 원하는 사람이 1:1로 직거래를 하는 형태라 초창기에는 법이나 기술적으로 제재할 근거나 방법이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소리바다라는 유사한 서비스가 등장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음악파일을 무료로 공유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영상까지 공유할 수 있게 되어 컴퓨터를 조금만 쓸 줄 아는 사람이면 굳이 씨디를 사거나 비디오 가게에서 테이프와 디비디를 대여하지 않더라도 음악과 영화를 공짜로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자 음반업계와 비디오업계의 수익은 곤두박질쳤다. 2,3백만 장까지 팔던 유명 가수의 음반조차 십만 장 이하로 팔리게 됐고, 해외에서 미리 개봉했던 영화의 경우에는 한국에서 개봉하기 전부터 포털사이트에서 영화평을 볼 수 있었다. 부가판권을 비롯한 콘텐츠 시장이 전세계에서 위축되자 창작자들은 제대로 된 대우를 받고 싶다고 호소했고 해당 산업 종사자들은 이직을 고려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이르렀다. 음악, 영화, 드라마, 만화 같은 문화 콘텐츠는 공짜라는 인식이 일반인들 사이에 널리 퍼졌고, 제 돈 주고 씨디를 사고 디비디를 수집하는 사람은 어딘가 모자란 사람 취급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문화 콘텐츠 시장이 붕괴되고 있을 무렵 애플에서는 2003년에 아이튠즈 스토어를 개장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전 세계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수십 개 나라에서 스토어가 개설되자 각국의 애플 제품 사용자들의 적극적인 구매가 이어졌다. 급기야 2008년에는 미국의 온오프라인 도소매 업체를 통틀어 최대 판매자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했다(*주7). 이후 각 방송사의 TV쇼, 영화, 스마트폰 앱과 게임, 책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콘텐츠가 속속 입점하였고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사용자들은 아이튠즈 스토어의 끝없는 콘텐츠들을 (주머니가 허락하는 한) 마음껏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애플의 이런 성공은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접근 태도와는 꽤 다른 방식이라서 가능했다. 타 업체들이 법과 양심을 근거로 들어 불법이용자들을 비난하고 고발하고 서비스를 차단하는 데 치우쳤던 반면에, 애플은 합법적으로 유통되는 디지털 파일에 기본적으로 부착되던 복제 방지 기술인 DRM을 해제하면서까지 타 기기 이용자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하였다. 또 기존의 지배적인 오프라인 콘텐츠 공급자들이 아이튠즈 스토어에 입점하도록 쉬지 않고 협상했고, 타사보다 긴 미리 보기(듣기) 서비스를 제공하고 보너스 자료와 부클릿 PDF를 제공하는 등 아날로그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이용자들이 신용카드 정보를 미리 입력하게 만든 뒤에 구매할 때는 클릭 한 번이면 바로 자기 기기로 내려 받을 수 있는 쉬운(무서운) 인터페이스를 제공하여 소비자들의 두 번째로 큰 걸림돌(주8)인 ‘귀차니즘’을 철저히 제거해주었다.
6. 애플이 원하는 세상
애플의 위대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맥 컴퓨터를 사면 기본으로 딸려오거나 무료로 제공되는 프로그램 목록을 살펴보면 그들의 철두철미함을 알 수 있다.
• iTunes - 음악 관리 프로그램. 자기가 보유한 파일을 관리하고 CD를 집어넣으면 MP3 파일로 변환하면서 자동으로 인터넷을 통해 음반 정보를 가져와서 일일이 앨범명, 곡명, 표지사진 같은 정보를 입력할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아이튠즈 스토어로 들어가서 음악, 동영상, 책, 앱 주문을 쉽게 할 수 있다.
• iPhoto - 사진 관리 및 편집 프로그램. 사진을 관리하다가 여러 장의 사진을 모아 실물 앨범으로 만들고 싶으면 아이포토 안에서 꾸민 후 주문하기 버튼만 누르면 된다. 며칠 뒤 예쁘게 제본된 나만의 한정판 앨범이 우편으로 배송된다. 달력이나 연하장 같은 카드도 주문할 수 있다.
• iMovie -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 카메라에 담긴 사진과 동영상을 쉽게 편집해서 그럴싸한 결과물로 탈바꿈시켜준다. iDVD로 보내기 버튼만 누르면 DVD 제작까지 한 번에 끝낼 수 있다.
• iDVD - DVD 제작 프로그램. 전문적인 오소링 지식이 없이도 클릭 몇 번이면 내가 찍은 동영상에 메뉴와 예쁜 스킨을 입힌 뒤 DVD로 구울 수 있다.
• Garageband - 음악 제작 프로그램. 음악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이 없어도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샘플링 음원을 이용해 재미있고 그럴싸한 음악과 음향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미디 기능을 이용하여 손쉽게 홈레코딩까지 도전할 수 있다. 팟캐스트나 휴대폰 벨소리 제작은 보너스다.
• IBooks Author - 가장 최근에 나온 전자책 저작 프로그램. 애플의 전자책 프로그램인 iBooks에서 돌아가는 전용 전자책을 만들 수 있는 도구로, 파워포인트를 만지듯 글, 사진, 동영상을 집어넣으면 전문가가 만든 것 같은 디지털 교과서를 만들 수 있다. 출판사로 정식 등록만 하면 아이튠즈 스토어를 통해 무료/유료로 자신의 저작물을 전세계에 유통시킬 수도 있다.
이 목록을 보면 애플이 두 가지를 의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이런 프로그램들을 무료로 제공함으로써 더이상 자신들의 고객이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나누고 싶은 창작물을 직접 생산해서 유통까지 하는 생산자가 되기를 원한다는 점, 다른 하나는 한 번 고객이 되면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생태계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전자에 집중한다면 모든 이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는 민주주의의 핵심과 맞닿아 있으니 애플을 미디어 민주주의 혹은 디지털 민주주의의 전도사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고, 후자에 집중한다면 1984년 매킨토시 발표회장에서 상영했던 ‘1984’ TV광고(*주9)에서 경고했던 것처럼 애플을 하나의 제품, 하나의 유통 경로, 하나의 소비방식만을 따르게 만드는 디지털 전체주의 사회의 최전방 공격수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 되었건 한 번 애플이 제공한 달콤한 안락함에 길들여진다면 바깥으로 빠져나가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나오며
지금까지 애플에서 선보인 몇몇 기술과 제품을 중심으로 첨단 문명이 현대인의 삶에 미친 영향에 대해 설명했다. 기술의 발전 덕분에 우리의 일상은 편해지고 빨라졌으며 가벼워졌고 폭넓어졌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첨단제품 때문에 오히려 예전에 비해 불편하고 삭막하게 변하기도 했다. 퇴근하면 업무가 끝났던 과거에 비해 퇴근해서도 휴가지에 가서도 일거리를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되었다던가, 다들 각자의 기기에 파묻히다 보니 사람들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많은 정보를 손바닥만한 화면을 통해서만 접하다 보니 차분하게 폭넓고 깊이 있는 접근을 하기보다는 즉각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에만 반응하게 되고 사고의 속도와 방식조차 그에 맞춰 진화(혹은 퇴화)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술이 제공해준 기회까지도 무시하거나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스마트폰 한 대만 있으면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을 친구와 가족과 나눌 수 있고, 특별한 훈련이 없이도 영화감독이나 기자가 되어 자신의 생각을 다수에게 전달할 수 있고, 아이부터 어른까지 수많은 정보와 콘텐츠에 쉽게 접근하고 향유할 수 있다는 건 인류사에서 처음 맞이하는 기회다. 물론 아직까지도 경제적 문화적 이유 때문에 디지털 문맹과 디지털 격차 같은 한계점으로 지니고 있어 온전한 기회라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과거에 전문가와 일부 계층만 누리던 표현의 자유를 형식적으로나마 보편적으로 보유할 수 있게 된 것은 커다란 진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남은 과제는 인류가 깨문 이 사과를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이다. 일단 인류가 신기술의 맛을 본 이상 예전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 19세기 초의 러다이트 운동처럼 크고 작은 기기들을 일순간에 부숴 버릴 수도 없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더 이상 산속에서 ‘오프라인 상태’로 사는 것도 불가능하다. 단순히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기업가들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문명을 이용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진부한 비유지만 같은 칼이라도 의사가 잡으면 생명을 살리고 살인자가 잡으면 목숨을 앗아가는 것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용자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도구의 가능성과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정확한 목적을 갖고 사용한다면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는 첨단 문명의 역효과들을 최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표현하고 싶었던 상상력과 감수성을 어설프지만 글과 그림과 노래와 동영상으로 표현하고, 감시받는 대상에서 벗어나 체제와 기업을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전통적인 개념의) 소통의 부재라고 한탄하기보다 새로운 형태의 관계맺음과 소통 방법을 연구하고, 예전에는 시간이 지나면 잊혀졌을 사소한 것들까지 기록하고 보존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그저 작은 사례일 뿐이다. 어차피 호모 파베르(도구를 사용하는 인간)로 살아야 하는 것이 인류의 운명이라면 그 안에서 최대한 누리고 즐기면 되는 것이다. 이제 당신의 선택이 궁금하다.
이런 삶, 좋아요, 싫어요?
*주
1. 애플천지창조설: 모든 신기능은 애플이 처음 도입했다는 주장으로 스티브 잡스를 신격화하는 일부 애플 매니아(일명 애플빠)들이 자주 사용하는 논리이다.
2. 1950년대부터 마우스와 기본 원리와 기능이 유사한 제품들이 개발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기술자들의 시제품이었고,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과 유사한 생김새를 지닌 마우스가 1973년에 제록스의 연구소에서 개발되었지만 그 역시 시장에서는 볼 수 없는 상태였다. 이것을 우연히 본 스티브 잡스는 냉큼 이 장치를 자기 것으로 삼길 원했고 이후 애플2에 이은 매킨토시 기종에서 처음으로 ‘대중적으로’ 사용되었다.
3. GUI 역시 마우스처럼 제록스 연구소에서 개발되었지만 애플에서 정식으로 도입하기 전까지는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매킨토시에 처음 채택된 이후 그림 기반 작업환경은 거의 모든 컴퓨터의 기본 운영체제에 쓰이고 있다.
4. http://en.wikipedia.org/wiki/Final_cut_pro
5. 이런 엄청난 활약은 뛰어난 성능 덕분이기도 했지만 사과 로고가 그려진 랩탑이 등장한 헐리웃 영화의 활약이 더욱 컸다고 생각된다.
6. 막강한 기능은 맞지만 최신 기술은 아니었다. 애플의 특기는 앞서 언급했던 마우스의 사례처럼 기존의 기술을 적절히 잘 활용하는 데 있었다.
7. http://en.wikipedia.org/wiki/Itunes_store
8. 당연히 첫 번째 걸림돌은 가격이다. 아직까지도 시장이 안정화된 미국에서도 CD와 DVD 같은 유형 상품이 아닌 파일 다운로드 방식의 무형 상품에 대한 가격의 적정선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9. APPLE. ‘1984’ 광고. http://www.youtube.com/watch?v=VtvjbmoDx-I, MOTOROLA에서는 몇 년 전에 애플 제품의 독점을 경고하며 Apple의 ‘1984 패러디’ 광고를 내놓기도 했다. http://www.youtube.com/watch?v=m9UYOURsnR0 아쉽게도(?) 모토로라의 제품은 나오자마자 광고만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참고사이트 *
- 위키피디아 사이트 http://en.wikipedia.org
- 컴퓨터 역사박물관 http://www.computerhistory.org
해양학자-프로그래머-경찰-소설가를 거쳐 지금은 창작자라는 꿈을 10년 넘게 포기하지 않고 있다고 전해진다.
영화를 비롯한 각종 영상제작을 하고 있으며 가끔 학교안팎에서 젊은 학생과 늙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