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학교 현장에서 스마트교육을 연구하고 활용하고 있는 한 교사가 겪은 몇몇 사례들을 통해 스마트교육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이 무엇이고, 정책 당국이나 교사뿐만 아니라 학생의 입장에서는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갈수록 과거의 매체보다 새로운 매체의 매력에만 빠지는 청소년이나 뒤늦게 새로운 매체를 붙잡고 씨름을 하는 어르신들과 함께 하고 있는 많은 미디어교육 활동가들이 자신의 활동을 성찰하고 다시 한 번 미디어교육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2011년 봄, 병원 일을 하시던 어머니께서 출퇴근 체크 때문에 멀쩡한 핸드폰을 바꾸겠다고 하셨다. ‘출퇴근 때문에 핸드폰까지 바꿔야 하나?’라는 생각은 있었지만 상황이 그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지 않냐는 입장이었다. 며칠 뒤 어머니께서는 그 시기에 한창 광고에 등장하던 최신형 스마트폰을 들고 나타나셨다. 어머니는 이런 물건이 자신에게 무슨 필요가 있냐며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내셨지만, 스마트폰이 신기하셨던 모양이다. 그때 당시, 여전히 2G 폰을 쓰고 있던 아들에게 ‘음악은 어떻게 다운 받는 거냐?’, ‘홈쇼핑을 할 수 있다던데 어떻게 하는 거냐?“, ”종교서적 어플리케이션도 다운받을 수 있냐?“ 라며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내가 가르치는 어떤 아이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없었던 탐구욕이 환갑을 넘긴 어머니에게 발동했었나 보다. 그런 어머니에게 아들이 한다는 소리가 ”어머니, 그렇게 아무거나 다운 받으면 요금 많이 나와요. 그냥 전화하고 문자만 잘 보내세요.“ 어머니는 알았다고 하셨지만, 며칠 뒤 오셨을 때에는 원하셨던 모든 기능들을 요금부담 없이 사용하고 계셨다. 내가 스마트폰을 구입하고, 스마트한 세상에 눈을 뜬 이후에도 어머니는 ’보이스톡을 설치해라.‘, ’카카오 톡 친구를 찾을 때는 아이디만 입력해도 된다’며 가장 가까이에서 스마트폰 활용 도우미역할을 하셨다.
지금은 좁게는 우리 학교, 넓게는 전국의 학교에 스마트교육 선도교사라는 이름으로 소개 되지만,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둔감한 교사였다. 물론 지금 이 순간,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민감한 상태가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러한 변화를 어떻게 교육에 활용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감각이 예민해진 상황이다.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기존 2G폰의 약정을 몇 개월 남긴 나에게 스마트폰을 구입해야한다는 영감을 준 것은 한편의 광고에서 비롯된다.
CEO에게 이것은 힘이며, 교사에겐 미래일 것입니다.
아이에게는 아마도 신기한 세상이겠죠.”
당시의 모 회사의 스마트패드 광고 대사였다. 이때 내가 주목한 것은 ‘교사에겐 미래일 것입니다’라는 문장이었다. 몇 번을 곱씹어 생각해봤다. ‘왜 교사에게는 미래일까?’, ‘과연 그 미래는 올 것인가?’ 여러 가지 생각들이 테크놀로지에 대한 민감성을 자극한 순간, 나는 기존에 사용하던 핸드폰의 약정 기간을 한 달 남겨둔 채, 스마트폰을 구입하게 되었다.
스마트폰을 구입한 것이 스마트교육의 시작을 설명하진 않는다. 여전히 스마트교육에서 논란이 되 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것이다. “스마트교육=스마트기기 활용교육” 이는 참인가, 거짓인가?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기기 활용교육이 곧 스마트교육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나는 스마트폰을 수업시간에 적용했던 과거의 수업들을 스마트교육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말 그대로 그건 스마트폰을 활용한 수업이었다. 내가 스마트폰을 수업에 활용하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던 것은 아주 실용적인 생각에서였다.
그 첫 번째는 ‘노트북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는 스마트폰의 화면을 교실의 대형화면에 띄워 보자’는 생각이었다. 우리나라에 ICT활용교육이 도입된 이후 모든 교실에 컴퓨터가 설치되고 인터넷도 사용할 수 있지만, 관리 소홀과 기기의 노후화로 작동하지 않거나 작동되더라도 부팅시간이 길어 수업에 차질을 빚는 경험을 종종 하게 된 터였다. 반면에 스마트폰은 부팅을 새로 할 필요도 없고, 내 폰을 내가 관리하고 있으니 작동 오류로 수업을 그르칠 일도 적었다.
두 번째 생각은 스마트폰으로 조작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이 수업을 더욱 풍성하게 할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그 당시, 나는 밤마다 ‘마켓’에 들어가 수업에 활용할 어플리케이션을 검색하는 습관이 있었다. 수업과 관련한 주제를 몇 가지 입력하면 제법 쓸 만한 도구들을 얻을 수 있었고, 실제 수업에서도 성공적인 경험을 하였다.
생산양식이 이를 담보하지 못할 때 새로운 생산양식이 나타난다.”
수업에서의 성공적인 경험과 함께 주목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사회변화와 관련된 것이었다. 사람들의 생산에 대한 본능, 공유에 대한 본능이 실현가능한 환경을 만나게 되면 비로소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키리란 희망에서였다. 그것은 적은 비용으로도 아이디어와 능력이 결합한다면 부를 창출하고 사회적인 효용을 발생시킬 것이다. 칼 막스가 말한 대로 스마트한 세상은 생산력의 폭발적인 증가를 가져올 것이 분명한데, 우리의 아이들이 기기나 어플리케이션의 소비자로 머무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도 작용했던 것 같다.
거의 대부분의 수업에서 스마트폰은 나에게 가장 가까운 수업도구였다. 또한 PPT나 프레지를 굳이 만들지 않아도 기기가 주는 여러 효과만으로도 멋진 수업을 할 수 있었으니 수업준비시간을 줄여주는 똑똑한 도구이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은 한 반에 10명 남짓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프로젝트 수업도 했으니 주변으로부터 스마트폰을 너무 혹사시키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과연 이러한 수업들에 아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학기말에 아이들에게 설문결과는 이러하였다.
“스마트폰으로 해서 그런지 더욱 흥미가 생겼다.”
“스마트폰으로 수업을 해서 그런지 더 많은 자료를, 보다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위의 반응들은 도구가 주는 장점이기에 충분히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그것이 아이들의 성적을 높였는지는 조사해보지 않았지만, 적어도 스마트기기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기에 맛볼 수 있는 ‘신기효과’가 학생들의 흥미를 높이는데 작용한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점은 교사의 테크놀로지 활용경험이 학생들에게도 학습되었으리란 희망이었다. 스마트폰 중독이 심각한 상황에서 학교에 스마트교육을 보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질문에 대해 내가 답할 수 있는 건 “어른의 일상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십시오”이다. 학생들이 접하게 되는 스마트한 세상을 하늘이라고 한다면, 이를 손바닥으로 가린다고 한들 하늘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즉, 학교에서 스마트교육을 실시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들이 스마트 세상을 경험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스마트기기를 올바르게 또는 적절하게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들도 알게 모르게 배우게 될 터이니 일부에서 우려하는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이 학교에서 스마트폰으로 수업을 하고 있어서 우리 아이가 스마트폰을 더 많이 쓰는 것 같다는 민원은 없었으며 오히려 ‘우리 아이가 선생님 수업을 좋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해요’라는 부모님들의 감사인사는 받은 바 있다.
그러한 감사인사보다도 나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학생의 반응은 따로 있다.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실생활에 도움 되는 공부를 한 것 같아서 정말 좋았어요.”
이 글을 쓴 학생은 수업시간에 얼굴을 거의 볼 수 없을 정도로 수업에 관심이 없던 학생이었다. 어쩌면 ‘차라리 자는 게 나은 편’에 속하는 학생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학생이 서서히 수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것이 무엇 때문이든 그 결과는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일상생활에 적용해보았다.’ 한국의 교육여건 상 학교와 지역사회 간, 이론과 현실간의 괴리는 학생들을 수업에서 멀게 하는 요인이었다. 그런데 소위 학습부진아라 불리웠던 이 학생은 수업시간에 소개받은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 받아 실행해 보며 학습내용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이 학생은 2학기에 들어서며 눈에 띌 정도로 수업태도가 달라졌고, 학기말고사에서는 한 문제도 틀리지 않는 기적을 선보인데다 내친김에 교내 퀴즈쇼에 나가 손에 꼽히는 성과를 거머쥐었다.
교사 1인 디바이스 상황에서 얻은 수업효과는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그것이 스마트기기에서 기인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한 축을 담당했다고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이들은 나에게 ‘학교 사상 최초로 스마트폰을 이용한 획기적인 수업방식을 시도한 선생님‘이라고 칭하였고, 평범한 교사를 자아도취시키는 매력적인 말이었지만 이는 분명 오류였다. 내가 스마트폰을 통한 작은 실험에 만족하고 있을 때 이미 오래전부터 학교현장에서 적지 않은 선생님들이 사례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더욱이 스마트교육 정책이 교육부에서 발표되고, 2012년부터는 교육환경의 변화에 관심을 갖고 실천해온 선생님들의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이 공동체의 시작은 정부의 제도와 지원이 한몫을 하였지만 정부의 관심이 줄어든 요즘에도 새로운 시도와 훈훈한 사례들이 교류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교사들의 학습공동체가 SNS 공간에서 시작된 것이다.
SMART교육. 이 글에서 가급적이면 논하려 하지 않았던 글자를 꺼내들었다. 이 말은 S(Self-Directed), M(Motivated), A(Adaptive), R(Resource free), T(Technology embedded)를 나타내는데, 자기주도적이고, 흥미로우며, 학생의 수준과 적성에 맞고, 풍부한 자료와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는 학습을 뜻한다. 세상에는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여 스마트기기를 보급하는 정책으로 알려진 측면이 없지 않지만, 실제 추구하는 바는 교육환경의 변화였다. 그 변화 속에는 교육주체들 간의 역동적인 상호작용, 다양한 교수, 학습 방법의 적용과 같이 기존의 교육을 개선해보고자 하는 노력이 숨어 있다. 실제로 주인 역할을 하고 있는 노력들이 숨어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일각에서는 스마트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교사들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사들이 모든 준비가 되어 있어야 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즉, 교사들이 10을 알고 있어야 학생들에게 10을 가르칠 수 있다는 논리는 구시대적 발상이다. 교사들이 알아야 할 것은 스마트교육이 지향하는 철학과 이러한 철학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이지 도구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의 유무는 결코 아니다.
2012년 겨울, 중학교 3학년들의 소축제를 준비하게 되었다. 그 축제의 가장 큰 이벤트는 학생들이 학급별로 영화를 제작해서 영화제를 꾸미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시나리오에 관한 수업을 국어시간에 배운 적이 있었고, 영화의 영상미에 대한 내용을 미술시간에 간단히 살펴본 바는 있을 테지만 영화를 직접 촬영하고, 편집하고 발표한 경험은 전무한 상태였다. 이를 주도한 나 역시 무비메이커 편집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 조언을 해줄 처지는 못 되었다. 그래도 학생들에게 ‘무비메이커 사용방법’이 궁금하거든 언제든지 오라고 하였지만, 자신들의 영화를 발표하는 순간까지 단 한명도 찾아오지 않았다.
학생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을 사용해서 영상을 찍고, 나름의 편집도구로 편집도 하고, 음악을 삽입해서 멋진 영화를 만들었다. 모든 학생이 참여해서 중학생의 일상, 중학생들이 보는 사회의 모습 등을 표현하였고, 영화제가 끝나고 일부의 학생들은 유튜브에 영상을 공유하기 하였다. 이는 우리학교 학생들에게만 나타나는 모습은 아닐 것이다.
청심국제학교 학생들은 ‘오픈놀로지’란 온라인 공간에 자신들의 지식을 영상에 담아 세상에 공개하고 있고, 초등학생들을 위한 ‘학습놀이터’에서는 ‘지식나눔대회’란 이름으로 동료학생들에게 내용을 설명하는 영상을 촬영하여 공유하고 있다. 즉, 아이들에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시간과 공간 그리고 분위기), 교사의 철학과 지원이 함께 한다면 얼마든지 자신들의 능력과 개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신념이 어른들에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페이스북 친구들의 관계도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사용한 적이 있다. 페이스북 친구 중 친구수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사진이 크게 확대되어 나타난다. 나의 관계도를 살펴보니 크게 두 축으로 구분이 되는데, 한 축은 스마트교육 분야에서 활동하는 ‘어른’들이고, 다른 한축은 바로 내가 직,간접적으로 가르쳤던 ‘아이’들이다. 그 프로그램의 설정을 바꾸면 영향력(페이스북 친구 수) 있는 80명의 페이스북의 친구들만 나타나는데, 그 속에도 대다수의 학생들이 포함된다. 날이 갈수록 학생들의 페이스북 친구요청이 오는 걸 보면 소셜 미디어가 어른들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20년 전 박노해 시인의 ‘아직과 이미 사이’라는 시를 좋아하는 선생님으로부터 소개받았다. 어린 시절, 그 시를 읽으며 민주화를 부르짓던 선배들의 고뇌를 떠올린 경험이 생각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스마트교육을 논하는 지금, 그 시를 다시 꺼내어 본다.
겨울 속에 들어찬 햇봄 처럼 / 현실 속에 이미 와 있는 미래를...(중략)...
저 아득하고 머언 아직과 이미 사이를 / 하루하루 성실하게 몸으로 생활로 /
내가 먼저 나 은 세상을 살아내는 / 정말 닮고 싶은 좋은 사람 /
푸른 희망의 사람이 되어야 해.
스마트교육이 우리의 학교에 도입하는 것이 ‘아직’ 이르다고 말할 때, ‘이미’ 우리 아이들에게 와버린 미래를 보게 된다. 스마트교육이 담고 있는 철학 중 중요한 축이 ‘나눔’과 ‘공유’ 에 있다고 할 때,아이들의 미디어 활용기회는 더욱 높아지게 될 것이다. 이제는 한 명의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 교육의 본질에 해당하는 ‘정말 닮고 싶은 좋은 사람’으로서 이 세상의 스마트한 도구들을 슴하트하게 사용하도록 안내해야 할 시기이다. 적어도 미디어에 관심을 갖고 있는 어른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푸른 희망의 사람으로서!’ □
* 주1
- 정부는 2007년부터 디지털교과서 개발 사업을 시범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디지털교과서 상용화 방안」을 수립 및 발표하고 2013년에 상용화를 목표로 디지털 교과서 개발 시범 적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왔다. ‘교육과학기술부 ‘스마트교육 추진 전략 실행계획(안)_오픈정책설명회 자료집’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