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1년 4월 -풀어 쓰는 판례 이야기] 출퇴근 중 발생한 재해는 산재다!

이 코너에서는 김재민 & 이영애 노무사가 주목할 만한 판례를 쉽게 풀어 독자 여러분께 설명해드립니다. 읽으며 생긴 궁금증이나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laborr@jinbo.net으로 메일 보내주세요, 다음 호에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출퇴근 중 발생한 재해는 산재다!




공인노무사 이 영 애




“조심운전 하라 그랬지?”
“아니, 그게 아니라.. 앞차가 먼저...”
“운전 조심 안 해!”



매일 아침 신랑과 함께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설 때마다 스마트폰으로 도로정체를 확인하지만 돌발 상황으로 강변북로 어디에선가 사고라도 나면, 꽉 막힌 도로에서 그저 조금씩이라도 차가 움직여주기를 바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가 깜빡이도 켜지 않은 옆 차가 끼어들기를 할 땐, 급브레이크를 밟거나 클락션을 울리거나 귀에 착착 감기는 신랑의 잔소리를 듣거나... 신혼 초 부부싸움의 70%가 아침 출근시간의 운전 때문이었습니다.
“출․퇴근시간 두 시간을 아끼고 집에서 근무하는 것은 어떨까?”하고 생각해보지만 일하는 시간만 두 시간 더 늘어날 뿐이고 집에서 일하다 과로로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출퇴근 중의 재해조차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우리나라의 현실로 보았을 때 재택근무는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다고 보기 어렵네 하며 이러쿵 저러쿵 다툼만이 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포기하고 맙니다.


사실 독일에서는 1925년부터, 프랑스는 1946년부터 출퇴근중의 산업재해 유형으로 인정해왔고 일본에서도 1973년부터 출퇴근 중 사고를 노동재해 보험대상으로 인정하여 왔습니다. 그리고 국제노동기구(ILO) 또한 1964년 제121호 협약에서 출퇴근 중 사고를 산업재해에 포함하도록 권고하여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극히 예외적 경우에 한정하여 출퇴근 재해를 인정하고 있으며 공무원이 아닌 일반 노동자의 경우 "통근방법과 경로의 선택이 근로자에게 유보되어 있어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다고 할 수 없다"라는 이유로 출퇴근 중 재해를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논리에 따른다면 통근버스에 탑승하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다 교통사고를 당한 경우라도 아직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업무상 재해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고, 업무용 차량이라도 차량에 대한 관리·이용권이 근로자에게 전담되어 있으면 이 역시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나마 최근의 몇몇 하급심 판례는 일반 노동자의 출퇴근중의 재해에 대해 인정하며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바 출퇴근 중 재해의 인정요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기준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전주지법 2010.12.21선고, 2010구합1306



(전략) 개인 차량을 이용하여 출퇴근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회사가 통근버스를 제공하지 않는 상황에서 다른 대중교통수단이 없고, 이에 따라 회사의 모든 직원이 개인 차량으로 출퇴근하고 있으며, 사고 장소가 원고의 주거지에서 근무지로 이동하는 최적, 최단경로 상에 위치한 점 등을 종합하면, 원고에게는 출퇴근의 방법에 관해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고 실질적으로 사업주의 지배ㆍ관리 아래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후략)



상기 판례에서 법원은 ① 피재노동자의 출근시간이 아침 5시 30분이었다 ② 이 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수단이 없어 회사에 출근하는 노동자가 모두 개인용 차량을 이용한다 ③ 사건이 발생한 장소가 피재노동자의 주거지에서 근무지로 이동하는 최적, 최단 경로상에 위치하였다는 사실관계를 근거로 피재근로자에게 출퇴근 방법 등에 선택의 여지가 없어 실제로는 사업주의 지배, 관리 아래 있었다고 본 것입니다.
이 판례에 따른다면 출근 시간이 너무 이르거나 또는 너무 늦어서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수단이 없고, 사건이 발생한 장소가 주거지에서 근무지로 이동하는 최적, 최단 경로였다면 산업재해로 인정해 준다는 것인데 과거에 비하여 매우 전향적인 기준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서울행정법원 2006.06.14선고, 2006구합7966



(전략) 카풀제도에 따라 카풀에 참여하는 근로자와 같은 근무조에 편성됨으로써 매일 정해진 시간과 경로를 따라 동료 근로자들을 출·퇴근시켜야 했기 때문에 마음대로 그 출·퇴근시간이나 경로를 선택할 수 없었다. 따라서 원고의 승용차는 적어도 출·퇴근시에는 사업주에 의하여 근로자들의 출·퇴근에 제공된 차량에 준하는 교통수단으로서 출·퇴근시 승용차에 대한 사용·관리권은 원고에게 전속된 것이 아니라 사업주인 회사에 속해 있었으므로, 원고의 출·퇴근이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었다고 볼 수있어 출근과정에서 발생한 이 사건 사고로 인해 원고가 입은 부상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후략)


(중략) 산업재해보상제도는 무과실책임의 특수한 손해배상제도라는 성격 외에 근로자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보장적 성격도 갖고 있다. 사회보장적 관점에서 볼 때에도 일정한 범위의 통근재해를 산업재해의 하나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 (후략)



상기 판례의 판결 이전인 2006년에 서울 행정법원에서 나왔던 판례 또한 주목해 볼만 합니다.
상기 판례에서는 “통근이란 근로자가 노무제공과 관련하여 취업장소와 주거지 사이를 오가는 것을 출·퇴근(‘통근’)이라 하고, 통상적인 경로 내지 방법에 따른 통근 도중에 입은 재해를 통근재해라고 한다.”고 통근재해를 정의한 뒤 ① 통근은 노무제공을 위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행위이고 ② 일정한 경로를 왕복하는 정형화된 행위이며 ③ 근로자의 주의만으로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재해를 막기 어렵고 ④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목적이 근로자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통근재해를 산업재해로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이 판례의 중요한 판단 기준 중 한 가지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른 보험급여의 성격을 단순한 보상의 댓가가 아닌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견해를 피력하였고,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4조 제1호에서도 ‘업무상의 재해’를 “업무상의 사유에 의한 근로자의 부상, 질병, 신체장해 또는 사망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을 뿐 사업주의 지배, 관리 하에 있는 경우에만 업무상 재해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판시하여 산재법의 입법취지 및 정의를 엄격하게 해석하여 출퇴근 재해가 발생할 경우 가슴 막막하게 바라보았던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라는 문구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통근 중 재해를 산업재해로 인정했던 두 가지 사건을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교통사고 발생률, 교통사고 사망률, 차대보행자 사망률 등에서 OECD국가 중 1등을 다툴 정도로 교통사고가 일상적 위험으로 다가와 있음에도 아직까지 출퇴근 재해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것이 원칙으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노동자는 노동을 제공하는 방법 외에는 생계를 유지할 방법이 없으며 노동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통근 행위가 필요합니다. 즉 통근하지 않으면 통근재해는 없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근로복지공단이나 법원은 단순히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지 않다고 하여 출퇴근 재해를 대부분 인정하지 않았으며 소개해 드린 판례는 발생하는 출퇴근 재해의 건수와 비교하면 빙산에 일각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앞서 설명 드린 ILO의 권고나 외국의 사례와 비교해 보았을 때 출퇴근 중 발생한 재해를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며 우리나라 또한 산재 인정기준을 세계적 추세에 맞춰야 할 필요가 시급하고 이미 사고를 당한 노동자들에게는 산재법의 입법취지에 맞는 보상이 즉각 시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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