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6년|9월|특집] 특성화고 현장실습 무엇이 문제인가

특성화고등학교라고 하지만 이름도 참 다양하다. 상업고등학교, 공업고등학교처럼 익숙한 이름도 있지만, 세무고, 관광고, 영상고에 e-비지니스고, 미디어고, 디지텍고, 아이티고도 있다. 예전에 실업계 고등학교, 전문계 고등학교라고 불리던 학교를 이제 특성화고등학교라고 부르는데, 이름이 다양해진 것에 비해 교육의 내실을 갖추게 됐다는 평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직업‘교육’ 대신 취업만이 목표인 학교

초중등교육법에 따르면 특성화고는 ‘소질과 적성 및 능력이 유사한 학생을 대상으로 특정분야의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 또는 자연현장실습 등 체험위주의 교육을 전문적으로 실시하는 고등학교’지만, 지금은 ‘졸업 후 곧바로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고등학교가 돼 버렸다. 1970년대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함께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공고·상고가 많이 만들어졌다. 이후 고등학교 교육 정책, 대입 정책의 변화에 따라 부침이 있긴 했지만 특히 이명박 정권 이후에는 특성화고의 교육 목표는 오로지, 그리고 꾸준히 ‘취업’에 있다는 것이 대부분의 평가다.

실제 특성화고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기능훈련과 다른 기능·기술·직업 교육의 의미를 강조한다. 특정 회사나 특수한 환경에 적합한 기술을 훈련시키는 것이 기능훈련이라면, 비슷한 기능이어도 보편적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기능교육이라는 것이다. 즉, 특정분야의 ‘제한적 기술’을 반복하여 숙달하여 습득하는 것이 훈련이고 직업에 대한 인간의 긍정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교육이다. 이런 관점에서 직업훈련원, 직업전문학교와 같은 전문기술교육을 하는 기관은 기능훈련에 적합한 교육을 하더라도, 특성화고등학교는 기능 교육적 관점을 가지고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있으며, 마땅히 그런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1) 김경엽, 특성화고 현장실습을 말하다, 군포신문, 2016.8.25

하지만 최근 특성화고 직업교육 정책은 이런 갈피를 잃은 모양새다. 일반계 고등학교가 다른 교육 목표를 상실하고 ‘대학진학률, 명문대 진학률 제고’만을 목표로 하듯, 특성화고 역시 기능 교육의 갈 길을 잃고 ‘취업률 제고’만을 목표로 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 정점에 있는 것이 현재의 현장 실습이다.

교육 대신 기능실습하는 현장실습, 학습권 침해

특성화고등학교는 현장에서의 직업·기술 교육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현장실습을 반드시 이수하도록 되어 있다. 그 동안 법률에 제대로 정의도 되지 않다가, 2016년 8월부터 시행되는 직업교육훈련 촉진법 개정안에서 처음 현장실습의 정의가 도입됐다. ‘직업교육훈련생이 향후 진로와 관련하여 취업 및 직무수행에 필요한 지식ㆍ기술 및 태도를 습득할 수 있도록 직업현장에서 실시하는 교육훈련과정’이다.

그 형식은 학기 중 몇 일 혹은 몇 주씩 현장에 나가 실습을 할 수도 있고, 산업체에 있는 노동자나 기술자를 불러 학교 실습실에서 실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특성화고에서 가장 중요한 현장실습은 조기 취업 형태로 이루어지는 파견형 현장실습이다. 특성화고 학생들은 3학년 2학기를 아예 학교에 나오지 않고, 사업체에 실습생으로 취업하여 일한다. 말이 실습이지, 그냥 조기 취업이다. 현장에서 만난 학생들은 ‘실습이란 말은 선생님들만 쓴다. 우리는 그냥 취업이라고 부르고, 주변에서도 취업생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현장실습생을 받는 사업체 사장 역시 ‘우리들은 그냥 신입직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취업을 전제로 받기 때문에, 가르치는 게 목적이 아니다.’라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실습생 때만 데리고 있는 게 아니라, 취업 시켜주는 것이니 ‘배우는 것은 학교에서 마쳐야 하는 거 아니냐’는 것이었다.

전교조 전국실업교육위원회에서는 현재의 파견형 현장실습이 근본적으로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본다. 초·중등교육법은 수업일수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3분의 2이상 출석하지 않은 학생은 유급 대상이 된다. 그런 점으로만 봐도, 현장실습은 엄연히 ‘교육’ 과정이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현장실습에는 교육은 빠지고 ‘기능실습’만 남아 있다. 그러니 특성화고 학생들은 정상적인 3학년 2학기 교육과정 학습권을 침해당하는 것이다.

전공과 관계없는 현장실습

학교 교육 대신 기능실습만으로 채워지는 현장실습을 나가도 학습권이 침해되는 것인데, 실상은 이보다 심각하다. 「직업교육훈련 촉진법」 에서도, 현장실습 산업체를 선정할 때에는 직업교육훈련생의 전공 분야를 고려하도록 되어 있다. 학교는 당연히 학생의 전공 교육과정과 관련 있는 현장실습을 실시하여야 하고, 현장실습 산업체를 선정할 때에는 산업체를 방문하여 학생의 전공분야, 산업체에서 실시할 현장실습 프로그램의 적정성, 산업체의 역량 등 교육적 측면에서 현장실습이 가능한지를 판단하여 선정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특성화고 취업률이 1년 만에 14.3%나 증가했다고 선전했던 2012년에는 취업률이 뻥튀기였다는 것이 국정감사에서 폭로되기도 했다. 당시 서울의 경우 취업기업 1위는 군대, 2위는 롯데리아였고, 경기도는 1위가 아웃백, 2위는 군대였다. 이후 4대 보험 적용 사업장 취업률을 따로 발표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렇게 쥐어짜기 식 취업률 조사를 할 수 밖에 없도록 강요한 취업률 경쟁 체제는 지속되고 있다.

2015년 3월 발간된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서도, 부산광역시교육청 등 3개 교육청을 표본으로 검토한 결과, 파견형 현장실습을 실시한 학생 중 20.5%가 전공과 무관한 산업체에서 현장실습을 실시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2016년 5월 발생한 군포지역 특성화고 졸업생 사망사건의 당사자도, 학교에서 인터넷쇼핑몰을 전공했으나, 대형 식당으로 ‘현장실습’을 나가게 됐다. 조리 관련 전공이 없는 이 학교에서 고인 뿐 아니라, 6명의 학생이 같은 식당으로 현장실습을 통해 취업을 하게 되었으니, 여전히 전공과 무관한 취업이 ‘현장실습’이라는 미명으로 지속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도교육청부터 취업지원관까지 취업률 경쟁

적절하지 못 한 일자리, 부당한 처우 등에 방패가 되어 주어야 할 교사와 학교가 오히려 바람직한 취업도 필요한 교육도 아닌 현장 실습으로 학생들을 내모는 이유는 취업률 경쟁이다. 취업률 경쟁은 교육청, 학교, 교사, 최근 도입된 취업 지원관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벌어지고 있다. 그 결과는 부적절한 업체까지 학생들을 내보내는 현재의 파행적 현장 실습이다.

2016년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익명을 요구한 경기 안양시 한 특성화고 교사는 “하루 7~8시간, 그것도 평일에만 근무하겠다고 하면 학생을 받아주는 업체가 거의 없다. 취업률에 따라 학교 평가와 예산 배정이 달라지니 학교에서는 취업률에 목맬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2) 학생도 근로자도 아닌 그들 “우린 죽음을 실습합니다”, 주간동아 2016.7.6 커버스토리, 박세준 기자.

학교장 재량으로 고용되는, 대표적인 학교 비정규직인 취업지원관도 문제다. 특성화고 교사들이 다양한 산업체와 관련된 정보를 모두 직접 모으고 걸러내기 어려우니, 학교별로 학생들의 전공과 실습 기회에 적합한 산업체를 물색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취업지원관이다. 그런데 이런 취업지원관이 비정규직이다보니, 매년 취업률에 따라 이들의 고용 자체가 위협받는다. “그러다 보니까 또 이 분들이 욕심을 부리는 거죠, 2교대 업체(처럼) 보내지 않아야 할 데도 이 분들이 추천을 해 주고... 교장선생님이 불러다가 ‘취업률 좀 높이죠’하고 계속 말하고 하면, 정규직도 교장한테 뭐 말하기 어려운데 비정규직이면... ‘취업률 좀 올리쇼.’ 하면 무리를 할 수 밖에 없죠. 그러다 보면 질보다는 양으로 가고...” 현직에 있는 특성화고 교사의 증언이다.

현장 실습이 놓인 자리, 불안한 청년 노동

물론, 자기 발전의 기회가 제공되지 않는 일자리가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 혹은 특성화고 졸업생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라는 점이다. 젊은 세대에 대한 착취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열악해진 청년 노동 전반이 그렇다. 그런 맥락 속에 현장 실습생들의 일자리, 현장 실습이 택할 수 있는 일자리도 놓여 있는 것이다.

2016년 5월 28일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 정비하던 만 19세 노동자가 들어오던 전동차에 치여 숨졌다. 김 군으로 알려진 이 노동자는 특성화고 3학년 때 지하철 스크린도어 유지 보수 업체인 은성 PSD에 현장실습 형식으로 취업했다. 사고 뒤 서울시 진상조사단의 발표에 따르면, 서울메트로는 은성 PSD와 2015년 새로 계약을 맺었는데, 2011년도 협약 때보다 연 14.4억원 적은 금액으로 용역 계약을 맺었다. 점검을 철저히 하면 고장 수리가 불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스크린도어 유지관리 용역 계약에서 고장 수리비용을 뺀 것이다. 사실 연평균 스크린도어 고장건수는 1만 2천 여 건에 달하고, 스크린도어 유지·관리에서 고장 수리가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임에도 그랬다.

후려친 용역비 책정의 부담은 노동자들에게 전가됐다. 돈이 부족하니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않았다. 2013년 1월 성수역에서도, 2015년 8월에는 강남역에서도 똑같은 사고가 이미 발생했다. 2015년 사고 발생 후, 서울시와 서울메트로는 반드시 2인 1조로 일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2인 1조 근무는 매뉴얼에만 존재했다. 2명이 해도 위험한 일에 한 명만 배치해놓고 나 몰라라 한 이 체제를 유지하는 데에, 특성화고 현장실습생들이 활용되었다. 서울시 진상조사단에 따르면 은성PSD는 2014년 11월부터 공업고등학교 학생을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무 현장에 배치했다. 보고서는 이를 두고 "실습생들은 2인 1조 매뉴얼을 (서류상으로) 지키기 위해 활용됐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대가 취할 수 있는 일자리 ‘저임금 불안정 노동’이라는 맥락에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의 일자리도 놓여 있다. 현장실습은 젊은 노동자를 억지로 인기 없는 일자리로 공급하는 파견 업체 역할을 맡고 있다.

청소년, 현장 실습생의 특별한 불리함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들에게는 20대 노동자들이 공통으로 가지는 열악함과는 다른 특수한 문제도 있다. 청소년이라서, 나이가 어려서, 사회 초년생이라는 특징은 약점이 되고,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의 목소리를 막고, 괴롭힘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역시 특성화고 3학년, 현장실습생으로 CJ 제일제당 진천공장에서 2013년 11월부터 일하던 한 학생이, 일하기 시작한지 채 세 달이 되지 않은 2014년 1월 기숙사 옥상에서 투신해 사망했다. 사망 4일 전 회식 때, 입사 동기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동료 A로부터 얼차려를 당하고, 머리를 밟히고 뺨을 맞은 뒤였다. 사건 자체도 매우 큰 스트레스였고, 사건이 밝혀지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가해자의 협박을 이기지 못한 결과였다. 이 사건은 2015년 3월 결국 산업재해로 인정됐지만, 비슷한 사건이 올 해 경기도에서도 다시 발생한 것이다.

“현장실습 시 실습생에게는 야간작업을 시키지 않겠다고 구두로 약속을 받았지만 막상 건설현장에서는 거의 매일 야간작업을 했다. 게다가 다른 근로자들에게는 야근수당이 지급된 반면, 나는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받지 못했다. 가끔은 현장 반장이 주말에도 불러 일을 시켰다. 답답한 마음에 학교에 연락해 관련 사항을 이야기했지만 ‘참고 다니라’는 식의 대답만 돌아왔다. 결국 참을 수 없어 두 달 만에 실습을 그만두자 학교에서는 나 때문에 후배들이 현장실습을 나갈 회사가 줄어들었다며 교내봉사 징계를 내렸다.” 3) 학생도 근로자도 아닌 그들 “우린 죽음을 실습합니다”, 주간동아 2016.7.6 커버스토리, 박세준 기자.

다른 현장실습생을 만나도 비슷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군포 특성화고 졸업생 사망 사건에서도 실습을 나갈 때 담임선생님은 ‘나갔다가 돌아오면 학교에 누가 되니, 꾹 참고 잘 다니라’고 격려했다. 시작하기 전에는 격려였지만, 일터 괴롭힘과 노동 착취가 벌어지는 상황에서는 족쇄가 된다. 실습생이라고 야근 수당을 안 준 것처럼, 실습생이라고 수습 기간을 두 번 겪게 하고 그 사이의 임금을 적게 주는 사업주도 있었다

직업교육의 목표를 다시 세우는 것부터

특성화고 교육 전반, 특히 현장실습과 관련한 여러 문제가 계속 터지고,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계속되고 있지만, 교육부의 정책 방향은 오히려 반대로 가고 있다. 특성화고 확대, NCS(국가직무능력표준) 기반으로 한 교육과정 전면화, 중소기업 맞춤형제도, 산업일체형 도제교육 확대 등 전체적으로 ‘교육’보다는 ‘기능실습’을 강조하는 방향이다.

하지만 특성화고의 교육 목표는 ‘취업’이 아니고,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기술과 인간, 기술과 사회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자부심 있는 기술인이자 노동자로 성장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학사 일정 정비, (특성화고) 교육과정 재편, 취업률 경쟁 폐기 등과 함께 적절한 기간과 방법의 현장실습 방안에 대한 고민도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현장실습 하나에 대한 단기적 대안이 아니라, 직업 교육, 노동 교육의 큰 줄기를 다시 세우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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