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 줄레조 지음, 길혜연 옮김, 2007, 후마니타스)
살면서 집과 관련한 고민을 안 하면서 살수는 없다. 새롭게 들어서는 정부마다 집값을 잡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내어 놓고 정부의 성패를 확인하려 든다. 사람들은 집과 관련한 계획을 중심해 놓고 자신의 삶의 계획을 세운다. 그 중심에 아파트가 있다.
아파트에 살던 그렇지 않던 아파트와 관련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어느 순간 한국에서는 아파트는 살면서 꼭 마련해야 하는 무엇이 되었다. 그렇기에 ‘아직’, 혹은 ‘벌써’ 라는 말과 함께 언급된다.
하지만 아파트는 정말 살기 위해서 이렇게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나 하고 질문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은 많은 시간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이 집을 마련하는데 쓰여야 한다니. 미래를 저당 잡히면서(저축하거나 대출을 받거나 혹은 부모에게 물려받았다 하더라도 그건 부모의 시간이 저당 잡힌 거니, 누구도 집을 사는 게 삶의 목표는 아닐 것이기에) 살아야 한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한번쯤은 이런 질문들을 해 볼만도 한데 한국에서 아파트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었다.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는다. 그런데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 ‘정말 그래요?’ 라고 질문하는 것이야 말로 흥미로운 일이다.
「아파트 공화국」은 이런 질문을 하고 있다. 50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대도시 서울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어쩌다가 시민의 주거구조와 생활양식이 아파트 단지 안에 몰아넣어졌는지 질문한다. 서울의 5천분의 1 축적 지번약도를 보고 ‘한강변의 군사기지 규모는 정말 대단하군’ 이라는 동료 도시계획가의 말처럼 저자인 프랑스 지라학자는 서울의 아파트의 기괴함에 마음을 빼앗긴 듯하다. 동료가 말한 군사기지는 반포의 아파트 단지였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아파트 공화국」은 좋은 사회과학 책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자료들이 있다. 저자의 꼼꼼한 관찰력이 만들어낸 자료들을 따라가다 보면 서울의 도시 정책과 아파트 단지 개발의 역사, 아파트가 양산된 조건들과 선택들을 확인할 수 있다. 군대식 선전구호, 독재정권에 의한 외향적 경제성장을 통해 개인의 행복이 아닌 양적성장에 과도하게 집착한 결과물인 아파트가 만들어진다. ‘땅은 좁고 사람은 많기 때문’에 당연하게 여겨졌던 아파트가 지배 권력의 관리 도구였음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파트 공화국」을 읽는 즐거움은 저자의 사회에 대한 가치관 때문이다. 프랑스와 한국의 아파트 도입배경과 구축과정을 비교하면서 각 사회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이야기할 때, 프랑스의 부의 재분배나 연대의식의 개념을 바탕으로 한 ‘국민주택’ 건설을 언급한다. 한국의 아파트와 관련한 많은 자료에 비하면 매우 적은 분량의 이야기지만 개인의 책임으로만 여겨졌던 주택문제가 사실은 사회의 책임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보여 지는 것들 속에서 질서를 찾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아파트라는 당연한 것에서 사회 질서를 읽어내고 심지어 먼저 경험한 ‘아파트’가 만들어낼 결과에 대해 경고도 잊지 않는 저자가 고마울 따름이다. 어쩌면 「아파트 공화국」은 당연한 것에 대해 눈을 크게 뜨고 온 마음과 온 머리를 동원해 질문하지 않으면 자신의 행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삶을 낭비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