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1년 6월- 미디어비툴어보기] 생활의 달인, 왜 유쾌하지 않을까?



생활의 달인, 왜 유쾌하지 않을까?

한노보연 선전위원 푸우씨


너도 나도 ‘달인’이 되기를 강요하는 세상이다. 일요일 저녁 웃음을 주기 위해 개그의 소재로 사용되는 개그콘서트의 ‘달인’을 예외로 하면, 각종 TV프로그램과 매체에서 조금이라도 남다른 재주를 가진 자를 ‘○○의 달인’으로 소개하는 코너가 넘쳐난다. 생활지침서 성격의 ‘연애의 달인’, ‘직장생활의 달인’ 등 서적도 출간됐다. ‘성공하려면 그 무엇이든 남과는 달라야 한다.’고 강요하는 자본주의 경쟁 이데올로기가 곳곳에 스며있는 사회이니 ‘달인’이 더욱 유행처럼 번지는 게 아닐까?
그런 유행을 뒤쫓는 것인지, 고용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얼마 전부터 매달 ‘산재예방의 달인’을 선정하고 있다. 산재예방은 모든 노동자와 사업주, 정부가 일상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것인데, 특별히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나,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의 몫인 듯 소개하는 모습은 자못 씁쓸하다. 어쨌든 이런 ‘달인’이 유행하게 된 것은 SBS TV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이 한 몫을 단단히 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생활의 달인’ 방송제작팀은 홈페이지를 통해 “수십 년간 한 분야에 종사하며 부단한 열정과 노력으로 달인의 경지에 이르게 된 사람들, 삶의 스토리와 리얼리티가 담겨있는 생활 달인은 그 자체가 다큐멘터리, 비록 소박한 일이지만 평생을 통해 최고가 된 생활 달인의 놀라운 득도의 경지를 만나는 시간”이라고 기획의도를 밝히고 있다.
‘생활의 달인’은 짜여진 연출을 거부하는 리얼리티가 강조되고 주변에서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이웃 사람들을 소개하는 TV프로그램으로 일정한 신선함이 있다. 게다가 매주 다양한 출연자들이 보여주는 경이로운 장기(?)는 입이 떡 벌어지게 하기에 충분하다. 일부 언론에서는 ‘생활의 달인’을 ‘3D업종 위한 찬가’라며 칭송하기도 하고, 모 경제일간지의 수석논설위원은 “인터뷰 중에도 일을 멈추지 않는 달인들의 모습은 제 할 일은 게을리 하면서 세상 탓만 해온 게 아닌가, 내 눈의 들보는 못 보면서 다른 눈의 티만 찾던 게 아닌가 반성하게 한다.”고 감상을 내뱉는다.
그렇다! 무엇이든 열중하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을 만하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보는 내내 불편함을 갖는 것은 ‘생활의 달인’이 보여주지 않는 이면 때문이 아닐까?

달인의 이면
요즘 ‘최저임금 5,410원’이 노동계의 주요 요구로 제기되고 있다. 따지고 들면 5,410원도 턱없이 부족하고, 모자란 요구이다. 얼마나 받아야 제대로 대접받는 것인가에 대한 논란을 뒤로 하더라도, ‘생활의 달인’에 소개되는 대다수 노동현장이 저임금 고강도 노동의 전형이라는 것은 모두 공감할 만한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관련 정보를 모으던 중 이 프로그램의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한 글을 봤다. 첫째, 자기 분야에서 최고인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것과 둘째, 달인들의 살림살이가 하나같이 예상과 달리 넉넉하지 않다고, 그래서 정말 아이러니하고 모순적이라고 지적한 한 블로거의 글이었다. 맞는 말이다. ‘생활의 달인’에 소개되는 달인 중 여성노동자의 상당수는 소위 ‘부업’이라는 이름으로 가내수공업에 종사하며 저임금에 혹사당한다. 시트 마스크 팩을 수없이 포장용 비닐 팩에 밀어 넣고, 수만 개의 명함을 접어야만 시간당 고작 몇 천원을 손에 쥐게 된다. 이들은 생계를 꾸리기 위해 기꺼이 스스로의 몸을 기계처럼 다루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쉴 새 없이 작업을 하고, 미션이라는 형태로 때론 눈을 가린 채 척척 업무를 해내는 모습은, 쉬면서 일해서는 좀체 먹고 살기 힘들다는 현실을 포장한 것일 뿐이다. 그렇다고 달인이라고 칭해지는 남성 노동자들의 처지가 좀 더 낫냐고? 방송을 보신 분들은 말 안 해도 거기서 거기인 현실을 익히 다 알 것이다.

안전보건상의 불감증
‘생활의 달인’은 주되게 재빠른 업무처리 능력을 보여주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김밥말기, 군만두 뒤집기, 옷 포장, 생수배달, 신문배달, 순대 썰기, 배추 쌓기 등. 2005년 하반기부터 제작된 프로그램은 그만큼 많고, 많은 달인의 숫자와 그에 비례하는 갖가지 사연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무엇이 남들과 다르게 달인이 억척(?)을 떨며 노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제공은 별반 하지 않는다. 다만 감동을 주기 위해 프로그램 말미에 달인의 고된 업무로 인해 심하게 훼손된 부위(주로 손과 어깨 등)를 카메라 앵글에 담아내거나, 달인이 업무상 질환을 앓고 있음을 짤막히 밝히고 있을 뿐이다. (마치 그것이 성공을 얻게 한 훈장인 것처럼 치켜세우는 것 같아 속상하다.ㅠ.ㅠ)
과도한 업무량과 단순반복 동작이 가져오는 신체의 손상, 근골격계 직업병에 일상적으로 노출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눈감고 지나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미덕처럼 여겨지니 딱히 꼬집어 시비를 걸지 않더라도, 위험하기 그지없는 상황(특히 건설현장)에서 안전장비 하나 없이 철골구조를 넘나들고, 재빠르게 뛰어다니며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날다람쥐 같은 달인’, ‘달인의 경지는 어디까지!’라고 찬사하기 바쁜 꼬락서니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차라리 진기명기나 마술쇼였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덧붙여 생활의 달인을 비롯한 방송 프로그램의 안전보건 불감증에 대해서는 많이 지적된 바들이 있는데, 외국에서는 방송 제작사에서도 안전보건 지원을 하고 있다. 특히 BBC는 제작 당시 안전보건 상의 문제를 사전에 체크하는 체크리스트가 갖춰져 있고, 제작 프로그램의 종류에 따라 안전보건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있다.

기대와 바램
“있을 때 바짝 땡기자!”, “벌 때 벌자”라는 물량=임금=고용 이데올로기가 노동현장의 보편적인 정서가 되어버린 지금. 저임금 고강도 노동이 구조화된 대한민국에서 먹고 살려면 기꺼이 그 정도쯤이야! 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이미 모두 ‘생활이 달인’이라고, 그래서 다들 그렇게 사는데 유독 시비를 거냐고 할 분들이 최소한 일터 독자는 아닐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때마침 유성기업 공권력 투입 사태를 통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야간노동의 문제,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 노동자의 삶의 질을 고민하는 문제가 배부른 귀족노동자의 철없는 투덜거림처럼 호도되는 현실과 ‘생활의 달인’이 오버랩 된다. 과로가 가족, 부양, 삶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찬양받는 대한민국에서 “쉬엄쉬엄 일하자”, “제대로 쉬자”, “잠 좀 자자!”는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는 언제까지 외면 받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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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달인(達人) [명사]
1. 학문이나 기예에 통달하여 남달리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
2. 널리 사물의 이치에 통달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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