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6년|8월|특집] 작업중지권 실효화로 중대재해 예방하자

20대 국회가 풀어야 할 노동자 건강권 과제 (3)

OECD 산재 사망 1위인 우리 사회에서, 위험에 처한 노동자들이 스스로 위험한 업무를 거부하고, 위험한 상황을 중단시킬 권리를 가지는 것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현재 산업안전보건법 26조 작업중지권은 재해 예방이라는 실제 효과를 거두기에 너무 부족하다. 법은 노동자 개인에게 위험상황에서 대피할 권리를 먼저 주고, 작업을 중지할 의무는 사업주에게만 부여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직접 작업당사자가 아닌 노동조합 간부가 노동자들을 대피시키고 작업을 중지한 경우 추후에 회사로부터 업무방해로 고발되거나 손해배상청구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 법은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하기 위한 조건으로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만한 합리적인 근거'를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가 생명에 위협을 느껴 작업 중지를 실시했다 하더라도, 이후에 위험이 없다고 판명되거나 이 합리적인 근거를 노동자가 제시하지 못하면, 사업주는 언제든 해당 노동자를 징계하거나 손해를 끼치는 처우를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니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 고용이 불안한 하청 노동자들은 작업중지권을 사용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20대 국회에서 노동자 안전을 고민한다면, 산업안전보건법의 작업중지권 조항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노동자 대표에게 작업중지권을!

가장 먼저 사업주에게 있는 작업중지권을 노동자 대표에게도 부여해야 한다. 이미 여러 사업장에서 단체협약을 통해 노조, 노동조합의 안전보건 간부, 대의원, 명예산업안전감독관 등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 대표에게 위험에 대해 판단하고 작업을 중지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유사한 위험에 노출된 노동자들도 함께 대피하고 작업을 멈출 수 있도록 할 수 있고, 개별 노동자들이 부담과 눈치 보기 때문에 혹은 ‘잘 몰라서’ 작업을 중지하지 못하는 상황을 예방할 수 있어 작업중지권의 실효를 높일 것이다.

실질적인 불이익 금지가 필요하다

위험을 느껴 작업을 중지한 노동자에게 ‘합리적 근거’를 요구하는 대신, ‘판단한 근로자의 의도가 악의적이지 않다면’ 작업을 중지한 노동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프랑스 노동법에는 어떤 형식으로든 작업중지권을 제한하는 협약이나 의무를 부과하는 사업주를 벌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작업을 중단한 노동자에게 ‘합리적 근거’를 요구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작업중지권 사용을 제한하게 된다. 따라서 악의적으로 작업을 중지한 것이 아니라면, 위험하다 느껴 작업을 중지한 모든 노동자를 적극 보호할 필요가 있다.

안전과 보건에 위험이 있을 때는 모두 작업 중지를!작업중지를 할 수 있는 조건을 현재의 ‘산업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보다 훨씬 넓힐 필요가 있다. 이 ‘급박한 위험’이라는 말은 대부분의 작업중지권 사용을 전도, 추락 등 재래형 안전사고에만 국한하도록 하는 효과를 낸다. 이런 다양한 안전과 건강 위험요인으로부터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통해 보호받을 수 있기 위해 작업중지권의 범위를 대폭 늘려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3조와 제24조의 안전과 보건의 예방조치와 이를 구체적으로 정해둔 안전보건에 관한 규칙을 위반한 상황에서는 모두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어야 한다.

작업 재개를 위한 조건을 명시하자

또, 작업을 중지한 뒤 다시 작업을 재개하기 위한 조건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위험이 있어 대피한 것을 인정하더라도 작업 중지 시간이 과도하다며 업무방해나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경우가 있다. 캐나다 노동법에서는 현 상황이 작업을 중단할 만큼 위험한지에 대해 노동자와 사업주 사이에 이견이 있을 경우, 3번까지 중재 절차를 규정해 두고 이 절차가 진행 중인 동안에는 ‘사업주가 보기에 위험하지 않다 하더라도’ 노동자가 작업 중지를 지속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있다. 따라서 ‘근로자는 사업주가 적정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작업에 복귀하지 않을 수 있다’는 항목이 명시되는 것이 좋겠다.

법만 고치면 되나

법 개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작업중지권이 실제로 재해를 막고, 안전한 일터 확보로 이어지도록 엄격한 법집행이 필요하다. 인천의 한 제조업 공장에서는 사업장 한 쪽에서 화재가 발생해서 진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도중에도 다른 한쪽에서는 계속해서 기계를 가동시켰다. 노동자들은 당황했지만, 작업을 계속하라는 사업주에 맞서 작업을 멈추지 못했다. 이렇게 작업중지권을 보장하지 않은 사업주에 대한 직접적인 처벌이 이어져야 한다.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노동부의 의지도 중요하다. 법 개정이 곧 제대로 된 집행을 보장하지 않지만, 노동자의 힘과 관심으로 이루어진 법 개정은, 제대로 된 집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작업중지권 조항이 20대 국회에서 개정되도록 우리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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