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한 세상이 버린 배달청년노동자의 목숨,
우리가 이제부터라도 지켜야합니다.
청년유니온 조직팀장 이 종 필
배달청년노동자의 현실, 한국사회의 거울
90년 대 말부터 시작된 경제상황 악화와 노동자들에 대한 일상적인 구조조정으로 인해 2000년 대 이후 부지기수로 늘어난 것이 자영업입니다. 그 중에서도 동네 골목골목 빼곡하게 들어선 피자가게, 치킨가게 등 다양한 요식업종이 단연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합니다. 배달을 주요 영업방식으로 하는 요식업의 특성 상 배달업 노동의 수요 증가와 가계상황 악화‧등록금 등 교육비의 폭증으로 인한 청년 노동의 증가가 맞물리면서 배달업 노동에 종사하는 청년들의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해왔습니다. 이렇듯, 배달업에 종사하는 청년노동자들의 증가는 한국사회구조의 변화에 기인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오토바이라는 수단 자체가 갖는 위험성에, 제대로 된 보호장비조차 갖추어져 있지 않은 열악한 현장상황, 촌각을 다투는 속도경쟁으로 인해 배달업 노동자들은 항시적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최근 5년 간 배달업에 종사하는 산업재해 노동자 수는 7천 81명에 달합니다. 이것도 통계에 잡힌 수에 불과할 뿐, 영세한 자영업이나 프랜차이즈 직영점이 다수인 배달업 사업장들의 규모와 산업재해보다는 사업장에 피해가 가지 않는 교통사고처리를 선호하는 업주들의 관행에 비추어 볼 때, 실재는 통계수치를 훨씬 뛰어넘을 것임이 분명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 작년 12월, 대학등록금을 벌기위해 피자배달을 하던 24살 청년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으며,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순간에도 대학입학을 2주 앞 둔 한 청년이 피자배달 도중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이러한 청년들의 '사망'소식은 냉철한 이성적 판단을 넘어 소름끼치는 경악과 울컥, 감정을 요동치게 합니다.
세 가지 원인
원인은 세 가지 '3無'입니다. 어떻게 하면 비용을 줄이고, 이윤을 올릴지에 만 골몰하고 노동자들의 안전에는 최소한의 대책조차 마련하지 않은 채 방관하고 있는 '회사들의 무관심', '알고 있었다', '지켜보고 있었다'면서도 실질적인 대책은커녕, 회사들에 대한 관리감독 마저 손 놓고 있는 '정부의 무대책', 그리고 배달한 음식을 전해 받는 순간 어쩌면 음식의 상태에만 관심을 뒀을지 모를 '우리의 무관심'. 이 '3無'가 근본적으로 변화되지 않는 한 청년들의 목숨을 건 질주는 멈출 수 없을 것입니다.
'3無'에 던진 물수제비
다행히도, 청년유니온이 작년 12월 최 모 군 사망 사건 이후 기자회견과 공개서한 전달 등 작지만 구체적인 문제제기를 시작한 이래 '3無'에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선, 각계각층의 지지와 동참, 네티즌들의 지지와 각성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뜨거운 피자가 청년들의 목숨보다 중요할 순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로 공감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피자헛 사측은 여론에 못 이겨 피자헛 노동조합이 제기한 평가항목에서의 '스피드 항목 삭제'를 2월 1일 부로 실시했고, 정부에서는 '배달노동자들의 안전'과 관련한 라디오공익광고를 제작해 방송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아직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냇물 가에서 잘 고른 자갈돌로 물수제비를 뜰 때 일어나는 작은 파장 정도는 되었다고 자평합니다. 이제 남은 과제와 가야할 방향은 자명합니다.
진정한 변화를 위한 결론
어떤 분들은 묻습니다. OO업체는 '30분 배달제' 안한다는데요?, '30분 배달제'만 폐지한다고 뭐가 변하겠어? '30분 배달제' 폐지를 주요 타깃으로 삼은 것은 배달업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많은 원인들 중 상징적 의미를 갖는 이 제도의 폐지를 여론화하면서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이 회자되고, 꼬리에 꼬리를 물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목표와 방향은 청년유니온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민주노총서비스연맹이 공동명의로 다섯 개 피자업체(도미노피자, 미스터피자, 피자헛, 파파존스, 피자에땅)에 보낸 공개서한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이제 위 공개서한에 대해 2월 22일까지 요구한 답변에 따라 후속 행동이 결정될 것입니다. 그리고 공개서한에 담긴 요구 이외에도 보다 근본적으로는 '적정인력 확보 및 고용안정', '사고 시, 산재적용 의무화', '배달수단(오토바이) 개선 및 대체방안' 등을 실현하고, 관련 법개정 등의 다차원적인 접근을 통해 배달노동자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변화를 끊임없이 만들어 갈 것입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문제는 '당사자'입니다. 지금까지는 사실상 외부에서 문제제기하고, 대책을 강구해온 양상이었습니다. 이제 내부의 힘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피자헛의 사례에서도 잘 드러나 듯, 안팎에서 동시에 노력할 때, 그 성과는 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 '당사자'는 배달업에 종사하는 (청년)노동자 당사자들이 첫 번째입니다. 현재, 배달업노동자들이 모여있는 사업장들은 대부분 노동조합 등 당사자 조직이 거의 전무한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업체들이 약속을 한다고 하더라도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견제와 감시가 이루어지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사자들이 당장 광범위하게 조직되기란 말처럼 간단하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또 하나의 '당사자'가 있습니다. 이번에 공감을 표해 준 네티즌들과 시민들이 자신의 '지역'에서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감시하는 것입니다. 시, 군, 구 혹은 동 차원에서 일종의 소비자 운동으로서 '배달노동자 안전 감시센터'와 같은 운동이 벌어진다면, 오히려 더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모쪼록 비정한 세상이 버린 청년노동자들의 목숨을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함께 지켰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