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1년ㅣ3월ㅣ특집] 세번째 반도체, 전자산업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주간이 열리다


세 번째 반도체․전자산업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주간이 열리다



한노보연 선전위원 흑무


2007년 3월 6일 수원의 병원에 들렀다 속초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버지의 차 뒷자리에서 황유미씨가 숨을 거두었다. 그녀의 나이 스물 셋.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죽음이 일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세상에 외쳤다. 그렇게 시작한 삼성반도체 백혈병 대책위는 지금의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 되었고 2011년 3월 6일, 그녀의 기일에 맞추어「반도체․전자산업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주간」이 열렸다.
‘황유미’는 시작이었다. 그녀의 죽음을 시작으로 ‘나도 아프다’, ‘내 동생도, 내 딸도, 내 누나도, 내 형, 내 아내, 내 남편도 고통 받다 세상을 떠났다’는 피해자의 목소리가 세상 밖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세상에 외쳤던 그 시작.
이번 추모주간은 3월 6일 서울역 추모제를 비롯해 시청, 강남 삼성본관, 수원역 앞 선전전을 진행하고 수요일 저녁 수원촛불로 막을 내렸다. <특집>에서는 3월 5일(토)부터 9일(수)까지 5일 동안 진행된 추모주간을 다룬다.


이번 추모주간은 크게 네 가지에 중점을 두었다.
① ‘나를 잊지 마세요’ - 46명의 사망 노동자들을 기억하고 추모한다 2009년「제1회 반도체․전자산업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 행사」를 열었을 때만 하더라도 세상에 알려진 피해자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2011년 2월 현재 삼성반도체 25명, 삼성LCD 6명, 기타 삼성전자 6명, 삼성전기 7명, 삼성SDI 2명 등 반올림이 확인한 삼성전자․전기의 산재 사망 노동자들은 46명에 이른다.
② 삼성과 정부의 책임을 촉구하는 1만인 서명운동 전개 2007년 11월부터 정부의 산재인정과 철저한 조사 및 대책 수립, 삼성의 정보공개와 책임을 촉구했고 벌써 만 3년이 넘었다. 하지만 삼성과 정부는 책임 있는 답변을 내놓기는커녕 피해 노동자와 가족들의 알 권리, 참여할 권리, 치료와 보상의 권리를 반복해서 침해하고 있다. 그 사이 삼성전자․전기의 직업병 피해 제보는 130명으로 늘어났고, 피해 노동자와 가족들의 고통은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 이번 추모주간을 통해 국제서명운동을 집중적으로 진행하고, 이를 모아 삼성과 정부의 책임을 힘 있게 묻고자 한다.
③ 반도체․전자산업 노동 현실을 세상에 알린다 반도체․전자산업의 문제는 화학물질이나 방사선 등 물리화학적인 환경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수많은 제보자들이 입을 모아 장시간 고강도 노동, 현장 통제, 노동 기본권 박탈 등 척박한 반도체․전자산업의 노동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삼성전자 LCD 사업장에서 과로와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얻어 지난 1월 11일 세상을 떠난 고 김주현 님의 비극과 민주노조를 말살하기 위해 직장폐쇄와 폭력을 동원해온 KEC 경영진의 모습은 그 대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번 추모주간에는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훼손하는 반도체․전자산업의 현실과 그 현실의 피해자로 머물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 싸우고 있는 이들의 존재를 알리는 데 힘을 쏟고자 한다.
④ 열 두 가지 실천 제안 - ‘하나라도 함께, 한 달에 하나씩’ 반도체․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노동조건을 인간답게 만들기 위한 운동은 수많은 분들의 지지와 자발적인 참여를 기반으로 자라나고 있다. 이번 추모주간에는 ▲반올림 카페에 격려 글 남기기 ▲사진 한 장의 연대 참여하기 ▲국제서명운동 참여하기 ▲故 김주현 님 관련 daum 아고라 청원 참여하기 등
“반도체, LCD 공장에서 암으로 죽어가는 2-30대 젊은이들을 삼성과 정부가 제대로 책임지라고 서명해주세요.” “백혈병, 악성빈혈 피해노동자들에겐 헌혈증이 필요해요.” (사진=반올림)
누구라도 직접 참여하고 실천할 수 있는 열 두 가지 실천 제안을 하고 그를 통해 그 기반을 더 넓고 탄탄하게 다지고자 한다.


추모주간의 첫 번째 일정은 3월 5일 시청광장에서 열린 103주년 3.8 여성대회였다.
좋은 자리를 위해 아침에 모여 부스를 차리고, 선전활동을 제대로 한 번 해보겠다 주먹을 불끈 쥐며 새로 구입한 걸개걸이를 조립하고, 방진복을 입고 국제청원운동 서명을 받고, 내일 있을 18시 추모제를 알린다.
여성대회와 반도체․전자산업 피해자. 그녀들은 대부분 고등학교를 마치기도 전에 면접을 보고 취업을 한다. 공장은 기흥/온양 등지에 자리하고 있는데 정작 노동자들은 저 멀리 속초에서 강경에서 실어 나른다. 집에서 멀리 떠나온 그녀들은 고강도의 노동, 교대근무를 하며 기숙사-공장을 쳇바퀴 돌듯 오간다. 다른 세상을 만나볼 기회 없이 기숙사와 공장을 오가는 그녀들에게 삼성의 문화와 가치, 지향은 존재하는 세상의 전부이며 정답이기도 하다. 몸이 힘들고 아프기도 하지만 삼성은 또래 여성들에 비해, 같은 업종의 노동자들에 비해 넉넉한 임금으로 보상한다.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 암으로 사망했다는 이야기들을 들은 선생님들은 학교로 날아온 삼성반도체 입사 원서를 감추기도 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 삼성반도체와 암. 그러나 여전히 삼성반도체․전자는 가난한 그녀들에게 가고 싶은 공장이다.


여기는 서울역. 기차를 타기 위해 사람들은 바쁘게 뛰어올라간다. 서울역 광장 한 쪽에서는 18시 추모제 준비가 한창이고 한 쪽에서는 선전전을 하며 시민들에게 서명에 동참할 것을 부탁한다.
“... 오늘은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2007년 스물 셋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故 황유미씨의 기일입니다. 오늘 저녁 6시, 이 자리에서 시민여러분들과 함께 하는 추모제를 진행합니다. 황유미씨의 추모제를 이곳에서 함께 하는 이유는, 그녀가 ‘반도체․전자산업 노동자들의 건강과 인권’을 요구하는, 그 목소리의 시작이었기 때문입니다...”

건물 밖으로 끌려나온 유명종씨(위). 故 김주현씨의 아버지 김명복씨(아래)는 심근경색 증세를 보여 강남본관 앞에서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강남성모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사진=미디어충청)
“...마흔 여섯입니다. 처음엔 단 한 명이었지만, 지금 알고 있는 반도체․전자산업에서 일하다 직업병으로 사망한 노동자가 벌써 마흔 여섯 명입니다. 아직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 피해자들은 더 많을 겁니다. 그 피해자들이 자신의 고통을 세상에 외칠 수 있는 힘이 되어주세요. 삼성에게 직업병 책임을 인정하라는 요구, 그리고 지금 일하고 있는 이들에게, 앞으로 일할 이들에게 인간적이고 안전한 노동조건을 제공하라는 국제청원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함께 해주세요...”


같은 날, 피해 노동자의 가족들이 강남역에 있는 삼성본관을 찾았다.
딸의 기일 그리고 55일째 안치실에 있는 아들. ‘이 문제를 해결하자’며 본관에 발을 딛는 순간 경비원들에게 사지가 들려 건물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피해 노동자의 가족들은 삼성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외쳤다. “노동자 다 죽이고 법을 안 지키는 사람은 가만두고, 대화 좀 하자고 온 우리한테 무슨 불법을 이야기 하는가. 우리가 도대체 뭘 잘못했는가. 여기가 정말 민주공화국 맞느냐.”


추모제가 시작되었다. 삼성과 정부를 상대로 딸의 죽음을 산재로 인정하라는 싸움을 시작한지 4년이지만 오늘 강남본관 밖으로 내던져지며 그 어느 때보다 큰 분노를 느꼈다는 황상기씨와 삼성 노동자들이 왜 자신의 권리를 말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정애정(정애정씨는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급성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민웅씨의 아내이며 10년간 삼성반도체에서 일한 노동자다)씨의 이야기, 송경동 시인의 시(‘누가 황유미를 죽였나요’, ‘꿈을 놓고 가신 당신께’) 낭독, 피해자들의 영상, 민중가수 박준씨의 노래와 몸짓 선언의 ‘열사가 전사에게’로 추모제는 진행되었다. 일요일 저녁에 진행된 추모제였지만 아이의 손을 잡고, 동료들과 함께 나온 시민들과 서울역을 지나는 시민들의 발길로 서울광장은 채워졌다. 그리고 우린 함께 외쳤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더 이상 죽지 않겠다!”


셋째 날, 넷째 날은 강남 삼성본관 앞 정확히는 삼성본관 근처에 짐을 풀었다. 하루 유동인구만 20만 명에 이른다는 강남역에서 이틀간 선전전이다.
지나는 이들에게 외친다. ‘이번 주는 반도체․전자산업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주간’이라고, ‘반도체․전자산업 피해 노동자들의 고통과 죽음을 기억하며 국제청원운동에 함께 하자’고. 선전전 장소는 높은 빌딩들 사이로 바람이 지나다니는 길이었다, 바람길... 아! 상상에 맡긴다.
아침 11시부터 저녁 8시까지 선전전을 진행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지켜보고 있다고, 꼭 이기라’고, ‘계란으로 바위치기는 아닌지 걱정된다’고 ‘삼성이 알고 보면 문제가 많다’고... 적지 않은 시민들이 우리가 건넨 유인물에 서명으로, 공감과 응원으로 답해온다. 고맙기도 짠하기도, 힘이 나기도, 우리가 한 발 더 가까워지기를 바라기도.

3월 9일 민주노총에서는 민주노총 삼성대책회의와 금속노조가 주최한 ‘전자산업 노동실태와 개선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는 삼성전자에서 발생하고 있는 백혈병과 각종 희귀질환에 의한 노동자의 사망과 잇따른 연쇄 투신사망까지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실태를 파악하고, 이에 맞선 공동의 대응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발제자와 토론자는 하나같이 급격한 성장을 이어온 한국의 전자산업이 사실상 엄청난 노동강도와 노동착취에 의한 것임을 지적하며, 해당 산업의 노동자들이 ‘무노조’ 상태에서 최소한의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구조에 놓여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지원(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은 노조 조직화 전략으로 "대기업의 노조를 민주화하는 것과 함께 대형 부품 하청 업체의 노조부터 조직해야 한다"며 "오는 7월 복수노조 시행에 맞춰 민주노총 차원의 조직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이정호(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사업실) 실장 또한 "전자산업의 인력구성이 하도급 업체에 집중돼 있고 대기업 노조 구성에 어려움이 있는 만큼, 하도급 업체를 중심으로 한 노조 조직화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정태인(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은 "현재 전자산업 노동조합 조직에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며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의 사례를 예로 들며 "중소기업 네트워크 별로 발전 계획을 세우고 장비 구입, 공동 하청 단가 계약,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교육훈련 등을 공동으로 시행”하는 모델을 설명했다.
문종찬(민주노동당) 정책위원 또한 중소영세사업장을 중심으로 한 노조조직과 지역네트워크를 통한 산업별 조직화를 강조했으며, 홍원표(진보신당) 정책연구원은 노조 조직을 위해 "불법·탈법적인 제조업의 파견 근로자 문제를 시정하고 재벌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 정상적인 법집행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리 : 선전위원 푸우씨>



마지막 날. 사람들에게 유인물과 목소리로 마음을 건네는 일을 반복하는 것은 몹시 힘이 드는 일이다. 수원역은 작년 추모주간이나 반달(반도체 노동권을 향해 달리다)기간에 계속해서 선전 활동을 벌여왔던 곳이어서 그런지 내 집 근처에 온 듯 마음이 편안해지는 장소다. 시민들 또한 이 문제에 대해 아는 이들도 많고, 긴 설명 없이도 서명에 참여하는 이들도 많다. (궁금증 하나. 서명에 동참하는 이는 대부분이 여성이다. 왜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압도적으로 더 서명에 많이 참여하는 걸까? 아시는 분?)
‘반올림 잇따른 수상!’ 잇따름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는 제쳐두고 추모주간 셋째 날 오전에는 반올림, 금속노조 기륭분회, MBC ‘W'제작진이 27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성평등 디딤돌 상’을 받았다.


추모주간은 삼성만 문제라고, 삼성만 없으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대부분의 기업이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인권 따위는 지구 밖으로 보내버리지 않았는가). 이 추모주간은 삼성을 필두로 이 세상에 퍼트려지고 있는 문화, 지향, 가치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오히려 그것이 당연한), 건강권과 인권을 말하면 배부른 소리가 되는, 8시간 자면 죄책감 느껴지는, 연대와 정의라는 단어를 잊게 만드는, 그런 틀 속으로 사람들을 거세게 밀어 넣고 있는 세상에 대한 저항이었다.


반도체․전자산업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주간은 끝났다. 시민들에게, 싸우고 있는 피해자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피해자에게, 반올림에게 그리고 정부와 삼성에게 추모주간은 무엇이었을까. 다시, 우리는 추모주간을 왜 했을까. 아마도 ‘추모하고 - 환기하고 - 주체를 세우고 - 다음 투쟁을 준비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과 함께 했는지, 얼마나 긴밀하게 나누었는지,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그리고 나와 우리는 얼마나 더 단단해졌는지를 돌아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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