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1년ㅣ3월ㅣ미디어 비틀어보기]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아쉬움


산재 앞에서만 초라한 길라임 이야기

-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아쉬움



한노보연 선전위원 푸 우 씨


얼마 전까지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을 주말 TV앞으로 끌어 모으며 ‘현빈 앓이’에 몰아넣었던 드라마 ‘시크릿가든’이 끝났다. ‘시크릿 가든’은 TV드라마의 매우 진부한 소재가 되어버린 재벌과 평범한 여성의 사랑을 그린 신데렐라 이야기였지만, 배우들의 열연, 재치 있는 대사, 화려한 볼거리 등의 여러 가지 요소로 인해 매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재벌3세 백화점 경영자 김주원(현빈 分)과 스턴트우먼 길라임(하지원 分)의 사랑을 소재로 구성된 ‘시크릿 가든’은 필자도 매우 재미있게 본 드라마인데, 그 중 눈여겨 본 내용이 있어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모든 것 앞에 당당한 길라임, 산재 앞에서는 초라한 그녀

극의 여주인공 길라임은 세상 그 어떤 것 앞에서도 너무나 당당한 여성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고도 꿋꿋하며, 명품으로 치장한 사람들이 가득한 백화점 VVIP 라운지에 격이 안맞는 옷을 입고 들어가서도 주눅들지 않는다. 심지어 소매치기 현장을 목격하고는 단번에 쫓아가 자신보다 거대한 몸집의 악당을 한방에 제압하기도 한다. 그래서 극의 도입부 남자 주인공 김주원이 자신과

완전히 다른 세상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나서도 좀체 주눅 들지 않는다. 극중 그녀의 당당함은 항상적인 위험 상황속에서도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연기를 해내는 스턴트우먼이라는 설정이 어쩌면 맞춤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할 정도이다. 이런 그녀의 당당함은 드라마의 말미에 결국 신분의 차이를 이겨내고, 김주원의 온갖 뒷배경까지 극복하고 자신의 사랑을 지켜내는 것으로 나타난다.
인간 그 자체의 매력보다는 든든한 뒷배경과 재력에 반해 다가오는 여성들에게 실증을 내던 김주원도 이렇게 세상 앞에 당당한 그녀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결국 둘은 신분을 넘어선 사랑의 결실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안타까움이 있다. 극중 그녀는 그 어떤 것에서도 당당하지만, 산재 앞에서는 전혀 당당하지 않다는 것. 특히 주인공들의 첫 만남이 이뤄지는 영화촬영장에서 촬영 도중 칼에 베이는 깊숙한 상처를 입은 그녀는 오히려 상처가 경미하다고 둘러대고, 걱정하지 말고 촬영을 마치자면서 자신의 상처를 감추기에 급급하다. 결국 과다출혈로 인해 실신상태로 김주원에 의해 병원에 실려가 응급처치를 해야 하는 상태에 이르면서도 말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이 또 있다. 스턴트배우들은 맨날 다치고, 깨지고, 그래서 목숨까지 걸어야 하기 때문에 웬만한 부상 정도는 당연히 견뎌야 한다고 어느덧 드라마를 보는 모든 이들이 공감하고 있던게 아닐까 하는 사실 말이다. 심하게 말한다면 ‘당연히 촬영중에 다쳤으면 영화제작사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아야지!’라는 것으로 우리의 생각이 이어지기 못하고,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라는 내면화가 세상 많은 이들에게 깊숙이 자리잡힌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 말이다. (오버아니냐구? 그럼 말구.ㅋㅋㅋ)
어쨌든 이런 설정은 또 다른 아픈 현실로 드러난다. 상처를 감추려고 하는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제대로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고 촬영에 나섰던 촬영팀에 항의하던 액션스쿨 대표가 오히려 영화감독에게 계약해지의 압박을 받게 되는 것. 먹고 살 기회를 주는 영화현장에 함부로 대들었다가는 계약해지 당한다는 너무나 냉엄한 논리가 깊숙이 잡혀있음을 생생히 보여준다. 인간답게 살아보자고, 처우개선이 필요하다고 노조를 결성하면 바로 업체폐업이나 계약해지를 당하는 간접고용노동자의 현실처럼 말이다.
결국 치료를 받고 정신을 차린 길라임은 별것도 아닌데 왜 병원에 데려왔냐며 오히려(!) 김주원에게 따진다. 김주원은 그녀의 태도에 당황하지만 이쯤은 얼마든지 베풀 수 있는 경제적 배경을 가진 신분의 사람이며, 이것이 사회지도층으로써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한다.

일하다가 다쳐도 스스로 피해사실을 덮어야만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기 때문에, 산재은폐의 주역(?)이 되고 마는 길라임. 모든 것 앞에 당당한 그녀가 결국 먹고 사는 문제, 아프다고 하면 일을 못할 지 모른다는 고용위기 앞에 한없이 초라해 지고 마는 안타까움이란!
드라마에서는 그나마 우연한 기회로 사회지도층인 남자주인공의 순수한 선행 때문에 치료라도 받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선행은 기대할 수도 없다는 것. 이것이 냉엄한 현실 아닌가? ㅠㅠ

예술인들의 현실
이런 내용과 관련해서 스턴트맨들의 산재보험 관련 내용을 살펴보니, 현실은 더 참담하다. 스턴트맨과 무술연기자들은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어 4대보험 적용의 예외에 있다는 것. 이런 상태이니 스턴트맨을 포함한 예술인들은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최근 최고은 작가의 죽음을 계기로 예술인들이 4대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발의됐던 ‘예술인복지법’이 새삼 주목받고 있지만, 이 또한 언제쯤 제대로 안착할 수 있을지 모르는 형국이다. 09년 10월 정병국 한나라당 의원과 서갑원 민주당 의원에 의해 각각 제기된 법안이 상임위 논의과정에서 정부부처의 반대로 지금까지 표류하고 있으니 말이다.
2개로 발의된 ‘예술인 복지법’은 “예술인에게 법적으로 근로자나 유사근로자의 신분을 보장해 줘 국민 4대보험 가입대상자로 편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직업예술인이 갖는 불안정한 수익구조나 활동의 비연속성 등을 고려해 활동 지원 기금을 마련하거나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설립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법무부는 ‘예술인’의 개념이 포괄적이어서 예술단체의 난립과 국가예산 낭비가 우려된다고 반대하고, 기획재정부는 예술인복지재단의 신설과 관련해 타 업계 종사자와의 형평성을 제기하며 삭제를 요청했고, 고용노동부는 공적지원을 매개로 한 실업금여와 퇴직급여 부분을 삭제해야 한다고 했다고 하니 정부부처 의견이 수용되어 통과되더라도 결국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누더기가 되어버리는 형국이다. 결국 이래저래 힘없는 자들은 ‘권리 보장’ 얘기 꺼내지 말고 조용히 죽어있으란 소리와 다름없다.

좀 더 과감하면 어땠을까?
어쨌든 ‘시크릿 가든’은 판타지가 첨가된 드라마답게 엎치락 뒷치락 영혼이 바뀌고, ‘알고보니 생명의 은인의 자식이었네’라는 설정과 ‘죽었다가 살아나기’까지 등장하며 시청자들의 애간장을 녹이다가 결국 행복한 결말로 끝맺는다.
마지막 편에서는 대다수 드라마가 그렇듯 몇 년 후의 변화된 행복한 일상을 담고 있다. 그 중 가장 훈훈한 장면은 이제 일개 배우에서 액션스쿨의 대표가 되어버린 길라임의 액션스쿨에 소속 스턴트배우들이 영화촬영 중 부상을 당했을 때 김주원이 운영하는 백화점 연관 병원에서 무상으로 치료를 받는 장면이다.
그렇지만 조금은 아쉬움이 남았다. 사회지도층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여자친구를 위해서 전용항공기도 동원하고,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능력을 발휘하던 그가 고작 자기 아는 사람들에 대한 베풂만 실천하는 꼬라지 말이다. 김주원이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던 노블리스 오블리주, 사회지도층의 실천이 너무 제한된 것 아니냐는 것. 하긴 실제 사회지도층이 '정말 일하다가 다친 사람들의 심정을 알기나 할까?'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정도의 선행과 혜택을 베푸는 모습도 꽤 진전된 내용인지 모른다. 길라임도 일관되게 산재 앞에서도 당당했었다면, 김주원도 사회지도층의 실천을 보다 제대로 발휘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며 ‘시크릿 가든’ 종영에 대한 괜한 아쉬움을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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