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5년|10월|지키고 살려내자, 작업중지권] 작업중지권 시작은 노동조합 가입과 교육

현대중공업 하청지회 정동석 노안부장 인터뷰

중대재해 예방과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한 ‘당장멈춰’ 팀

작업중지권을 확장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점 중의 하나는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고용 자체가 보장이 안 되는 하청 노동자들의 상황에서 작업중지권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주제로 느껴지기 일쑤다.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작업을 중지하면‘생업' 자체를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뻔히 일하다 다쳐도 119구급차를 부르지 못하고 트럭에 실려 나가,‘자전거를 타다 다쳤다' 고 진술해야하고, 산재 요양 신청조차 용기가 필요한 하청 노동자에게 작업중지권은 그림의 떡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하청 노동자에게 작업중지권은 절실한 문제다. 2014년 현대중공업에서 모두 11명의 노동자가 사고로 사망했는데, 모두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위험한 상황에서 가장 원초적이고 즉각적인 대응이라 할 수 있는 작업중지, 혹은 거부나 회피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하여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정동석 노안부장을 만나 하청노동자들이 작업중지권을 어떻게 누릴 수 있을지 토론했다.



작업중지 전에 회피할 권리 먼저

"작업중지권에 앞서, 노동자가 최소한 작업거부권 즉, 위험한 작업을 거부할 권리는 행사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하청 노동자들은 그것도 어렵다. 사실 하청 노동자 뿐 아니라 직영 노동자들도 노동조합 대의원 정도 되지 않고서야 작업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힘든게 현실이다. 이러니 하청 노동자들은 작업중지권이 발동되는 의미를 피부로 느끼기 어렵다. 느낄 수가 없다.

하청 노동자들한테 작업중지 발동권은 남의 일, 먼 나라의 얘기다. 나 같은 사람이나, 사내하청지회 활동가들 정도 되면‘이거 위험하다, 안 된다’고 얘기하고, 직영노조라든가 안전과에 제보라도 할 용기가 있겠지만, 우리 활동가들조차 안전보건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그렇게 나서기가 쉽지 않다. 일반 조합원이나 조합 가입도 하지 않은 하청 노동자 입장에서는 작업중지권을 만약 발동하게 되면 그에 따른 불이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불이익이라는 것이 손해배상이라든지 이런 것은 생각하지도 못한다.

작업거부권을 잘 못 행사하다 보면 역으로 회사에서 작업지시 불이행이라고 트집을 잡힌다. 그렇게 되면 징계위원회까지 회부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니까 작업중지권이 진짜 너무 힘든 얘기가 되어버린다. 실제로 정당한 작업거부권을 행사한다고 할 때도, 현장을 보존하고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증거를 남기는 등 치밀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작업지시 불이행으로 마구 몰아간다. 두 번 다시는 그런 문제 제기를 못 하도록 하려는 거다. 그러다 보니 작업중지 발동이 하청 노동자들한테는 진짜 꿈같은 얘기다."

안전 책임지지 않는 원청

물론 작업 중지, 작업 거부를 해야 하는 상황은 너무 많다. 정동석 노안부장은 현대중공업이‘안전에 있어서 낙제점' 이라고 말한다.

"도크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골리앗 크레인이 블록(조선소에서는 철판 등을 잘라 블록을 만들고 이 블록들을 접합해 배를 완성한다)을 탑재하고 이동시킨다. 크레인이 레일을 따라 이동할 때, 노동자들 머리 위로 그냥 지나간다. 이런 상황은 작업중지 발동을 떠나, 원래 있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블록 자체가 크레인에서 떨어지는 일은 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블록 안에 볼트나 너트가 빠져 있을 수도 있고, 적치물이 떨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크레인이 블록을 옮길 때는 그 밑에 사람이 있으면 안 되는 거다. 그런데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생산 우선, 안전은 그 다음이다.

직영노조에서는 작업중지권 이후에 혼재 작업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그것도 빙산의 일각이다. 내가 지금 현장에서 직접 일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 보면, 위에서 절단하고 있는데 밑에서 용접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러다 다치면 ‘너 거기 왜 갔느냐’ 고 한다. 다친 사람한테 거기 왜 들어갔느냐고. 현장에 오셔서, 배 만드는 도크장 제일 위 상부 데크에서만 왔다 갔다 해도 크레인 탑재하는 것부터 혼재 작업 들어가는 것하고 다 보인다. 이 모든 작업에 대한 지시권, 공정 관리는 모두 원청인 현대중공업이 한다. 그런데 사고만 나면, 자기 식구 아니라고 하니 환장할 노릇이다. 사용자성 부인해버리면 끝이다. 사고 나도 처벌 받는 놈은 아무도 없다. 뚜껑이 열린다. 이런 상황 생각하면 늘 입에 욕을 달고 살 수밖에 없다. 만드는 배마다 책임자 이름이 쓰여 있다. 조선 책임자, 건조 책임자 하는 식으로. 이 사람들이 모두 직영 직원들이다. 그러니까 이 배는 말 그대로 직영이 만든 배이고, 현대중공업 지배하에 하청 노동자가 일한다는 거는 누가 봐도 뻔한 건데 부인을 한다."

그러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안전을 도외시한 원가 절감 노력이 벌어진다.

"안전은 뒷전이라는 게, 안전보호장구도 제대로 안갖춰준다. 한 달에 가죽장갑 세 켤레, 반코팅 장갑 세 켤레, 흰 목장갑 세 켤레가 지급된다. 그래 놓고는 더 는 지급이 없다. 만약 비가 오면 케이블 같은 걸 당기는 작업 하면서 가죽 장갑이 금방 망가져 버린다. 장마 기간에 말은 감전 주의 좋은데, 실제 감전을 방지할 수 있는 장갑조차 제대로 지급이 안 되는 것이다. 사장이 새로 오면서 원가절감 시킨다면서, 소모품이고 뭐고 50% 감축시키겠다는 거다. 심지어는 일하는 데 드는 소모성 자재들, 용접 팁이나 절단기 등도 개수를 정해놓는다. 일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답답할 정도다. 이러니 안전에 돈을 들일 리가 있겠나."

최근 들어 조선소 중대재해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화되고, 2015년에는 현대중공업 직영 노동조합에서 작업중지권도 단체협약에 들어가게 되었는데도 회사의 안전불감증은 여전하다.

"우리 조합원 한 명이 1인 시위를 해서, 족장(비계) 야간작업 하자는 건 무산시켰다. 원래 족장 작업은 위험하니까, 야간작업은 안 했는데, 원청 주도로 이걸 시도한 거다. 실제로 한 며칠간 야간작업을 시켰다. 낮에도 위험한 일인데. 이런 일은 다 원청이 주도하는 거다. 하청 업체 사장들도 이렇게 하는 게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위험 부담은 하청 업체가 고스란히 지기 때문이다. 만일 야간 족장 작업하다가 사고 나면, 하청 업체가 다 책임져야 하니 하청업체들이 나서서 이런 시도를 하지는 않는 거다. 원청 입장에서는 밤에 족장 깔아 놓으면, 낮에 다른 일을 바로 시작할 수 있으니 이걸 원하는 거다. 이걸 우리 동지 한 명이 나서서 1인 시위를 통해 막아냈다."

대외적으로는 잇따른 사망 사고 때문에, 안전경영에 힘쓰겠다고 하면서도 뒤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산재 사망 왕국 현대중공업의 현실이다. 이런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거나 거절하는 일도, 한 명이 용기 내서‘1인 시위' 라도 벌이지 않으면 어려운 것이 하청 노동자들의 처지다.

작업중지권의 시작은 노동조합 가입과 교육에서

현대중공업에 작업중지권 단체협약이 생기고, 안전경영 노력한다고 해도 하청 노동자들의 안전에 실질적인 영향은 거의 없다는 것이 정동석 노안부장의 진단이다. 하청 노동자들의 안전이 실제로 나아지기 위해서는 하청 고용 구조가 개선돼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고용 구조가 바로 나아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노동조합 가입률이 높아지고 하청 노동조합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동석 노안부장이 생각하는 시작은 무엇보다 교육이다.

"노동조합에서 하는 교육이 있어야 한다. 사측 안전교육에서는 ‘늘 다치는 놈만 다친다’고 가르친다. 개인 부주의 탓만 하고, 자기들이 해야 할 역할은 쏙 빼버리고 말을 안 한다. 그런 교육만 받으면 모르는 사이에 거기에 물들게 된다. ‘아, 씨, 이거 내가 실수했네.’ 하면서 다쳐도 다쳤다고 말하는 것을 미안하게 여긴다. 노동자들이 얼마나 순진한지 모른다.

교육을 제대로 한다는 것은 정당한 알 권리를 제대로 보장한다는 거다. 그런 면에서 노동조합 차원의 안전교육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런데 교육 시간을 누가 할애해주는 것이 아니니 자기 시간을 내야만 한다. 게다가 아직은 하청노동자들이 그 동안 악랄한 노무관리 때문에 겁도 많다. 안전 교육, 건강 교육 때문에 한번 모이자고 해도 모이기가 쉽지 않다. 찍힐까 봐 겁이 나는 거다. 그래서 직영노조에 바라는 게 조합 산보위에서 하청 노동자 안전교육을 건의해보려고 한다. 노동조합 차원에서 하청 노동자 안전교육을 1년에 1~2번이라도, 한 시간씩 두 번만이라도 해보는 게 지금 바람이다.“

찍혀본 사람의 불안과 공포

조합원과 함께하는 교육 한 번 잡기 어려운 상황이 답답하지만, 조합원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아픈 경험을 충분히 이해한다.

"어디서 찍혀본 적 있나? 저 집단에 한 번 찍히면 아프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면 공포심리가 생기고, 그러니 교육마저 일정을 잡아서 하기가 어렵다. 지금은 하청노조도 현장에서 중식선전전도 하고, 직영노조랑 같이 집단가입신청도 받고 캠페인도 열면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조합원들이 이런 공포를 뛰어넘기가 쉽지 않다. 노동조합의 필요성은 다 알고 있고, 답도 뻔히 나와 있다. 한꺼번에 노동조합으로 오면 해결되는 것이다. 불합리한 구조를 깨부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논리이고 간단한 계산인데도 그게 잘 안 된다. 뒷짐 지고 서서는 다 해주기를 바란다. 활동하는 입장에서는 기운이 빠진다. 뭐, 이런 얘기 하면 밖에서는 하청 노동자들 왜 그렇게 할까, 바보인가 하겠지만, 바보라서가 아니다. 오래도록 불합리한 고용구조에 시달리고, 괴롭히는 노무관리에 데여서 그런 거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는 하청노동자들의 이런 공포와 불안에 맞서 싸우고 있다. 수년에 걸친 산재 은폐 고발이나, 노동조합 집단 가입 신청 운동, 안전을 무시한 야간 족장 작업을 무산시킨 활동, 노동조합 주도의 교육을 열기 위한 노력이 모두 그렇다. 하청지회의 이런 활동 속에서,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들이 공포와 불안을 이기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주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노동조합가입과 노동안전보건교육이라는 하청 지회의 작지만 중요한 발걸음이, 하청 노동자들이 자신의 몸과 삶을 기준으로 노동을 바라보는 시작이 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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