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요즘 유행하는 말로 시작할까 한다. 안녕들 하신가? 돌아가면서 소개부터 간단히 해 달라.
준호: 저는 김준호이고, (푸른영상에) 들어온 건 2008년? 2007년이었던 것 같다. 여기서는 <길>이라는 작업을 했다.
명순: (준호 씨가) 지금 대표다.
준호: 사무실 대표는 별 의미는 없다. 남들이 안하는 걸 제가 한 거다.
동렬: 저는 이동렬이다. 2013년부터 푸른영상 정회원이었고, 2012년에 수습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열심히 사무실에 나오고 있다. 수습작으로 <송전탑>을 작업했다.
준호: 지금 이동렬 감독은 김동원 감독님 작품 <송환2> 촬영 중이다.
은진: 고은진이라고 한다. 2009년 7월에 처음 푸른영상에 찾아왔다. 외부스텝 비슷하게 <대추리에 살다> 조연출로 활동을 했다. 그러다가 2010년부터 작업을 시작해서 작년 5월에 <팔당사람들> 작업을 끝냈고, 현재는 영화제에 내고 배급 정도 하고 있다. 다음 작업은 아직 생각이 없는 상태, 쉬고 있다.
리경: 저는 홍리경이다. 2010년 가을쯤 들어와서 자원 활동을 거쳐 이듬해 <탐욕의 제국> 작업을 시작했는데, 지금까지도 편집하고 있고 이번 달에 마무리해서 개봉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명순: 저는 박명순이다. 2010년 2월 달에 사무실에 들어왔고, 여기 계신 고은진 감독 작품인 <팔당사람들>의 조연출을 했다. 그거랑 간단한 단편을 두 개 정도 만들었다. 지금은 DMZ영화제 제작지원작으로 선정이 되어서, 한센인 정착촌 이야기를 작업하고 있다. 올해 DMZ영화제에서 틀어야 되는데, 막혀서 고생하고 있다.
리경: 이번 주 금요일이 가편집본 시사인데. 잘 안 돼서 정신이 없다.
ACT!: 이 곳 사무실을 쓴지는 오래됐나?
준호: 처음에는 강남이었다.
리경: 여기가 한 20년 되지 않았나?
동렬: 역삼 쪽에 처음 얻었다가 거기가 너무 비싸서 두 번째로 여기로 왔다고 한다. 여기는 원래 사무실이 몇 개 있던 공간인데, 처음에는 반쪽만 쓰다가 그걸 넓혀서 지금처럼 됐다고 한다. 저희는 넓힌 다음에 와서 옛날 모습은 모르겠다.
ACT!: 사무실에 있을 때는 분위기가 어떤가? 각자 개인작업만 하는 건가?
동렬: 모여서 회의를 한다.
명순: 딱히 모여서 막 뭘 한다는 건 없다. 촬영스케줄도 각자 다르고, 지방 내려가 있는 경우도 많아서, 사무실 나오는 날이 들쭉날쭉하다. 일정을 서로 조정하기는 하지만, 몇 주에 한 번씩 날짜 맞춰 회의하는 것 외에는 글쎄. 평상시에 사무실 들어오면 각자 자리로 가는 거다. 아침에 인사하고 자기 자리에서 작업하다가, 밥 때는 같이 먹고.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서로 하고 있는 작업이 다르니까. 2주에 한번 회의할 때는 개인보고를 해서 각자의 작업에 대한 업데이트를 한다. 이야기는 일상적으로 하지만 사실 개인 작업 진행상황까지는 잘 모르니까. 제가 금요일에 한다는 것처럼 가편집본 시사를 하기도 하고, 작업마다 다르다. 가편 보고 평 해주면 다음 작업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도 하고. 그렇게 사무실의 의견도 같이 들어가는 그런 시스템이다.
ACT!: 다들 어떻게 들어오게 되셨는지,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준호: 군대갔다오고 나서,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있어서 오게 됐다. 그때는 방송다큐멘터리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아보다가 검색을 통해 (푸른영상을)알게 됐다. 사실 별 생각 없었다. 사회 현상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고.
동렬: 준호 감독은 인간극장 보고 그랬다고, (푸른영상에는) 비디오 빌려보러 왔다고 했다.
준호: 그랬다. 그 때 당시에는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볼 수가 없었다. 소위 말하는 방송다큐 말고는. 그런데 여기 오면 비디오도 빌릴 수 있고, 다큐멘터리도 알려준다고 해서 왔다. 그게 2005년 가을 쯤. 대부분 그런 식이었을 거다. 들어오고 나니까 이것저것 알게 되고.
동렬: 저는 이전부터 알고 있던 형들이 있었다. 정일건 감독님하고 문정현 감독님을 어릴 때 잠깐 만나서 술도 먹고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2010년 겨울에 제가 4대강 관련해서 혼자 영상을 만들어서 유투브에 올리곤 했는데, 그걸 일건 형이 보더니 푸른영상에서 4대강 옴니버스 프로젝트를 한다고 해보라고 해서 같이 시작했다. 그렇게 2011년을 보내고, 이후로 <강, 원래 프로젝트> 작업을 푸른영상에서 오래 했다. 그러다가 푸른영상에서 같이 다큐를 해보는 게 좋겠다고 해서 시작하게 됐다. 그리고 2012년에 수습기간 갖고 2013년에 수습작 만들고. 정식으로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됐다. 1년 정도. 원래는 극영화 쪽에 관심이 있었다. 영화 만들려고 컴퓨터랑 카메라랑 마련해놓고 시나리오까지 썼는데 제작비가 없어서 못 찍었다. 그런데 내가 살아보니까 알리고 싶은 내 이야기가 생겼다. 예전에는 홍보영상 만들어주는 알바를 많이 했는데, 남이 돈 주고 맡기는 거 말고 내가 알리고 싶은 내용을 다루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게 4대강 이야기였다.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이야기가 아닌데 너무 알려지지 않아서, 난 카메라도 컴퓨터도 있으니까, 답답한 마음에 시작했었다. 그러다 푸른영상에 와서 좀 더 진지하게 다큐멘터리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고. 지금은 극영화보다 다큐에 더 매력을 느낀다.
은진: 학교 다닐 때 교수님이 너 다큐멘터리 찍고 싶으면 김동원 감독님 한 번 만나러 가보라고 했다. 그래서 감독님 뵈러 왔다가 이야기 나누고 라면 먹고 간 적이 있다. 그러고 나서 학교 졸업하고 1년 정도 더 고민했다. 그러다 제작하는 데 들어가서 배워보고 싶단 생각이 들어서 오게 됐다. 사회적 문제에 처음부터 관심이 있던 건 아니고. 학교 떼 푸른영상 작품을 인터넷이나 비디오테이프로 봤는데, 촬영되고 있는 당사자하고 연출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마음에 들어서 그 생각이 남아 있다가 1년 후에 찾아와서 스텝부터 하게 됐다. 그때 봤던 작품이 <송환>, <대추리 전쟁>이었다.
리경: 저는 중학교 때부터 영화를 하려고 했다. 영화잡지를 읽다보니 푸른영상 기사가 있어서,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고 김동원 감독님 작품도 한두 개 정도는 봤었다. 2000년대 초에 시네큐브에서 김동원 감독님 회고전을 해서 감독님 작품도 쭉 봤었다. 그리고 그 때는 저도 사회적 참여를 하는 데에 좀 관심이 있었다. 뭔가 이 세상의 모든 부조리한 것들에 맞서 싸우는 게 멋져 보이고 그랬던 때여서. 소파 개정 관련한 시위에도 따라다녔는데, 사실 그런 시위현장은 저랑 맞는 것 같지가 않더라. 그래서 세상의 부조리한 것들에 대한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나만의 방식이 뭘까 생각하다가, 하고 싶어진 것이 영화였다. 만약 내가 작업자로서 영화를 만들게 되면 이런 문제들을 영화 안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학교에서 다큐멘터리를 전공했다. 졸업 후에 혼자서 작업할 자신도 없고, 푸른영상을 어릴 적부터 동경했던 마음이 있어서, 졸업하자마자 여기서 작업 해보고 싶다고 왔다.
명순: 저도 준호선배랑 비슷하게, 학교 다닐 때 영상 보고 그런 걸 좋아했다. 대학 때 친구가 별로 없어서 도서관에서 살았는데, 도서관에는 책도 있지만 DVD를 볼 수 있는 멀티미디어실이 있었다. 거기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한 줄씩, 쭉쭉 봐 나갔다. 당시에는 김동원 감독님 작품이 가장 많이 있었다. <송환>을 보고, ‘아,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영화를 만드는 구나’ 하면서 인터넷으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상계동 올림픽>도 찾아서 보게 됐다. DVD 뒷면을 봤는데 사무실 주소가 써 있더라. 보니까 집하고 가까워서 찾아갔다. 다큐를 꼭 해보겠다는 생각은 아니었고, 기회가 되면 배워볼 수도 있겠다는 정도였다. 그 때 김동원 감독님이 사무실에 계셨다. 가자마자 “너 다큐하게 생겼다”면서 곧바로 저한테 일을 맡겼다. 아마 테이프 보고 뭘 조사해오는 일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다음날부터 사무실에 나왔다. 감독님이 그러셨다. 본인이 처음 봤을 때 반말하는 사람이 있고 존대하는 사람이 있다고. 다큐 할 것 같은 사람한테는 반말한다고 했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시작했다. 저도 영상에 관심만 있었지 기술적인 건 잘 모르고, 지금도 영화 잘 모르지만, 그렇게 배우면서 그 시기를 지나왔다.
ACT!: 작업방식이 궁금하다. 보통 서영집과 푸른영상을 비교하지 않나. 서영집은 집단적인 방식으로 한 작품에 멤버 전체가 스탭으로 결합하는데, 푸른영상은 개인 작업을 많이 하는 시스템이라고 들었다. 요즘은 어떤가.
동렬: 요새도 개인작업 위주다. 서로 도와주는 정도.
리경: 1인 제작 시스템이다.
명순: 어쩌다 필요하면 같이 모여서 하고. 은진씨 <두물머리> 같은 경우에는 공동작업을 했다.
은진: 그게 처음이었다고 하더라.
리경: 촬영 도와주러 다 같이 가고 했다.
동렬: 처음이었지.
명순: 도움이 필요하면 다들 당연히 하는 거고. 어쨌든 1인 제작이기는 하지만 영화 나오기 전까지 가편집본 시사를 할 때는 전부 의견을 반영한다. 감독의 생각대로 가는 것이긴 하지만 중간에 사무실의 의견도 반영이 되는 시스템이다.
ACT!: 그럼 1인 제작 시스템을 지금도 고집하는 게 본인들에게 잘 맞나? 서영집 얘기로는 촬영멤버가 따로 있을 때 장점이 많다고 하더라. 장단점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
명순: 저는 이 스타일이 편한 것 같다. 다른 분들 생각은 모르겠지만. 작업 안에서 저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 같다. 그게 독이 될 때도 있지만, 제가 만약 서영집 시스템에서 했으면 힘들었을 것 같고, 그건 개인 성향 차이인 거 같다.
동렬: 저는 다른 스텝을 두고 작업을 해본 적이 없다.
명순: 제가 스텝을 두고 작업하면 민폐일 것 같다. 연출이 별로면 관계가 힘들어질 수도 있고...(웃음) 제가 처음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는 그런(연출의) 경험이 없어서 조연출을 했었는데, 저한테는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지만 생각해보면, 어쨌든 서영집과의 차이는 그런 성향 차이가 결정적인 듯하다. 그분들은 또 같이하니까 나올 수 있는 영화가 있으니까. 1인 제작 시스템이라서 아쉬울 때도 있긴 있다. 촬영이 좀 필요하다거나 이럴 때 어떤 스텝이 있었으면 좋겠다거나. 기획이나 편집단계에서 내가 못 보는 것들을 봐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큰 틀에서는 1인 제작이 제 성향에는 더 맞는다.
동렬: 녹음은 사실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땐 있다. 실질적인 기술들 이런 거. 촬영자보다는. 현장에선 사운드가 되게 아쉽지 않나. 근데 뭐 그럴 여건은 안 되니까, 1인 제작 시스템이 좋은 거 같다.
은진: 간간이 외부스텝이랑 같이 해서 할 때도 있다. 정현선배도 이원호감독님하고 같이 작업 중이고. 김동원 감독님도 지금 <송환2> 여럿이 작업하시고.
명순: (공동작업에) 꼭 닫혀있지는 않다. 작업에 도움이 된다면 같이할 수도 있는데, 성향은 대체로 1인 제작이 편하다는 정도다.
리경: 그런 것도 있고, 일단 혼자 하면 내가 다 하니까 인건비가 안 드니까 제작비가 절감된다. 서영집과의 차이는, 거기는 모든 스탭들이 돌아가면서 각자 맡는 포지션이 매번 달라진다는 거다. 이 사람이 연출할 때 나는 촬영, 이런 식으로. 근데 우리는 기본적으로 계속 다들 연출을 하고, 연출 이외의 스탭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식이다. 촬영이나 구성을 해준다거나.
ACT!: 김준호 감독님은 지금 김청승 감독님하고 공동연출 작업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건 어떻게 같이하게 되신 건지?
준호: 단체끼리 연계했다기보다는 개인적 관계에서 시작이 됐다. 희망버스 탔다가 미디어팀이 만들어졌고, 그 안에서 뭔가 만들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ACT!: 사무실 재정은 어떻게 유지하나?
은진&명순: 수익사업!
명순: 영화제작이 아닌, 단체가 원하는 영상을 만들어주는 일들을 한다.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종종 있다. 사무실 운영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 때는 정말 다 같이 작업을 해야 한다.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감독 제외하고는 다 같이 단시간에 해서 보내주는 영상 작업을 한다.
준호: 그 외에도 푸른회원도 있고. 1년에 10만원이다. (하하)
ACT!: 수익사업 비중이 높은 편인가? 개인 작업에 방해될 정도는 아닌가?
동렬: 큰 사업 같은 경우는 다 참여를 해야 한다. 자기 작업의 정말 중요한 시기가 아니라면. 다 한 역할을 해야 한다.
준호: 돌아가면서 한다. 작업 끝난 사람이 있고, 작업 하는 사람은 배제를 하는 경우가 많고. 작업이 다 끝난 경우거나 조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하고, 그러고 나면 다음에 또 바꾸고.
동렬: 작년이 피크였다. 다 작업이 있어서. <탐욕의 제국>, <팔당사람들>, <가면놀이>, <촌, 금가이>까지. 그래서 작년에는 수익사업 하나 큰 게 있었는데. 결국은 시간을 다 빼서 했다. 약간 불문율이랄까. 의무 같은 게 있다.
명순: 누가 얘기하지 않아도 다 할 수밖에 없으니까. 사무실을 위한 거고. 필요한 부분이니까. 당장 다음 달부터도 밥은 먹어야 되고. 누가 너 나와라 마라 할 거 없이 그때가 되면 촬영할거니까 분야를 나눠서 한다.
ACT!: 그렇게 수익사업을 같이 해서 활동비로 분배받는 건가?
명순: 그렇다. 사무실 운영비 먼저 놓고, 활동비도 운영비 제하고 남는 한에서 받고.
준호: 제작비가 제일 많이 든다.
ACT!: 활동비가 어느 정도인지 물어봐도 되나? 들은 게 있긴 한데.
일동: 얼마라고 들었나?
ACT!: 전에 듣기로는 정확치는 않은데 4-50정도라고.
리경: 맞다.
준호: 근데 월급의 개념이 아니니까.
명순: 작년에 연말에 밥 먹으면서 정현선배랑 일건선배랑 세진선배랑 걸어가다 한 얘긴데. 우리 내년에는, 이게 50만원에 멈춘 지가 10년 됐다고 들었는데, 물가도 다 올랐는데 80만 원 정도로 올려도 되지 않을까?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은진: 문제는 올려봤자 80만원을 1년에 몇 번이나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거다.
명순: 지금 50만원도 매달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닐 때가 많아서. 그래도 일단 마음이 다르지 않나.
동렬: 그래도 작년엔 선방하지 않았나?
준호: 원래 나름의 임금체계가 있다. 원래는 애 하나 있으면 10만원 더 주고. 1년에 10만원씩 올리고 그런 게 있긴 하다. 근데 돈이 없으니까 흐지부지됐다.
ACT!: 다들 우연찮은 계기로 오셨는데, 그렇게 푸른영상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은 편인가? 많이 오는데 없어진 건가, 아니면 소수로 온 사람들이 다 정착을 한 건가?
명순: 고은진감독이랑 저랑, 홍리경감독이랑, 동렬씨가 6개월 간격으로 계속 들어왔다. 저희는 3개월 동안 사무실 나오면서 자원봉사 기간을 보냈다. 그 동안은 사무실에서 필요한 일들을 하고, 이후에는 수습기간 3개월 동안 길이고하를 막론하고 영화를 만든다. 그걸로 사무실의 정회원이 되는 여부를 선배들이 같이 이야기를 해서 결정한다. ‘아, 이 사람은 우리랑 같이 활동을 할 수 있겠다’하면 정회원이 되는 시스템. 자원봉사하다 그만둔 케이스도 몇 명 있었다. 그 사람이 생각했던 거랑은 달랐겠지. 저 때는 전주영화제에서 김동원 감독님 특별전을 했는데, 3개월 동안 감독님 작품 전체를 서치하고 전체 녹취를 풀었다. 열심히 했다, 그 땐. 홍리경감독은 그 때 사무실에 있는 모든 옛날 VHS테이프를 파일로 아카이브 작업을 했다. 그때 사무실 이쪽에 골방 같은 냄새나는 공간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좀 불쌍했다. 항상 거기 처박혀서... 근데 그때 되게 좋았다고 하더라. 사무실 영화를 다 볼 수 있고.
은진: 그 땐 좀 이상해보였다. 문 열어보면 골방에서 모니터보고 혼자 웃고 있고.
명순: 다큐를 하고 싶다고 왔던 사람은 없었던 것 같은데. 동렬 씨 이후에는 없었다. 밖에서 관심 표명하는 우리가 모르는 분들은 있을지 모르겠다. 문정현 감독님이나 워낙 다들 교육을 많이 하시니까. 미디액트에서 독립다큐멘터리 제작과정 듣는 분들이 푸른영상도 자주 오시더라. 그런 분들이 자연스럽게 이후에도 계속 다큐를 하기로 결심하신다면, 푸른영상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을까. 독립다큐멘터리 하는 분들 중에 김동원 감독님 싫어하는 분 별로 못 봤다. 와서 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ACT!: 교육 나가는 것도 사무실 수익사업인가?
명순&리경: 그건 개인의 일이다.
명순: 그건 개인수입인데, 선배들이 많이 추천해주신다. 선배들은 그런 교육을 계속 해오셨고. 저희는 경험이 없으니까. 강의를 소개시켜 주거나, 여러 교사가 필요한 경우에는 선배들과 같이 들어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ACT!: 부엌이 있는데, 밥은 같이 해서 드시나?
명순: 사먹는다. 그것도 여러 가지 격동의 시기가 있었다. 운영비가 없었을 때 돌아가면서 당번을 정해서 요리를 해 먹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작업하다보면 빠지는 날이 들쑥날쑥하고, 반찬 레퍼토리도 떨어지니까. 요리도 다들 익숙하지 않고. 이제 다 같이 사먹는다.
리경: 요리 한 번 하려면 설거지도 해야 하니까 거의 두 시간씩 걸린다. 그만큼 작업하는 시간을 뺏기고, 그게 너무 효율적이지 않았다.
ACT!: 홍리경 감독님은 자원봉사 시기에 푸른영상 작품들을 다 봤다고 하셨는데, 작품 다시 보면서 그렇게 좋았던 이유가 뭔가?
리경: 극영화도 그렇지만 다큐멘터리 영화도 내가 잘 모르는 삶을, 영화 보는 동안에는 같이 살아보는 것 아닌가. 철거민들하고도 같이 살아보고, 소외된 노인분들하고 같이 살아보고. 여러 다양한 삶들을 보게 되는 거니까. 보면서 나도 이런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었고, 되게 치열하고 힘들게 작업하시는 거 보면서 겁이 나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다.
ACT!: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나?
리경: <노인 또 하나의 시간>이라는 작품이다. 노인 문제에 대해 다룬 작품인데, 김동원 감독님 와이프 분이 작업하신 거다. 노인문제에 관심이 있어서, 보면서 나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ACT!: 처음 본 푸른영상 작품은 무엇이고, 소감은 어땠나?
명순: <상계동올림픽>이었다. 그때 네이버에서 무료로 보여줬다. 잘 생각이 안 나는 게 <송환>을 먼저 봤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무료로 보여줘서 겸사겸사 찾아봤던 거 같다. 여러 가지 요소들이 그 당시에는 충격적이었다. 그건 당시에 봐도 옛날 작업이었으니까, 최근 작업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학교 도서관에서 다른 DVD를 찾아봤다. 그 때 일반 학교는 독립 다큐멘터리 DVD가 거의 없었는데, 그 중 대표적이었던 <송환>이 거의 유일하게 있었다. 그걸 보면서 푸른영상에 대해서 확실히 알았다. ‘아, <상계동 올림픽> 만든 감독님이 이런 영화도 만들었구나’ 하고. 지금 표지를 보면 되게 웃기지만, 그 때도 표지에 그런 게 많이 써 있었다. “한국 영화 최초로 선댄스 수상”이나 그런, 앞에 그런 수식어가 엄청 많았다. 그 때 속으로 ‘저 표지 너무 좀 직접적이지 않나?’ 그랬는데 지금 사무실에서 내가 그걸 팔고 있다니...
리경: <명성, 6일의 기록>이다. 당시 느낌은 자세히 기억은 안 난다. 비디오로 봤나? 고등학교 때였는데, 어디 상영하는데 가서 봤던 것 같다.
은진: <송환>이었다. 2007년? 07년인가 06년인가, 언제였는지 잘 모르겠다. VHS 테이프를 아는 언니한테 빌려서 집에서 봤다. 그 때 김동원 감독님 목소리가 좀 충격적이긴 했다. 감독님께 말씀드린 적 없던 얘긴데, 졸린 톤의 내레이션이 계속 나오길래 처음엔 되게 충격이었는데, 계속 보다보니 집중이 되더라. 그렇게 한번 딱 보고나서 그 테이프를 돌려주기 전까지 한 세 번은 더 봤던 것 같다.
동렬: 저도 <상계동올림픽>. 근데 나는 처음 봤을 때 그게 <상계동 올림픽>인지 몰랐다. 2001년 전주영화제 가서 실험영화가 끝나고 어떤 영화가 나왔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게 <상계동 올림픽>이었다. 엄마 붙잡고 막 오열하는 장면을 보고 너무 쇼크 먹어서 기억에 남았는데, 나중에 여기 와서 다시 봤더니 <상계동올림픽>에 그 장면이 있었던 거다. ‘그 때 본 게 이거구나’, 하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나레이터도 인상 깊었다.
준호: <우리는 전사가 아니다>. 집에서 VHS로 봤다. 새로웠다. 기존에 보던 영상과는 다른 느낌. 뭔가 보고 기억이... 아무튼 굉장히 감명 깊었던 작품이었다.
ACT!: 배급 쪽 이야기로 넘어가고 싶다. 감독님 작품들을 미리 찾아서 보고 싶었는데, 사실 구하기가 어렵더라. 배급에 대한 고민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리경: 배급사가 있어서 배급사에서 맡아서 단체상영이나 상영도 해주고 있다. 사실 독립영화, 그 중에서도 다큐멘터리가 상영될 수 있는 곳은 작은 영화제나 이런 저런 단체들에서 공동체상영을 하는 식이 대부분인 것 같다. 운이 좋으면 개봉을 하기도 하고. 지금은 온라인에서 다운받아 볼 수도 있긴 한데. 그게 그렇게 수요랄까, 저희가 어떻게 배급을 하느냐의 문제보다는 수요가 그렇게 많지 않다고 본다.
ACT!: 다른 배급 방식을 고민해본 적은 없나? 김청승 감독같은 경우에는 온라인에 뿌리기도 했는데. 그게 하나의 모델이라고 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명순: 작품마다 성향이 다른 것 같다. 고은진 감독 같은 경우에는 <팔당사람들> 하면서 관련된 그 지역단체나 교구 등의 단체에서 자체적으로 배급하는 경우도 있었고. <탐욕의 제국> 경우에는 반올림이 그런 역할을 했다. 이동렬 감독의 <송전탑> 관련해서 밀양에서 작업하는 것도, 관련된 시민단체나 지역 연계로 퍼졌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것 이외에는 홍리경 감독 이야기처럼 수요가 적다. 관심 있는 사람들 외에는 홍보를 한다고 해서 없던 관심이 생기게 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사실 저희도 페이스북, 트위터에 비메오나 유투브 연동해서 올려봤지만, 관심 있는 사람들이 찾아서 보는 거지, 생각보다 폐쇄적이더라. 의외로 오픈이 아닌 것 같다. 해 보니까. 모르는 사람까지 되게 다양하게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접근성에 한계가 있고. 저희 작업 중에 <강, 원래프로젝트> 같은 경우는 온라인에 무료로 있고, <젬다큐 강정>도 다 무료로 올라가있는데, 그걸 사람들이 얼마나 알까.
리경: 우리끼리, 아는 사람들끼리 보고 아는 사람들끼리 소개하고. 거기에 늘 멈춰있지 않나.
동렬: 이건 제 친구들하고 이야기하면서 느낀 건데, 독립영화의 화법하고 우리가 흔히 보는 TV다큐나 극영화의 화법이랑 좀 다른 것 같다. 그들이 보기에는 이 영화가 너무 낯설어 보이는 거 같다. TV화법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게 그 벽을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좀 아쉽다. 한 가지 방식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부분들이. 오히려 독립영화는 관객이 더 능동적으로 가서 봐야 되는 건데, 일일이 설명해주고, 정서를 미리 결정해서 음악을 깔아주고, 이렇게 보면 된다고 정해놓는 것은 독립영화의 방식이 아니다. 독립영화는 쭉 보여주고, 관객이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거라는 점을 작업하면서 새롭게 배웠다. 하지만 상업적 다큐는 더 현란하고 더 상업적으로 가고.
명순: 어쨌든 푸른영상 작품의 배급은 전적으로 시네마달이 하고 있다.
은진: 작업마다 웹사이트 상에 올려도 되는 작업이 있고, 안 되는 작업들이 있다. 작업마다 조금씩 달라서. <길> 이후로는 없는 게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싶다.
리경: 인디플러그에 몇 작품 올라가 있기는 한데. 옛날 것들이다.
은진: 그래서 최근 작업 중에 못 올라간 것들이 있다. <아이들>같은 작품은 상영 안 하시기로 한 거니까.
명순: 감독과 거기 나왔던 주인공들의 생각도 있고,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것은 허락을 하지만, 다른 쪽으로의 배급은 원하지 않기도 하고.
준호: 그런데 사실 배급은 저희가 좀 고민이 많이 부족하다, 단체에 있다 보면. 예전에는 저희가 사무실에서 배급을 따로 했던 적도 있다. 사무국도 두고. 그런데 시네마달이나 배급의 대안이 되는 주체들이 많이 생겼다. 그러면서 기존 상업영화의 배급시스템하고 비슷하게 된 거다. 그러다보니 제작 집단에 있으면 배급에 대한 고민보다는 자기 작업에 더 집중하고 사무실 운영에 집중하게 된다.
동렬: 푸른영상에서 배급에 신경 안 쓰는 건 사실이다. 요새 보면 <왕자가 된 소녀들>은 제작부터 배급까지 굉장히 적극적으로 나서는 친구들이다. 그 친구들의 다른 영화, <자, 이제 댄스타임>도 다른 배급팀을 꾸려서 배급에 대한 또 다른 시도를 한다. 지금 시네마달이 과부하다. 거기에만 너무 많은 영화들의 배급이 걸려있다 보니 다른 시도들도 나온다. 이전에는 영화 만들면 끝이었지만 지금은 배급에 대한 고민도 되고 있다.
준호: 저희 사무실에서도 배급에 대한 입장이나 생각은 감독마다 다르다. 류미례 감독 <아이들>은 공동체상영만 몇 백 회, 아니 백 몇 회인가? 그것만 해도 엄청난 거다. 저 같은 경우에 공동체상영 해 봤자 그 당시 한 해에 돌려야 십여 회 이상 하기 힘들었다.
동렬: 미례 누나의 <아이들>은 생협을 통해서 공동체상영을 많이 했고, <송전탑>같은 경우에는 부산 ‘미디토리’ 분들이 공동체상영 배급을 해 주셨다. <송전탑>은 서울보다는 경북, 경남 쪽 상영이 훨씬 더 중요할 것 같아 그 쪽에 배급을 맡겼고, 대구하고 울산, 부산, 이렇게 해서 공동체상영을 좀 한 편이다. 우리 영화는 공동체상영이 더 어울리지 않나 생각한다. 물론 신다모 등에서도 다큐멘터리 저변을 넓히려는 시도를 많이 했다. 대학축제 쪽까지. 그랬는데 별 반향이 없었다. 호응도 없었고. 적은 호응조차 들쑥날쑥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에너지도 없고, 사실 배급을 신경 안 쓰는 게 아니라 하는데도 벽이 있는 것 같다.
ACT!: 계속 장편작업을 중심으로 하는 것 같다. 한 사안에 대해서 2-3년 작업해서 작품 나오는 리듬인 것 같은데, 이 리듬에 대해 고민하거나 바꿔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 사실 곳곳에 현장 투쟁들이 많은데, 장편 중심으로 작업을 하다보니까 다뤄지지 못하는 현장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다른 생각도 해볼 수 있지 않나? 미디어운동처럼 그 때 그 때 온라인 통해서 올리거나 할 수도 있고.
동렬: 그건 사실 미디어활동가의 역할이고, 다큐멘터리스트는 조금 다르다고 본다. 미디어활동가는 현장에서 카메라를 든다는 것은 같지만, 미디어 활동가는 현장 소식이나 긴박함을 알리는 역할, 공권력이 함부로 나서는 것을 제재해주는 역할이다. 사실 다큐멘터리 카메라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혼동이 생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다큐멘터리스트들은 거기서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명순: 왜 장편이냐고 하면, 한 사람의 이야기를 삶을 들으려면 최소한 그 사람과 교감하고 마음을 나눌 시간이 필요하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카메라만 가져가서 찍고 오는 게 아니라, 조금 더 호흡하고. 그들의 삶을 경험해보려면, 관계를 맺으려면 시간이 충분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제가 지금 한센인 마을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어떤 삶이든 그런 것 같다. 한센인이든 철거민이든 누군가의 삶이라면. 카메라를 든 시간이, 찍는 시간이 오래 필요해서 라기보다는 나 개인으로서 그 삶에 들어가는 시간들이 필요한 것 같아서. 짧은 영상은 또 그 역할 하는 분들이 있으시니까. 모든 역할을 다 커버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지만, 일단 저희는 있는 자리에서는 최대한 역할을 하는 거고.
동렬: 사실 가장 좋은 건 공중파 뉴스 프로듀서들이 그들의 저널리스트적인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 아닌가. 그러면 사실 미디어 활동가가 할 일이 없다. 그들이 안 하니까 미디어활동가가 나온 거지. 방송 못할 거 인터넷으로 하는 거고. 근데 그 역할이 부족하다고 해서 다큐멘터리스트들한테 그 역할을 기대하기도 한다. 간혹 영화를 만들어서 보여줬는데, ‘너무 영화가 유하다’, ‘우리는 이렇게 안 했는데, 더 처절한 그런 것들이 있는데 왜 영화는 이렇게 나왔냐’고 그러는 경우도 있었다. 밖에서 보는 우리의 역할과 우리가 생각하는 스스로의 역할이 좀 괴리되어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리경: 저는 사무실에 있는 분들의 작업을 보면 사실 미디어활동가의 작업 같지는 않다. 영화의 한 장르로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저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고. 근데 작업을 하다보면 대상이 바라는 스타일의 작업이 있다. 정보전달과,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빨리 전달했으면, 시의 적절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수단. 이 상황과 이 문제를 알리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를 바라는 시선이 많다.
명순: 그런 것 때문에 감독들이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시간을 많이 쌓으면서 되게 좋아졌고, 이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있지만, 나는 원래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거고, 영화가 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도구로 쓰이지는 않을 수 있으니까. 그런 괴리가 있다. 그 분들도 자신들의 상황을, 삶을 기록했으니까 당연히 거기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영화적인 게 나와 버리면, 거기서부터 좀 괴리가 생기고, 그것 때문에 감독들도 힘들고.
리경: 다큐멘터리가 운동으로 먼저 받아들여졌고, 운동의 수단으로 쓰였기 때문에, 아직까지 일반 관객들이 다큐멘터리를 접근하기 힘든 것, 어렵고 부담스럽고 불편한 장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그건 것 같다. 운동이다, 운동하는 수단이다, 라는 것. 다양하게 문화를 소비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ACT!: 최근에 봤던 다큐멘터리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작품은 뭔가?
리경: 아, 저는 <수련>. 서독제 폐막작 <수련>이 되게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명순: 저는 서독제에서 <거미의 땅>.
은진: DMZ에서 상영한 <엘레나>. 외국 다큐였고, 언니가 우울증으로 자살을 했는데, 언니의 모습을 계속 찾아가는? 흔적들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동렬: 저는 <시간의 소멸>? 김경만 감독님.
준호: 저도 <시간의 소멸>.
ACT!: 각자의 2014년 계획은?
명순: DMZ영화제가 10월 달인데, 영화제에서 틀어 줄지는 잘 모르겠지만, 잘 마무리해서 영화제 내고. 상금을 받은 값을, 제작지원 받은 값을 잘 했으면 좋겠다. 영화제 끝나면 여행 가려고 한다. 와이프랑 애기랑. 적금이 12월 달 만기인데 잘 부어야겠다. 제 작업하면서 아내에게 쌓인 스트레스를 힐링해줘야 할 것 같다. 애기랑 와이프가 서운했던 거를.
리경: 개봉할지도 몰라서. 개봉이 되면 잘 됐으면 좋겠다. 2천명만 넘었으면 좋겠다.
은진: 아직 디아이 후원 작업 안 끝나서 계속 대기 중이다. 자막작업까지 다 끝나고. 업체에서 연락이 없어서. 개인적인 건 노코멘트 하겠다.
동렬: 전 <송환2>가 지금 촬영 중이라 그거랑, 단편 준비 중이다.허리 재활하고.
준호: 전 오랫동안 해왔던 <노동감상>이라는 거. 태환이나 공미연 감독하고 같이 하던, 희망버스 때부터 했는데. 빨리 마무리해서 끝내고. 개인적으로는, 열심히 살려고요. 올해가 또 청마의 해니까.
ACT!: 마지막으로 액트 독자 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나?
준호: 페이스북에 올라가 있는 새해 계획과 다큐보기 일정을 인용해 주시라. 저희가 한 달에 한 번 푸른영상 다큐보기를 하는데,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이다. 푸른회원 제도는 그 때 오시는 분들에게 말씀드리겠다. 월례 다큐보기는 푸른영상 전통이다. 사람들이 와서 사무실 작업을 보기도 하고, 그 시기에 나온 다른 감독 작품도 보고. 저희가 보고 싶은 것도 보고. 페이스북 페이지에 늘 올린다. 푸른영상 검색하면 페이지가 나오는데, 거기 가입하시면 보실 수 있다. 여기서 하는 다큐보기가 굉장히 다양한, 좋은 작품을 많이 상영하고 있다. 인디다큐라던지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재밌는 작품들도 많이 보고, 감독들도 직접 오고, 공짜에다 끝나고 감독과 같이 대화도 하고, 술도 마실 수 있다.
ACT!: 긴 시간 고생 많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