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1년 5월- 현장의목소리] 필리핀 한국기업 여성 노동자, 머를리의 두 번째 한국 원정 투쟁

현장의 목소리 ①

필리핀 한국기업 여성 노동자, 머를리의 두 번째 한국 원정 투쟁


국제민주연대 나 현 필



머를리 솔라노. 1992년 당시 태창이 필리핀에 세운 현지 의류생산 기업 필스전 (Phils Jeon)에 입사하여 2006년 9월에 부당 해고될 때까지 청춘을 한국공장에서 보낸 이 여성노동자는 회사로부터 모범노동자상을 받았을 정도로 열심히 일해 왔다. 이제 중학생이 된 막내아들 걱정으로 잠도 잘 못 이루는 그녀가 두 번씩이나 한국에 원정투쟁을 와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필리핀 노동자들이 잘못한 일은 법을 준수한 것 뿐
필스전 노동자들이 화장실 갈 시간이 2분밖에 되지 않는 회사의 높은 노동 강도와 부당처우에 반발하여 노조설립을 준비한 것은 지난 2003년이다. 회사의 집요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노조는 결국 2004년에 노조설립에 성공하였고 회사가 이에 소송을 제기하자 2005년에 노동부로부터 최종인정을 받게 되었다. 노조는 회사에 단체교섭을 요구하였고 1년이 지나도록 회사가 교섭에 응하기는커녕 노조원들을 탄압하자 2006년 9월, 필리핀 노사관계법에 따라 파업에 돌입하였다. 회사는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자 노조원들이 무단결근했다면서 이들을 부당해고 하였고, 노조원들이 집시법을 준수하며 평화롭게 열던 집회도 수출가공지역 관리청 소속 경찰과 함께 폭력적으로 진압하였다. 이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부상을 입었고 노조는 공장 앞에서 노숙농성에 돌입하였다. 8개월간 지속된 노숙농성 역시 가혹한 탄압의 연속이었다. 한국관리자가 진두지휘하여 농성장을 철거하자 노동자들은 텐트를 친채로 태풍과 폭염을 견뎌야 했으며 심지어는 처음 3개월간은 음식물 공급까지 차단되었다. 공장앞 화단에 땅을 파고 용변을 해결해야 했고 외부로부터의 지원마저 받을 수 없는 고립된 상황에서 꿋꿋하게 8개월을 버텨왔다. 이들이 잘못한 일이라고는 그저 필리핀 법에 따라 노조를 만들고, 파업을 하고, 시위를 한 것뿐이었다.

짓밟힌 여성노동자, 그리고 한국 원정투쟁
2007년 8월 5일 새벽, 농성장을 지키던 두 명의 여성노동자들은 마스크를 쓴 괴한에게 온몸이 꽁꽁 묶인 채로 수출가공지역 공단 밖 구덩이에 던져졌고 농성장은 모두 부서져서 산산조각 나버렸다. 공교롭게도 여성노동자들이 버려진 곳은 2007년 8월 1일부터 새로 선임된 회사 측 변호사가 운영하는 사설 경비업체 사무실에서 불과 100m떨어진 곳이었다. 이후 회사 앞 농성은 끝이 났고 노조 집행위원장 머를리씨는 2007년 9월 3일에 한국을 방문하게 된다. 한국의 민주노총과 국제민주연대, 필리핀 노동자지원센터와 필스전 노조는 한국OECD연락사무소 사무국을 맡고 있는 지식경제부 투자정책과(당시 산업자원부)에 필스전의 모기업인 (주)일경(현재는 KB물산)을 OECD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위반혐의로 제소하였다. 아울러 (주)일경 본사 앞에서 한국 노동자들과 함께 규탄집회를 가졌고 어렵게 본사 경영진과의 면담을 가질 수 있었다. 자신이 직접 모범노동자상까지 주었던 머를리에 대해 “애네들이 왜 여기 왔는지 모르겠다”던 당시 일경 임원의 발언은 머를리의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2008년 4월, 필스전 대표 최양선씨는 노조가 물의를 빚은 것에 대해 한국본사와 한국정부, 심지어 한국 인권단체에 사과하면 해고된 노조원들의 복직을 고려할 수도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제안하나를 던지고는 지금까지 외면하고 있다.

2011년 다시 한국을 방문한 머를리,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회사이름도 바뀌었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노동자들의 억울함과 힘든 상황뿐이었다. 한국정부는 OECD가이드라인위반여부에 대해 조사해달라는 요구에 대해 형식적으로만 대응하면서 시간을 끌어왔고 노조원들을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더 이상 사태를 끌수 없다는 판단 하에 다시 머를리를 한국에 초청하였다. 머를리와 함께 회사 앞에서 선전전도 하였고 한국 투쟁사업장도 방문하였고 노동절 집회에도 참석하였다. 쌍용자동차, 재능교육, 발레오 공조... 머를리처럼 해외자본으로 인해 해고되고, 머를리처럼 오랜기간 노숙농성을 해야만 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비록 2주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머를리는 열심히 자신이 왜 한국까지 와야만 하는지를 이야기 하였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머를리에게 중재노력을 포기하고 기각할 수도 있다는 협박까지 하였고, 한국 본사는 면담요청을 무시해버렸다. 유달리도 쌀쌀했던 4월말 한국의 날씨보다 더 머를리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은 2차례의 걸친 원정투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 필스전 노조의 투쟁전망이었다. 자신의 얼굴이 한국신문에 났다며 곧 해결될 것이란 희망을 가졌던 그녀가 받았을 상처들을 생각하면 필스전 노조투쟁을 연대해온 한국 단체 활동가로서 매우 부끄럽고 미안할 뿐이다. 그럼에도 머를리는 끝까지 함께 연대해준 한국 동지들에 대한 감사인사를 잊지 않았다. 투쟁하는 노동자들끼리는 서로 통하는 것이 있는 것 같다. 재능 농성장과 쌍차노조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머를리는 내가 알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느끼고 공감한 듯 했다.

반드시 이기고 싶은, 아니 이겨야 할 필스전 투쟁
이렇게 해외에 나가있는 한국기업 문제로 2차례나 원정투쟁을 왔고, 부족하지만 한국 노동자들과 시민사회가 연대해온 투쟁은 필스전 노조 투쟁이 유일하다. OECD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을 전문적으로 감시하는 OECDWATCH라는 국제NGO를 비롯하여 국제 노동계가 주목할 뿐만 아니라 한국 언론에도 가장 많이 소개된 투쟁도 바로 필스전 투쟁이다. 필스전 투쟁은 한국정부에게는 국제인권기준 준수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일 것이며 한국기업과 노동조합에게는 가속화되어가고 있는 사업장 해외이전 및 자본유출문제 대응에 있어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희망연대 노동조합은 필스전 투쟁에 꾸준한 지원과 연대를 약속한 바 있고 올해 5월부터 매월 1회씩, 본사 앞에서 항의 집회도 진행할 예정이다. 머를 리가 가장 자주했던 말이 “정의와 보상”이었다. 필스전 노조원들이 옳았음을 한국정부가 인정할 때까지, 그리고 회사가 노동자들에게 응분의 보상을 할 때까지 필스전 투쟁은 멈춰져서도 잊혀 져서도 그리고 져서도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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