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1년 l 3월ㅣ이러쿵저러쿵] 항아리를 깨뜨리자


항아리를
깨뜨리자



한노보연 선전위원 최 종 배


중국의 학술사에서 역사적 거작을 꼽는다면 하나는 기원전 2세기 사마천이 저술한 사기이고, 다른 하나는 11세기 사마광이 지은 자치통감이다.
사마광 (司馬光 ; 1019~1086)은 북송의 정치가이며 사학자로 자치통감을 지었다. 관직을 물러나 15년 이상 오로지 집필에 몰두하였는데 그의 나이는 66살이던 1084년 완성된 자치통감은 249권, 3백만 자에 이르는 방대한 역사서이다. 중국에서 첫 편년체통사(編年體通史)이며, 기재된 역사는 기원전 403년부터 기원 959년까지로 1362년간의 중국역사가 언급되어 있다. 통치계급을 위한 역사서이며, 과거의 역사와 경험을 기억하고 교훈으로 삼아 전통을 중하게 여기고 잘 지켜야 한다는 의도에서 제목을 자치통감이라고 지었다.
그는 청렴하고 학술에 전념하였으며, 개인적인 생활이 항상 검소했다 한다. 부인이 죽었을 때 사마광의 집에는 장례를 치를 돈마저 없었는데, 아들 사마강과 친척들은 모두 돈을 빌려서라도 장례를 체면에 맞게 치르자고 주장했지만, 사마광은 오히려 근검한 것이 귀한 것이라고 아들을 훈계했다고 한다. 나중에 사마광은 작그마한 땅을 저당잡히는것으로 검소하게 장례를 치렀는데 이 일을 통해 사마광은 후세에 전지장처(典地葬妻)라는 이야기를 남겼다.
신종황제가 왕안석을 중용하여 귀족들과 대지주, 대상인, 고리대금업자들의 폭리를 억제하고 관리들에게도 노역의 의무를 부과하여 국가재정을 충실히 하려 하자 그 반대편에 섰던 사마광은 정치에서 일선에서 물러나 15년간 역사서 집필에 몰두했다. 1084년 책을 완성한 후 얼마되지 않아 신종황제가 죽고, 나이 10세의 철종황제가 즉위하고 태황황후 고씨의 섭정이 시작되며 사망광은재상으로 기용된다. 그가 재상으로 오른 후 1년 사이에 그간 시행되었던 모든 개혁(신법)의 대부분이 폐지될 정도로 사마광은 밤낮 없이 일했는데 부임 8개월만에 지나친 과로로 죽었다. 신법의 폐지를 일생의 사업으로 여긴 그는 병상에서도 "신법을 뿌리 뽑기 전에 내가 죽으면 안 된다"고 말하며 죽어갔다고 하는데, 신법당의 재상이었던 왕안석은 사마광에 의해 대부분의 신법이 폐지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비통한 가운데 1086년 병사했다 한다.
후세사람들은 사마광의 인간됨, 사람과 인생을 대하는 소박함, 청렴결백한 삶에 대해 후한 평가를 한다. 철저하게 신분질서와 계급에 충실했던 그의 고집스럽던 삶과 보수적 정치에 대해서 유감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 사마광이 어렸을 때 친구들과 정원에서 놀고 있었다. 정원 안에는 가산(假山 : 정원 등에 돌을 모아 쌓아서 조그마하게 만든 산)이 있었는데, 그 아래에 물이 채워진 커다란 항아리가 있었다. 어린이들이 가산 위에서 재미있게 놀고 있던 중 한 아이가 항아리에 빠지고 말았다. 놀란 아이들은 그 아이를 꺼내려고 하였지만, 물독이 너무 커서 아이들 힘으로는 구해낼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하다가 울음을 터뜨렸고, 어떤 아이는 어른을 찾아 뛰어 갔다. 그 때 사마광 어린이가 돌을 집어 들어 물독을 깨뜨렸다. 그 덕에 항아리에 빠졌던 아이는 무사히 살아났다. 이에 사람들은 사마광의 지혜가 범상치 않음을 알았다. 이 이야기는 후일에 민간 화가들에 의해 소아격옹도(小兒擊甕圖 ; 어린 아이가 항아리를 깨뜨린 그림) 라는 그림으로 즐겨 그려지게 되었고, 어린 아이들의 교육에도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되었다고 한다.
다급한 상황에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커다란 물항아리를 깨뜨리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은 어린 아이의 마음이 놀랍다. 물항아리가 아무리 크고 좋다 한들 생명에 비할 수는 없다고 지금은 다들 생각하지만, 물항아리는 목조주택의 방화(防火)를 위해 당시에는 필수적인 기물이어서 조상과 집안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까지 가진 소중한 물건이었기에 이를 깨뜨린다는 것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중요한 일일지라도 생명을 생각할 때 한 번은 기억해 볼 이야기이다. 사람의 생명을 삼키는 항아리는 마땅히 깨뜨려져야 한다. 사람 생명의 중함은 무엇에도 비할 수 없다.
죽어도 괜찮다고 여기며 일하는 노동자는 없다. 노동현장에서 신체의 훼손을 당하거나, 돌이킬 수 없는 질병을 얻어 절망과 고통 속에서 생명을 빼앗기는 일이 결코 줄어들고 있지 않다고 판단되는 이 나라에서 깨뜨려야 할 항아리는 무엇일까?
불과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인간존엄과 생명존중이 이야기되어졌다. 염치 없는 자를 사람 취급하지 않던 때가 있었다. 염치와 부끄러움 없이 재산을 함부로 긁어 모은 자본과 동조자들이 만든 생존과 경쟁의 이데올로기에 심하게 신음하는 지금 수많은 질병과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자본의 선전과는 달리 결코 범상치 않음을, 그리고 생명과 존엄을 다시 힘을 모아 이야기하고 전해야 할 때다. 우리가 깨뜨려야 할 항아리는 혼자서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여럿의 힘으로 밀어 넘어뜨려야 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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