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1년 6월- 새세상열기] ‘서른 아홉에 시작한 자립생활’

장 희 영 (탈시설자립생활 당사자, 2010년 11월부터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시작함)




서른 아홉에 시작한 자립생활’


26살 시설에 들어가게 되었다. 어릴 적 난 뇌성마비로 손은 뒤로 틀어져 있었고 얼굴은 항상 찡그리고 있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입학할 즈음 부모님은 몸이 약한 날 1년 후 입학시키려고 출장소를 찾았고 내 이름의 입학통지서가 나왔고 제때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그때 기억으로는 바닥에 엎드려 받아쓰기 연습을 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던 중 큰오빠의 신병검사 결과 허리디스크를 판정받고 군대 면제를 받은 후 점점 허리와 다리에 힘이 없어져 흐느적 거리는 다리를 지팡이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 후 서울대학병원 재진단을 받은 결과 정확한 병명은 모른데 신경성질환으로 나왔다. 큰오빠의 증상이 심해지면서 가정에 불화가 일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시선은 사탄의 눈처럼 보였고 그런 환경에서 생활하기 싫었던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독립을 했다. 일산직업훈련원에 들어가 2주 코스 컴퓨터 교육을 배웠다. 그 곳에서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컴퓨터 교육은 마치고 난 후 국립재활원에서 1년간 양제과교육도 받았다. 남편과 나이차이가 조금 났고 남편 왈 숟가락만 들고 오라는 프로포즈를 받고 양가 반대를 헤치고 결국 결혼에 골인, 1년 후 아이를 출산하면서 건강상태가 극도로 나빠졌고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남편이 비디오 가게를 운영하면서 아이와 나를 돌봤다. 그때 당시엔 남편의 힘듦을 알아주지 못했다. 그 후에도 국립재활원에 몇 개월간 입원도 했었고 집에서 지내다 결국 남편도 감당하기 어렵고 형편도 넉넉하지 못해 시설을 알아보고 철원요양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 시설에 갔을 땐 여자아이들도 머리를 빡빡 밀어놓고 그런 모습에 낯설고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그냥 이렇게 쳐박혀 살아야 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때 내 나이 26살 이다.

요양원 생활은 정말 외롭다. 어디를 가던지 본인이 하기 나름이라 얘기하지만 더 외로운 곳인거 같다. 적응하기 전까지는 더. 적응하고 나서는 나와 마음 맞는 생활교사나 지적장애인 친구들의 순수함을 알아가게 되고 그 친구들로 하여금 웃을 수 있었고 날 지켜주는 거 같았다. 날 살 수 있게 해줬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요양원은 밖과 차단된 공간이었다. 밖엘 나가기 위해선 차량으로 30분 이상을 이동해야 했고 길도 포장되어있지 않고 턱도 많았다. 손님이 찾아오거나 아는 지인들이 찾아오면 근처로 바람 쐬러 나가는 정도고 가족들이 오면 집에 한번 가자고 해도 난 좋아하지 않았다. 엄마가 보고 싶어하는 마음을 아니까 가끔 집에 갔다. 가족들도 여유롭게 살고 있지 않으니까 나를 어떻게 해달라 말 꺼내기 힘들었고 한번 오라고 하면 가는 정도였다.
요양원 들어와서 나는 이렇게 살아야 되나 보다 그렇게 알고 있었다. 두 분(지영, 정혁)을 알게 되면서 많은 힘이 되었다. 지영씨는 시설에서도 휠체어를 타기만 하면 늦게까지 다녔고, 정혁씨도 무릎으로 기어 다니거나 휠체어를 타면 활동이 가능했다. 나 같은 경우 엄살일지 모르지만 휠체어에 앉아 있으면 노동하는 시간과 맞먹었다. 버겁다. 목부터 마비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휠체어에서 긴 시간을 앉아있으면서 입술이 부르트고 너무 힘들었다. 나 나름대로 큰 욕심 안내고 내 몸 상태에 맞게 힘들면 쉬고 그러면 별건가 싶더라고 생각했다.
위에 두 분의 자립생활과 TV에 나오는 자립생활 사례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결심이 섰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집밖으로 나갈 수 있고 시야가 넓어지는 생활을 하고 싶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누군가의 손길이 아니면 생활에 어려운데 나가서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되었다.
결론은 탈시설을 했고 지금은 일단 좋다. 가장 고민되는 부분은 활동보조시간 때문에 외출 시 휠체어를 타야할 때와 생리적인 현상 등 활동보조인이 있을 때만 가능해 졌다. 다행이도 멘토를 잘 만나서 늘 신경써주고 주민센터에서 전입신고부터 일상의 일들을 많이 도움 받고 있다.


자립생활을 시작한지 6개월이 지나고 있다. 내 삶에 많은 변화들이 생겼다. 손가락 하나정도를 움직여 항상 수동휠체어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지만 이동이 가능해 가고 싶은곳에 자유롭게 가는것에 제약을 받았는데 이제 난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전동휠체어를 탈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걱정이 있었는데 하루에 몇시간씩 집주변을 다니며 연습한 결과 이제 난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에 내 마음대로 갈수 있다. 그리고 난 연극을 한번 해보고 싶었다. 배역 중에 악역을 정말 해보고 싶다. 예전에 고두심이 했던 ‘잘났어 정말’ 이란 대사가 나왔던 배역을 해보고 싶었다. 요즘 난 장애인극단에서 매주 금요일 연극연습을 하고 있다. 잘한다라는 선생님이 말에 힘이 나 몸이 아프더라고 꼭 연습에는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조만간 배우로서 연기할 날을 기다리며 어렵지만, 느리지만 하나하나 나의 꿈을 이루고 있다.

글 싣는 순서
❶ 청소년 - 청소년이 노동인권과 만나면? (2월호)
❷ 여성 - 여성의 몸에 대한 건강권과 자기결정권,
당사자가 아닌 누가 결정하려 하는가? (3월호)
❸ 성소수자 - 성소수자 노동자 이야기 (5월호)
❹ 장애 - 서른 아홉에 시작한 자립생활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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