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1년ㅣ3월ㅣ최도은이 쓰는 이달의 노래] 노란봉투


노 란 봉 투




민중가수 최 도 은

늦은 밤 집에 돌아와 보니 야윈 아내 거칠은 손으로
편지가 왔노라고 내미는 노란봉투
온 몸에 전율이 흐르는 듯 등줄기에선 식은땀이 흘러
조심히 뜯어 본 노란 봉투
“귀하는 파견법에 의해 해고되었음을 통보합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니 창백한 형광등 불빛
눈물이 흘러 가슴에 흘러 주먹이 불끈 떨리네
세상아 이 썩어 빠진 세상아 맘 놓고 일할 권리마저 없는
세상아 이 미쳐버린 세상아 뒤집어엎을 세상아
병들어 누워계신 어머니 무슨 일이냐 물어 오시네
한구석 벽에 기댄 딸아이 얼굴이 샛노래지네
고개를 들어 천정을 보니 창백한 형광등 불빛
눈물이 흘러 가슴에 흘러 주먹이 불끈 떨리네
세상아 이 썩어 빠진 세상아 맘 놓고 일할 권리마저 없는
세상아 이 미쳐버린 세상아 뒤집어엎을 세상아

(2003년 주봉희 글, 백자 곡)

이 달의 노래는 2003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에서 제작 발표한 <비정규노동자의 노래>에 담긴 ‘노란 봉투’입니다. ‘국민이 행복한 나라, 세계가 사랑하는 한국’을 만들겠다고 떠드는 구호가 요란한데, 저는 3월의 노래로 해고노동자의 아픔이 절절히 배어 있는 ‘노란봉투’를 정해 보았습니다.
홈페이지에서 찾은 ‘노란봉투’라는 노래를 온 종일 반복해 들으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릅니다. <일터>를 보시는 여러분과 함께 이 노래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어 두서없는 노래이야기 몇 자 남기겠습니다.
얼마 전 본 기사에서 우리나라의 중요 공업 도시 중 한 곳인 울산광역시의 1인당 GNP가 4만 불이 넘었다더군요. 지난 2월 말 ‘아이들 등록금만 생각하면 가슴이 숯덩이가 된다’고 말하던 마흔넷 쌍용자동차 무급휴직 노동자는 스트레스로 인한 심근경색으로 아이들과 함께 잠을 자다 숨을 거두었는데 그의 통장 잔고가 4만원 이었다 합니다. GNP가 4만 불이라는 데, 왜 또 다른 누군가는 카드빚 150만원에 통장잔고가 4만원이어야 하는지...
커가는 아이들 먹이는 일도 만만치 않았을 마흔 네 살의 무급휴직 노동자는 복직의 약속조차 지키지 않는 회사와 아이들의 등록금 걱정을 하면서,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으면 잠을 자다가 숨을 거두었을까... 한숨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직장을 잃고 그로 인해 아내를 먼저 보내고 엄마 없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마흔 넷의 무급 휴직자는 얼마나 몸부림을 쳤을까요. 20년간 현장에서 일한 댓가로 남겨 놓은 돈이 4만원이라니... 먼저 보낸 아내의 첫 기일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는데...
한국은 세계에서 월등히 높은 경제 규모를 자랑하며 교역규모 세계 11위, 경제규모 세계13위를 차지하는 부강한 국가가 되었다 하는데... 전 세계 어느 곳을 가든 삼성과 LG의 TV, 현대자동차를 볼 수 있는, 전 세계 사람들이 이용하는 막강한 브랜드를 가진 나라가 되었다 하는데... 이름 있는 회사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좀 살만 한 건지... 삼성전자와 SK텔레콤, 현대 오일뱅크, SK에너지, 현대 자동차 등 이름깨나 날리는 회사에 다니는 직원들은 2010년이 역대 최고의 영업이익을 달성한 해라 수 천 만원의 성과급을 받았다고도 하고, 펀드매니저에게 가면 목돈으로 받은 노동자들의 성과금을 어떻게 운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컨설팅도 해준다는데,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20년이 넘게 다닌 직장에서 쫓겨나 이렇게 비참하게 삶을 마감해야 하는 건지....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하는 이 땅의 현실이 무섭고 버겁습니다.
수 십 년간 국민의 세금과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해 만들고 유지 보수한 우리나라의 세계적 브랜드들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세계 10위권에 드는 부강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누리고 얻고 있는 삶은 무엇인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줄줄이 목숨을 버리는 현실 앞에 그저 죄인의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노란봉투’는 1998년 우리나라에서 파견법이 시행된 이후 정리해고 광풍의 직격탄을 맞은 해고 노동자가 남긴 이야기를 노래로 만든 것입니다. 민주노총 전 부위원장이셨던 주봉희 선배님의 말씀에 의하면, 2000년부터 신문 등을 통해 ‘파견법 철폐’를 걸고 싸우는 자신의 모습을 눈여겨 본 부천지역의 한 해고 노동자가 자신의 갑갑한 처지에 대한 하소연을 한 사연을 메모해 두었던 것이 ‘노란봉투’의 노랫말이 되었다 합니다. 노래를 만들고 작곡한 사람은 노래패 <우리나라> 소속의 민중가수 백자입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죽음을 보면서 아무런 힘이 되어 주지 못하는 오늘의 현실을 반성하면서, 고인의 죽음이 그리고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기를 바라며 3월의 노래로 ‘노란 봉투’를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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