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지난 2012년 7월부터 시작된 미디어운동 기획대담이 어느 새 1년을 훌쩍 넘어 다섯 번째 대담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번 대담의 주제는 '독립영화 배급운동'으로, 전 독립영화배급지원센터 소장이셨던 원승환 독립영화전용관 확대를 위한 시민모임 이사님과 최민아 인디다큐페스티발 사무국장님께서 참여해주셨습니다. 겨울 공기가 느껴지기 시작한 10월의 어느 저녁, 해외 출장 직후 초롱초롱한 눈의 최민아 국장님과 독립영화계에 대한 애정 가득한 눈빛의 원승환 이사님이 대학로의 조용한 카페에서 두 시간 여에 걸쳐 나눈 이야기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원승환 (이하 원): 바쁜 시간 내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최민아 (이하 최): 네, 바쁘신 시간 내어주시고 일정을 맞춰주셔서 고맙습니다. (웃음)
말문 열기 혹은 마음열기 - 근황 토크
원: 최근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이하 야마가타영화제)에 다녀왔다고 들었는데 어땠나요? 한국에서 인디다큐페스티발 운영을 하면서 해외 영화제는 처음 가본 거였을 텐데…
최: 야마가타영화제는 오래 전부터 사람들로부터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었는데, 보통 좋다더라 그런 느낌과는 다른 ‘좋음’이 있었어요. 도시가 주는 느낌, 사람들이 주는 느낌, 그런 것들이 특별해보여서 대체 어떤 영화제인지 항상 궁금했어요. 예전부터 오정훈 집행위원장님도 한 번 가자는 말을 많이 했지만, 그럴 만한 여건이 안 되니까 미루고 있다가 (원: 돈이 없으니까?)… 네 (웃음)… 여전히 돈이 없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지금 가보는 게 좋겠다 싶어서 마음을 먹고 둘이 다녀왔어요.
가봤는데 일단은 그냥 좋았어요. 해외 영화제 처음 가 본 거였고, 영화제 일 오래 하면서 해외영화제 가보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이 있었으니까. 어떤 게 좋았냐면… 영화제가 큰 영화제인데도 작은 느낌이 있다는, 그 두 가지가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야마가타영화제가 다큐멘터리 영역 안에서 국제적으로도 잘 자리매김한 영화제고, 가서 보니까 실제로 외국에서도 관계자들이 많이 왔더라고요. 국제적으로 25년 동안 잘 쌓아 놓은 큰 영화제라는 생각과, 그런 큰 가운데에서도 소소한 느낌이 있었어요. 일하는 사람들도 그렇고 영화제 분위기라든가 도시가 주는 느낌일 수도 있는데, 그런 느낌이 동시에 들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신기했어요.
한국의 경우 제가 느끼기에는 영화제가 감독 중심인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야마가타영화제의 경우 관객과 감독과 영화제를 만드는 사람들이 모두 다 잘 보이는 영화제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요란한 느낌이 아니면서도 활발한, 그런 느낌이 있었는데 꽤 놀라웠어요. 세계 각지에서 감독들이 오니까 감독들이 잘 보이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관객과 일하는 사람들이 같이 다 잘 보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관객들의 참여가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그게 능동적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아요. 영화를 마치고서 공식 GV가 없는 날에는 항상 다른 곳으로 옮겨서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거든요. 다른 장소로 이동해야 했음에도 관객들이 줄지어서 같이 가더라고요. 게다가 자원활동 하시는 분들 중에 오랫동안 계속 해오신 분들이 많으셨어요. 노하우가 쌓인 덕인지 행사 진행도 너무 잘 하시고… 한국에서는 영화제 스탭이 하는 일들을 사실상 거의 대부분 자원활동가 분들이 하고 있었어요. 영화제의 중요한 일들이 그 분들 중심으로 진행되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원: 아무래도 야마가타가 큰 도시가 아니니까 그런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에 도쿄국제 영화제에 간 적이 있었는데, 야마가타영화제의 경우 소박하지만 활기찬 느낌이었다면, 도쿄영화제는 화려하려고 애를 쓰는데 정말 작은 영화제라는 느낌이었어요. 예산은 진짜 많이 쓰는 영화제지만, 아무래도 도쿄잖아요. 그 당시 상영장이 록본기와 시부야로 나눠져 있었는데, 도쿄의 다른 곳에서는 영화제 기간이라는 것을 전혀 느낄 수 없고 시부야 분카무라 백화점이나 록본기 힐즈 같은 상영장 근처에 가야 ‘영화제를 하는 구나’ 이런 느낌이었어요.
아무래도 서울이나 도쿄는 문화적인 행사가 많으니까… 그런 것에 비하면 야마가타라는 작은 도시에서 개최하는 영화제고, 게다가 다큐멘터리라는 영화를 다루고, 지역의 오래된 행사이니 사람들도 익숙할 테고, 계속 거기 살고 있으면 자원활동을 하는 게 자연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서울에서 그런 분위기가 나도록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작은 도시에서 지역 단위의 국제영화제를 한 경험이 거의 없잖아요. 그런 분위기를 야마가타영화제에 가서 느끼고 싶다는 생각은 있지만 아마 (야마가타에) 갈 일은 없지 않을까… (웃음)
야마가타 영화제는 영화제 외에도 다양한 일들을 하는데, 인디다큐에서도 다양한 행사를 많이 하잖아요. 정기 상영회도 하고 순회 상영회도 하고. 야마가타 영화제를 보면서 지금 하는 일과 관련해서 자극을 받았다거나 그런 게 있었어요?
최: 가장 크게 생각했던 거 하나만 이야기해보자면, 예전에는 상영하는 것의 중요성, 의미에 대해서만 주로 생각했었는데, 야마가타 영화제에 가 본 후에는 조금 다른 식으로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국내 영화제에서도 섹션별로 책자를 내거나 그러긴 하지만, 야마가타 영화제는 그런 정리가 정말 잘 되어있더라구요. 90년대 책자부터 한데 모아서 볼 수 있게 펼쳐두고 판매를 하는데, 그걸 보니 영화제에 어떤 흐름이 있었는지, 어떤 것들을 중점적으로 다뤄왔는지 하는 것들이 잘 보여지는 게 좋았어요. 사실 우리는 그런 것들이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어져오고 있다는 느낌이 거의 없잖아요. (상영 외에도) 아카이빙을 통해서 역사를 잘 이어오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고요.
원: 그러게요. 나 역시 한국에서 독립영화 일을 하면서 뭔가 전통이 쌓이는 맛이 없구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사람이 빠져 나가면 어떤 일이 있었고 이 사람이 어떤 경험을 했었고, 이런 것들이 이어지지 않잖아요. 다시 그 고민을 새롭게 시작하고, 어떤 일을 했는지 이런 것들이 소중하게 남아 있지도 않고, 결국 계속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다시 고민을 해야 하는 거죠. 비단 영화제 뿐 아니라 독립영화 여러 분야에서 아카이빙하고 자료를 모아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이런 작업들이 너무 빈약하구나, 이런 생각들은 늘 있었어요.
특히 독립영화 배급 일을 하면서 그런 것들이 많이 느껴지더라고요. 과거에 선배들도 영화를 만들고 나면 상영하고, 배급이냐 보급이냐 논쟁도 하고, <파업전야>도 대학가에서 많이 상영 됐는데 그런 것들이 어느 순간에 확 사라지고 단절되고 없잖아요. 그리고 이후에 새로운 사람들이 다시 새로운 영화를 가지고 새로운 고민을 시작해야 하는. 지금도 과거의 사람들의 경험이나 그런 것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가, 이런 것들에서는 좀 아쉽지 않나…물론 새로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그렇다고요. (씁쓸하게 웃음)
최: 요즘 저도 다른 분들과 함께 다큐멘터리 관련한 연구 모임을 하고 있는데,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거든요. 남아있는 자료가 너무 없다, 공부를 하려고 하든, 일을 하려고 하든 남아 있는 것들이 너무 부족하다…
원: 그런데 나부터도, 일하는 건 하겠는데 정리하는 작업은 정말 힘든 것 같아요. 평가도 해야 되고 글 써야 되고, 하지만 그런 작업이 중요한데. (최: 그렇죠.) 독립영화 배급을 하려고 해도 레퍼런스도 없고 어디 물어볼 데도 없고, 그런 답답함을 해결하려면 어느 때에는 정리가 되고 쌓여야 될 텐데… 최국장이 하세요. (웃음)
독립영화 배급운동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 분화를 위한 움직임
원: 최국장은 어떻게 독립영화 배급 진영에 발을 들이게 됐나요? 어쩌다가 이쪽에…
최: 음… 저는 서울독립영화제 자원활동을 하면서 처음 참여를 했고요, 원래 영화 보는 걸 좋아했는데 영화제 보러 다니면서 독립영화를 알게 돼서 이후에 많이 보러 다녔거든요. 그러면서 이 영화들이 좋은 줄 알겠는데 사람들이 접할 기회가 제한적인 게 아쉽다는 생각이 계속 있었어요. 이 영화들을 사람들이 좀 많이 봤으면, 그리고 제가 많이 볼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는…(웃음)
원: 아, 바람직한 생각이네.
최: 저는 이런 영화들이 좋은데 사람들도 좀 더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거죠. 영화제를 통해 시작했고 그러면서 비영리활동이 익숙해지다보니 배급사보다는 영화제로 자연스럽게 마음이 갔던 것 같아요. 그렇게 시작하게 됐어요.
원: 인디다큐페스티발 사무국장 제안을 받았을 때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최: 그렇죠.
원: …내가 드디어 강호에 나가서 뜻을 펼치리라.(모두 웃음) 나도 비슷했어요. 정말 좋은 영화들이 있는데 볼 데가 없으니까 나 역시 그런 것들을 보려고 찾아다녔고, 내가 사람들에게 이런 영화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이 일을 해야 되겠다 싶었던 거죠.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는 영화들의 상영회를 조직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심의를 받지 않아서 결국에는 저작권 위반이 되는 독립영화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뭔가 의미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90년대에 사설 시네마테크 일을 시작했던 거죠.
옛날에는 단편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 있으면 여러 번 찾아갔는데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내가 어느 순간에 그 일을 직접 하고 있더라고요. 그 때는 사람들도 많이 왔어요. 98년도 초에 서울단편영화제라든가 <변방에서 중심으로> 상영회 등을 하면 100명 넘게 오고 그랬어요. 그래서 아, 정말 내가 이 사회에서 보람된 일을 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죠. 지역에서 활동하는 감독들 영화도 상영하고 그런 게 좋았죠.… 하아… (웃음) 그러고 보니 비슷한 이유로 일을 시작하게 됐네요.
그런데 사람들이 최국장님 영화 안 만드세요, 그런 거 안 물어봐요?
최: 엄청 많이 물어봐요.
원: 뭐라고 대답하세요?
최: 저는 만들 생각이 없다고 대답해요. 그런 이야기 진짜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영화에 대한 꿈이 있다고 하면 다들 ‘(내가)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거고 그래서 영화제 일을 한다’고 생각을 하는 게 싫은 거예요. 저는 영화 제작을 하고 싶어서 여기 잠깐 있는 게 아니라, 이 일 역시 하나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이 일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서 하고 있는 건데, 종국에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하는 게 되게 싫었어요.
원: 내가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영화 제작 외에도 필요한 일이 있으니 이 일을 하는 사람들도 물론 의미가 있지만, 영화를 만드는 것 말고 독립영화 관련된 여러 가지 일들이 있는 거잖아요. 영화관도 있고, 영화제도 있고, 배급, 홍보나 비평, 정책연구, 사이트 운영 같은 일들. 사실 독립영화가 영화제도 안에 있는 거라면 일반적인 영화제도 안에 있는 모든 영역들의 활동이 다 필요한 건데, 지금까지는 영화 만드는 사람이 이런 활동들을 다 해왔기 때문에 제작 이외의 분야에 대한 역사와 전통이 쌓이지 않고, 경험이 지속되지 않았던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이 일을 하다가 이제 영화를 해야겠어, 하면서 가버리면 다른 사람이 채워서 그냥 해야 했으니까. 최국장처럼 영화 제작 이외의 일들에 대한 의미 혹은 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이런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독립영화 역시 보다 다양한 영역이 전문화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사람은 각자의 주 종목이 있어야 돼요.
원: 나는 사실 독립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잘 이해가 안 돼요. 영화를 만드는 데는 돈이 들어가잖아요. 영화 제작에 대한 욕구가 없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집에 돈도 없고 돈을 벌 수도 없는데 왜 돈을 모아서 영화를 만드는 걸까… 그런 심리가 잘 이해가 안 돼요.
어느 순간 보면, 집에 돈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사람들이 또 독립영화를 해요. (모두 웃음) 돈 있는 사람이 독립영화를 하면 먹고 사는 데 문제는 없을 건데… 그런 사람들 보면 솔직히 좀 안타깝다고 느껴요. 왜냐하면 없이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내가 경험해서 아니까요. 이렇게 나름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그 결과물로 경제적 보상을 받게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들어요. 내가 독립영화 관련해서 배급, 유통, 투자나 소통, 온갖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데, 그 배경에는 그런 안쓰러움도 있어요. 스스로는 돈을 버는 게 싫을 수도 있지만, ‘왜 저 사람이 내가 원하지도 않는, 영화를 통한 돈벌이를 생각하게 하는 걸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래요.
감독들이 처음부터 독립영화를 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내가 알 길이 없는- 표현 욕구 때문에 영화를 만들잖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예전에 인디포럼 등에서 영화를 상영했던, 같이 활동했던 사람들 중에서 더 이상 영화를 만들지 않게 되는 경우도 정말 많아요.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없어져서 안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돈이 안 되니까 더 이상 그렇게 살 수 없어서 그만 두는 사람도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 고민을 했던 독립영화 쪽 선배도 알고 있고요.
(그런 경우들을 보다보면) 독립영화를 만들어서 먹고 사는 일이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가능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내가 가끔 독립영화 산업에 대한 글을 쓰기도 하는데, ‘산업’이라고 하면 뭔가 자본에 종속되어 있는 인상을 주고 독립영화라면 쓰지 말아야 될 말인 것 같잖아요. 그렇지만 ‘산업’이라는 말은 ‘그 활동을 업으로 해서 생존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영역’을 뜻하는 거예요. 독립영화가 경제활동, 즉 업이 된다면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을 거 아니에요. 제작 - 배급 - 상영 - 관람으로 이어지는 프로세스를 부르는 이름이 산업인 거예요. 어떻게 보면 당연해 보이는데, 이런 말들을 여러 가지 이유로 거부하면서 정작 영화 제작의 전통이라든가, 꾸준히 독립영화를 하는 사람을 만들지 못하고, 개인이 먹고 사는 문제는 알아서 해결하도록 해 버린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독립영화인들이 그런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싶어요. 특히 배급의 문제라면 그런 고민들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독립영화 무상배급운동을 하는 게 아니니까요.
2013년, 독립영화 배급 전략은 적절한가
원: 인디다큐 페스티발의 경우 지금 영화제 외에도 인디다큐 순회상영, 정기상영회를 하고 있는데, 그런 일들을 하는 이유 혹은 성과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가 궁금해지려고 해요 (웃음)
최: 지금 정기상영회의 경우에는 3년 정도 됐고, 순회상영은 작년부터 시작해서 진행하고 있는데, 영화제는 한시적인 기간 동안 상영하는 거라서 볼 기회가 너무 제한적이잖아요. 상영회를 자주하지는 못하더라도 정기적이고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에서 두 개의 정기상영회를 만들었어요. 기간 뿐 아니라 지역의 제한도 있으니 다른 지역에서 상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면 좋겠다, 싶어서 순회상영을 시작했던 거구요.
정기상영회나 순회상영 모두 상영을 확대하는 기회를 만들었다는 의미는 있다고 봐요. 그런데 하다 보니 그게 전부가 아닌 거예요. 상영회들이 사실상 적지 않고, 상영 기회를 많이 만드는 게 일차적으로 중요하기는 하지만 어떻게 관객이 잘 보게 할까, 에 대한 노력은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점점 하게 되는 거죠. 상영 기회를 만들어 냈으면 그 다음 단계로 다른 상영들과 차별점을 확보해서 관객들이 좀 더 찾을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기회를 만드는 선에서 유지되고 있다는 느낌이 커서, 그게 고민이에요.
원: 근데 차별화한다는 건 어떤 거예요?
최: 상영회가 다 비슷비슷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의례적으로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 것 같은 상영 형태의 이야기일수도 있고, 또는 상영하는 영화도 일정한 시기에 어떤 흐름이 있는 것 같고… 그런 비슷한 지점이 많은 것 같아서요.
원: 저도 그런 걸 느껴요. 사실 정기상영회라는 게 지금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한 독립영화 진영 내의 평가가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고. 또 하나는 순회상영회 하잖아요. 인디애니페스트, 인디다큐페스티발, 퀴어영화제, 아시아나단편영화제, 서독제(서울독립영화제) 등등 많은 영화제에서 순회상영을 해요. 상영회를 한 지가 영화제에 따라서 10년 된 경우도 있고 얼마 안 된 경우도 있을 텐데 처음과 비교해서 지금 어떤가, 이런 것도 평가를 하고 토론을 해 볼 필요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자리는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서로 모르는 사람들인 것도 아니잖아요. 서독제나 인디다큐페스티발은 같은 사무실을 쓰고 있는데, 그런 것에 대해 사무실 내에서 대화를 해보지는 않나요?
최: 작년에 인디다큐페스티발 순회상영회 시작하면서 서독제가 오랜 경험이 있으니까 준비하는 과정에서 의견을 구하는 등의 논의는 많이 했었어요. 서독제도 지역 상영에 대해 고민이 많으시더라구요.
원: (상영회가) 옛날에는 잘 됐는데 지금은 잘 안 된다면, 제가 볼 때는 희소성이 없어서인 것 같아요. 2007년 이전과 그 이후, 특히 2009년 이후가 되면 독립영화가 거의 매일 전국의 한 곳에서 상영되고 있고, 2010년 즈음부터는 예술 영화관에서 독립영화도 많이 개봉하잖아요. 그만큼 개봉 편수도 늘었고, 영화관도 늘어난 거죠.
그 이전까지는 독립영화를 보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정기상영회를 하면 1년에 한 번 상영되거나 그런 희소성이 있었는데, 지금은 정기상영회가 많이 열려요. 제가 인디스페이스 개관할 때만 해도 한 개 스크린에서 많은 개봉 영화들을 포괄할 수 없기 때문에 주별로 개성 있는 상영회를 하곤 했었는데, 지금은 -서울만 놓고 보면- 독립영화를 볼 수 있는 데가 생각보다 꽤 있어요. 물론 충분하다고 말하기는 좀 그렇죠. 그런데 대부분의 행사가 독립영화 상영관이나 시네마테크, 한국영상자료원… 그런 공간에서만 이루어져요. 정기상영회가 뭔가 이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이런 느낌이 더 이상 없어요.
최: 맞아요.
원: 게다가 상영하는 것도 다 비슷비슷해요. 이게 재미다큐에서 하는 건지,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하는 건지, 독립영화 쇼케이스에서 하는 건지… 10월만 봐도 <주님의 학교>가 세 번 이상 상영되는 것 같던데…
최: 감독님들도 헷갈려하시더라구요. (웃음)
원: 이런 계열의 행사가 너무 많이 진행되고 있어요. 관객들이 많이 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독립영화 상영이) 필요하다 혹은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영화관이 없거나 개봉하지 않을 때의 동력으로만 계속 가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요. 독립영화협의회가 하는 독립영화발표회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하잖아요. 그러다보니 가끔 다른 영화를 상영하기도 하지만, <아버지의 이메일> 등 인기 있는 영화도 종종 상영되죠. 그러다보니 인기 있는 영화들은 계속 반복돼서 이제 개봉을 해도 신작이라는 느낌이 없어요. 관객이 많이 늘어나지 않는, 게토화된 상황에서 영화의 매력이 그런 식으로 깎여 가는 거죠. 공개하는 순간의 임팩트가 사라지는 거예요.
순회상영의 경우 지역의 입장에서 보면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이 1년에 한 번 오는 거예요. 매우 소중한 기회이고, 영화제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로드쇼를 하는 거잖아요. 하지만 메인 영화제를 할 때 들이는 예산이나 홍보 노력에 비해서 지역상영회를 할 때 그 만큼 비용을 들이거나 그만큼 홍보를 하지 않는다는 느낌이에요. 영화제 홍보할 때 트위터, 페북에 몇 번 올리고 끝. 이렇게는 안 하잖아요.
게다가 지역 상영회에 직접 가보지는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지역에서도 예전만큼 순회상영회를 의미 있는 기회로 받아들이는가 하는 의문도 들어요. 지역미디어센터 같은 곳에서 공간이 있으니 상영은 할 수 있지만, 과연 그 미디어센터 사람들이 포스터도 열심히 붙이면서 할까 싶기도 하고요. 오히려 지역의 경우 미디어센터다, 대학이다 해서 공간 찾기는 쉬워졌지만, 과연 지역에서 내 일처럼 홍보를 하는지, 서울에서도 홍보를 위한 서포팅이 되고 있는지가 궁금해요. 그렇지 않다면 관객이 오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요.
어쨌거나 여러 영화제가 일을 하고 있고 여러 사람들이 그런 상영회들을 하고 있으면 한 번쯤은 냉정한 평가를 해보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에요. 여전히 정기상영회는 필요한 일일 수 있죠. 다만 서울이 아니라 안동이나 충주나, 독립영화를 영 볼 수 없는 그런 곳에서 필요한 일일 수 있겠지만, 지금 대한민국 서울에서 지금처럼 하는 게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들고, 서울에서 정기상영회를 한다면 이미 접근하기 쉬운 공간과 방식이 아닌, 다른 공간을 찾고 단지 상영만이 목적이 아닌 방식의 상영이 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감독과의 대화도 사실 너무 흔해요 이제. 상업영화들도 다 하는데.
그런데 인디다큐페스티발이 정기상영회를 하거나 영화제를 하거나 지역 순회상영을 하는 건 독립영화 배급활동이라고 생각을 해요?
최: …?
원: 생각할 시간을 줄게요.
짧은 휴식 시간이 끝나고, 원승환 이사님과 최민아 국장님이 다시 마주 앉았다. 대답을 기다리는 이와 대답을 주저하는 이 간의 염화미소가 한동안 테이블 위를 맴돌았다. 그러다 열심히 타이핑을 하고 있던 스이 편집위원에게 불똥이 튀었다.
원: 스이 씨도 신진다큐모임(이하 신다모)에서 상영회를 하고 있는 것 같던데요?
스이: 저요? 아…지인이 하는 카페랑 또 다른 지인이 일하는 청소년문화센터에서 하려고 준비 중이에요. 이번 주 일요일부터 하려고 하는데 잘 안 될 것 같아요.
원: 왜요? 카페에서 의지가 없어요?
스이: 양쪽 다 처음해보는 상영회라서 준비를 많이 못했고, 상영작들이 소장님이 말씀하셨던 그런 것들이라서… 망했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다들 안 올 것 같아요. (실제 상영회에는 내부 관계자를 제외하고 4명의 외부 관객이 참석했다)
원: 상영회를 개최하는 것도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그 다음으로 중요한 건 주최 측에서 이 사업에 얼마나 의지가 있느냐 에요. 왜냐하면 홍보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죠. 처음에는 주최 측에서도 열의가 있어요. 그 때는 잘 돼요. 게다가 그 공간에 오는 사람들이 인디스페이스나 자료원에 가는 사람들과는 다를 것 아니에요. 그 사람들에게는 지금까지 봐왔던 영화들과는 생판 다른 영화일 테죠. 다른 공간에 다른 기획자가 다른 관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에, 어차피 천여 명이 올 것도 아니고 많아야 몇 십 명 올 테지만, 그게 실패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정기상영회 등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건 너무 손쉬운 선택이 반복된다는 느낌이 있어서예요. 정해진 공간에서 반복돼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독립영화협의회가 개최하는 독립영화 발표회를 한 달에 네 번을 해요. 그런데 관객이 오게 만드는 일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가 불명확한 건 아닌가 싶어요. 영상자료원에서는 웹사이트에 올리고, 트위터나 페이스북, 블로그에 올리고 하겠죠. 그 이상은 하지 않아요. 독립영화협의회도 페이스북에 올리고 트위터에 올리고 이렇게 하겠죠. 그렇지만 독립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의 경우라면 이미 두 군데 다 팔로우하고 있을 확률이 크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노출될 다른 홍보가 필요한데, 과연 그런 것은 누가 책임지고 홍보를 할까요? 이런 공백이 계속 생기는 거예요. 관객이 진짜 백수인데다가 영화에 대한 욕구가 너무 넘쳐서 매번 가지 않고서야 이렇게 반복적인, 동일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홍보를 지속해봐야 새로운 사람에게는 정보가 가지 않는다는 거죠.
상영회를 기획할 때, 일반적으로 두 가지 생각을 해요. 첫 번째는, 신작을 보여주면 보러 오지 않을까 하는 거예요. 영화제의 욕망과 비슷한 거죠. 두 번째는, 남들이 새로운 거 하니까 지난 영화들 중에서 다시 한 번 볼 기회를 주는, 의미 있는 상영회를 해보자, 하는 거죠. 인디다큐페스티발이 하고 있는 거네? (웃음)
최: (웃으면서) 바로 그거죠.
원: 그런데 문제는, 관객이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다는 거예요. 인디플러스나 영상자료원에서 상영하는 경우, 대상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이미 봤거나 안 봤다면 이미 흥미가 없었거나’ 둘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이 영화가 재발견되든 다시 상영회를 하든, 독립영화를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데, 언젠가부터 같은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상영 활동을 하고 있는 거예요. 나는 소셜 네트워크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말을 걸 기회가 된다고 생각했는데, 따져보면 팔로워가 대부분 겹치고 기대할 게 크지 않아 보이는 거죠. 독립영화 상영회가 잘 되기 위한 차별화를 시도한다고 할 때, 감독과의 대화를 하면서 고인이 된 감독의 영혼을 영매를 통해 불러오거나 하는 식의 차별화를 말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차별화의 의미가 무엇이어야 할지, 이미 공간과 관객에 대한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그런 고민이 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역 영상미디어센터의 경우 상영공간은 있지만 상영을 위한 전문적인 인력이 있는 경우가 없어요. 관객이 들지 않는 상영회를 지속할수록 모두에게 마이너스가 돼요. 일하는 사람도 보람이 없고, 감독도 의미를 찾기 어렵고, 관객은 ‘얼마나 재미없었으면 저렇게 사람이 없나’할 거고, 정책하는 사람들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하게 되고, 주류 영화하는 사람들은 ‘역시 재미가 없으니까 개봉을 못하는 거지’ 하는 거죠. 이렇게 부정적인 인식만 계속 강화될 수 있기 때문에, 그저 ‘원래 관객이 안 드는 영화에요’ 라는 말로 변명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많이 흐르고 있어서 우려스러워요.
시장과 비시장 모두를 아우르려면
최: 새로운 기획을 할 때,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활동은 아니잖아요. 근데 수익이 전혀 없는 기획만 또 계속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하다 보니 그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이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원: 내 생각은 그래요. ‘수익사업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 비영리의 의미는 아니에요. 물론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조직이지만, 비영리의 의미는 ‘수익이 생겼을 때 구성원들이 나눠가지느냐 아니냐의 문제’예요. 주식회사의 경우는 돈을 벌면 주주들에게 배당을 하잖아요. 그건 영리인 거예요. 그렇지만 영화를 공짜로 보여주는 것은 비영리가 아니라 무상인 거고, 비영리활동이기 때문에 관객이 얼마나 드는지는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그런 건 아니죠.
예를 들자면, 인디다큐페스티발이 순회상영회를 하는 것과 독립다큐멘터리 감독들이 배급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조합원들의 작품을 모아서 순회상영을 할 경우는, 형태는 같아 보이지만 작동하는 방식도, 결과물도 다를 거예요. 왜 다를 것 같아요?
최: …영화제가 상영활동 하는 것은 협동조합처럼 수익을 구성원들에게 나누는 활동이 아니니까?
원: 나는 책임감이 다르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영화제는 사실 배급을 전문적으로 하는 조직도 아니고 그런 걸 전문적으로 할 만한 인력도 없잖아요. 지금 사무국에 혼자 있는 것 아닌가요? (최: 맞아요) 정기상영회를 한 달에 두 번 하고 다른 일들도 하다보면, 혼자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고 게다가 내 영화도 아닌데, 이 작품들을 활용할 만한 권리가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여러 가지 이유로 책임감이 다를 수 있겠죠.
그렇다면, 왜 신다모가 하는 상영회는 사람들이 오지 않나요? 책임감을 가지고 하는데. 처음에는 재미있죠. 그렇지만 나는 영화를 만드는 게 주요 목적이고, 영화를 만들려면 아르바이트도 해야 되는데, 이런 상영활동은 재미는 있지만 돈이 나오지 않잖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보면 나만 하고 있는 거야. 그러면 나만 왜 이걸 하고 있지? 다른 사람들은 무임승차하고 있고. 이런 생각이 들어서 점점 사람들이 안 오게 되는 거죠. 신다모는 상영을 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없잖아요. 상영을 어떻게 하겠다, 사업 모델까지는 아니더라도 이후의 상을 그려보는 게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책임감이 사라지는 거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은 무임승차자를 보고 상처를 받는 거죠. 책임감을 갖고 할 수 있는 조직과 형태, 주체가 그 일을 해야만 결과가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에요.
최: 저는 내 영화를 상영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감독들의 상영 활동에 비해서 책임감이 덜할 수밖에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고요…(웃음)
원: 책임감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최: 네.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인 거죠.
원: 어쨌거나 상영회가 인디다큐페스티발의 주요 사업이 아니잖아요. 예산이나 인력이 많이 들어가는 주요 사업이 아니니까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하는 거지. 너무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예를 들어 ‘88만원 세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당사자 운동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잖아요. 독립영화 유통, 배급 같은 활동에서도 제작자가 배급 당사자로서 활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배급을 직접 할 수 있을 텐데, 참여의 기회가 많지 않고 스스로 배급 방법들을 개척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요. 내가 혼내는 것 같아요? (웃음)
최: 아니요. 제가 느끼기에, 당사자가 볼 수 있는 범위는 당사자 만큼인 것 같거든요. 어떤 특정 당사자 중 하나가 아닌, 전체를 볼 수 있고 또 봐야 하는, 전문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책임감이 그래서 더 중요하고,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원: 독립영화 배급이라는 건,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우리가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잖아요. 영화도 시장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어요. 그에 비해 비시장영역에 속하는 영화의 경우 어떤 것도 제도화되어 있지 않아요. 독립영화가 비제도권의 영화였을 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제도권 밖, 다시 말해 시장 밖일 수밖에 없잖아요. 그럴 때는 시장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게 목적이 아닌 거고 비제도권이 목적인 거죠.
그러던 중에 <낮은 목소리>가 심의를 받고 극장 개봉을 했어요. 제도권 내에 들어간다는 것이고, 과연 그것이 독립영화로서 타당한 태도인지 많은 논쟁이 됐다고 해요. 과거에는 비시장 혹은 비제도권에서 생산되고 수용되는 방식이었다면 독립영화가 개봉하면서부터는 일반적인 영화 제도를 통해 관객을 만나고 싶다는 독립영화의 욕망이 구체화된 거죠.
그러면서 독립영화 배급의 전체적 방향이 전용관이 된 거에요. 전용관은 영화 시장 내에 독립영화가 들어가겠다는 이야기지, 비영리 영화 활동을 하겠다는 입장은 아니라고 봐요. 다만 시장 내에서 쉽게 기회를 얻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인큐베이팅 방식의 개봉관이 필요한 거고, 이를 기반으로 제도화된 방식으로 관객을 만나겠다, 는 것이죠. 반대로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독립영화 배급위원회를 만든 것은, 비시장 영역을 통해서 관객들을 계속 만나가겠다는 일종의 선언이자 계획이었다고 볼 수 있어요. 이미 그 때는 심의를 받던 시절이었지만 지원정책도 많지 않았고, 시장도 기회를 쉽게 주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독립영화 관객을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게 공동체 상영이라는 이름으로 수렴되는 방식이었던 거고요.
2009년까지 전용관을 기반으로 시장에 들어가려는 활동과 시장 밖에서 공동체 상영 활동을 하는 것, 이 두 가지 활동이 병행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이 두 가지 배급의 방법이 다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비단 우리만의 생각이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서도 시장과 비시장 영역을 통해서 영화 관객들을 만나왔던 거니까요. 그런데 이 두 영역은 다른 영역이기 때문에 활동 자체가 많이 다를 수밖에 없는 거죠. 시장에서는 다양한 상품이 경쟁하면서 관객들이 선택하게끔 만드는 거고, 비시장 영역에서는 시장 내 경쟁이 아닌 다른 논리와 방식으로 움직이는 거잖아요.
시장에서는 제한된 작품에게만 개봉 기회가 주어져요. 1년에 독립영화 50편 개봉한다고 해도 1년에 만들어지는 모든 영화가 상영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개봉하지 못한 영화는 다른 상영 기회가 필요한 거고, 전 그게 비시장영역이라고 생각을 했던 거죠. 독립영화인 중에서 ‘나는 죽어도 시장에서 영화를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 사람들의 작품은 자유로운 상영의 틀이 필요하니까요. 시장영역에서는 사람들이 영화를 고르는 제도화된 방식에 맞게 홍보도 하고, 시사회도 하고, 포털에도 올리고, 광고도 하고 해야 하지만, 비시장영역에서는 또 다른 활동이 필요한 거죠. 이 두 개 영역 각각의 전문성이 길러지고 자리 잡히는 과정이 독립영화 산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라고 봐요.
영화제는 극장과 공동체 상영의 전에 있는 거예요. 상업영화는 영화제가 필요하지 않아요. 상업 영화는 극장에서 개봉하면 되는 거고, 다만 이후에 상을 주죠. 비주류 영화들은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기 때문에 영화제라는 방식으로 먼저 주목을 받고 영화제의 후광을 업고 나가는 거죠. 영화제는 본격적인 유통 시스템 안에 있다고 보기 힘든 거예요. 그래서 영화제는 배급 활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마켓이 열린다거나 했을 때는 중요한 홍보이고, 제작 투자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장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단계임에는 분명하죠.
내가 그리고 싶은(혹은 싶었던) 독립영화 배급 구도
원: 요즘은 생각이 좀 많이 바뀌고 있어요. 여전히 시장은 중요하고, 시장 내에서 충분한 기회를 창출하려는 노력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비시장영역이라고 불렀던 부분을 좀 더 섬세하게 구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 가지는 ‘공공’이라고 부르는 영역이죠. 인디플러스 같은 영진위가 공적기금으로 운영하는 전용관이나 지역의 영상미디어센터 같은 ‘공공 경제’ 영역에서 구축된 공간이나 사업들이 있어요. 또 다른 하나로, 공동체 상영이라는 ‘사회적 경제’의 방식이 있어요. 독립영화가 많이 보여져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상영회 활동을 하거나 계모임이라든가 카페라든가 그런 방식으로 계속 뭔가가 열리잖아요. 이렇게 ‘사회적 경제’라고 부르는 이 영역이 조금 더 개발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지금처럼 영상자료원 등에서 하는 독립영화 정기상영회의 경우는 공공 경제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공간을 이용하는 것이고, 상영되고자 하는 욕망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정책이 존재하는 거죠. 그에 비해 사회적 경제의 경우는 영화를 상영하고 싶어 하는 제작자들의 욕망과 그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관객들의 요구를 기반으로 하는 것인데, 이게 정말 중요해요요. 상영회를 개최하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영화를 보러오는 사람들의 욕망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 욕망들은 어떤 방식으로도 조직화되지 않고 있어요.
관객이 조직화되고 자발적으로 모일 때 상영회가 더 꾸준히 이어질 수 있는 것인데, 관객의 요구에 대해서는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해 온 게 아닐까 싶어요. 상영회를 열고 홍보를 하면 모이는 사람, 수동적 소비자 정도로만 생각을 했던 거지.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나라에서는 그러한 관객들의 조합이나 모임의 역사가 없고 경험이 부족해요. 외국 같은 경우에는 필름 소사이어티, 시네 클럽이다 해서 시네마테크에 모여서 토론도 하고 나중에 영화도 만들고 하잖아요. 야마가타 영화제에서 최국장이 본 광경은, 영화제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즐기기도 하고 스탭으로 일하기도 하고 이런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공동체 같은 거고, 나중에 아카이브도 하고 정기상영회도 하고 이러면서 야마가타 시 내에서 지역민들과 지속적으로 호흡하는 과정인 거잖아요. 그러니까 2년에 한 번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게 아닐까 싶은데,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그런 방식의 고민과 접근이라고 생각해요.
최근 독립영화 상영공간이 없다고 하니까 공공시설에서 독립영화 틀어라, 지역영상위원회나 지역문화재단이 함께 문예회관이나 시민회관에서 독립영화 틀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런 접근들은 공공 경제의 방식이에요. 그런데 이런 걸 열어놓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와서 보지는 않잖아요. 우리는 어쩌면 관객을 계속 그런 방식으로 생각해온 것일 수도 있겠다, 나부터 그랬으니까.
하지만 다르게 접근하면 나부터도 처음은 일반 영화관에서 상영하지 않은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관객이었을 텐데 싶어지는 거죠.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관객들의 자발성을 기반으로 협동하여 조직되는 공동체 상영 단체들이 전국적으로 많이 만들어지고, 이 단체들 간의 네트워크와 협동이 생겨나는 것. 그렇게 독립영화 공동체 상영 배급망이 구성되는 것이 내가 그리고 싶은 독립영화의 비시장 영역 배급 구도에요. (웃음)
최: 그리고 싶은 배급구도라… 너무 큰 이야기를 하셔서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할 지 모르겠어요.
원: 나도 최국장 나이 때는 그런 생각이 없었어요. 10년 넘게 이런 활동을 해왔으니까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는 거지. 사실 아깝다는 생각을 해요. 한국독립영화협회를 그만 둔 후, 내가 하는 생각들을 나누지 않으면 지향하는 입장이나 고민들이 그저 나의 취미 활동으로 그칠 뿐, 구체화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아쉬움이 있어요. 실제 상영활동을 해 본적이 너무 오래됐어요. 계속 틀만 그려왔던 거죠. 가끔 독립영화 관련된 일을 한다면 서울에서 영화관을 하거나 독립영화 협동조합 같은 걸 해볼까 싶기도 하고 아니면 충남 서산 같은 데서 독립영화관객 공동체를 만들어 볼까 그런 생각을 해요.
최국장은 인디다큐 페스티발도 다가오고, 2014년 사업 계획도 세워야 하잖아요. 견문도 넓혔는데, 내년에는 이런 방식으로 영화제 활동을 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있어요?
최: 그리고 싶었던, 이라기보다 그리고 싶은, 생각해보고 싶은 구도는 영화제 하면서 인디다큐에서는 신진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소개하고 지원하는 방향으로 일을 해오고 있는데, 그런 분들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처음 발을 떼서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아직 틀이 안 잡힌 것만큼 다 만들어진 이후에 이걸 어떻게 보이게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많이 생각하는 것은 제작지원 만큼이나 만들어진 것을 많이 보여줄 수 있게끔 지원하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걸 만들고 싶어요. 어떻게 구체화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고민들을 공유해가는 중이에요.
원: 난 어차피 영화제가 감독들의 배급에 대한 고민을 책임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유통망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다면 신진작가들이 꾸준히 뭔가를 하거나 전통을 만들어갈 수 있는, 지원이라기보다는 조직 활동 같은 것을 함께 고민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인디다큐페스티발이 야마가타영화제 같은 지역 공동체가 되기는 힘들잖아요. 대신 제작자들의 공동체와 함께 있는 영화제는 어떨까요. 애초부터 서울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를 보이콧하면서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이 만든 영화제였고 지금도 제작자 중심의 단체인 한독협에서 주최하는 것이니, 앞으로는 한독협이라는 단단한 제작자들의 공동체-독립다큐멘터리제작자협동조합 같은 것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와 함께 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요. 개별적으로 제작하는 감독들의 경우 뭔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요구하고 싶지만,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 필요하고 뭘 요구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거에요. 뭔가 필요한 것 같긴 한데, 뭐가 필요한지 설명을 못하는 거죠. 그러니 서로 모여 앉아 있어도 지엽적인 대화만 하게 되는 거고요. 하지만 선배들은 뭐가 필요했고, 뭐가 필요한지 알 거 아니에요. 그 사람들은 그런 문제들을 혼자 풀어왔거나 '푸른영상'처럼 단체 활동으로 풀어왔던 경험이 있어요. 앞으로 신진 제작자들이 다시 경험해야 할 과정일 텐데, 지금 신진 제작자들은 단체도 없고 이런 고민들을 혼자서는 풀 수는 없으니 다른 형태의 조직화를 통해 집단적으로, 동의하는 사람들이 풀어나가도록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서포팅을 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 않겠나 생각해요.
이렇게 새로운 조직의 형태가 인디다큐페스티발과 계속 함께 갈 수 있다면 신인감독들이 어딘가 다시 발을 디디고 다음 영화도 할 수 있게 되는 거잖아요. 하지만 이걸 직접 하겠다는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고, 지원의 방식으로 함께 간다면 좀 더 단단하고 튼튼한 공동체 기반의 제작자 네트워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사적인 궁금증들
원: 그런데 부모님은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일하는 걸 좋아하세요?
최: 아니요. 딱히 별로 안 좋아하세요 (웃음)
원: 내가 대구에서 시네마테크 일을 할 때 신문에 나오고 그랬어요. 이런 기회들을 통해 ‘우리 아들이 뭔가 중요한 일을 하나보다’ 하는 인식을 심어드렸죠. 그런 게 중요해요. ‘자식이 돈도 안 벌어오고 정장도 차려 입지 않고 출근하지만,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집에 직간접적으로 피력할 필요가 있어요. 예전에 올해의 독립영화인상을 받았는데, 그 때가 유일하게 문화관광부와 함께 한 때라서 한독협이 준 상패랑 문화관광부가 준 상패를 같이 받았죠. 그래서 문화관광부에서 준 상패는 집에 가지고 내려갔어요. 그걸 보신 부모님이 ‘그래, 얘가 뭘 하더니 장관상도 받아 오는구나’ 하시더라고요. (웃음)
최국장도 인디다큐페스티발 자료집이 나오면 부모님한테 보여드리면서 ‘이게 내가 하는 영화제 자료집이고 여기 내 이름 있어’라는 식으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보여주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영화제 포스터도 집 벽에 붙여놓고, 영화제 배지도 집에 계속 가져다주고 말이죠. 스스로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걸 느껴야하고, 남에게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해요. 이상이 경험에서 우러나온 나의 조언이에요. (웃음)
자신감 있게 표현하는 것은 정말 중요해요.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고민을 쉽게 이야기해요. 뭔가 기댈 만한, 상의하고픈, 말을 쉽게 걸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해요. 독립영화 하는 사람들은 처음에 자신감 있게 영화를 만들다가도, 영화제 다 떨어지고 하면 ‘내가 과연 쓸모가 있는 사람일까’ 이런 생각을 종종 하게 되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당신은 쓸모가 있고 당신 작업도 의미가 있다’는 이런 생각을 심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나한테는 궁금한 거 없어요?
최: (웃음) 독립영화당 페이스북에 ‘오늘의 독립영화 뉴스’, ‘함께 만드는 독립영화’ 이런 거 모아서 올리시잖아요. 그렇게 정보들을 계속해서, 취합하는 일이 보통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이런 일들을 시간과 관심을 들여서 하고 있는 이유가 특별히 있으세요?
원: 보면, 쓰잘데기 없는 생각이 드나요?
최: 아니요. 저는 참고도 많이 해요. 서울영상미디어센터에서 웹진(주: ACT!의 경쟁지이자 협력지 미디어스*프를 말함.)을 같이 만들고 있는데, 독립영화 관련해서 아이템이 필요할 때 소장님 페이스북을 보거든요. 그리고 크라우드 펀딩도 계속 업데이트를 하잖아요. 보통 사람들은 크라우드 펀딩 시작했구나, 하고 넘기는데 업데이트 정보가 계속 쌓여가니까 관심을 계속 갖게 되더라고요. 예전에 하셨던 ‘전국 공동체 상영 지도’ 정보들도 다 메타데이터 상의 맥락이라서 정말 쉽지 않은 일일텐데…
원: 그건요, 제가 정말 독립영화를 사랑하기 때문이죠. (모두 웃음) 지극한 사랑의 결과라고나 할까요?
최: 그런데 왜 취미 활동으로만 하시는 거에요? (웃음)
원: 독립영화 정보가 꽤 많이 알려지는 것 같지만 ‘관객들에게 충분하게 정리돼서 제공되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는 이 정보들을 재가공해서 사람들에게 다른 형태로 제공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 때문에 하는 것이고요, 또 한 가지 이유는 뭔가 ‘공식적’인 정보들이 있잖아요, 이미 알려져 있는 영화제라든가 이런 것들. 그것들 말고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감독의 크라우드 펀딩 정보 등 여러 가지 독립영화 활동들이 있는데, 그런 활동들에 대한 정보의 공유는 계속 누락되는 느낌이 있어요. 각 영화제들은 모두 다 트위터를 하지만, 자기 행사를 중심으로 하지 다른 독립영화제나 지역 행사까지 상세하게 정리해서 올려주지 않잖아요. 그런데 독립영화를 하는 누군가는 자신의 독립영화 활동에 대해 글을 올렸을 때, 리트윗하거나 재가공해서 알려주기를 기대하는 게 있다고 봐요. 그런 독립영화인들이 ‘누군가가 내게 관심을 계속 가지고 공유해주고 있다’는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외롭다고 느끼지 않게 말이죠.
그리고 실제로 독립영화 정보 찾기가 정말 힘들어요. 내가 힘들다고 할 정도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보가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해요. 독립영화 리뷰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하지만, 사실은 리뷰가 적지 않아요. 영화제나 영상자료원, NOW(주: 한독협에서 최근 발행을 시작한 독립영화 매거진)에도 있는데, 어떤 건 검색조차 되지 않아요. 힘들게 쓴 글인데 사람들에게 읽혀지지 않는 게 아깝잖아요. 이런 정보들을 사람들에게 다시 알리고 싶은 그런 생각도 있어요. 사람들이 독립영화 관련 정보를 찾기 쉽게 하고, 친숙하게 하고, 수고롭게 찾지 않아도 접할 수 있게 하고 싶은 거죠.
이런 일들을 꾸준히 해오고 있지만 전혀 피드백이 없어요. 외로운 일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안 하나 봐요. 내가 여러 프로젝트를 했지만, 아무도 이걸 내가 왜 하는지 물어봐주지 않고 관심도 주지 않았어요. 그래도 누군가는 보지 않을까 싶어서 하는 거죠. ‘내가 30분 동안 정리해서 올리면 3명이라도 이 정보를 보고 투자를 하거나 후원을 하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에요. 크라우드 펀드가 독립영화에게 좋은 기회일 수 있는데, 자기 영화만 열심히 홍보하고 다른 독립영화가 펀드를 필요로 할 때는 왜 홍보해주지 않는지 이해가 잘 안 돼요. 물론 몰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을 테고, 사실 너무 많기도 하죠. 그런 정보들을 보기 쉽게 모아놓으면, 어떤 독립영화인이 ‘언젠가 크라우드 펀드할 때 남이 도와준 적이 있으니, 나도 남이 할 때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어요. 그런데 그 누구도 공유하지 않아요. 독립영화 쪽 사람들이 협동이 약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지만, 아 정말 생각보다 심한 것 같아요.
정보를 모으는 일은 수고로운 일이에요. 매일 최소 30분 최대 1시간 동안 정보를 가공해서 올려요. 매일 아침 출근길에 ‘오늘 독립영화 소식은 뭐로 쓸까’ 이런 걸 고민하면서 상영회 정보들을 찾고, 이 정보들을 언제쯤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좋을지 생각해서 올리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올린 정보를 당사자도 공유하지 않을 때도 있어요. 어려운 일도 아닌데 내가 정말 괜한 짓을 하고 있나 싶기도 하지만, 내가 독립영화인들 만을 대상으로 이걸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언젠가는 최소한 세 번 정도 공유가 되는 날이 올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꾸준히 하는 거죠.
(페이스북의) 독립영화당은 그룹 형태인데요. 독립영화인과 관객의 공동체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만든 거에요. 오프라인 상에서는 만날 기회가 별로 없지만, 온라인 상에 모여서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관객 개발이 되지 않을까 싶었죠. 근데 역시 아무도 대화를 하지 않는 거에요, 500명이나 모여 있는데. 사람들이 들어와서 도움 되는 게 하나도 없으면 좀 우습잖아요. 그래서 결국은 정보라도 주자 싶어 정보를 올리고 있는 거죠. 이런 정보들은 궁극적으로 관객들을 위한 거고, 그 정보를 보고 한 사람이라도 개봉 중인 영화를 보러 간다면 그걸로 만족하는 거구요.
독립영화당 등의 활동이 저의 어떤 편집증 비슷한 것이라는 생각도 없진 않지만, 다른 독립영화 활동가들에게 ‘흩어져 있는 정보를 모아서 재가공해서 보여주는 것이 생각보다 유의미하다’는 것을 남에게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어요. 그리고 누구인지 모를 독립영화인에게도 많이 관심을 표현했으면 좋겠어요. 누구나 다 외롭지만, 독립영화 만드는 사람들은 많이들 외로우니까… 독립영화당이 공식적이지는 않겠지만, ‘독립영화 공동체를 느낄 수 있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싶어죠. 이렇게 말로 해봐야 내일 되도 다를 건 없겠지만, 대담을 통해서 하소연이라도… (웃음)
최: 그렇게까지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조금 하다 그치긴 했지만, 비슷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어요. 인디다큐페스티발 상영작들이 다른 데서 상영을 하게 되면 소개를 해주는 상영 달력을 만들었거든요. 관객들에게는 상영작들에 대한 지속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감독들에게는 당신의 작품을 계속해서 응원한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말이죠. 간헐적으로 정보를 올렸는데, 소장님이 하시는 것처럼 지속적으로는 안 되더라고요.
원: 매일 해야 돼요.
최: 근데 그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원: 직장인도 매일 하고 있는데… (웃음)
최: 그래서 그 어려운 일을 소장님이 참 잘하신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원: 영화제 상영작들의 소속감보다 비상영작 감독들에게도 관심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꾸 우리만 강조하면 남이 생기는 거잖아요. ‘상영되지 않는 이상 “우리”가 안 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들면 끝장이에요. 사람들이 바로 돌아서게 돼요. ‘내가 이 영화제 선정은 안 됐지만, 관심은 꾸준히 보여주는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공동체를 구축하고 신뢰를 쌓는 방식이에요. 누구나 언제든 좋은 영화 만들 수 있는 거고, 여전히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 최소한의 신뢰 관계는 유지해갈 수 있잖아요. 그런 방식의 신뢰 형성도 필요하다 싶어요.
비영리 단체의 소셜 네트워크에 대해 공부할 때, 익히 아는 것을 발언하기 보다는 ‘내가 관심을 가져야 할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는 것을 먼저 느껴지게 하는 게 우선’이라고 배웠어요. 그렇게 관계 형성이 되는 거거든요. ‘내가 말을 거는 게 아니라 내가 당신의 말을 듣고 있다’는 걸 인식하게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신뢰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는 기반인 셈이죠.
저도 최국장과 비슷한 고민을 해요. 개봉 말고, 각종 정기상영회나 기획전에 대한 상영 정보를 모아서 사이트나 캘린더 형태로 제공을 했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을 해요. 구글 캘린더에 내가 아는 것들을 올리다 말았어요. ‘이런 정보까지 가공할 바에야 차라리 독립영화 일을 하지…’란 생각이 들어서요. (웃음) 현재는 직장인이라 시간을 많이 내기가 어렵고, 그래도 있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있지만 혼자 하기 힘들잖아요. 같이 할 사람들이 있다면, 굳이 모이지 않더라도 온라인 회의를 통해서 캘린더에 같이 올릴 수도 있는 거고. 충분히 협업이 가능하거든요. ‘오늘의 독립영화 뉴스’ 같은 경우도, 한독협 등에서 보고 괜찮다 싶으면 공유하거나 더 나아가 뉴스를 같이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일들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독립영화당이라는 이름으로 하는 거지만, 정말 관심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같이 해보자고 제안을 해주거나, 여유가 안 되면 공유라도 누르면 좋지 않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